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머리가 하앴다.

아니 머리 속이 까맸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아 멍하니 서 있었다.

“학생.”

앞에 선 주인 아주머니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뭐해? 어서 가봐야지.”

“네에”

 

그냥 멍했다.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른 봄에 내려앉은 어깨를 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쯧쯧 혀를 차고 돌아서는 주인아주머니가 눈 앞에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서 있기만 했다.

 

나는 휘적휘적 걸어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또 멍하니 한참 서 있었다.

무엇을 해야할 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난 고장이 난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생각도 제대로 된 움직임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맥이 빠져 멍하니 서 있다가 흐물흐물 걸어 바닥에 누웠다. 입고 있던 옷 그대로, 메고 있던 가방을 스르르 풀어놓고 몸에 힘이 다 빠진 것처럼 그냥 바닥에 누웠다.

 

몸을 모로 세워 누웠다. 엄마의 양수 속에 있었던 때처럼 웅크리고 누으니 눈 앞에 벽이 다가왔다. 나도 예전 그 어느 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벽을 보고 누웠다. 나와 벽은 불과 10센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벽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 무슨 마음을 먹었던 걸까?

 

아버지가 죽었다.

내 생각 속에 아버진 이렇게 빨리 죽는 모습은 없었다. 내가 얼마나 미워하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아버지의 아들보다 세상을 잘 살아낼지 보여주는 모습만 있었다.

 

속이 시원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저 벽만 보고 있었다.

벽속에서 나는 다섯 살, 어린 나를 만났다.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고 있던, 군복을 입고 다니던 꼬마시절의 나를 만났다. 세상에 태어나 내가 사랑받기 위해 처음 배운 것은 비굴함이었다. 핑크 색도 싫다고, 레이스도 싫다면서 굳이 국방색 개구리 무늬 군복을 고른 나는 사랑받기 위해 비굴했다.

그때의 어린 내가 가엽다.

 

다시 벽을 바라보았다.

나는 여덟 살의 나를 만났다.

이게 꼬추라고 이깟게 뭐라고 이거 하나 못 달고 나왔냐고 나를 비난하던 할머니의 얼굴도 만났다.

엄마의 등에 메달려 안간힘을 다해 말했다. 엄마의 아들이 되어주겠다고. 그러니 죽지 말라고.

내가 두 번째로 배운 것은 살아남기 위한 영악함이었다.

 

쿵쿵쿵

먼데서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가늘게 부딪히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몰랐다.

나는 코 앞에 보이는 벽에서 지난 시간의 나를 만났다.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집이 팔리고 두 칸짜리 방으로 이사를 가던 날, 이삿짐 뒤를 따라가던 힘 빠진 나를 만났다. 큰언니가 가장 좋아하던 커다란 피아노가 팔렸다. 서경언니가 좋아하던 책도 정리했다. 넓은 마당을 좁다고 뛰어다녔는데 마당도 없는 집이었다. 여전히 아버지의 자식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우린 버려졌다.

내가 아들로 태어났어도 아버지가 나를 버렸을까?

혹여 엄마가 나를 미워할까봐 떼를 쓰지도 울지도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내가 쓸모없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매일 좁아진 집으로 찾아와 이혼을 해야 애를 학교를 보낼 거 아니냐고 패악을 떨던 할머니의 모습을 엄마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혼을 해줘야 아이를 호적에 올릴 거 아니냐며 머리를 쥐어박는 듯한 어투로 엄마를 향해 난리치던 할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불안함과 공포에 떨던 나를 만났다.

풍요롭던 집안이 궁색해졌다.

엄마는 돈을 벌어야했다. 어린 나는 학교에 다녀오면 언니들이 올때까지 혼자 놀았다. 혼자 밥을 찾아먹고 지는 해를 안고 돌아온 엄마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즐거운 하루를 보낸 척 웃었다.

아버지의 아들이 학교에 입학 할 무렵 나는 결국 서경 언니를 따라 엄마 품을 떠났다.

나도 아직 어렸는데 … 서경언니도 나를 돌보기엔 어렸는데….

내가 세 번째로 배운 것은 엄마를 안심시켜 주기위해 만들어 웃던 웃음 뒤에 숨긴 가식이었다.

 

쿵쿵쿵

다시 또 멀리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경아, 인경이 거기 있어? 인경아.

익숙하면서 익숙지 않은 소리가 아득히 저 먼 곳에서부터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아니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죽었다.

나를 지탱하던 미움의 뿌리가, 증오의 뿌리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또 무엇을 배워야 하나?

 

 

먹지도 않았다, 잠을 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저 까무룩 정신이 나갔다 다시 들어오면 벽을 바라보고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다. 몸 안에 모든 에너지가 방전된 듯 손가락 하나 들어 올릴 힘도 없었다. 내 몸을 채우던 생기가 건강함이 시들어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았다. 메마르고 삭막한 내 눈에서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죽었다.

비겁하게 통장 하나만 던져주고 이렇게 죽어버릴 줄은 몰랐다.

미워할 대상이 사라진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

쿵쿵쿵

또다시 멀리서 비명처럼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인경아, 인경아

내 이름인가? 다시 눈을 감았다.

 

쿵쿵쿵

시끄럽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적극적인 좀 더 묵직하게 울리는 소리가 머리를 깨웠다.

