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예쁜 남자
캠퍼스가 꽃동산이 되었다.
팝콘처럼 터지기 시작한 벚꽃이 눈송이처럼 날리고 이름 모를 꽃들도 사방에서 피어났다. 내 얼굴에 상처는 아주 작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혼자 밥 먹는 것에 익숙하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했고 주변의 시선에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자꾸 사람이 늘어나는지 모르겠다.
“우리 여기 같이 앉아도 돼?”
지난번 강의실에서 나에게 안녕 조인경 하고 인사를 해주던 여학생 둘이 식판을 들고 우리 테이블 앞에 다가왔다.
내 앞에 앉아 있던 이지수가 빠르게 식판을 들고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왔다.
“고마워.”
앞에 앉은 여학생이 나와 이지수 앞으로 요구르트를 내밀며 눈을 찡긋하며 인사했다.
“한참 늦긴 했지만 난 손 주영.”
“난 박 은우. 우리 이름이 중성적이라 너도 그런 줄 알았어. 그냥 남자도 여자도 어울리는 그런 이름 말이야. ”
같은 과를 다닌지 일 년이 지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우리 둘이 과에 남학생 중에 마음에 드는 애 꼽았는데 얘가 너 꼽았어.”
“맞아. 나, 작년에 조인경 너 찍었잖아. 고백할 뻔 했다고.”
앞에 앉은 주영과 은우가 서로 눈을 맞추고는 킥킥 웃었다.
“너랑 이지수랑 가끔씩 같이 있길래 둘이 사귀나 했어.”
“근데 인경이 너 또 다른 여자애 랑도 같이 있는 거 몇 번 봤어. 우리 둘이서 지수한테 양다리라고 말해줘야 하나 한참 고민했다고.”
앞에 앉은 둘은 나름 작년 한해의 서사를 빠른 속도로 말했다.
뭐라 대꾸해줘야 하나 하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현주 말고 내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불러주는 친구를 만난 일이 없었다. 이지수는 내게 언제나 조심했다.
"진짜, 그냥 이쁘게 생긴 남자앤 줄 알았지.“
“미안. 진짜 여잔 줄 몰랐어.”
그냥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밥 먹으라고 손으로 시늉해 보였다.
“얘 고등학교 때 부터 고백하러 오는 애들 많았어.”
이지수가 가벼운 어투로 앞자리 친구들에게 말했다.
“진짜? 진짜 고백하러 왔다고?”
“무슨 무슨 날마다 애들이 선물 싸들고 몰려 오는 거 몇 번 봤어. 게다가 은근히 다정하기까지 하거든.”
내가 다정하다고? 처음 듣는 말이다.
현주는 맨날 차갑다고 투덜거리는데….
툭하고 내가 앉은 자리에 에이스 과자며 쵸콜릿이 또 놓여졌다. 요즘 들어 학생식당에 있을 때나 강의실에 있을 때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내가 뒤돌아보면 어느새 사람들 사이로 묻혀 난 실제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우리 과 4학년 선배 언니.”
앞자리에 앉은 박은우가 내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이러면 안 되겠지만 그 선배 쫌 꼬시다. 뿌린 대로 거두는 거지 뭐.”
그 일이 일어난 이후 아직 학교에서 복학생 선배를 스친 일도 없었다. 김식의 현수막은 확연한 보복을 완성한 것은 사실이었다.
“안녕하세요. ”
갑자기 와르르 몰려든 일학년이 인사를 건넸다.
“저희 여기 앉아도 되요? 언니.”
까만 뿔테 안경을 쓴 송주희의 언니 소리가 아직도 귀에 익지 않았다. 언니라고 호칭 할때마다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어색했다.
“앉아, 앉아."
내 앞자리의 주영이 먼저 선심 쓰 듯 대답해주었다. 학생식당 자리야 학생들 원하는 대로 앉는 건데 물어볼 필요가 있나?
우리가 앉은 자리에 한 칸을 비우고는 1학년 여학생들이 우르르 앉았다.
내가 가장 옆에는 단발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송주희가 당당히 앉아있고 우리 언니야! 라는 소개를 하며 친구들을 끌고 앉아 있다. 그 옆에는 딸려온 1학년 남학생도 몇 명 앉아 있다.
내 옆 쪽으로 몸을 한껏 기울인 송주희가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 김식 오빠는 우리랑 같이 교양은 안 들어요. 맨날 건축과 오빠들이랑 어울려요.”
마치 내게 언니의 잘못을 엄마에게 일러주는 동생처럼 말했다.
