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많던 음식이 모두 사라졌다.

그 많던 술도 빈병만 남았다.

 

마루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은 지나치게 신이 난 것 같았다.

김식 한 사람만 들어왔을 뿐인데 모두가 흥겨웠다. 심지어 뒤늦게 진우를 데리러 온 진우엄마조차도 진우의 짧아진 머리에 잠깐 눈물바람을 하더니 나중엔 흥이 올라 노래까지 불렀다.

 

나를 붙잡고 고작 대장 한마디에 애가 저리 됐다면서 옆 눈으로 김식을 계속 쳐다보았다. 혀가 꼬부라져 어디서 저런 애를 잡아왔냐는 질문에 모두가 내 쪽으로 귀를 열고 있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집안 식구들 시선이 내내 김식을 따라다녔다. 그 시선을 뻔뻔하게 즐기는 김식이 자꾸 거슬리기만 했다.

 

이상한 밤이었다.

우스꽝스럽기도 난장판이기도 한 밤이 그렇게 지났다.

 

 

지난밤의 과열된 숙취로 고생하며 도청언니들이 출근을 했다.

아직 방학을 하지 않은 학교를 원망하면서 진우와 현기가 학교를 갔다.

그리고 지난밤 거한 뒷자리 정리가 덜 된 것을 신경 쓰며 엄마가 불교 유치원으로 출근했다. 김식은 또 예의바른 청년이 되어 엄마의 출근길을 바래다 주었다. 아직 눈이 쌓인 그 길을 느리고 찬찬히 엄마와 함께 걸어갔다. 내가 하려고 했는데 김식이 잽싸게 엄마를 낚아채갔다.

다정하게 대문을 나서는 모습에 눈을 뾰족하게 뜨고 상냥한 그 등을 노려보았다.

맘에 안 든다.

나의 시선은 자꾸만 시계로 향했다. 엄마의 불교유치원을 왕복할 시간을 자꾸 재고 있었다.

주방에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나오니 김식이 마루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종이 한 장을 앞에 놓고 뭔가를 끼적거리고 있었다.

얄미 울 만치 태연자약하게 내 집 마루에 앉아있는 저 등을 한 대 때리고 싶었다.

난 어제부터 내내 하고 싶었던 말을 먼저 따지듯 소리쳤다.

 

“ 너 왜 자꾸 엄마하고 친한 척 하는데? ”

 

아니, 아니.

 

“언제 갈 건데? 너 알바 안 해?”

“이제 내가 좀 궁금해졌나봐? 질문을 다하고.”

 

조급한 나와 달리 김식은 느긋하게 말했다.

“ 아, 그냥 빨리 가라고. 남의 집에서 뭐 하는 거야? ”

 

창밖의 하늘에 드디어 두꺼운 구름이 조금씩 밀려가고 해가 드러나고 있었다.

 

“눈 녹으면 바로 가.”

“할일 끝나면”

 

나 따위는 관심이 없다는 듯 내 얼굴은 제대로 보지도 않은 체 말했다. 슥슥 무언가 그리는 종이가 더 중요한 듯 해 보였다.

 

“니가 할 일이 뭐가 있는데?”

“나갔다 온다.”

 

김식이 벌떡 일어섰다. 내가 올려다 봐야 할 정도의 키가 몹시 거슬렸다. 김식은 종이를 접어 뒷주머니에 넣고 입고 온 패딩을 걸쳤다.

 

“어디 가는데?”

“미리 약을 좀 치려고. ”

 

김식이 똑 바로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도 지지 않고 고개를 바짝 들고 김식을 쳐다보았다.

 

“한 놈이 살짝 거슬리기도 하고.”

 

패딩의 지퍼를 올리면서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직 막냉이는 눈치 못 챈 거 같고.”

“아, 진짜 뭐라는거야? ”

 

울컥 치 받는 나를 두고 김식이 돌아섰다.

지난 밤 내내 온 식구가 부르던 막냉이를 김식도 자연스럽게 부르고 있다. 얜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알 듯 모를 듯 한 말만 남기고 유리문을 열고 마루를 내려섰다.

