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봐라. 이게 꼬추다.”
할머니가 아기를 데려왔다. 처음 보는 낯선 아기.
너무 작고 작아서 잘못 잡으면 부서질 것 같았다.
할머니는 집 마루에 아기를 내려놓고 훌렁 기저귀를 벗겨냈다. 이빨도 없고 젖내 풀풀 나는 아기가 허둥허둥 팔과 다리를 열심히 움직였다. 볼록 나온 배. 연신 허둥거리는 다리. 개구리 같기도 올챙이 같기도 했다.
처음엔 너무 작고 작은 몸을 봤다.
할머니가 기저귀를 당당하게 벗겨냈을 때 내 엄지 손가락만한 번데기 같은 주름이 잡힌 조그만 꼬추가 환하게 드러났다. 그 아래 더위로 축 늘어진 알 수 없는 주머니까지.
낯선 아기는 말캉하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승리의 얼굴을 한 할머니가 당당하게 아기를 안고 대문을 넘어왔다. 아버지가 집에 안 들어 온지 일 년 쯤. 어느 날 할머니도 신이 나서 진짜 아들이 생겼다며 짐을 챙겨 나갔다.
다시는 이 집으로 안 돌아올 줄 알았는데 등 뒤에 아기를 업고 불쑥 나타났다.
“이거 달고 나오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쯧쯧.”
엄마 옆에서 할머니가 자랑스럽게 펼쳐 놓은 아기를, 아기 꼬추를 함께 들여다보았다. 아기는 마치 인형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꼭 쥔 주먹은 무엇을 그리 쥐고 있는지, 허공을 향해 버둥거리는 다리는 어디를 가려고 그러는지 신기하고 궁금했다. 이도 없는 분홍색 잇몸을 드러내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낼 때는 나도 모르게 말을 걸고도 싶었다.
할머니는 그 아기가 자랑스러운 듯 활짝 웃었다. 큰 금덩이라도 가진 듯 포식한 사람의 웃음이다. 아기를 바라보는 눈동자에선 꿀이 뚝뚝 떨어졌다.
“쓸모도 없는 지집년들만 놓더니… ”
할머니는 아기를 내려다 볼 땐 세상 행복한 표정이더니 금세 싸늘하게 엄마를 향해 말을 했다. 한 가족으로 같은 집에서 숨쉬고, 잠자고, 밥 먹기를 오래 했건만 할머니는 우리 전체를 내모는 것 같았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내 다리 길이도 안 되는 저 아기를 더 자랑스러운 것 같았다.
“얼른 이혼해라. 애를 호적에 올려야 할 게 아니냐?”
차갑고 독한 눈으로 엄마를 노려보았다.
“내가 얘 에미를 볼 낯이 없다.”
엄마는 입을 굳게 꾸욱 다물었다.
그럴수록 할머니는 더 신이 나는 것 같았다.
“애초에 인경이가 꼬추 달고 나왔으면 이런 일도 없었다."
할머니의 말은 주먹으로 쿵하고 머리를 세게 쥐어박는 것 같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듯 모욕을 느끼도록 찍어 내리 누르는 말투였다. 속을 긁고 긁어 자존심을 갉아대는 언어였다.
"니네 모녀들 입구녕에 풀칠이라도 하는 걸 다행이라도 알아야지.”
할머니는 모질게 엄마를 향해 말했다.
더 세게, 더 내리 누르듯 계속해서 독설이 쏟아졌다.
“못 되 쳐 먹어 가지고. 니가 버틴다고 뭔 수가 있다고. 아들도 못 낳은 게.”
할머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모른다. 그러나 나도 언니들도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 것 같았다. 이런 말은 성장하면서 때때로 들었던 말들이었으니까.
“ 미스 김도 호적에 올려줘야지. 고만 버티고 이혼해라.”
엄마는 더 입을 꾸욱 닫았다. 황망한 표정으로 아기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이제 정확히 아기의 존재를 알아챘다.