“지금도 저쪽에 건축과랑 같이 밥 먹어요.”
고작 한 달도 안 다닌 신입생이 나보다 김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송주희가 손짓으로 가리킨 곳을 나와 같이 앉은 학생들 모두가 돌아보았다.
허리를 반듯하게 편 남학생 하나와 김식이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식 오빠 별명이 미친 김식이에요?”
“진짜 별명이 그건지는 모르겠지만 쟤 자퇴하고 우리 과 다시 들어 온 거라며? 미친 건 맞지. 난 고삼은 두 번 다시 하기 싫다.”
앞에 앉은 주영이 김식 자리를 흘깃 거리며 대꾸해주었다.
같이 앉은 테이블 모두가 김식에게 관심이 많았다. 재입학부터 현수막까지 이슈의 중심에는 김식이 있었다.
“나 대학원생들한테서 들었는데 김식이가 교수님한테 너가 우리 과 재밌다고 했다고 했다는데? 그래서 다시 시험 쳐서 들어 온 거라고. 우리 학과장 좋아 죽는대. ”
얘네들은 밥도 안 먹고 끊임없이 얘기했다.
나는 별 다른 대꾸해주지 않았다. 가끔씩 고개나 끄덕여주는 정도였는데 다들 눈치를 못챈건지 상관이 없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다.
시끄럽게 까르르 웃는 큰 소리가 식당 안에 퍼졌다.
김식이 앉은 테이블 옆 쪽으로 김식의 이야기를 물어다 주는 참새떼들이 몰려 앉은 자리다. 오늘따라 그 테이블의 흥분도가 다른 날 보다 한 치 더 올라 있었다.
왁자한 웃음소리가 시끄럽게 터져 나왔다.
갑자기 참새떼 무리들이 드르륵 의자를 밀어내며 일어섰다. 그저 점심을 다 먹고 나가려나보다 생각했다. 그중 몇 명이 가운데 선 사람에게 손짓하며 가리키는 행동을 했다. 그냥 나가는 게 아닌가?
이상하게도 그 손짓이 우리쪽 테이블 같다고 생각한 순가나 무리 중 한 사람이 혼자 식당 가운데를 걷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소음이 사라졌는데 오히려 그 사람에게 시선이 저절로 따라갔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테이블 모두가 당당한 걸음으로 걷는 그 사람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참새떼 무리들도 모두 일어서서 식당을 걷는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연예인인가봐!”
우리 테이블 쪽에 누군가가 홀린 듯 말했다.
그 사람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림에도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허리를 곧게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 마치 시선을 즐기는 것 같았다.
어깨를 덮을 듯 한 머리카락에 앞이마까지 가린 풍성한 갈색 펌 머리가 귀여운 강아지 같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잡는 것은 헤어스타일 때문이 아니었다.
군데 군데 찢어져 살이 보이는 청바지에 지나치게 화려한 웨스턴 부츠 그리고 계절감이 어긋난 지나치게 얇은 흰 반팔 티셔츠가 깊게 파여져 있었다.
공대 학생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모가 아니었다.
식당안의 모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저마다 저들끼리 소곤거리며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화려한 외양의 사람이 향하는 곳은 암만 봐도 내가 앉은 쪽이다. 이쪽은 화장실 가는 쪽도 아니고, 출입문 쪽으로 가는 방향도 아니었다.
참새떼 무리들이 손짓해주던 방향이라고 확연히 느낀 순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근데… 저 사람 이쪽으로 오나 봐.”
“왜? 왜? ”
“여기 저 사람 아는 사람 있어?”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이미 이지수 앞을 막고 섰다.
“거봐… 다정하다니까.”
아주 작은 소리로 이지수가 앞에 앉은 친구들에게 건네는 말이 들려왔다.
우리 테이블에 작은 숨소리조차 멈췄다.
누구하나 숟가락을 들지도 입안에 든 음식을 씹지도 못하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딱 멈췄다. 우리 테이블에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서서 내 앞으로 당당히 걷는 그 사람을 꼼꼼히 바라보았다.
왜 이쪽을 향해 걷는지, 어떤 목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즐거운 듯 미소를 달고 오는 저 사람의 진위를 알아 낼 수 없었다.
여자? 아니면 남자?
여자라고 하기엔 위에 입은 옷은 젖꼭지가 비칠 정도로 얇았다. 남자라고 하기엔 걸음을 걷는 골반과 허리가 드러난 팔목이 지나치게 얇았다. 누군가 휘파람을 휘익 불자 그 사람이 손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그런 상황이 아주 익숙한 것처럼.
