지난 토요일 본방사수를 못하고 다운로드하여 봤는데

이미 칠봉이가 찐하게 하는 키스신을 보고서 복습을 하다가 말았습니다-.-;;

네, 저는 쓰레기빠 거든요 ㅠ.ㅠ

도저히 복습할 마음도 기운도 없었는데 좋은 리뷰라서 끌고 왔어요.

 

 

http://doctorcall.tistory.com/1687

다른 리뷰도 다 너무 좋으니 한번 읽어보세요!




멜로드라마에서 가장 극단적인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연출은 남녀주인공의 키스신 이상 가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최근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멜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키스신은 주목이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죠. 그 첫 번째 신호탄을 터뜨린 사람은 다름 아닌 서울 남자 칠봉이였습니다. "이상하다. 널 보고 있으면 왜 이렇게 웃음이 나지?" 그를 웃게 해주는 여자 나정이를 향한 감정이 가슴을 옥죄는 칠봉이에게 때마침 터져준 왕게임 놀이의 키스 벌칙은 벌칙이래도 이미 벌칙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한도를 초과한 취사량으로 대부분이 정신을 잃은 밤. 심지어 나정이조차 키스 당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 순간에, 취하지 않은 사람은 칠봉이 하나뿐인 것만 같았죠. 취중진담을 넘어선 술김의 키스는 지금 칠봉이에게 가장 뜨거운 사람이 누구인가를 증명하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진정한 카타르시스는 이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키스보다 뜨거운 절정의 순간이 바로 그 뒤를 이어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죠. 두 사람의 키스를 바라보고 있는 이 남자의 눈빛. 그게 바로 이날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순간 잠들지 않은 감정은 칠봉이 하나만이 아니었던 것이죠.



키스하는 두 사람에 집중하지 않고 카메라는 굳이 그 방의 감정을 체크합니다. 이미 거나한 술잔치에 정신을 잃은 새내기들은, 벌칙을 제대로 수행했는가를 체크할 경황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잠들어있는 아이들을 거슬러 올라가 카메라가 도달한 최후의 감정은 바로 다름 아닌 쓰레기의 눈빛이었죠. 그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두 사람의 키스신에 취기조차 물러나 버릴 만큼 그는 충격에 빠져있었습니다.

칠봉이의 키스신에 깔리던 가사의 대목. "사랑 그것은 엇갈린 너와 나의 시간들. 스산한 바람처럼 지나쳐갔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던 쓰레기의 눈빛과 교차되는 가사. "사랑 그것은 알 수 없는 너의 그리움. 남아있는 나의 깊은 미련들."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 배경음으로 선택된 최용준의 아마도 그건은 바로 쓰레기를 향한 테마송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제작진이 이 부분까지 공들인 디테일로 완성했다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군요.



그의 눈빛은 여러모로 해석의 여지를 남깁니다. 만약 나정이를 향한 쓰레기의 감정에 일말의 여지조차 없다면 순간 얼어붙을 이유도 상념에 잠길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남자아이와의 키스신조차 아무렇지 않게 수행하던 쓰레기가 술이 깨버릴 만큼의 충격을 받았다는 증거죠. 평소의 쓰레기였다면 달려들어 입을 떼놓던가 유들유들하게 장난이라도 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농담의 몇 마디라도 던졌겠죠. 나정이는 잔뜩 놀림 받았을 테고 분개한 동생에게 몇 대 차이거나 하는 평소와 같은 그림이 연출됐을 테고요.



하지만 다음날의 광경은 대단히 쓰레기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일본으로 떠난 줄만 알았던 칠봉이가 나정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끼어들지도 못하고 머쓱하게 바라보던 쓰레기는 헛기침을 하며 그 사이를 파고듭니다. 그가 연출한 작위적인 일상이죠. "오빠." 키스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나정이가 반가움에 팔짱을 끼고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지만, 이 평소 같은 풍경에 정말이지 미묘한 감정 하나가 떠오르고 있더군요. 경계심과 불쾌감.



방으로 따라 들어온 나정이 앞에서 스스럼없이 벗어대는 쓰레기를 보면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나정이를 제외하곤 일상적인 장면이다 싶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나정이의 시선만이 아니었습니다. 나정이는 오빠를 바라보지 못했고 쓰레기는 그런 나정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합니다. 마치 관찰하듯 그리고 재차 확인하듯 나정이의 시선을 훑어내리던 그는 일부러 "정아..." 라고 불러 자신을 바라보게끔 하지요. 마치 수컷의 어필처럼. 정이의 마음을 확인하는 한편 그 마음을 이용해 자신을 드러내는 본능적 공격 태세. 굉장히 이질적인 것은 나정이를 나만의 정이로 두고 싶으면서도 한편 그녀와 자신을 막아서는 금단의 벽, 오빠와 여동생의 관계를 지키고 싶은 쓰레기의 이상이죠. 머리는 그녀를 거부하는데 본능은 나정이를 원하고 있습니다.