그리고 저 낯선 아기의 정체도 알았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이유. 할머니가 짐을 싸들고 신이 나서 이 집을 나갔던 이유를 알았다. 할머니가 말한 저 미스 김이 이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을,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도 없는 아기가 분홍색 잇몸을 드러내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순간 뭔가 나쁜 기운이 확 치밀고 올라왔다.
할머니의 독기가 나에게 옮겨 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와 미스 김 언니에 대한 맹렬한 적의였다.
동네 아이들과 놀려고 들고 있던 새총을 아기를 향해 풀석 내리쳤다. 충동적으로 물처럼 말캉거리는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물처럼 말랑말랑한 아기가 허공을 향해 팔다리를 허둥거리던 아기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도 못 내고 까륵 넘어갔다.
순간 나도 같이 숨을 참았다.
미워서 조금만 때리려고 했는데 ….
이대로 숨이 넘어가나 싶을 때 찢어발기듯 한 울음소리를 냈다.
“으앵.”
“으매, 으매. 저 호래가 물어갈 독한 년.”
할머니의 사납게 노려보는 눈은 무섭지 않았다.
“으앙, 으앙.”
“하이구, 얘가 어떤 안데… 저 나쁜 년.”
금방이라도 아기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얼굴이 파랗고 시뻘겋게 변하면서 울어대자 할머니가 안절부절 못하며 허둥거렸다.
“ 아이구 어쩌나. 저 잡시랄 년 같으니라고.”
우왕좌왕 할 뿐 어찌 할 바 모르는 할머니 대신 엄마가 황급히 아기를 끌어안았다.
아이 넷을 키워낸 만큼 익숙하고 노련한 손길이었다. 등을 토닥토닥 하며 아기를 어르고 달래였다.
아기의 왼쪽 눈가 옆이 금세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아무 말 없이 아기를 달래는 엄마의 힘없는 눈빛이 무서웠다.
“부정 탄다. 손대지 마라.”
할머니가 악에 찬 듯 엄마에게서 울어대는 아이를 달려들어 빼앗았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더 크고 깊어졌다. 아랫도리가 벗겨진 아이는 그 채로 조모의 손에 옮겨갔다.
“우에에엥.”
울음소리 사이마다 숨이 넘어가듯 파랗게 파랗게 변하는 얼굴로 소리도 못 내고 입만 크게 벌리며 고개가 뒤로 까무룩 넘어갈 것 같았다.
아기가 숨이 넘어갈 때마다 나도 같이 숨을 참았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에고 에고 승효야.”
할머니가 방금 엄마가 한 것처럼 한손으로 아기의 등을 받치고 토닥토닥 등을 쓸어 주었다.
“에미나 딸년이나. 극악스러운 것들 같으니라고. 아이구 승효야.”
업고 온 포대기를 찾아 아기를 둘러업었다.
“어데 흉터라도 생기봐라. 못된 년 같으니라고. 저 썩을 년. 쓸모도 없는 년 같으니라고. ”
아버지의 아들이 당당히 꼬추 자랑을 하다 울면서 돌아갔다.
할머니가 벗겨놓은 기저귀만 마루 한 켠에 소란의 증거처럼 남았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대문 너머 할머니가 사라질 때까지 마당 안에 울렸다. 내 머릿속에도 엄마의 마음에도 울음소리는 오래 남았다.
엄마는 할머니가 사라진 빈 대문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나도 엄마 옆에서 대문을 보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엄마에게 조그만 아기를 때려서 혼이라도 날줄 알았다.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다. 빨갛게 부어오른 눈가가 바늘처럼 나를 찌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
엄마가 야단치면 야단을 맞으려고. 가끔씩 둘째언니에게 하듯 내 등짝을 쳐도 가만히 있으려고 했다.
엄마는 내게 아무 말도 없이 스르르 일어났다. 마치 혼이 빠진 모양, 넋이 빠진 모양 흐물흐물 걸었다.
드르륵 탁.