또박또박 걸어서 결국 내 앞에 포즈를 취하듯 허리에 손을 얹고 섰다.
“야! 비켜.”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안하무인처럼 당당한 어투로 내게 말했다.
나와 둘이 시선이 얽혔다.
나와 눈높이가 비슷했다. 버티고 선 나 때문인지 앞에 선 사람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 그쪽에서 비켜서 가.”
“너 뭔데?”
손목에 화려한 팔찌를 여러 개 찬 손이 내 앞으로 스윽 다가왔다. 손가락마다 반지가 여러 개 끼여져 있다.
“너는 뭔데?”
희한하게 생겼다.
복학생이 내 얼굴을 빤히 보다 꺼낸 바로 그 단어처럼 정말 희한하게 생겼다.
전체적으로 색이 흐렸다. 옅을 갈색 머리카락에 지나치게 하얀 피부는 마치 몸에 색소자체가 모자란 사람처럼 흐렸다.
그러나 생김새는 정말 진했다.
정말 작은 얼굴에 반 정도는 차지 할 것 같은 커다란 눈동자와 오똑한 코가 선명했다. 게다가 시원한 입술엔 옅은 화장을 한 것인지 예쁜 색깔의 립이 자극적이고 화려했다.
예쁘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겠지만 화려하게 예뻤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화려하게 이뻤던 사람은 미스춘향 대회를 준비하던 시절의 주경언니였다. 앞에선 사람은 그 주경언니를 능가할 정도로 화려하고 예쁘고 자극적이었다. 그리고 본인이 스스로 어떤 얼굴인지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난 서경후.… 이쁜 남자 첨 봐?”
까랑까랑하게 울리는 목소리 역시도 얇은 허리와는 달리 힘이 있어 쭉 뻗어 나갔다. 발성 연습을 한 것처럼 발음 하나하나도 정확히 말했다. 마치 연극무대에 올라선 배우 같은 느낌이었다.
얼굴 어디에서도 남자다움은 찾아지지 않았다. 수염자국도 억센 턱 선도 없이 투명하나 피부였다.
“뭐래?”
나는 가소롭다는 듯 대꾸했다.
내 대답에 본인이 남자라고 주장하는 예쁜 남자가 눈썹을 휘었다. 이런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 조차도 훈련을 한 것처럼 능숙했다.
앞에 선 남자가 눈동자를 아래위로 움직이면서 빠르게 내 얼굴을 훑어 내렸다. 그 시선은 마치 경쟁자를 가늠하는 듯 한 이상한 눈빛이었다. 내 얼굴을 꼼꼼히 살펴 본 남자는 자신의 외모에 승리를 확신하는 듯 입꼬리에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너도 쫌 생기긴 했네. 근데 너 말고 뒤에 쪼끄만 애 한테 볼일 있거든.”
앞에 선 예쁜 남자가 손을 흔들 때마다 훅하고 코가 아릴 정도로 향수 냄새가 끼쳐왔다.
“이지수, 너 얘 알아?”
등 뒤에 이지수에게 물었다. 한껏 고개를 빼고 예쁜 남자에게 넋을 잃은 이지수가 고개를 저었다.
“너 모른 다는데? 그냥 가라. ”
“할 말 있어서 왔다고.”
예쁜 남자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훈련된 듯 사람의 시선을 앗아갔다. 행동 하나하나가 극적으로 명확하다. 마치 저 혼자 연극무대에 서 있는 것처럼 과장되고 정확했다
얘의 감정이 정확하게 읽혔다
“야, 너 그냥 이쪽으로 나와 봐. ”
내 등 뒤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이지수와 앞에 선 남자의 시선이 제대로 마주쳤다.
"에… 뭐야, 암만 봐도 김식 취향은 아닌 거 같은데.…. 야, 너 김식한테 고백했다 채여서 도서관에서 김식 가방 잡고 펑펑 울었다며?”
순간 내내 호기심으로 내 등 뒤에서 이쪽 저 쪽으로 얼굴을 내밀던 이지수가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쿵 소리가 나도록 요란하게 테이블에 푹 엎어졌다. 귓불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 모습이 어찌나 빨간지 잠깐 흘깃 본 나 역시도 뜨거워졌다.
“어따 들이대는 거야? 못생긴 주제에.”
이지수가 테이블에 엎드리자 이겼다 라는 표정으로 예쁜 남자가 거만하게 말했다.
