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간장계란밥, 간장계란밥, 간장계란밥. 혹은 캐찹 계란밥.

현주가 갖다 준 반찬이 떨어지자 내 식량은 밥과 계란뿐이었다.

 


학생식당에서 식권을 샀다. 늘 복작거리던 학생식당이 오늘은 조금 한산하다.밥 먹는 사람보다 군데군데 모여 리포트 쓰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인다.

저렴한 맛에 학생식당 밥은 나처럼 혼자 밥 먹어야 하는 사람에겐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북적이지 않아 더 좋았다. 길게 줄을 서야 하는 것도 옆에 자리와 바짝 붙어 밥을 먹어야 하는 것도 싫었다.

 

 

오늘의 메뉴는 백반이다. 배추된장국과 멸치볶음과 고등어조림, 배추김치를 담은 식판을 내려다보았다.

 

배가 고프다라는 것보다 살아야 한다 쪽에 가까운 마음으로 국을 떴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여름이면 엄마가 마당에 큰 솥을 걸어놓고 끓여주던 장국과는 다르게 슴슴하고 맹맹한 맛이었다.

밥을 한 숟가락 욱여놓고 고등어 조림을 조금 잘라 먹었다. 생선 비린내가 훅하고 올라왔다. 망했다 라고 생각했다.

멸치하고 김치하고나 먹어야 하나 하고 마땅찮은 눈빛으로 식판을 쳐다봤다.

 

내 앞으로 불쑥 라면이 담긴 그릇이 들어왔다.

 

“백반 나오는 날은 맛이 없어 다들 경영관이나 밖으로 나가 먹어.”

 

키가 작고 조그만 똑 부러지는 이지수다.

 

“아니면 라면을 먹지.”

 

백반의 반 가격 밖에 안 되는 라면에 푸짐하게 단무지와 김치를 담아온 이지수가 내 앞자리에 앉았다.

 

“라면 국물에 밥 말아 먹는 게 더 나을걸.”

 

그래서 내 앞에 라면 한 그릇이 생겼다. 똑같은 배추김치인데 이지수가 작은 접시에 담아온 김치가 더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학교를 자주 빠지니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지. 아줌마들하고 낯 터놓으면 라면 시켜도 밥 한 공기 정도는 받아 올수 있어.”

 

호로록 라면가락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진짜 어느 집 딸래미인지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똑부러짐이다.

 

나도 이지수를 따로 호로록 라면가락을 먹었다.

 

“나 밥 말아도 되지?”

 

라면 한 그릇 줬으니까. 라는 듯 이지수가 당당히 내 식판에 담긴 밥을 가리켰다.

얼른 밥 반 정도를 덜어 이지수의 라면 그릇에 넘겨 주었다. 그리고 나도 라면 그릇에 밥을 말았다. 국물이 좀 모자란 듯 싶었지만 밍밍한 배추 된장국 보다는 나았다.


“지난번에 족보, 고마웠어. 라면도.”

“별거 아냐. 선배들 앞에서 아양 몇 번 떨어주니 생기더라.”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고는 밥 말은 라면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식판은 너가 치워줘. 커피 한잔도.”

아주 당당하게 나에게 명령했다. 나는 이지수의 식판과 내 식판을 들고 반납대로 갔다. 그리고 자판기 커피 두 잔을 뽑아 자리로 돌아갔다.


“이거로 돼?”

“충분해.”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노가다 아저씨처럼 흐뭇하게 마셨다. 참 이상한 애다.

 

 

 

 

 

“너 레포트 다 썼어? ”

“철학의 이해?”

‘그래, 그 장미의 이름.“

 

이지수가 포스트잇에 써놨던 책 이름이다. 예전에 서경언니 책꽂이에서 제목만 보고 로맨스 소설인가 해서 심심풀이로 읽기 시작했다.

 

“그 과목 교양 기초라 도서관에 책 없을걸?”

“집에 있었어.”

“고딩때 맨날 책 끼고 읽더니 그것도 이미 읽은 거야?”