문 열어. 조인경

 

쿵쿵쿵

조인경.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쿡쿡 찌르는 두통과 함께 소리가 좀 더 가깝게 뇌 속에서 울리듯 다시 들려왔다.

 

“시끄럽다 새끼야.”

더 먼 곳에서 누구를 향한 욕설이, 거친 소음이 내 귀에 겨우 들어왔다.

“도대체 며칠째야 개새끼야.”

“너나 조용히 해. 씨발아...”

 

분노와 뭔가 쫒겨 벼랑 끝에 닿은 비명 같은 목소리가 내 뇌로 들어왔다.

오랫동안 벽에 사로잡혀있던 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도 못하던 내게 서서히 소리가 들려왔다.

 

 

“조인경, 문 안 열면, 따고 들어간다. 조인경”

쿵쿵쿵쿵

철컹철컹

그제서야 저 소리가 나를 찾는 소리인지 깨달았다.

 

“조인경, 문 열어, 문 열으라구.”

급하게 쫒기는 듯한 악을 쓰는 저 목소리는 내가 아는 목소리 같았다.

몸을 움직이려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딱딱하게 굳어진 몸을 간신히 움직였다.

찌르르, 짜르르한 통증이 밀려왔다. 삐거덕 거리며 겨우 상반신을 일으켰다. 몸에 굳은 근육통이 몰려왔다. 천천히 움직였건만 머리를 찌르는 날카로운 통증이 나를 찢었다.

 

쿵쿵쿵 철컹철컹

“조인경. 문 딴다.”

볕이 들어오지 않는 내 방에 몇 번의 해가 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몇 번의 해가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머릿속은 뿌옇고 까맸다. 날카롭게 찌르는 통증이 계속되었다. 한참 만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두뇌가 머리뼈와 따로 노는 것처럼 흔들거리고, 출렁거렸다

 

후우

숨을 몰아쉬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고작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문을 향해 비척비척 걸었다. 방이 빙글 돌았다.

가슴이 뭔가에 쪼여지는 듯 답답하고 호흡이 목 위 까지 치받쳐왔다.

 

쿵쿵쿵 철컹철컹.

제발…조용히 해. 그 말을 하려고 걸었다.

손바닥 만한 방이었는데 나는 겨우 겨우 한참을 식은땀을 흘리며 그렇게 걸은 것 같다.

쿵쿵쿵쿵

후욱 후욱 점점 차오르는 숨을 견디며 걸었다.

그리고 겨우 문 손잡이를 잡고 어지러움을 잠깐 참았다, 등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후욱후욱

다시 숨을 몰아쉬고 잠긴 문을 풀었다.

 

달칵

아주 작은 소리가 나기 무섭게 문이 확 당겨졌다.

그 기세에 나도 휘청이며 문 밖으로 반쯤 딸려나갔다. 단단한 것이 나를 받았다.

차가운 공기가 훅하고 밀려왔다.

 

후욱, 후욱

호흡이 점점 더 목 위로 위로 올라왔다. 핑그르르 머리가 어지럽게 돌았다.

흐린 눈에 보인 것은 까만색이었다.

 

“조인경, 정신차려. 조인경.”

 

아득히 먼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방을 뒤흔들 듯 문을 때리고 손잡이를 망가질 듯 돌리던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조인경”

 

겨우 다리에 힘을 주어 눈앞에 까만 가슴을 밀어냈다.

“…시끄러워.”

 

오랫동안 닫혀있던 목구멍을 열고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김식이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화가 난 눈빛으로 나를 단단히 잡고 서 있었다.

 

“조인경. 정신차려봐.”

 

후욱, 후욱

그런데 왜? 너는 그런 표정으로 거기 있지?

김식을 쳐다보았다. 빨갛게 열이 오른 얼굴로 굉장히 화가 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너…왜?

“인경아, 너 괜찮아?”

김식 뒤편에서 현주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옆에서 나를 단단히 잡았다.

얘는 왜 여기있는거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숨이 너무 찼다. 자꾸 울렁거렸다.

 

“너…가.”

고개를 들어 김식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는 잔뜩 갈라지고 갈라져서 겨우 소리가 나왔다.

 

“인경아”

내 옆에선 현주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 얘도 소식을 들었구나. 뿌옇게 흐린 머릿속에서 겨우 그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바싹 부서질 것 같은 목소리고 겨우 말했다.


“너 …가라고.”

다시 한 번 힘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숨이 더 차올랐다. 핑하고 숨이 힘들다 하는 순간 나는 기억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김식이 입고 있는 까만 상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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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낮동안 아직 미련이 남은 더위덕에 땀이 흘러내렸습니다.

오랜만에 친정아버지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뭐하고 있냐고 물으셔서

오랫동안 접었던 글을 쓴다고 했더니

쫌 좋아하신것 같습니다.


12편은 가장 무더웠던 어느 날에 앉은 자리에서 한큐에 써내려갔습니다.

예전 더피용 시절에 하던 그 에너지가 아직 남아있어서

희망이 좀 보였습니다.


요기까지만 쓸수 있다면

분기점까지 오겠구나 싶어서

힘을 다해 왔습니다.


아무튼 요기까지 온 제가 너무 대견해서

오전에는 해실해실 기분좋게 웃었습니다.

내가 나를 대견해 하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푱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