안방의 미닫이문이 열렸다 닫혔다.
나는 마루에 앉아 기다렸다.
손에 든 새총을 내려다 봤다 마당을 봤다 하며 가만히 기다렸다.
안방에서 인경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나를 호되게 야단치는 소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또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할머니의 극악스러운 눈빛과 욕설에도 가만있던 엄마의 힘없는 표정이 떠올랐다. 흐물흐물 걸어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가 들어간 방문을 조심조심 열었다.
엄마는 벽을 보고 누워 있었다. 꼼짝 않고, 숨도 안 쉬는 것처럼.
문 앞에서 서서 가만히 엄마가 돌아보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엄마는 벽만 보고 누워 있었다. 오래도록 그대로.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다리가 아파와 문 안으로 들어와 가만히 앉았다.
엄마의 굳은 등을 바라보았다.
언니들이 돌아오기 전에 저녁준비를 시작할 시간이 되어도 엄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도 엄마의 등을 바라보며 숨을 어깨로만 쉬며 가만히 있었다.
한참을, 서쪽 하늘이 발갛게 노을이 질 때까지 오도카니 앉아서 엄마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더럭 겁이 났다. 엄마가 죽었을까봐.
무릎걸음으로 엄마 곁에 가만히 갔다.
벽을 보고 누워있는 엄마 등 뒤로 가만히 따라 누웠다. 그리고 숨 쉬는 소리를 들으려 귀를 기울였다.
시계 초침 소리만 짹깍짹깍 들려왔다. 엄마의 숨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아까부터 내내 하고 싶었던 말을 속삭였다.
“엄마, 미안해.”
이제껏 숨 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가슴을 크게 들썩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엄마 아들 할께.”
엄마의 등 뒤에 바짝 붙어 누워 엄마의 옷자락을 가만히 잡았다. 엄마가 나를, 혹은 자신을 놓을까봐 옷자락을 꼭 잡았다
“내가 아들이 될께.”
그렇게 말했다.
“엄마 …죽지 마.”
내 나이 여덟이었다.
◆◇◆
또다시 김식의 처마가 예쁜 옥상의 집으로 왔다. 오후의 햇살이 들어오는 커다란 통창에 커튼을 쳤다. 긴 커튼이 바람에 날리며 펄럭거렸다.
그리고 커튼 사이로 김식이 거침없이 바지를 내렸다.
김식이 눈으로 내게 물었다. 진짜 한다.
나도 눈으로 대답했다. 빨리 벗어.
몸에 딱 붙은 팬티에 양 엄지손가락을 끼워놓고 잠깐 버티고 섰다. 진짜 보겠다고? 눈이 그렇게 물었다.
“내려.”
나는 매트리스에 걸터앉아 ‘저 병정의 목을 쳐라’하는 하트여왕처럼 말했다.
“하….”
김식이 질끈 눈을 감더니 속옷을 내렸다.
보통의 연인들이 하는 은밀하고 다정한 시선 따윈 없었다. 나는 호기심이었고 김식은 도전 혹은 배짱 같은 것이었다.
딱 붙은 속옷 사이에 불편하게 오그리고 있었던 것 같은 성기가 해방된 듯 꿈틀 거리며 나타났다.
까만 거웃도 긴 기둥도 그 아래 늘어진 주머니도.
“예전에 한번 본적 있어.”
“뭐? 넌 대체 뭘 보고 다니는 거야? ”
김식이 감았던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나의 시선은 오직 김식의 중심부에 있었다.
“음, 내 요거보다 작았어.”
난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 정도면 내시를 해야 할 거 같은데. 바바리맨 같은 등신 새끼?”
“내시는 아닐 거야. 그땐 애기였으니까.”
“근데 얘가 움직여.”
내가 손가락으로 김식의 중심부를 가리켰다. 저 혼자 끄덕하고 움직였다. 처음 속옷을 내렸을 때보다 더 커진 것도 같고. 아무것도 안했는데 저절로 움직인다.