“아니, 반 정도? ”

수도사들이 자꾸 죽어 나가는 살인 사건을 푸는 탐정물인가 싶어 집중하려 했지만 그것도 아닌 중도 포기 했던 책이다. 그 책을 대학에서 과제로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 장미의 이름, 영화도 있는데 … 책 읽기 싫으면 영화로 봐.”

이지수가 무슨 비밀을 말하는 듯 몸을 앞으로 내밀고 작게 말했다.

“여기 학생식당 공대생 천지잖아. ”


주위를 돌아보며 비밀을 공유하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얘는 이런 정보를 다 어디서 듣고 오나? 하고 잠깐 생각했다.

 

“아니, 책은 지루하지만 괜찮아. 어차피 밤에 할 일도 따로 없고.”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한여름 정오의 태양빛처럼 강한.

 

고개를 들다 바로 아는 얼굴을 찾았다. 김식이다. 식당 입구쯤에 선 김식이 날 세운 시선으로 날 찾아내 쳐다보고 있었다. 바로 눈이 마주쳤다.

 

나를 집 앞에 데려다 준 이후 의식하자 김식이 자주 보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지는 뒷꽁무니도 보고, 같은 과 동기들인지 남자들 무리에 비죽이 솟은 머리도 봤다. 아마도 같은 공대니 어쩌면 마주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뭐? 라고 입모양으로 물었다.

내가 아는 체를 하는 순간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마주친 눈을 풀지 않고 계속 내 쪽으로 걸어왔다. 이상한 긴장감에 한쪽 다리를 밖으로 뺐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또 왜? 라고 나는 다시 입모양으로 물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그때 같다. 현주와 벤치에 앉아 있을 때 날카롭고 시뻘건 눈으로 찾아온 그때. 뭔가 진격하는 딱딱한 군인 같은 느낌이다라는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이지수 앞을 막고 섰다. 그때 현주를 막아선 때처럼.

 

“하! ”

일미터 가까이 다가온 김식이 내 모습을 보고 잠깐 속도를 멈추었다.

“또 누구랑 알콩거린다 했더니.”

 

이지수도 내 등 뒤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어 김식을 확인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잠깐 서로의 감정을 한껏 드러낸 눈빛이 부딪혔다.


 

김식이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와 섰다.

뚜벅, 뚜벅, 두 걸음 만에 내 앞에 와 섰다.

학생 식당 가운데 키가 큰 김식과 대치하듯 섰다.

어쩐지 화가 난 기세로 나를 내려다보며 단단하게 가슴을 펴고 내 앞에 섰다.

나 정도의 키는 많지만 김식과 같이 서자 사람들 사이로 불쑥 올라온 키 덕분에 주변에서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불편하게 날아왔다.


 

“씨바, 너 쟤 알아? 그 쪼끄만….”

 

이지수는 김식과 안면이 있다. 김식에게 나를 모른척 했다고. 등 뒤에서 얼굴을 내민 이지수를 노려보며 김식이 말했다. 이지수 역시도 김식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때는 모른다고 딱 잡아떼더니.”

“질문이 이상해서 모른다고 했을 뿐이야.”

 

나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눈싸움이 계속되었다. 김식은 불만을 이지수는 약간 뻔뻔하게 어쩌라고 쯤? 키 크고 무서운 남자라고 표현하더니 이지수는 김식에게 또박또박 잘도 대답했다.

 

“결국 찾아 낸 거네. 넌 괜찮아?”

 

내 등 뒤에 조그만 이지수가 혹여 김식이 나를 해꼬지라도 할까봐 나를 걱정했다. 키도 작고 힘도 약하면서 대신 싸우기라도 할 기세다. 내 옷자락을 꼭 잡고 있는 주제에. 커다란 남자의 사나운 기세에 쫀 기색을 숨기려 애쓰고 있었다.


‘괜찮냐는 나한테 물어야지. 내가 뺑이를 얼마나 쳤는데.“

“애 겁주지 마.”