“넌 뭐… 어디서 미친년 산발 머리를 하고 젖꼭지나 내보이는 주제에! 너도 김식 취향은 아니거든.”
나도 지지 않고 맞서 소리쳤다.
아,씨….
앞에 선 남자 역시도 이지수 만큼 빨갛게 달아올랐다.
“야, 너, 너…. 내 젖꼭지 봤어?”
“보라고 그렇게 입은 거 아니었어? 여기 식당 안 사람들 다 봤거든.”
무례에 대한 답을 무례로 돌려줬다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언제 왔는지 대치하고 섰던 나와 앞에 선 예쁜 남자 사이로 김식이 다가섰다. 그리곤 예쁜 남자의 어깨에 팔을 자연스럽게 둘렀다.
“여기까지. 애 그만 잡아. ”
앞에 선 예쁜 남자가 김식의 긴 팔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마치 오래 사귄 연인처럼. 아주 익숙하게.
“왜? 내가 말할 차롄데 ….”
나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둘이서 말을 주고 받았다.
“너 쟤 못 이겨.”
오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김식이 흘깃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피식피식 웃는 얼굴이 얄미울 정도로 기분 좋아보였다.
“아직 제대로 싸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 너 아는 사람이야?”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르는 사람이야. 가자구.”
달래며 예쁜 남자를 데리고 가는 김식의 말이 우리 테이블까지 다 들렸다.
“너… 주기도한테 이를 줄 알아.”
김식에게 반쯤 끌려가던 예쁜 남자가 내 쪽을 보고는 소리쳤다.
나도 허리에 손을 얹고 당당하게 턱을 쳐들어 보였다.
“나도 현수막 해 줄 거지?”
창피함을 모르는 예쁜 남자가 김식을 향해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밥맛이 사라져 버렸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이지수의 식판과 내 식판을 정리하고 학생 식당을 나와 버렸다.
둘 다 손에 작은 요구르트 하나씩 손에 잡고 벚꽃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아직도 이지수의 얼굴은 빨갰고, 나도 어쩐지 뜨끈뜨끈한 기분이었다.
“김식 때문에 운거 아니지?”
나는 한숨처럼 물었다.
따뜻한 바람이 불때마다 한 잎 두 잎, 벚꽃이 파란 하늘 아래로 춤을 추었다.
“응.”
이지수가 말하지 않아도 언제인지 알 것 같았다.
3월 나를 만났을 때의 이지수의 곤란해 했던 얼굴표정도 이해가 되었다. 시시하게 굴었던 나보다 내가 모르는 소문의 주인공이 된 이지수의 난감함도 짐작되었다.
멋쩍은 이지수가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발로 툭툭 걷어찼다.
둘이 무슨 말을 할지 어떤 방식으로 해야할 지 몰라 가만히 숨만 쉬었다.
“과사로 전화가 왔다고 나한테 말해주더라고. ”
아주 느리게 이지수가 단어를 고르고 골라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뭘 해야 할 지 몰라서 김식후배를 찾으러 갔었어.”
가만가만 말하는 이지수의 목소리 사이 조용조용하게 이지수의 숨소리가 들렸다.
나도 나른 나른한 숨소리만 내었다.
둘이 멍하니 벚꽃이 흐드러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마워.”
한참의 침묵 후에 나는 고작 그렇게 말했다.
오후 수업은 집중 할 수가 없었다.
우리 테이블로 쳐들어왔던 서경후라는 남자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예쁜 남자.
그림자가 질 것 같은 긴 눈썹, 발그스름한 사랑스러운 볼과 선명한 선홍색 입술이 자꾸만 어른거렸다. 그런 얼굴은 처음 봤다. 예쁜 남자의 얼굴, 억센 뼈대와는 달리 나긋나긋 얄쌍한 허리선과 손목과 손의 움직임까지.
그리고 김식의 어깨동무에 자연스럽게 쏙 들어가던 그 모습까지 내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는 남자!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 당당함과 타인의 시선을 즐기는 여유까지. 그 강렬함이 지워지지 않았다.
김식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후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환한 햇살 아래에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가끔씩 늦은 밤에 집으로 찾아와 노크 하고는 언제 올 거냐고 다그치던 김식 때문은 아니었다.
일찍 끝난 수업 때문도 아니었다.
집으로 향하던 마음을 접고 충동적으로 김식의 옥탑방 방향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나른한 햇살 때문인지 아니면 온 거리에 가득 핀 벚꽃 때문인지 1센치 정도 들뜬 마음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