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기쁨이 오는 언덕.
아버지의 가게는 [희래등] 이라는 고급 중국음식점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네 자매가 기쁨이라고 말했다.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이 기쁨을 향해 오는 길이라며 느리게 웃었다.
아버지의 예쁘고 멋진 가게도 좋았고 우리 네 자매 이름에 붙여진 뜻도 너무 멋졌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서삼경에서 따왔다는 우리 자매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해 줄 때마다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내가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무렵 내 눈에 가장 이쁜 사람은 미스김 언니였다. 동네에서 애들과 놀다가 점심 장사가 끝날 무렵 가끔 아버지의 가게로 갔다. 늘 기름 냄새와 자장 냄새가 퍼지는 그곳이 좋았다.
내가 가게에 가면 카운터 옆에 앉아 쉬고 있던 미스 김 언니가 상냥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동네 사람들은 주경 언니가 예쁘다 했다. 하지만 어린 내 눈에는 엄마에게 수시로 등짝을 맞는 주경언니 보다 미스 김 언니가 더 예뻤다.
특히 웃을 때 뺨에 깊게 패이는 보조개가 신기하기도 하고 예뻤다.
미스 김 언니를 볼 때마다 그 보조개를 어떻게 만들 수 있냐고 물었다.
한참을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던 언니가 설탕물을 조금씩 물고 있으면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미스 김 언니한테서 좋은 냄새가 났다. 어쩌면 그 냄새는 보조개를 만들 수 있는 설탕물 냄새일거라고 어린 나는 생각했다.
엄마 몰래 부엌을 드나들며 설탕물을 만들었다. 대접 가득 설탕을 탄 물을 마시다 엄마에게 등짝을 맞았다.
“으이구, 천치 같으니라구. 설탕물을 그렇게 먹었으니 배가 아프지.”
엄마의 등짝은 다정했다. 소리만 컸지 아프지 않았다. 그 등짝을 맞았지만 평상에 앉아있던 서경언니와 눈을 마주치고 몰래 키득거리며 웃었다.
“충치 생기려면 어쩌려구.”
“미스김 언니가 보조개 생긴다고 했단 말이야.”
“으이구, 장난친거지. 보조개가 그렇게 생길 리가 있어.”
수돗가에서 엄마가 내 이를 박박 닦아 주셨다.
억울하기도 하고 박박 닦아내는 그 손이 아파서 어린 나는 엄마 눈치를 보며 괜히 떼를 쓰며 우는 소리를 내었다.
아버지의 자장면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다. 엄마가 해주는 밥도 맛나긴 하지만 그래도 아빠의 자장면이 더 좋았다. .
가게에 앉아 아버지가 만들어준 자장면을 먹을 때면 미스 김 언니는 내 앞에 마주 앉아 있다가 내 입가를 꼭꼭 닦아 주었다. 물수건까지 가져와 꼼꼼히 닦아주었다.
“으이구, 아가씨 얼굴이 이게 뭐야? 아주 헌 애가 됐네."
짧은 머리를 하고 온 동네 아이들 골목대장 노릇을 하고 다니는데도 미스김 언니는 꼭 나를 아가씨라고 불러줬다. 그 호칭도 나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아빠를 닮은 아들이라고 할 때도 좋았지만 미스 김 언니의 다정한 아가씨 소리도 좋았다.
자장면을 다 먹고 나면 꼭 따끈한 결명자 차를 내밀었다. 혹시라도 내가 배가 아플까봐 따뜻하게 먹으라며 주는 그 차는 어른의 맛이라 조금 싫었다. 하지만 보조개 패인 그 얼굴이 상냥해서 싫은 내색을 않고 호호 불어 마셨다.
나는 아버지, 엄마, 다음으로- 언니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미스 김 언니가 좋았다.
깊게 패인 보조개가, 웃을 때마다 깊어지는 그 보조개가 많이 좋았다.
큰 언니의 꿈은 교육대학을 졸업 후 어린 꼬마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피아노도 열심히 치고 동요도 부르며 나름대로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게다가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도덕을 잘 지켜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도둑질도 안 되고 질서도 잘 지키며 바닥에 떨어진 동전조차도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고 나를 앉혀 놓고 미리 예행연습을 했다. 그래야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큰언니는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사람처럼 살아야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라고 늘 나에게 말했다.