“아주 제대로 알콩 거리네. ”

 

기 막혀 하는 김식이 짜증스럽다는 듯 눈에 날을 세우고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김식의 인상이 사납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평화로운 식당 안에서는 더더욱.

 

“너 여친이 보면 서운해 할텐데. 새로운 취향이야?”

 

눈짓으로 등 뒤에 이지수를 가리켰다. 뭐가 수틀린건지 기분 나쁜 티를 그대로 드러냈다.

 

“뭐래? ”

순간 여친이란 말에 습관처럼 조까라고 할 뻔 했다. 김식이 그 단어를 어떻게 받았는지 생각하고 황급히 말꼬리를 내렸다.

 

“여기 백반 맛 없어.”

 

내 말이 의외였는지 김식이 눈이 꿈틀했다.

“먹을 거면 라면 먹어.”

 

미간의 각도가 조금 풀어진 것도 같다.

 

“너는?”

“난 둘 다 먹었어. 커피까지.”

김식의 표정이 더 풀어졌다.

뭔가 제동을 걸어야겠다고 생각 했는데 먹힌건가?

 

“ 인경, 우리 과방에 가자.”

등 뒤에 이지수가 내 옷자락을 꼭 잡고 당당하게 말했다. 김식이 들으라는 의도는 명백했다. 다시 김식의 미간이 뽀족해졌다.

 

“여기 시끄럽다, 레포트 쓰러가자.”

 

다시 김식의 짜증스럽다는 듯 입매가 비틀어졌다. 단단히 뭔가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이었다.

 

“…의외로 꼬인단 말이지.”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한손으로 턱을 한번 쓸더니 휙하고 몸을 돌리고 사라졌다.

 

 

 

“어후, 나 손에 땀 찼어. ”

 

손바닥을 옷자락에 닦아내고는 테이블에 올려둔 책을 챙기더니 이지수가 야무지게 일어섰다.

“나가자.”

 

굳이 나가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아직도 나에게 모인 불특정다수의 시선이 불편했다.

비어버린 자판기 커피 잔 두 개를 구겨 쥐고 가방을 메고 자리를 정리했다.

 

학생식당 출입구인 큰 유리문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양쪽 모두 문이 열려 문끼임 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곳이다.

조그만 이지수가 앞서 걸었다. 하필 출입문을 먼저 나간 사람이 부주위하게 세게 문을 열며 나갔다. 그 힘에 튕겨 문이 앞뒤로 위험하게 왔다 갔다 했다.

 

“위험하게.”

이지수를 왼손으로 잡으며 문이 부딪히지 않게 오른손을 뻗어 이지수 앞으로 밀려오는 문을 잡았다. 앞서 나갔던 남학생은 따라 나오는 사람이 어찌 되었든 상관없이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갖는 주변 관심 부족, 매너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문 앞에선 사람 뒤에 바짝 붙지 마.”

 

이지수가 내가 막고 선 문 사이로 빠져나가고 나도 천천히 문 밖으로 나왔다. 내 뒤쪽에 사람이 나오나 확인하면서 천천히 잡은 문을 놓았다.

 

“이런 기분이구나아.”

방금 문에 부딪혀 다칠 뻔 했는데 이지수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뭐가?”

“애들이 현주 은근 부러워했는데, 알 것도 같아서. 너 연애편지도 많이 받았다며?”

여고에 그런 애들이 있다. 머리 짧고 키 큰 중성적인 모습을 한 동성에게 열성적으로 따라다니는 아이들.

 

“심심해서 그런거겠지”

“난 한 번도 그렇게 안 봤는데 너가 진짜 남자로 보이긴 하나봐. 아까 걔 빼고.”

뭐가 재밌는지 이지수는 다시 깔깔 웃었다.

