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US TRACK] 그 남자의 경계선 2

 

 

 

장진상은 태어나서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본가는 서산이다. 풍부한 바다와 비옥한 육지가 만난 하늘이 내려준 부자의 땅. 조금만 부지런하기 만 한다면 밥 굶을 걱정이 없는 땅이었다.

 

장진상의 집은 그 땅의 혜택을 대대로 받아오면서 나름 지역에서 떵떵거리며 살아왔다. 넓은 들판과 푸른 바다에서는 때마다 풍성한 먹거리가 나왔다. 게다가 이 지역 소가 유명해 장씨 집안의 주머니에 돈이 마를 날이 없다는 말이 돌 정도로 그 지역에선 제법 잘 살았다. 그런 집안에 두 명의 딸을 낳은 후 태어난 장손이 장진상이었다.

어릴 때부터 조부와 부친과 겸상을 하며 자랐다. 누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밥상에서 은수저로 밥을 먹었다.

 

장진상은 신발에 흙이 묻을 새라 일곱 살까지 조모 등에 업혀 자랐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장진상의 손에 들어왔다. 마을 아이들에게 주먹질을 해도 아무도 뭐라는 사람이 없었다.

 

실패라고 하기엔 사소하지만 첫 번째 대입에선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집은 부유했고 재수와 삼수를 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아 나름 풍족한 생활을 하며 견뎠다. 그러나 예상만큼 점수가 나오지 않아 치열한 눈치작전을 해야만 했다.

 

한국 최고의 대학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곳이라 그럭저럭 선방했다. 그러나 학과 공부는 만만치 않아 겨우겨우 학년을 마치며 4학년까지 왔다. 엄한 부친의 조건이 대학 졸업장이기에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어차피 전공으로 취업할 것도 아니고 부친의 땅 중에 하나를 팔아 적당한 사업거리나 찾아 살 생각이었다.

 

장진상은 아주 불쾌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난밤에 마신 술이 아직 혈액에 반 정도는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느 날처럼 술을 마신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찌푸둥한 것이 불쾌함도 있었다.

 

“야, 야!‘

장진상은 기숙사를 같이 쓰고 있는 후배 침대를 향해 낮게 소리쳤다.

아직 잠에서 다 빠져나오지 못한 눈은 뜨지 않고 바짝 마른 목구멍을 열어 겨우 목소리를 내었다.

 

“야. 야!”

 

다시 신경질적으로 건너편 침대에 있을 후배를 불렀다.

4학년 선배가 부르면 빨리 빨리 움직여야 할 거 아냐.

눈꺼풀이 지나치게 무거웠다. 돌아누우며 겨우 실눈을 뜨고 건너편 침대를 살폈다. 햇살이 환한 방안에 시커멓고 커다란 남자의 형상이 얼핏 보였다.

저게 방에 있으면서도 말을 씹네.

“야, 물!”

 

남자는 침대에 걸터앉아 두 다리에 팔을 느슨히 걸치고 앉아 장진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핏 바라본 시야에 고만고만한 후배들과는 달리 장신의 남자였다. 대충 친구거나 그 언저리 쯤이겠지 하고 장진상은 생각했다.

 

“야 물, 물 좀 가지고 와봐.”

 

선배가 말하면 누구라도 옆에서 시중을 들어야지.

건너편 침대에서 스윽 느리게 몸을 움직이는 것을 확인 한 후 다시 눈을 깊게 감았다. 끈질지게 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목도 마르고 요의도 느껴져 이제 슬슬 눈을 떠야 했다.

귀찮았지만 올해는 졸업을 하긴 해야 했다.

집에서 마련해주었던 전세자금은 이상한 꽃뱀 계집애 하나와 동거 했다가 다 뜯겨 버렸다. 나.쁜.년. 덕택에 마지막 대학생활을 기숙사에서 뒹굴어야했다.

 

의식과 잠의 경계선 사이에 있다 입술에 차가운 물 잔의 기운이 느껴졌다. 장진상은 감 긴 눈꺼풀 한쪽을 겨우 뜨고 시원한 물 잔을 받으려고 했다. 후배 놈이 아니라 계집애 였다면 직접 먹여 달라고 했을 텐데…. 그건 좀 아쉽다고 잠깐 생각하다 피시시 웃었다.

상체를 살짝 일으키며 물 잔을 받으려 할 때였다.

갑자기 물 잔에 물이 얼굴위로 와락 쏟아져 내렸다.