어린 나는 언니에게서 ‘훌륭한’ 이라는 아주 어려운 단어를 배웠다. 뭔가 엄청나고 대단한 사람만 선생님이 될수 있는 거라고 덩달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가끔 동네 남자아이들을 때리기도 했는데 큰언니에게는 비밀로 했다.
큰 언니가 교대에 합격했다. 언니가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것 같아 나도 좋았다.
그런데 그런 큰 언니가, 언제나 사근사근한 언니가 몹시 화난 얼굴로 엄마에게 소리 질렀다. 외투도 벗지 않고 단숨에 마루를 박차고 올라와 엄마가 있는 안방 문을 거세게 열었다.
친구들과 아버지의 가게에서 성인이 된 기념으로 요리와 축하주를 마시겠다며 외출했던 언니는 마루에 서서 소리를 질렀다.
“엄마… 아버지가…”
늘 단정하던 머리카락은 헝클어졌고 언제나 온화했던 얼굴은 사납게 일그러졌다.
“ 아버지가… 엄마는…알았어?”
나른한 늦은 오후 시간이라 엄마 발치에 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안방 문을 활짝 열고 발을 쿵쿵 구르며 효경언니가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알아 들을 수 없는 암호처럼 말했다. 차가운 바람이 훅 쏟아져 들어왔다.
“아버지가 … 아버지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인경이 작은 방에 가 있어.”
엄마가 나를 일으키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놀라 맹하게 눈을 뜨고 있었을 뿐이었다.
“춥다. 들어와서 문 닫아라.”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 미스 김 언니하고 어떻게 …어떻게?”
언니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곤 마루에 주저앉아 그대로 울기 시작했다. 통곡하듯 그렇게 언니가 비명처럼 울었다.
“내가… 어떻게 어떻게 …선생이 돼? 내가 …어떻게 …”
가슴을 쿵쿵 치며 큰 언니가 울었다.
덩달아 나도 눈물이 났다. 언니의 울음이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아픈지… 가슴을 치는 그 손이 비통해서 옆에서 같이 울었다.
엄마가 언니에게 다가가 언니를 끌어 안았다.
“엄마… 엄마….”
뭔지 모르지만 내가 모르는 위험하고 심각한 일이 이 집안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언니는… 나보다 …고작 세 살 많다고. 엄마아…”
울음과 호흡을 쏟아내며 언니는 그렇게 말했다.
효경 언니는 오래 울었다.
엄마는 오랫동안 그저 큰 언니의 등을 쓸어 줄 뿐이었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꿈이 코앞에 있다고 신나있던 큰언니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건넌방에서 배를 깔고 만화를 보고 있던 주경언니도 서경언니도 찬바람이 들어오는 마루에 나왔다. 울고 있는 큰 언니를 넋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린 서경언니가 놀란 눈으로 훌쩍이는 나를 데리고 작은 언니의 방으로 데려갔다.
내 등 뒤로 큰언니의 울음소리가 끈질기게 따라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른 곁에 붙어 다니는 막내 따위는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는다. 말귀를 알아듣기엔 어리다고 자기들 마음대로 단정 지어 버린다.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다. 햇살이 진해지자 할머니의 화투 친구들이 먼저 대문을 넘어 들어왔다. 텔레비전 드라마 보다 자극적인 사건에 호기심 많은 사람이 선한 표정을 하고 평상에 앉았다.
“효경이 할머니 말이 이번엔 배 모양이 다르다네. 이번엔 진짜 아들인거 같다고.”
엄마는 곤란한 표정을 했지만 그들의 눈엔 엄마의 표정 따윈 아무것도 아니였다.
“아들을 낳으면 그냥 눈 따악 감고 자네가 아이를 받아와야지, 어쩌나.”
“그게 어디 쉽나, 이 사람아.”
“그래야 애들 아빠가 들어오지.”
“막내만 꼬추 달고 나왔어도, 쯧쯧.”
엄마도 모르는 사실을 평상위에 풀어놓았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것 같았지만 엄마에게 무례했고 나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 위로는 가짜였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 귀를 막아주시거나 단호하게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나 엄마의 보호도 소용없었다. 마을 길목에서도 슈퍼에서도 사람들은 내내 우리 집 얘기를 나누기에 바빴다. 걱정과 염려를 위장한 채 동네를 관통하는 소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태고 나누었다.
“딸내미들을 그렇게 이쁘게 낳아놓고 뭐가 모자란다고 쯧쯧.”
“에구, 효경 엄마만 불쌍하지. 그깟 아들이 뭐라고.”