현주와 다르게 이상한 명랑함이 있어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공대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여러 명의 여학생들이 천천히 걸으면서 우리 걸음 속도를 방해했다. 폭도 넓지 않은데 굳이 네 명이 나란히 서서 계단 전체를 가로막고 있다. 앞서가기에는 좁아 나도 이지수도 그녀들의 걸음 속도에 맞출 수 밖에 없었다.

 

“김식 이번에 음악 옷 벗기려나봐. .”

“무슨 소문 들었어?”

“내 동생이 그러는데 스승의 날 때 학교 쳐들어 왔었대. 옷 벗긴다고.”

“진짜? 졸업하면 조용할 줄 알았더니 또 학교 난리 났겠네.”

 

나한테 이지수가 새로운 취향이냐고 묻더니 지는?

김식은 아예 옷을 벗기는 것도 광고하고 벗기나? 저 애들까지 다 아는게 신기했다.

김식이 나름 유명 인사인 게 나쁘지 않았다. 이렇듯 가만히 있어도 소문이 도는 것을 보면.


“아, 나 지난번에 오토바이 뒤에 누구 태우고 가는 거 봤어?”

“오토바이 뒤에 누구 태웠다고? 지 친구들도 안태우더니….”

“어떤 남자. ”

 

그런데 소문의 중심에 내가 들어가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오토바이가 유명 한 건지 김식이 유명 한 건지. 절대 김식의 오토바이 뒤에 타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6월 한낮은 제대로 더웠다.

마지막 기말 답안지를 내고 공대 건물에서 학생 식당을 가는 계단을 향해갔다.

이지수가 족보며 레포트 정보를 챙겨준 덕에 그럭저럭 학기를 마감할 수 있었다.

장학금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노력하지 않은 자의 나태한 욕심 같았다. 서경언니 한명만 내 인생에서 사라졌는데 머저리가 된 느낌이었다.

 

터벅터벅 계단을 다 내려와 중앙광장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공대에서 중앙광장으로 가는 길은 낮은 언덕이라 내내 오르막길이다. 그 오르막길 옆에 낮은 동산이 길 따라 있어 제법 나무 그늘이 만들어졌다. 간간히 나무바람도 불어왔다.

도로 건너는 연적지를 끼고 있어 나름 산책하기에 좋은 길이기도 하다.

 

배가 등짝에 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배가 고픈지 잘 모르겠다. 집에 돌아가 봐야 먹을 것도 변변찮은데 라는 생각을 하며 맥 빠진 걸음으로 천천히 걸었다.

 

등 뒤에서 낮은 엔진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니 오토바이를 천천히 몰고 내 뒤를 따라오는 김식이다.

 

“시험 끝났지?”

“뭐, 대충.”

김식은 오토바이를 마치 자전거처럼 몰며 내 뒤를 천천히 따라왔다. 속도를 내어 나를 앞질러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늘 진 인도를 걸었다.

김식은 햇빛 쏟아지는 아스팔트 도로를 오토바이로 나란히 산책하듯 따라왔다.

 

언덕이 거의 끝났다 싶을 때 인도가 끝나고 블록 아래로 내려서려 할 때 김식이 오토바이로 내 앞을 막아섰다.

 

나는 낮은 동산의 그늘 끝에 섰다.

김식은 인도의 끝을 막고 섰다. 인도 끝과 길이 시작되는 선을 두고 마주섰다.

나무 그늘이 겨우 김식의 얼굴에 닿았다. 오토바이 운전대에 느슨하게 기대여 나를 쳐다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왜?”

“너 여친도 없고, 쪼끄만 가드도 없고. ”

 

김식이 늦은 오후의 햇살처럼 나른하게 웃었다.

 

“뭐?”

“그 쪼끄만 애 겨우 떼놨거든.”

“애 겁주지 말라고.”

“진짜 새로운 취향은 아니지? ”

“뭐라는 거야? ”

“워낙 의외성이 있어야 말이지.”

 

한발만 내려서면 중앙광장이다.