콧구멍 안으로 목덜미 안으로 물이 왈칵 쏟아졌다.

 

“윽 차거. 야 이 미친.”

 

한꺼번에 나른한 잠의 여운이 확 달아나 버렸다. 화들짝 놀라며 상체를 일으키며 쏟아진 물을 닦아내려 정신없이 손으로 털어냈다.

 

“너 이 미친 새끼가.”

 

문득 자신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장신의 남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치 구경하듯 담담히 서 있는 남자, 장진상에게 그림자를 드리운 듯 훌쩍 키가 큰 남자의 얼굴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누구…”

 

마치 저승사자처럼 시꺼먼 옷, 큰 키가 창을 통해 들어온 볕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너 뭐야? 새끼야.”

“눈 떴네.”

 

내가 아는 사람인가? 하는 어쩐지 낯익임을 느낀 순간 키가 큰 남자가 오른 손을 들고는 장진상을 그대로 후려갈겼다.

뻑!

뭔가 깨지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작은 기숙사 방안에 터져 나왔다. 장진상의 목구멍에서도 소리가 되다 만 짐승의 비명이 흘러나왔다.

 

상체만 일으키고 허둥거리던 장진상은 그대로 침대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주먹이 아니라 벽돌로 얻어 맞은 것 같았다. 아니 차에 치이면 이런 충격일까?

잠깐 동안 정신이 나갈 정도로 아득해졌다. 강한 충격에 굴러 떨어진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일어나.”

 

아득히 먼 곳에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도 않았다. 뇌세포 전부가 사라진 것 같은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몸을 일으켜 보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귀에선 웅웅 거리는 벌이 날라 다니는 소리가 들렸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우엑.”

 

버둥거리던 장진상은 그대로 지난 밤에 마신 술 찌꺼기를 토해내었다. 연이어 올라오는 찌꺼기를 올리면서 시야 옆에 선 단단하게 선 두 다리를 훔쳐보았다. 장진상의 토해놓은 이물질이 튀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멀어져 있는 다리가 신경 쓰였다. 격한 토를 한 후에도 몇 번의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이제 구역질은 멈췄나 싶어 긴 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장진상이 허우적거리는 옆으로 빠르고 강한 속도로 하얀 물체가 날아왔다. 장진상은 본능적으로 팔로 머리를 감쌌다.

쨍 소리가 나며 하얀 유리가 파편을 튕겼다. 자신이 토해놓은 물질을 피할 새도 없이 그 위로 뒹굴었다.

적당한 거리로 물러섰던 두 다리가 저벅저벅 걸어 장진상 곁으로 다가왔다. 운동화 신은 그 발이 장진상의 머리를 감은 손을 발로 지그시 내리 눌렀다.

바닥에 뒹구는 채로 누군가에게 발로 밟혔다. 장진상은 누군가를 밟아보긴 했지만 한 번도 밟히는 대상은 아니었다.

 

“재밌지?”

 

머리 위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가 토한 그 자리에 얼굴이 눌린 장진상은 버둥거렸다.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 싶었는데 후각과 청각이 돌아왔다. 토해놓은 오물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발을 치워보려 몸을 꿈틀거려보았지만 내리 누르는 발은 꿈쩍도 않았다.

 

“때릴 때도 재밌었으면 맞을 때도 재밌어야지.”

 

웅웅 울리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에서 또렷하게 말이 전달되었다.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잔인하게 들렸다.

 

머리를 내리 누르던 발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제 끝난 건가! 갑자기 장진상의 몸이 목덜미가 잡힌 채 뒤집혀졌다. 햇살이 쏟아지는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장진상 곁에 우뚝 선 남자가 구부려 앉았다.

햇볕에 남자의 손에 들린 투명하나 유리조각이 투명하게 드러났다. 남자가 장진상의 뺨에 그 유리조각을 거침없이 갖다 대었다.

 

“여기거든.”

 

그을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다시 장진상의 머리가 하얗게 비어졌다. 빈 자리로 공포가 밀려왔다. 결정만 한다면 망설임 없이 단번에 얇은 피부를 그어 내릴 것 같은 삭막한 눈동자였다. 섬벅 소리를 내며 뺨을 지나가는 날카로운 유리조각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호흡이 가빠졌다.

한 번도 장진상은 이런 대상이 아니었다. 집안의 넉넉한 부와 조모의 과보호로 언제나 위쪽에 서 있었던 사람이었다. 쉽고 만만한 세상을 가진 인생.