김식이 아이구야 하고는 손으로 머리를 만졌다.
할머니가 그렇게 좋아하던 꼬추를, 내게는 없다고 구박하던 그 꼬추를 막상 보니 그냥 그랬다. 그래서 픽 하고 웃음이 났다.
“별거 아니네.”
특이할 것도 없었다. 그때의 아기보다 좀 더 커지고 좀 더 진해지고 흉물스럽다는거 말고는.
볼만큼 다 봤다. 난 중심부에서 시선을 들어 김식을 쳐다봤다. 그런데 표정이?
“기껏 보여줬더니.”
화가 난 것 같았다.
김식이 성큼 내게로 다가왔다. 앉은 자세에서 굳이 시선을 내리지 않아도 김식의 저 혼자 더 커지고 있는 중심부가 눈앞에 크게 다가왔다. 내 눈 앞에 시시각각 형태를 뚜렷이 하며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흉물스런 중심부를 피하려 엉덩이로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김식이 개구쟁이처럼 씨익 웃었다.
“ 별거처럼 느껴 질 거야.”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리고 손으로 내 어깨를 탁 밀었다.
누운 내 시야에 김식의 흉악스러운 그곳과 바람에 하늘하늘 날리는 커튼이 동시에 들어왔다.
“만세.”
엄마가 아기에게 하듯 짧은 명령에 두 팔을 번쩍 들었다. 김식은 쿡쿡 웃으며 내 웃옷을 아주 가볍게 벗겨냈다.
먼저 다가온 것은 입술이었다. 내 입술을 막으며 익숙하게 내 입안으로 잡아 먹을 듯 돌진해왔다. 손으로 빠르게 내 바지 버클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흡.!”
나를 내리누르는 체중에, 압박감에 호흡이 입 밖으로 세어 나왔다.
김식의 손이 지퍼를 내리고 내 속옷에 닿았다. 술도 안 마신 채로 맨 정신으로 나를 탐하는 손길은 불편하기도 했고 낯설기도 했다.
아직 해도 지지 않은 환한 대낮이었다. 조금 전 김식이 스스로 속옷을 내릴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겁먹지 마.”
“누가 겁먹었다고.”
나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었다. 태초의 모습 그대로 김식의 눈앞에 드러냈다. 김식 역시도 태초의 모습으로 내 앞에 있었다.
그리곤 머리맡의 상자를 열더니 얇은 은박지에 싸인 납작한 포장지를 찢었다.
‘그거 뭔데?“
“콘돔.”
김식이 기분 좋게 웃었다.
“쑥 맥인 주제에 센척하기는….”
지지 않고 뭐라 대꾸 하려는 순간 내 안으로 강하게 김식의 중심부가 밀고 들어왔다.
흡.”
뭔가가 무겁고 불편했다. 내 안으로 미끄러져 돌진한 그것은 뜨겁기도 했다.
내 짧은 신음이 신호라도 되는 듯 김식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세게, 거세게
김식은 공격을, 공격만 했다.
아랫배에서 뭔가 가득 찬 것이 계속해서 밀고 올라왔다.
거세게 거세게 때려 박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뜨겁고 찐득찐득하고 끈적끈적하고 밀착된 관계는 처음이었다.
멀미가 나도록 김식은 거세게 거세게 계속해서 내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나는 떨어질까 봐 김식의 팔뚝을 잡았다. 단단하고 억센 남자의 근육이었다.
순간 김식이 잠깐 멈췄다 싶었다. 나와 잠깐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더 강한 속도로 나를 밀어 붙였다. 거세게 거세게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속도가 딱 멈췄다.
용감한 풍선인형이 바람이 푸스스 빠진 것처럼 김식이 내 위로 무너져 내렸다. 김식의 체중이 온전하게 내 위로 쏟아졌다. 내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무게감이 느껴졌다.
축축하고 온기를 가진 혀가 살짝살짝 허락을 얻듯이 내 입술을 핥았다. 김식의 등뒤로 조금 길어진 햇살이 커튼 사이로 비쳐들었다.