“이번엔 배 모양이 다르다고 그 집 할머니가 그랬다네.:
“낳아봐야 알지. 배 모양 갖고 아나? ”
“그러다 아들을 못 낳으면 그 젊은 애는 어떻게 한 대? 애가 어리다면서?”
“정말 그렇겠네. 그 집 할머니 여간 내기가 아닌데 말이야.”
“그 벌을 어찌 하려고.”
“할머니만 극성인가? 그 집 딸내미들도 좀 극성인가?”
젊은 사람들은 주로 현기네 가게로 모여 들였다. 저녁 반찬을 산다며 이르게 나와 가게에 모여 소문을 퍼 날랐다.
학교가 끝난 이후 현기와 다른 아이들과 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는 그 가게에서 나는 많은 소리를 들었다.
“진우 엄마, 상철이 엄마 그러는 거 아니야. 아이 키우면서.”
“뭐, 내가 없는 말 지어냈나? 현기엄마도 현기가 인경이한테 맞고 온다고 속상해 했잖아. 애가 어찌나 독한지 진우가 기를 못 펴 아주. ”
동네 골목길 어귀에서 현기네 가게 안에서 소문이 돌았다.
나는 그런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리에 서서 소문을 나누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아, 깜짝이야. ”
노려보는 나와 진우네 엄마와 시선이 마주쳤다.
“인경이 이거 가지고 가.”
현기 엄마가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초코파이 하나를 얼른 쥐어 주고는 가게 밖으로 내밀었다.
“난 그냥 걱정이 돼서 그런거지 뭐.”
“하유… 애가 저렇게 독하니…원.”
큰 언니의 엄마가 아버지가 로 축약되었던 말들이 길어져 나도 어렴풋이 무슨 뜻인지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가끔씩 현기어머님이 나에게 사탕 하나를 과자 하나를 쥐어주고 가게에서 내보내거나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는게 고작이었다.
어린 나도 언니들도 소문에서 보호받지 못했다.
결국 아버지의 아들이 태어났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꼬추 자랑을 하고 간 얼마 후 집이 팔렸다.
또 다시 사람들은 위로를 가장한 탈을 쓰고 대문을 넘어 평상위에 앉았다. 할머니의 화투 친구들이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며 움직이는 그 입술이 소름 끼쳤다.
어린 나에게 그 위로는 폭력이었다.
큰 언니는 고작 일 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자신의 도덕관과 아버지가 넘어버린 도덕성에서 괴로워하다 끝내 큰언니의 꿈이었던 학교 선생님을 그만뒀다.
둘째 언니는 큰 언니만큼 반응이 극렬하지 않았다. 매일 거울을 요리저리 쳐다보던 언니는 자신의 미모가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해버렸다.
우리 중 가장 동요가 적은 것은 서경언니였다. 그러나 오래 침묵했던 서경언니는 결국 내가 성인이 되자 마자 한국을 떠났다.
언니들은 가장 아끼는 것을 버림으로서 망가져 버렸다.
고작 나는 자장면을 버렸다. 나는 더 이상 자장면을 먹지 않는다.
◆◇◆
“인경아… 인경아.”
제일 먼저 귓가에 현주의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인경아..인경아
시장통에서 엄마를 잃은 다섯 살 아이처럼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정신이 서서히 돌아왔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이 돌아왔다.
“천천히 호흡해.”
머리 맡에서 김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짧은 명령이었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건넨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느리게 호흡했다.
“천천히… 천천히…. 괜찮아. 천천히…”
느리게 눈을 떴다.
날 내려다보고 있는 김식의 눈과 마주쳤다.
“어지러워?”
김식이 첫 걸음마를 하는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말했다. 내 머리맡에 김식이 상복을 입은 채로 앉아 있다. 내 옆쪽에선 현주가 눈물이 범벅인 채로 내 팔을 주물러대고 있었다.
“인경이 정신 들었어요? 인경아.”
현주의 얼굴이 코 앞으로 불쑥 다가왔다. 울먹울먹 하는 현주의 코 끝이 빨갛다.
턱까지 치받았던 호흡이 점차 제자리로 돌아왔다. 흐리게 보이던 천장이 제대로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천천히 식었다. 몸에 한기가 점차 느껴지기 시작했다.
“머리는? 머리 아파?”
현주가 잡고 있지 않은 팔을 들어 이마에 걸쳤다. 고작 팔 하나 걸쳤을 뿐인데 무겁다.
