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패에 눈이 멀고...맘 맞는 광대랑 한판 노는 것에 눈이 멀고...
구경꾼이 던지는 엽전에 눈이 멀고...
그렇게 눈이 멀어서...볼 걸 못 보고,
어느 잡놈이 그놈 마음을 훔쳐가는 걸 못 보고,
그 마음이 멀어져가는 걸 못 보고...]



장생; 왕을 갖고 놀 줄 아는 그의 배짱에 반하다.
그를 보며 로맨스의 남주를 떠올렸다. 아끼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기꺼이 내 놓을 줄 아는 그의 깊고 굳은 심지가 가슴을 울렸다. 그가 생각하는 인간적인 정도(正道)는 결국, 공길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맨 마지막에 그가 줄타기를 하면서 하는 대사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줄 위에서는 내가 왕이다!”라고 했던 그의 말처럼, 진짜 왕보다 어쩌면 그가 더 자유롭고 신명난 세상을 살고 있구나, 느끼게 해 주었던 멋진 남자였다.


공길;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남자.
줄곧 그의 안타까운 삶이 가슴으로 와 닿아 미칠 것 같았다. 그 먼 옛날 우리의 광대들이 공길, 그 한 사람의 삶만으로 모든 걸 대변해 주는 듯해서 애틋하고 참으로 애절했다. 차라리 그가 광대가 아니었다면, 그가 아름다운 남자가 아니었다면...그렇게 비참(보는 내내 공길, 그의 삶은 내 눈에 비참 그 자체였다. 왕의 눈에 든 것조차도.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비극으로 보였을 정도로.)하지는 않았을 텐데 싶어 가슴이 아팠다.
과연 그는 연산군을 사랑했던 것일까? 연산군은 정말 그를 사랑했던 것일까?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내내 그것이 의문으로 남았다.
마지막에 궁 안으로 반란군이 들이닥치는 데도 장생과 공길의 줄타기를 보면서 웃음 짓던 연산군. 그것이 공길에 대한 마지막 사랑이며 배려라고 믿는다.


연산군; 역시 정진영! 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고전이긴 하지만 파격적인 대사체가 더 심중을 파고들었다고 할까. 광적인 연산군을 잘 표현했고, 비정한 궁속에서 왕으로 살아가야 했던 그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재조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왕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도 않았겠지만, 그렇기에 더 안쓰럽게 바라볼 수 있었다. 공길이 연산군을 그렇게 보았듯이.
왕이었지만, 광대보다도 못했던 그의 삶. 그래서 더욱 이 영화는 왕과 광대, 그리고 조정 신하들의 암투가 극적으로 표현된 것은 아니었을까.



줄거리에 심취해서 보았던 영화였다. 그저 애틋하고 가슴 한쪽이 아려서, 그리고 평생 광대로 살아가야 할 그들의 운명이 안타까워서.
펑펑 울고 말 영화라면 속이라도 후련하련만, 이 영화는 애석하게도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유의 영화는 꽤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두고두고 생각나게 하기에 내게는 아주 고약한 영화에 속한다. 그럼에도, 장생과 공길, 연산군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편집 분에 만족을 못 하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행보를 같이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더 그들의 삶 속에 몇 시간만이라도 녹아들 수 있다면...
그것이 이 영화를 보고 100% 만족하지 못한, 단 하나의 이유였다.  



오랜만에 오네요.^^
제가 감상평을 잘 못 써서 그 감동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해 아쉽군요.
아직 못 보신 분들은 꼭 보십사 추천합니다.
밤새 눈이 많이 왔고, 지금도 내리고 있어요.
창문을 조금 열어놨는데, 그 사이로 보이는 눈에 기분이 아리송합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호한...
갑작스런 눈으로 피해나 없었으면 좋겠어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