 

“한번 만 더 손모가지 휘두르면…”

 

뺨에 닿을락 말락 하던 유리조각이 사라졌다.

그늘을 만들 정도로 바짝 붙어 앉아 있던 남자가 유리조각을 던지고 일어섰다. 큰 키 만큼 일어서는 몸이 느리게 펴졌다.

 

장진상의 손 목 위로 다시 남자의 운동화가 닿았다.

지긋이 손목을 내리누르는 남자의 우뚝 선 그림자가 선뜩했다. 다시 묵직하고 날카로운 고통이 다가왔다.

 

“그땐 밥숟가락도 못 들게 될 거야. ”

내리 누르던 발이 사라졌다. 발소리와 함께 덜컥 문 쪽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그때서야 저 뒷 모습이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밤 남자처럼 앉아 있던 희한하게 생긴 기집애 편을 들던 키가 컸던 신입생. 자신의 멱살을 잡아 올리던 차가운 눈동자가 한 번에 떠올랐다.

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숙사 방문이 닫혔다.

“으으윽.‘

 

극한의 공포에 닿으면 신음소리도 안 나온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닫힌 문을 보며 그제서야 장진상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이제 살았다라는 생각이 든 순간 장진상은 자신이 토해놓은 오물 뿐만 아니라 아래쪽으로도 실례를 한 것을 느꼈다.

한 대, 딱 한 대 얻어 맞았다.

그러나 이제껏 살아왔던 모든 날 들 중에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이었다.

그깟 이상한 계집애 때문에….

 

 

 

◆◇◆

 

 

 

[내가왕족발 ] 가게의 한쪽 테이블에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여자라고 해도 믿을 만큼 화사하고 예쁜 남자가 커다란 족발 뼈를 들고 오물오물 맛있게 뜯고 있었다.

곧 가게 마감 시간이었다.

마지막 잔을 두고 있던 남은 테이블의 사람들이 홀린 듯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마감 준비를 하던 가게 주인도 하던 일을 멈추고 신기한 듯 그 광경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마치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사람처럼 누구나 먹고 싶어지는 표정으로 야무지게 뼈를 뜯는 모습에 시선을 뺏겼다.

 

“저건 무슨 개새끼도 아니고.”

 

짧은 머리를 바짝 올려 깐 머리를 한 새빨간 입술의 차갑게 생긴 남자가 툭하니 말을 걸자 예쁜 미소년은 어느 개가 짓냐는 표정을 하였다. 커다란 족발뼈를 만족한 듯한 표정으로 툭하고 내려놓았다.

 

“정말 맛있어요. 이모님 최고.”

 

주방에서 홀린 듯 홀을 내다보던 안사장이 그 환한 미소에 부끄러운 듯 볼이 빨개졌다.

연습을 한 듯 작위적인 환한 미소였지만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자 흘끔흘끔 쳐다보던 사람들의 마음이 노곤 노곤 풀어졌다.

 

“저 학생은 정말 텔렌트 아니여? ”

“곧 그렇게 될 거에요.”

 

주방 안주인을 향해 예쁜 미소를 날리고 눈을 징긋하며 윙크해 주었다.

 

“아이고, 저리 웃으니 서비스를 더 줘야겠네.”

“다들 인물이 정말 대단하네.”

 

주방 안주인 옆에서 같이 구경하던 주방이모의 엉덩이가 절로 실룩실룩 움직였다.

 

 

제 정신을 차린 듯 주방 안사장이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잔을 마시려던 사람들도 마지막 잔을 바쁘게 입에 털어 넣었다. 이제 일어서야 하는데 엉덩이가 자리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마감 직전에 찾아온 세 사람으로 인해 족발집에 새롭게 상이 차려진 테이블 때문이었다. 미리 얘기가 된 것인지 세 사람의 등장에 사장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홀을 보고 있던 키가 큰 알바생이 주문도 하기 전에 알아서 척척 음식을 날라 왔다.

 

무릇 왕족발 하나에 입가심으로 쟁반막국수를 시키면 네 사람이 술과 안주를 하기에 적당한 양이었다. 그런데 그 테이블에는 일인 일 족발인 듯 세 개의 앞다리 족발이 놓였다.