우리가 서 있는 곳 멀지 않은 곳에 학교 고자상이 당당히 서 있었다. 지구본을 들고 있는 세 명의 남자 동상은 팔 근육도 다리 근육도 근사한데 중심부가 뭉게져 있어 고자상이라 불리는 동상이다. 그 고자상이 볕 아래 달아오른 청동 지구를 힘들게 받치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너 나랑 자.”

 

마치 점심 먹으러 가자처럼 일상적으로 말했다. 환한 대낮에 학생들이 오고가는 중앙광장 가까이에 서서.

 

“너 옷 벗기는 사람 있다며?”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지난번 공대 계단을 가로막으며 올라가는 여학생들에게서 들은 말을 김식에게 전했다.

 

“그런 건 어디서 들은 거야?”

“사실이긴 한가보네. 그럼 거기 가서 놀자그래. ”

내 대답에 화를 낼줄 알았는데 김식이 이상하게도 피식피식 웃었다. 오티 날 소문을 주워 나르던 여자들에게 차갑게 대했던 것에 비하면 의외의 반응이었다.

 

“그 여자 옷을 진.짜. 벗긴다는 생각은 안 해 봤는데…. 토할 거 같은데.”

 

잠깐 김식은 뭔가 상상했는지 곤란한 표정을 했다.

 

“그 여잔 벗기긴 할건데, 다른 의미로 벗길거야. ”

 

김식이 짖궂게 씨익 웃었다. 뭔지 몰라도 넉넉하게, 기분 좋게 웃는 느낌이다.

 

“너 빚 갚아.“

 

다시 표정을 고치더니 내게 당당하게 말했다. 진짜 빚 받으러 온 사람모양 거침없다.

 

“저번에 갚았잖아. "

나도 지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쳤다.

 

“그때 안 잤는데? 아니, 섹스는 안 한거지. 정확히 말하자면 넌 이틀 동안 밥만 잔뜩 먹고… 튄 거지.”

 

김식이 명쾌하게 선을 그으듯 잘라 말했다.

 

“그럼 빚 남은 거잖아.”

 

맞지? 하며 노골적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빙글 웃음이 담긴 얼굴이 얄밉게 즐거워 보였다. 나는 나름 계산은 그때 끝난 거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난 그다지. 별로…… 재미도 없었고.”

 

이번엔 내가 딱 잘라 말했다.

김식의 시선이 삐뚜름해졌다.

팽팽하게 나와 김식의 시선이 부딪혔다.

 

“재미없었다고?”

 

뭔가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듯 삐딱한 표정.

“뭐 난 그저 그랬어. 불편하기만 하고.”

 

김식의 눈빛이 뭔가 살짝 변한 것 같다. 사나움은 아니다. 자존심 같은?

 

“나도 그때 처음이어서, 좀 그럴 수도 있어.”

비오는 그 밤에 남자는 안 해 봤다는 태도에 노련한 바람둥이인줄 알았다.

 

“두번째면 뭐가 달라? ”

 

김식의 눈빛이 조금 더 아슬아슬한 무언가가 번쩍인 것도 같았다. 그럼 뭔가 불만? 아니면 도전?

 

“해보면 알겠지.”

 

우리가 길을 막고 서서인지 길 건너편으로 가로 지나는 학생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쫌 별론데….”

 

나는 망설였다.

김식은 눈빛으로 나를 재촉했다.

김식의 등 뒤로 지구본을 받치고 선 중심부가 뭉게진 세 명의 남자고자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 그거 보여줘.”

“뭐?”

 

난 결정을 내렸다.

 

‘꼬추 보여줘.“

“하! 나 참…. ”

 

나른하게 오토바이에 기대 있던 김식이 허리를 펴고 앉았다. 내 말에 기막힌 듯 입이 한치나 툭 떨어졌다.

 

“예상을 넘는다니까. ”

몸을 틀어 오토바이 뒷자석 탑박스를 열어 헬멧을 꺼내 내밀었다.

그리고 웃음기 가신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럼 하는 거다.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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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늑대날다에도

오래된거짓말에도


등장하는 고자상이 나왔습니다.




푱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