“인경아, 병원가자. ”
내 머리맡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김식의 눈을 보고 싶지 않았다.
“…시끄러워.”
한숨처럼 작게 말했다. 그러나 울고 있던 현주도 김식도 천둥처럼 들었나보다. 현주의 소리가 쏙 들어갔다. 숨 쉬는 소리조차 흘려보내지 않도록 입을 억지로 꾹 틀어막은 듯 작은 내방은 아주 조용해졌다.
이마에 올려둔 팔 사이로 활짝 열린 방문이 보였다. 그리고 기억이 났다.
가라고 밀어낸 김식이 내 방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내가 그어놓은 선 안으로 밀고 들어 왔다. 김식 뒤에서 튀어나온 현주는 나를 붙잡고 울었다. 나 대신 울어주는 내 친구 현주의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딸꾹. 현주가 못내 참은 소리가 세어 나왔다.
작게 한숨이 나왔다.
“너 괜찮아?”
현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
나 대신 김식이 대답했다. 이렇게 정신을 까무룩 잃은 적은 처음인데 어쩐지 김식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느껴졌다.
하지만 찌르던 두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잠깐 어지러웠어. 괜찮아.”
바짝 마른 목에서 겨우 소리가 나왔다.
“물 줄까?”
현주가 고장난 로봇처럼 허둥허둥 움직였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왔다.
“물이라도 쫌 먹어 봐. 응?”
김식이 등 뒤에서 나를 반쯤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현주의 손에서 컵을 받아 내 입술에 갖다 대 주었다.
“나중에…”
나는 고개를 느리게 돌렸다.
“마셔.”
“니가 뭔데?. 선 넘지마.”
나는 못되쳐먹게 말했다.
나는 여전히 이마에 올린 팔을 내리지 않았다. 내미는 물을 거절했다.
그리고 내 옆에 서서 어찌 할 바 모르는 현주에게도 말했다.
“너… 가. ”
바짝 마른 입술로 그렇게 말했다.
고작 그 말을 하는데도 다시 숨이 찼다.
“나도? 왜에? ”
“나 괜찮아. 쟤 데리고 너도 가.”
나는 이마에 올려두었던 팔을 풀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둘 다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저 얼굴에 나를 동정하는 표정이 있을까봐 보기 싫었다. 나를 위로할까봐 겁이 났다.
“왜, 왜 일어나게? ”
현주가 급하게 나를 부축하려 했지만 나는 그걸 밀어냈다.
“어차피 사람은… 다 죽어.…가!”
휘청휘청 걸어 화장실로 갔다. 현주가 걸어놓은 예쁜 천을 들춰내고 낡은 문을 열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에게 등을 돌렸다.
나 대신 상복을 입은 김식에게서 등을 돌렸다.
천천히 얼굴을 씼었다.
차가운 물에 정신이 돌았다. 물로 양치하듯 입을 헹구어냈다. 버석버석 모래알을 씹은 듯한 입안에 조금 물기가 닿았다.
두통도 남았지만 이젠 나 혼자 제대로 호흡을 할 수 있었다.
느리게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오니 좁은 방안엔 아무도 없었다.
문 앞에 슈퍼 비닐봉투 하나와 내 신발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항상 안으로 들여놓던 그 신발이 내내 문 밖에서 팽개쳐져 있었나보다. 나처럼.
헛 웃음이 나왔다.
방에 이불을 깔고 다시 누웠다.
이번엔 천장을 보고 제대로 누웠다.
가슴이 크게 일렁이도록 숨을 크게 쉬었다.
두 손을 내 배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계속 호흡했다.
똑똑.
조심스럽게 신경 쓰는 듯한 노크소리가 들렸다.
대꾸도 않았는데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저기…이거도 먹으라고.”
아주 조심스러운 말투로 현주가 말했다. 내 눈치를 보는 현주의 태도가 역력히 느껴졌다.
“나 내일 올게. 꼭 먹어야 해.”
다시 조심스럽게 문이 닫혔다.
문 밖에서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라는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누가 대화를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두 눈을 감았다. 속삭이는 소리가 사라질 때 까지 가만히 누워 있었다.
원래 위로는 타인에게서 받는 게 아니다.
나는 위로를 받지 않았다.
동정도 받지 않았다.
이 정도면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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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저도 어느 해 위로라는게 참 받기싫다 라는 해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섣부르게 입을 열고 하는 말이
듣기 싫었습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의무로 해주는 그 위로가
진심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그냥 싫었습니다.
푱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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