나정이를 대하는 쓰레기의 태도는 너무 허물이 없어서 심지어 부자연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때론 가족 관계를 연출하기 위한 연기처럼 느껴지죠. 여동생의 속옷을 들고 장난을 친다든가 지나치리만큼 자연스러운 스킨십.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벗는 쓰레기의 행동은 분명 표상적인 오빠와 여동생의 이미지입니다. 이건 진짜가 아니죠. 하지만 쓰레기는 그런 식으로라도 서로의 관계를 지켜야만 했을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느껴집니다.



만약 쓰레기에게 가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단순한 애착이라 해석할 수 있겠지만, 버젓이 마산의 가족이 있는 그가 딱히 혈연의 정에 굶주릴 이유가 없겠죠. (출생의 비밀이나 숨겨놨던 쓰레기의 가족 관계가 들춰진다면 또 모르겠지만) 이상하리만큼 나정이의 가족에 집착하는 그. 이 추상적 관계의 결론은 결국 나정이를 향한 그의 감정 때문일 테죠. 아마도 그는 오래전부터, 어쩌면 나정이가 자신을 사랑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둠이 무서워 인형을 끌어안고 울먹이는 소녀에게 "내가 너의 기사가 되어 항상 너를 지켜줄 거야." 라고 말했던 소년의 노래 가사처럼 그는 오래전부터 눈물 많은 소녀의 그리고 인형의 기사였습니다.  오빠를 잃은 여자아이의 오빠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소년의 소녀를 지키는 방식이었죠. 여동생의 오빠로 남은 그가 사랑의 감정을 끄집어낼 수 있을 리 없습니다. 왕자님을 선택하지 못한 인형의 기사이기에 그녀를 사랑할 수 없었던 것처럼 고작 어린 날의 물개 인형을 찾아주는 일밖엔 할 수 없는, 그는 인형의 기사였습니다. 그는 상념에 잠긴 얼굴로 인형을 끌어안고 잠든 그녀를 바라봅니다.



그러니 최근 일련의 변화들이 인형의 기사에겐 혼란스럽기 그지없을 테죠. 여동생의 고백을 받았고 왕자님이 등장했으며 그는 쓰레기가 지켜왔던 포지션마저 망가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부자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그려내는 캐치볼에서 아들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자신이 아닌 타인이었습니다. "확실히 공이 더 좋아졌어..." 심지어 아들 대하듯 대견해하는 아버지의 말을 그는 서운한 듯 아쉬운 듯 바라보다가 순간 고개를 돌려 칠봉이의 포지션을 인식하곤 찡그린 미소를 짓습니다.



미간과 입술을 비죽거리며. 어떤 식으로든 해석의 여지가 가능한 표정을 그 찰나의 순간에 지어 보이며 시청자에게 미스터리를 선사하곤 자신의 연기를 복선으로 만들어버리는 정우의 연기력이 정말 대단하더군요. 그리고 다음, 티비 화면 속 경찰청 사람들의 에피소드에 비추어지는 제목은 하필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제작진은 나정이와 칠봉이의 키스신에 깔린 '아마도 그건'에 원곡에 없는 두 번의 효과음을 첨부했습니다. 마치 타격처럼 쾅-하는 소리가 키스신 직후. 그리고 그 장면을 바라보는 쓰레기의 눈빛과 동시에 터졌죠. 두 사람의 키스신을 효과적으로 보이기 위한 연출인가 했는데 이 소리는 키스신을 벗어나 쓰레기의 눈빛에 꽂히며 극대화됩니다. 마치 내리치듯 쾅-하는 소리는 그녀를 여자로 느끼기 시작한 각성의 의미라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 쓰레기 마음에 울린, 침입자를 향한 경계 신호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여동생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정이는 여자가 되어버렸고 심지어 그가 완성한 금기를 깨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 진짜 친아들과 친오빠를 가질 그들에겐 더이상 쓰레기의 포지션이 필요하지 않겠죠. 오빠의 기일. 만우절에 터뜨린 나정이의 프러포즈. 그리고 오빠의 생일날 찾아온 새 생명의 신호. 그것은 나정이의 오빠이자 성씨 가문의 아들이었던 쓰레기의 혼란이자 한편 그의 족쇄를 풀어주는 오빠의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문제는 이것을 받아들이기엔 그의 죄책감과 의무감이 꽤나 오랜 시간 공들여 그를 괴롭힐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나정이를 여자로 느낀 칠봉이는 벌칙을 빙자한 키스를 퍼부었지만 아마도 쓰레기는 그녀를 여자로 자각한 순간 사소한 스킨십조차 머뭇거리게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