 

김식은 마당에 엄마가 덮어준 비닐 덮개를 벗겼다. 거창한 까만 오토바이가 모습을 나타냈다.

나도 쫄랑 쫄랑 따라서 마당으로 내려왔다.

김식이 두꺼운 장갑을 끼면서 말했다.

 

“대문 열어 줘.”

 

어제 현기가 했던 것처럼 대문 양쪽을 활짝 열어주었다. 차가운 바람이 옷 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아니, 난 왜 김식의 말대로 대문을 열어주고 있는 거지? 내가 쫄병이 된 냥 김식의 지시에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또다시 울컥 하고 화가 치밀었다.

 

“ 열 여덟 살의 남자는 다이너마이트야. 터지거나… ”

 

대문 밖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나온 김식은 뜻 모를 말을 했다.

 

“ 밟아 불을 끄거나. 애새끼들은 쉽게 날 뛰거든. ”

긴 다리로 오토바이에 훌쩍 올라탄 김식이 여유만만하게 웃고는 헬멧을 뒤집어 썼다.

 

“막냉이라 부르니 조금 몰랑거려 진 것도 같고. 집 잘 지키고 있어 막.냉,아.”

“아직 눈 덜 녹았는데?”

 

방금 전까지 빨리 가라고 닦달한 주제에 생각 없이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헬멧 안에서 김식이 쿡쿡 웃었다.

아 , 진짜.

장갑 낀 손으로 김식이 내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그리고 부릉 하고 시동을 걸었다. 나는 오토바이에서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가 집 골목을 빠져나갔다.

 

 

식구들이 모두 출근한 오전은 나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마루에 난로의 연탄불도 확인하고 바쁜 아침의 뒷정리를 끝내고 나면 오롯이 혼자 남은 시간을 즐길수 있었다. 한껏 게으르게 뒹굴 거렸다. 유리문 안으로 밀려온 겨울 햇빛을 쬐기도 하고 서경언니의 짐에서 찾은 책을 보기도 했다.

 

유일하게 흐느적거리며 나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꾸만 시계만 바라보고 있다.

김식에게 뭔가 할 말이 많은 것도 같고,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것 도 같이 복잡했다. 우왕좌왕 자꾸만 마루를 서성거렸다. 유리문을 열고 평상에 나와 보기도 하고 할 일없이 마당을 서성거리기도 했다.

햇빛이 나타나자 길가의 눈은 빠른 속도로 녹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오토바이 소리가 담장 너머에서 들려왔다. 내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유리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벌컥 대문이 열리더니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진우가 먼저 들어왔다.

 

“너 학교 안 갔어?”

 

어젯밤 한창 분위기가 오른 자리에서 진우는 먼저 자리를 떠야했다. 아니 어제부터 착한 학생 노릇을 시작한 진우는 기분이 오른 진우엄마 손에 끌려 나갔다. 현기는 우리 집에서 잘 수 있다는데 왜 자기만 가야하냐고 억울해 하며 버티다 김식이 사납게 쳐다보자 얌전히 끌려 나갔다.

“저 형 졸라 멋있어.”

 

하루만 더 불량학생으로 있으면 안 되겠냐고 했던 진우가 잔뜩 신이 나서 마당에 들어섰다.

“저 형이 학교로 데리러 왔어. 교실 문을 딱 열고 이진우 나와. ”

 

진우는 하늘까지 기분이 솟은 것 같았다. 제 기분에 취해 횡설수설 말했다.

 

“저 형이 학교 운동장에서 나만 태웠어. 애들이 다 창문에 매달려 구경했다고. 거기서 나만 태웠어. 아 그걸 대장도 봤어야 하는데…”

“그래서 학교를 짼 거야?”

“아니? 조퇴했는데? 현기랑 같이. 조퇴증 써달라니깐 암말도 않고 써주던데. 아 씨 이렇게 쉽게 써주는 줄 알았으면 째지말고 진즉 조퇴증 써달라고 할걸. ”

 

열 여덟살 어쩌고, 다이너마이트 어쩌고 하더니 애들 학교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진우는 정말 폭발 직전의 다이너마이트처럼 흥분했다.

김식이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조금 뒤 현기는 트럭을 타고 왔다.