 

한줌도 안 될 것 같은 야들한 허리를 가진 이쁜 남자애가 혼자서 제 양을 먹어 치우는 것에 놀랍고, 올백으로 머리를 남긴 차갑게 생긴 미남이 피식피식 비웃음을 날리면서도 비워나가는 속도가 놀라웠다.

같은 테이블에 앉았지만 모르는 사람과 합석 한 냥 내내 침묵을 하고 있는 허리를 반듯하게 편 정직한 인상의 남자도 자신의 몫을 쳐 부서야 할 적처럼 먹어치우고 있었다.

 

“막국수 나왔다.”

 

주방 안 쪽에서 소리가 나자 잘 먹던 남자 셋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간식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일제히 주방 입구로 시선을 향했다. 키가 큰 알바생이 주방에 막 나온 막국수 세 접시를 그 테이블로 날랐다.

 

“오 막국수다. 내꺼 먼저 줘.”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을 것 같은 이쁜 남자애가 신이 나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하루 종일 굶었다 처음 식사하는 사람처럼 슥슥 양념과 국수를 비비고 한입 먹고는 또 세상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텔레비전 광고를 보는 것 같아 보는 사람들 모두 마음이 훈훈해졌다.

 

“자 문닫습니다. 얼른 일어나세요.”

 

가게 사장이 미적거리며 신기한 구경거리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을 재촉했다. 머리에 회색 니트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알바생이 사람들이 일어난 빈 자리를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저기 학생들 뭐 더 해줘?“

 

빠르게 테이블이 정리되는 와중에 주방에서 안주인이 홀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다시 소리쳤다.

 

“이모님! 밥 주세요. 밥. 밥. 밥.”

 

햐얗고 뽀얀 남학생이 숟가락으로 테이블을 치며 장단 맞춰 외쳤다.

 

“저렇게 먹는데 어째 살이 안 쪘을까? ”

 

기분 좋게 주방 안주인이 재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아있던 테이블 정리가 빠르게 끝났다. 하나 남아있는 테이블에 김이 오르는 하얀 밥과 이 가게의 별미인 청량고추가 듬뿍 들어간 뜨거운 조개탕이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쌈김치가 넉넉하게 올려진 보쌈이 주방에서 나오면서 주방 안주인은 앞치마를 벗었다.

 

 

한문고 탑포가 다시 모였다.

서경후, 주기도, 한 장우가 이미 자리에 앉아 부른 배를 두드릴 때 이제껏 알바생으로 임무를 다하던 김식이 파란색 소주병을 양손에 움켜쥐고 그 테이블에 앉았다.

 

 

처음 한문고 탑포가 모이게 된 것은 마녀에게 김식이 간택이 결정 난 후 7월이었다. 체육시간이 끝날 때마다 마녀가 하사하는 아이스크림에 대한 심상치 않은 소문이 돌면서 제 발로 서경후가와 주기도가 김식을 찾아왔다.

김식의 파르라니 깍은 날 선 머리를, 저항하는 눈동자를 보며 김식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처음엔 나만 아니면 된거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소문이 요란해 질수록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뜨끔뜨끔해졌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사라지는 김식의 행방을 알기 위해 주기도가 미행을 제안했다. 그리고 먹자골목에서 알바를 하는 미성년자 김식을 찾아냈다. 무턱대고 가게로 들어가려는 것을 막은 것은 한 장우였다. 아직 어린 태가 나는 얼굴로 무거운 뚝배기를 땀이 나도록 나르는 김식을 유리문에서 훔쳐보고는 셋 모두 뜨끔의 정체는 양심이라고 느꼈다.

그들은 며칠 후 힘들게 사는 김식을 응원하려 주머니를 탈탈 털어 그 가게로 위풍당당하게 들어섰다.

 

그때 김식이 알바를 하던 집은 흑염소 전문집이었다. 처음으로 흑염소의 맛을 본 세 사람은 수육 한 접시를 게 눈 감추듯이 먹어 치웠다. 한 접시를 정확하게 삼등분을 했지만 입에서 녹듯이 사라져 버린 고기의 맛이 감질났다. 셋은 빈 젓가락만 빨고 말았다. 노인들이 먹는 보양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비쌌고, 비싸서 맛있었다. 용돈 받아쓰는 학생들이 먹기엔 과한 음식이었다.

 

충분히 먹지 못하고 가게 앞에 쭈그리고 앉아 김식의 알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더위가 시작될 무렵 보신을 목적으로 찾아온 많은 손님이 빠질 무렵 가게 문이 열리고 김식이 그들을 불렀다.