“이제 별 거 같아?”
김식이 아주 당당하게 물었다.
“잘 모르겠어. 그냥 쫌 숨차.”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눈이 뾰족하게 사나워졌다.
“너는 진짜…그럼 다시 해.”
“그게 금방 다시 돼?”
“내가 별거처럼 느껴질 거라고 했잖아.”
내 몸 안에서 작아진 김식의 중심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뒤처리를 끝낸 김식은 내 손을 이끌어 자신의 중심부에 갖다 대어 주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난 그저 꼬추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을 뿐인데 손안에 닿은 불덩이를 어찌 해야 할지는 예상 못했다.
“어쩌라고?”
김식은 웃기만 했다. 뭔가 무척이나 기분 좋은 웃음 같았다.
난생처음 손에 닿은 그것은 정말 용암덩어리처럼 뜨거운 것 같았다.
그리고 쇠뭉치처럼 무거운 것 같으면서도 말캉하고 보드라운 젤리 같기도 했다.
낯선 느낌에 그것을 손안에 꽉 쥐었다 힘을 풀었다 울퉁불퉁한 혈관이 느껴지는 대로 엄지손으로 쓸어내렸다.
이번엔 김식이 끄응 신음을 냈다.
김식은 다시 머리맡의 상자에서 콘돔을 꺼냈다.
“그거, 콘돔이 자꾸 나와?”
“사촌형이….”
이상한 사촌형이라고 생각했다. 집도, 콘돔도 이것저것 잘도 주는 사촌형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엔 김식은 느리게 느리게 다가왔다.
커다란 손으로 내 가슴을 감쌌다. 동시에 김식이 느리게 진격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단호하게 진입을 시도했다.
어느 순간 나도 김식의 어깨를 잡았다.
드러난 맨살이 단단했다. 힘을 빼야되서 운동을 한다던 김식의 말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시험 삼아 이를 세워 김식이 내 가슴을 베어 물었을 때처럼 어깨를 물었다.
살 냄새와 알 수 없는 욕망의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허억.”
김식이 신음을 흘렸다.
그게 재밌어서 이번엔 다른 쪽 어깨로 옮겼다.
살짝살짝 이를 세워 단단하게 뭉쳐진 근육을 베어 물었다 놓았다 혀를 내밀어 맛을 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신음을 흘리는 김식의 반응이 꽤 재밌었다.
거친 숨소리가 고스란히 입술위로 귓가로 머리카락 위로 떨어져 내렸다.
처음의 낯선 불편함과 이물감이 익숙해진다 싶을 때 김 식은 오르가즘에 올랐다. 그리고 나도 무언가 뜨거움을 느꼈다.
선수 같아 보여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버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선수 같지 않아서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것은 아마 뜨거운 체온과 무게에서 오는 느낌이었던 것 같았다.
내게는 낯설고도 이상한 감정이었다.
김식은 샤워를 하고 나와 아주 개운한 표정을 하고 ‘있어’라고 말하고 집을 나갔다.
나는 뭉근한 근육통을 느끼며 해도 지지 않은 시간에 무슨 짓을 한 건지 허탈하게 웃었다. 햇볕이 너무 아까워 입고 온 옷을 몽땅 빨아 버렸다. 내가 사는 집엔 귀한 햇살이 풍성하게 옥상 전체에 쏟아지고 있었다.
김식의 커다란 반팔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나도 꽤 큰 편인데 키가 더 큰 김식의 옷은 원피스처럼 엉덩이를 덮었다. 속옷은 어찌하나 잠깐 고민하다 김식의 속옷까지는 입을 수 없어 포기했다.
엄지손가락을 걸고 속옷을 내리던 김식의 모습이 떠올라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내 티셔츠와 속옷을 빨아 들고 통창 밖으로 나왔다. 옥상을 가로질러 걸린 빨래 줄에 옷가지를 널었다. 곧 기울겠지만 그래도 쏟아지는 햇살이 좋았다.