“그만 떠들고 짐 날라.”

“넵.”

 

진우는 군기가 바짝 뜬 군인처럼 김식에게 경례를 하고는 빠르게 대문 밖으로 나갔다. 오토바이 한번 탔다고 목숨까지 내놓을 태세였다.

무슨 일을 하려는지 나도 따라 대문 밖으로 나갔다. 좁은 골목에 이런저런 자재를 실은 낯선 트럭이 서있었다.

나에게 간단히 눈인사를 한 현기도 하늘까지 신이 난 진우도 김식도 손바닥이 빨간 하얀색 작업용 장갑을 끼고 묵묵히 마당 안으로 자재를 나르기 시작했다.

“이게 뭔데?”

“추우니깐 들어가 있어.”

 

내가 물어도 김식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짐이 다 들어오자 트럭을 몰고 온 아저씨와 김식이 작업을 시작했다.

그 작업은 엄마의 수돗가와 솥단지가 있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현기와 진우를 조수로 부리면서 두 사람은 손발을 맞춰온 사람처럼 움직였다.

 

“저 형은 진짜 모르는 게 없어.”

 

진우가 촐랑거리며 다가와 내게 작게 말했다.

 

엄마의 솥단지 자리가 치워졌다. 철로 된 낡아진 원통형 아궁이는 깨끗하게 치워졌다. 그 자리에 벽돌로 차근차근 제대로 된 아궁이가 만들어졌다. 겨울바람에도 쉽게 불이 꺼지지 않는 튼튼한 아궁이가 솥단지 크기에 맞게 예쁘게 쌓였다.

내가 우산을 피고 같이 앉아있던 수돗가에 부엌 지붕과 연결된 지붕이 생겨났다. 눈이 오는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언제든 엄마가 수돗가에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지붕이 생겼다.

 

그리고 추운 겨울날 수도가 얼까봐 감아놓은 낡은 수건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은색 도톰한 방한재가 새롭게 수도를 감쌌다.

 

마루 테이블에 앉아 김식이 그리던 종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남의 집을 제 집처럼 능숙하게, 주인인 나에게 묻지도 않고 움직이는 김식을 보며 내가 얼마나 멍청한지 깨달았다.

나는 무엇을 도울지 몰라 바보같이 그저 구경만 했다.

 

 

넷이나 움직인 덕분인지 마당에 일이 빨리 끝났다.

트럭을 타고 온 아저씨는 다시 트럭을 타고 사라졌다.

가끔씩 찾아오는 형부 외에 새로운 남자의 손길이 집에 닿았다.

수돗가와 아궁이까지 덮는 그 지붕이 너무 좋았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게 너무 마음에 들었다. 진즉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내가 너무 한심하고 또 한심했다.

 

 

“너네 나가 있어.”

김식이 오토바이 키를 현기에게 건네주었다.

 

마당 평상에 김식과 둘이 나란히 앉았다. 햇볕이 들어오는 겨울 날 둘이 나란히 앉았다. 짧지만 긴 작업에 김식은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자신의 두터운 패딩을 나의 어깨에 툭하니 떨궜다.

 

“자, 이제 얘기를 좀 할까? ”

 

뜨거운 무언가가 자꾸 울컥울컥 올라왔다. 목이 자꾸만 막혀왔다.

 

“왜 할 말 못하고 똥마려운 강아지같이 낑낑거려보니 기분이 어때? 난 아주 더러웠거든. ”

“뭐….”

 

나는 김식의 말을 공격으로 받았다. 대꾸하려 했다.

 

“ 너는 장례식장에서 내가 뭘 봤을까봐 쫄리는 거잖아. 그래서 그렇게 화냈던 거 아냐? 선 넘지 말라고. ”

 

갑자기 김식은 그날의 얘기를 꺼냈다.

 


  

“아무도 그날 얘기를 너한테 안했겠지. 이집 사람들, 아니 이 동네 사람들 모두 너를 잘도 싸고 돌더만. 너 여친도 그렇고. ”

 

“…함부로 말하지 마. 죽여 버리기 전에”

“난 니가 거기서 봤어야 할 거를 봤어. …어머니 말이야.”