 

그리고 김식이 그들이 감질맛 나게 맛보았던 비싼 수육을 내주며 쳐먹어 라고 말했다.

서경후는 진짜? 라고 감격해서 물었고 주기도는 할머니의 금목걸이를 훔쳐오겠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그리고 한 장우는 묵묵히 남은 시간 동안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가겠다고 했다. 전골까지 내주고 밥까지 볶아준 김식이 그날부터 그들에게 신이 되었다.

 

“너네 골목엔 소 파는데 없어? 담엔 거기서 알바 해? ”

 

새빨간 입술 주기도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이젠 김식이 알바 하는 곳에서 김식이 내주는 음식을 먹는 것에 죄책감 따위는 사라졌다.

 

“병원이나 디비져 있지 쟨 왜 벌써 기어 나온 거야?”

 

서경후가 대신 주기도에게 말을 건넸다. 지난겨울 할머니 차를 몰래 훔쳐 타고 나갔다가 사고가 났던 주기도였다. 혼자 미끄러운 길에 속도를 내다 남의 학교 담벼락을 들이 박았다. 머리가 깨지고 쇄골뼈와 갈비뼈가 부러졌다. 겨울 내내 병원에 누워있었다. 올백으로 넘기고 다녔던 잘 기른 머리를 잘라 지금은 겨우겨우 머리칼을 모아 이마를 드러냈다.

 

“김식아, 내가 이거 남겨놨어. 이거 먹어.”

 

서경후가 김식에게 살랑살랑 봄바람 같은 웃음으로 말을 건넸다. 반쯤 남은 조개탕과 밥공기 하나를 김식에게 슬쩍 내밀었다.

 

“근데 너 진짜 여기 먹자 골목 가게 거의 다 돌았지 않나? ”

 

주기도가 선심 쓰듯 시원한 물을 따라 김식 앞에 놓아주었다.

어느 때는 한 달 어느 때는 두 세 달을 먹자골목 한 가게마다 알바를 꾸준히 했다.

 

“나중에 이 골목 다 니꺼 되는 거야? ”

 

서경후가 눈을 빛내며 김식에게 물었다.

 

“개소리 하지 말고 쳐 먹어.”

“아니 가게에선 알바비도 안 받는다면서? 아버님도 진짜 너무 막 굴리는 거 아냐? 너 이번 방학 땐 장우랑 같이 노가다도 했다면서? ”

“장우랑 노가다 뛰느라 병문안 못 온 거야? 뭐 그럼 인정.“

 

병원에서 퇴원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주기도의 섭섭함이 살짝 누그러졌다.

“나중에 너의 스트리트에 나 가게 하나 주라. 연기하다 안 되면 뭐라도 해먹고 살게. ”

“공짜 좋아하지마. 탈나. ”

 

서경후가 김식 몰래 입술을 삐죽거렸다.

 

“너네 학교 요새 재밌는 일 있었담서?”

김식이 소주병을 따 유리잔에 술을 따라 한 장우에게 먼저 건네주었다.

“무슨 재밌는 일? 또 나만 빼고.”

 

주기도가 심술 난 얼굴로 서경후의 봄바람 같은 웃음을 쳐냈다.

 

“어떤 미친 새끼가 식이가 찾던 고양이를 던졌다면서. ”

“고양이? 무슨 고양이?”

“건물마다 현수막 다 걸었다면서? 애들이 내용 말해주는거 보니 그 새끼 완전 양아치더만. 군대 가면 재미난 일 많겠다? 미친새끼. 우리 미친 김식이를 잘 몰랐던거지. 얘가 얼마나 잘 무는지. ”

“왜? 뭔데 뭔데? 그깟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현수막을 했다고?”

“원래 식이 지꺼 손대는 거 질색하잖아.”

 

영문을 몰라 안달이 난 주기도 옆에 한 장우가 간단히 이야기를 정리해주었다.

 

“나만 몰라. 왜? ”

 

주기도가 왈칵 소리쳤다.

 

“그냥…쳐 먹기나 해.”

 

한 장우와 유리잔으로 건배를 한 후 한 번에 술을 마셨다. 짜르르 식도를 통하는 소주의 싸한 기운이 기분 좋게 몸 안으로 들어왔다.

“나도 이번에 나 공연하는 거 현수막 하나 달아주면 안 돼? 엄청 큰 걸로. 티켓도 사주면 좋고.”