배가 고파 조심스레 냉장고를 열었다. 가끔씩 반찬을 주신다는 집주인 덕분인지 냉장고 안은 내 집의 것보다 풍성했고 잘 정리되어 있었다. 게다가 끓인 보리차 와 무려 과일이 들어 있었다. 우렁 각시를 따로 키우나 싶을 정도로 관리를 받고 있는 것처럼 깔끔했다.
토마토 하나와 물 한잔을 꺼내 마셨다.
식탁 의자 하나를 꺼내 처마 아래 그늘 자리를 잡아 앉았다. 김식이 제꺼라고 하던 운동기구 틀에 다리를 올려놓고 나른하게 앉았다.
이제야 빨갛게 기울어지는 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햇살도 풍성하고 처마도 있고 사방을 볼 수 있는 이 집이 몇 번 와 봤다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같았다.
다정한 바람이 시원해서 까무룩 졸았던 것도 같다.
해가 서서히 지면서 도시의 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반쯤 낮이고 반쯤 어둠이 교차하는 하늘 위에 예쁜 조각달이 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병원간판이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그 병원은 아주 잘 보였다. 혹시 일부러 병원이 잘 보이는 위치인가 싶게 한눈에 들어왔다.
새로 지은 것 같은 빤빤한 병원 건물이 서 있는 모습은 위풍당당했다. 옥상 위에 설치한 커다란 간판에 불빛이 누구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역에서 멀지 않은 그 병원은 옥상에서 보니 꽤나 가깝게 보였다.
그리고 주택단지 창으로 하나 둘 켜지는 불빛이 보였다.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켜 놓은 불빛이 다정해 보였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인기척보다 먼저 집안에서 노오란 불빛이 먼저 내 발치로 밀려왔다.
“또 튄 줄 알았어.”
나른하게 앉아 있는 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김식이 통창에 삐딱하게 기대여 있었다. 뛰어 온 건지 상기된 표정의 김식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젠 튀었다는 것은 안 맞아. 빚은 다 갚았는데? ”
“어떤 빚이든 이자는 붙어.”
“이자도 갚은 거 같은데?”
내가 손가락 두 개를 펴서 보이자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김식의 표정이 잠깐 사나워졌다.
“나와. 밥 먹자. 너 더 말랐어. ”
느리게 일어났다. 그런 내 모습을 김식이 빤히 쳐다보았다.
“백설 공주는 아니지만 너 물도 마시고 토마토도 먹고 옷도 입었어. ”
“이렇게 큰 난장이는 없겠지만….”
김식은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김식은 나를 빤히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티셔츠 아래로 드러난 맨다리가 신경 쓰였다.
“근데 너 왜 까만 옷만 입어?”
문득 떠올라 물었다. 김식이 샤워를 하고 나와 개운한 표정으로 열었던 옷장을 나도 열어 보았다. 까맣고 까맣고 까만색 티셔츠와 셔츠뿐이던 그 옷장에서 나름 낡아 보이는 것으로 잘 골라 입었다.
“빨래하기 귀찮아서.”
의외의 대답에 까르르 웃었다. 뭔가 김식의 사나워진 표정에 아끼는 옷을 입은 건가? 하고 조금 미안했는데 예상치 못한 답에 웃음이 터졌다. 아마도 하늘의 조각달이 나를 말랑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저승사자모양 잔뜩 힘주고 다니느라 그런 줄 알았는데 열악한 집에 사는 자취생인 나와 별 다르지 않았다.
통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섰다.
김식은 통창 안쪽에 나는 통창 바깥쪽에…. 집 통창을 뚫고 나온 환한 빛 아래 서 있었다.
밤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머리카락을 헝크러 뜨렸다. 밤에도 냄새가 있었다면 아마도 아기 분유 냄새 같을지도.
“오토바이도 까맣던데?”
놀리듯 물었다. 김식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뿌루퉁하게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사촌형이… 산거라.”