 

뭐라 말하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꾸 찐뜩하고 뜨거운 뭔가가 치밀고 올라왔다.

김식이 내 팔을 잡았다. 세게 잡은건 아니지만 단단하게 옭아매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 어머니는 거기에서 자리가 없었어. ”

 

난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내 눈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조근 조근 타이르는 듯 말했다. 다정하게.

 

“ 너는 거기에 자리가 있었잖아. 너가 올까봐… 와서 어떤 꼴을 볼지 뻔 하니깐 버티고 계셨어. 너 때문에….”

 

뒤통수를 쎄게 맞은 것 같았다.

말투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을 내게 말했다.

내가 비겁하게 도망친 사이 엄마가 어떻게 하고 있었을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 그래서 바로 너한테 바로 갈 수 없었어. 너하고 닮은 얼굴이 있어서… ”

 

김식은 진짜 내가 알아야 할 얘기를 해줬다.

 

“너한테 빨리 못 갔어. 미안해. 씨바 뒷방이 뭐냐고.”

 

특, 트득

내 마음속에 뭔가가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내가 엄마랑 닮았어?”

 

갑작스런 고백 같은 말에 머리가 엉켰다. 고개를 빠르게 흔들고 다시 김식에게 물었다.

 

 

“아니 왜 니가 미안해?”

 

새벽 짧은 시간에 나와 만났을 때 왜 김식이 화를 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의 비겁함과 어리석음이 내게 돌아왔다.

"다음에 오면 평상 위에도 지붕 만들어 줄게.“

 

이번엔 김식이 달래듯 말했다.

내 안에서 뜨거운 뭔가가 자꾸 올라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 처마 있는 거 좋아하잖아. ”

“너 왜 달달하게 굴어?”

 

고작 그렇게 물었다.

 

“진짜 몰라서 물어?”

나는 내내 쌀쌀맞게 굴었는데 김식은 달고나를 몇 개나 먹고 온 것처럼 말했다.

 

“나는 너한테 원하는 게 있어.”

 

김식이 단단하게 말했다.

 

“난 … 고장났어. ”

 

갑자기 김식이 자신의 이마로 내 머리를 쿵하고 박았다.

 

“아야.”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머리가 아팠다. 어쩌면 혹이 생길지도 모를 정도로 세계 내 머리를 박았다. 김식에게 손이 잡혀 이마를 만질 수가 없었다. 물리적으로 찔끔 눈꼬리에 눈물이 고였다. 이건 내가 우는건 절대 아니다.

 

“꼬이고 비틀린 건 알겠는데… 당장 결혼하자고 한 것 도 아니잖아. 뭘 그렇게 쫄아 있어? 멍청아.”

 

잡힌 두 팔을 빼내려 했다. 그런데 김식의 이마가 빨긋해 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냥 나를 이용해. 저런 것도 만들어 주잖아.”

 

김식이 눈짓으로 잘 만들어진 엄마의 수돗가 지붕을 가리켰다.

 

“그럼 너한테 미안하잖아.”

“쓸데없이 도덕적이긴. 이미 잘도 이용해놓고 버린 주제에… ”

 

김식이 다정하게 웃었다.

얘는 정말 이상했다.


“고마워. 엄마한테 잘해줘서. 저거 얼마나 들었는지 계산해 줄게.”

 

다시 쿵하고 김식이 내 머리를 박았다.

 

“야, 너….”

 

벌컥 소리를 쳤다. 그런데…

 

“나랑 계속 놀 거지?”

 

김식이 다정하게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뭐 너랑 자는 거? ”

 

난 간단히 생각했다. 어차피 쟤는 자퇴도 했고 의대도 간다고 했으니 얼마나 시간이 있을까? 하고.

나는 다이너마이트 시기를 지난 스무살의 남자를 만만하게 생각했다.

 

“뭐, 가끔 정도는.”

 

내 대답에 김식이 배부른 야수처럼 느리고 깊게 아주 만족한 듯 웃었다.

 

 

 

 

 

담벼락에서 우리를 훔쳐보던 현기와 진우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후다닥 몸을 숨겼다.