“저 여우같은 쉥키. 다 목적이 있어 여시짓을 하는 거야.”

“넌 좀 빠지시지. 내가 쌈 싸줄까?”

 

적극적인 서경후의 대응에 김식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학교나 한 번 왔다 가.”

“진짜? 진짜지. 그냥 학교에 놀러 가면 돼? 언제? 나 그 새끼 궁금한데 그 새끼 구경해도 돼?”

“뭐… 너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나를? 나를 보여준다고? ”

“있어, 고장 났다고 하는 거.”

“고장? 사람이야? 기계야? ”

 

김식의 뜬금없는 말에 서경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식은 이제껏 개인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김식은 누구에게나 적당히 친절했지만 모두에게 불친절했다. 어느 자리에나 김식은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무리의 대장처럼 주변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해결해주고 밥 먹여주는 게 전부였다. 가장 조용한 한 장우는 잘 끼고 다니긴 하지만 세 사람이 항상 김식을 일방적으로 따라 다니는 거였다. 때로는 김식이 귀찮아하는 내색을 해도 세 사람은 꿋꿋하게 김식을 따라다니는 그런 관계였다. 일단 김식 옆에 있으면 맛있는 게 생기기도 했고.

 

“아 왜 자꾸 아까부터 나만 빼고 얘기하는데? 나는?”

 

김식과 서경후의 대화에 주기도가 삐쳐버렸다. 겨울 내내 병원에 갇혀 지냈는데 알바 한다고 병문안도 안 온 친구들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나는? 나는 학교에 못 오게 하면서? 왜 쟤만 오래?”

“나는 이쁘잖아.”

 

서경후가 이쁘게 눈을 접으며 주기도를 향해 웃음을 날렸다.

 

“넌 그냥 니네 좋은 학교나 다녀. ”

 

김식의 단호한 말에 서경후가 더 활짝 웃었다.

 

“나 진짜 놀러간다. ”

 

서경후가 한껏 기분이 좋아져 한 장우의 잔에 짠하고 건배를 했다. 물 잔에 가득 찬 소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근데 김식. 너 나 몰래 연애하는 거 아니지?”

 

문득 서경후가 다시 김식에게 물었다.

 

“요새 평일엔 시간 안 된다는 것도 수상하고.”

“김식이 연애 하는데 너한테 허락 맡아야 하냐? 미친 놈. ”

“뭔 상관. 한 장우 너 들은 거 없어?”

“한 장우가 말 전하는 거 봤어? 애들 돌리면 되지 뭘.”

 

서경후가 자신의 미모를 과신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렇네. 누가 건드리지 못하게 내가 학교 가서 애들 눌러주고 올게. 진짜 이쁘게 하고 가야지.”

 

그리곤 눈앞에 가상의 누군가를 상상하며 첩을 질투하는 본처처럼 눈에 날을 세웠다.

서경후의 모든 말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번엔 주기도도 가만히 있었다. 공공재로서의 김식은 세 사람 모두에게 넘치게 충분했다.

 

“야, 김식. 넌 연애 들키지 마라. 서경후 진짜 머리 끄댕이 잡을지도 몰라. ”

 

주기도가 새빨간 입술로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나중에 김식이 진짜 누가 생기면 말이지. 조식 먹고 김식 먹고, 중식 먹고 김식 먹고, 석식 먹고 김식 먹고 이러는 거 아냐?”

 

주기도의 말에 서경후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자기야 조식 먹었으니까 이제 김식 먹을까? 아니 아침부터 나를 먹자고? 아잉. 나는 이제 김식 먹고 싶다.‘

 

서경후가 과장된 여성의 목소리와 남자의 목소리를 연기하며 몸을 꼬았다.

 

“미친놈. 쳐 맞는다.”

 

빈 유리잔에 술을 따르던 김식이 잠깐 생각했다. 조식 먹고, 김식 먹고, 중식 먹고, 김식 먹고, 석식 먹고, 김식 먹고. 나쁘지 않네.

도망칠 궁리만 하는 고장을 자처하는 고양이가 떠올랐다. 역시 내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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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잠깐 게을렀습니다.



요즘 싱어게인에서 나온 -한번 더 나에게 질풍같은 용기를- 이란 가사가

가슴에 확 꽂혔습니다.


역시 제게 필요한 것은 질풍같은 용기 인듯.



푱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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