“그 사촌형 정말 이상해. ”
집도 주고, 콘돔도 박스째로 주고, 오토바이도 주고.
“밥 먹자며?”
잠깐 버티고 섰던 김식이 자리를 비켰다. 그 사이로 나는 집 안으로 들어왔다. 순간 김식의 팔과 내 팔이 스쳐 지나갔다. 따꼼했다.
벌써 식탁위에 질 좋은 삼겹살 구이용 솥 두껑이 휴대용 버너 위에 차려져 있었다. 전문 가게에서나 쓰는 도구 같아 웃었다.
“이런 건 어디서 났어?”
“빌렸어. 알바하는데에서.”
“그 패널티 준다는 악.덕. 그 분? 이런 거 막 빌려주는 거 보면 좋은 분 아닌가?”
“씨…이거 때문에 더 구르다 왔어.”
김식이 울컥하며 삐딱하게 말했다.
“앉아 있어.”
김식이 식탁 한 곁으로 음식을 꺼내기 시작했다. 새로 받아 온 것인지 작은 김치 통 안에서 파김치를 꺼내어 접시에 담았다. 무려 파김치라니… .
“오구오구, 제법 잘 하네. 시집가도 되겠네.”
“지난번에도 내가 다 차렸거든.”
“네,네.”
식탁위에 차려진 파김치 하나를 길게 집어 먹었다. 알싸하고 매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맛있어. 이건… 그 주인집 분?”
딸칵. 하고 휴대용 버너의 불을 붙인 김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별 말없이 봉지에서 삼겹살을 꺼냈다. 나간 사이에 거하게 장까지 봐온 모양이다.
“너 네 주인집도 이상해. ”
듬뿍듬뿍 정성이 담긴 음식들을 보내주시는 마음 씀이 이상하고 신기했다. 새 김치에 묵은 김치까지 다정하고 살뜰했다.
“원래 사촌형네 집안하고 아는 집이야.”
“아아.”
뭔가 이해가 가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불판위에 길게 썬 삼겹살을 올려놓았다.
꿀꺽 하고 침이 고이고 심한 허기가 밀려왔다.
솥뚜껑 불판 위에 삼겹살이 올라갔고 한 켠으로 묵은 김치도 올라갔다. 김식이 알바 하는 곳이 삼겹살 집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능숙한 움직임이었다.
김식은 묵묵히 삼겹살을 구워 먹기 좋게 가위로 잘라 내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나는 아기 새처럼 족족 받아먹었다.
“너도 같이 먹어.”
“남겨주고나 말하지?”
김식은 내가 먹어 치우는데도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다.
오래 굶은 사람처럼 김식이 구워서 주는 대로 파김치와 묵은 김치와 함께 먹었다.
“미안, 근데 정말 맛있어.”
“다 먹으면 볶음밥도 해줄게.”
보리차만 마셨는데 술에 취한 것처럼 까르르 웃었다.
김식은 내가 배부를 때까지 계속 고기를 구워 내밀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가장 이상한 건 김식이라고. 마치 수 십만년 전 수렵활동을 하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원시인 남자 같았다. 내가 뭐라고?
뭐, 어떤가? 빚은 갚았고 오늘이 마지막 일 텐데.
아니면 정말 이상한 건 평소와 다르게 말랑해진 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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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지난주에 뜻하지않게 일이 꼬여서
머리를 쥐어박는 듯한 말투를 들었습니다.
별다른 액션도 취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들어온 공격에
한동안 현타도 왔습니다만,
그 말투를 듣고 나서
갑자기 저 표현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을 불쾌하게 모욕스럽게 하는 말투를 어찌 할까 했는데
마침 제 앞에 쏟아졌네요.
덕분에 표현 하나를 잘 얻었습니다.
이번 파트는 정말 저 같아서 쫌 좋아요.
푱이가
dupiyongstar@naver.com
스무 살 애기 둘이 소꼽놀이 하는 것 같은 설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