내 대답을 얻은 김식은 내 어깨에 덮어주었던 패딩을 단단히 여며 입고 메고 온 가방을 둘러메었다.

 

엄마가 돌아오기 전에 진짜 돌아갈 모양이었다.

나는 김식을 따라 골목으로 나왔다.

담벼락 아래에 바짝 붙어 있던 진우와 현기가 몸을 일으키며 슬쩍 눈길을 피했다.

 

“대장이 맞은 거야? 아니면 저 형이 본인을 때린 거야?”

 

진우가 슬쩍 현기에게 낮은 말로 속삭였다.

 

둘다 못 볼꼴을 본 거 모양 내눈을 슬금슬금 피했다.

 

 

진우는 들고 있던 헬멧을 김식에게 바치듯 두 손으로 내밀었다.

현기는 아주 가벼운 오토바이 키를 무거운 물건마냥 두 손으로 들고 김식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김식은 두 아이들 사이로 들어가 어깨에 손을 걸치곤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담벼락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세 사람의 뒷모습마나 쳐다보았다. 뭐라 말하는지 귀를 바짝 세웠지만 너무 낮은 소리라 나에게 까지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두 아이의 반응은 정 반대로 극렬하게 나타났다.

시뻘겋게 상기된 표정으로 현기는 마른기침을 했고 진우는 금방이라도 토악질 할 것처럼 우웩거렸다.

 

“왜?”

 

아이들에게서 헬멧과 키를 낚아챈 김식은 편안한 얼굴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간다.”

 

아주 속이 시원해진 표정으로 김식은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를 내며 떠났다.

오토바이가 떠난 자리에 현기는 내 눈을 절대로 보지 않고 자꾸 먼 산만 쳐다보앗다. 진우는 진짜 토악질을 할 기세로 웩웩 거렸다.

 

“뭐라는데?”

 

못 들을 말을 들은 것처럼 한 것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진우를 향해 물었다.

“저 형 멀쩡한 줄 알았는데 변태인가 봐. 대장 생각하면서 딸 치지 말래. 죽여 버린다고.… ”

 

 

순간 차가운 길바닥에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저 미친 놈이?”

“저 형은 대장 생각하면서 딸 치나봐. 미친거 맞지? 우린 보는 눈도 없는 줄 아나. 차라리 오토바이가 낫지. 으엑.”

 

빨갛게 상기된 현기와 나는 곧장 진우에게 달려들었다.

 

“아주 쳐 맞아야지.”

 

팔꿈치를 이용해 진우의 등을 내리 꽂앗다.

 

“아악. 아프다고.”

 

어떤 위로는 이렇게도 오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알았다.




 

 

 

◆◇◆

 

탕탕탕 탕탕탕탕!

 

이른 아침 무언가 내리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설날이 멀지 않은 어느 날 조용한 집안에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유리문을 활짝 열자 평상을 지팡이로 내리치는 할머니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거기에 서 있었다.

 

한 손은 불편한지 몸 쪽에 바짝 붙어있고 자유로운 한손에 들린 지팡이로 힘을 다해 평상을 내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 뒤에는 가방을 멘 아버지의 아들이 빨갛게 젖은 눈을 하고 서 있었다.

 

“이것들아, 뭘 그리 꾸물거려. 해가 중천에 떴는데.”

 

이제 다시는 볼일이 없을거라 생각한 할머니가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소리쳤다.

어딘가 어눌한 듯 한 말이였지만 날카롭게 날이 선 말투는 여전했다.

 

“이 집에 살러왔다. 니가 호적을 안 내줬으니 아적까진 내 메누리 맞지? 내가 여기서 살아야겠다. ”

 

할머니의 표독스런 눈빛이 나를 보았다.

 

“딸년들 나가리라더니 지 애비 장례식도 안 오고. 못된 년. 저따위니 애비가 집을 나갔지.”

 

할머니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따끔 화살이 박히는 것 같았다.

 

대문 밖 담장으로 아이 엄마가 된  미스 김 언니가 잔뜩 운 얼굴로 마당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니 호적에 승효가 들었으니 호적값을 해라. "


평화가 찾아왔던 집에 다시 폭풍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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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진우의 이상한 패티쉬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푱이가




dupiyongsta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