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이 팔목을 덥썩 잡았다.
“가자.”
김식이 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갔다. 우리 뒤쪽으로 거리를 두고 현주가 눈치를 보며 따라왔다. 무언가 묻고 싶은 호기심 얼굴과 나를 보내도 되나 염려하는 얼굴이 혼재했다. 중앙광장에서 괭과리를 치던 사물놀이 사람들을 지나 학생회관 쪽으로 김식이 가는 대로 끌려갔다.
그리고 김식이 오토바이 앞에 섰다.
“타.”
나에게 헬멧 하나를 내밀었다.
이제 모두 기억이 났다. 그 날 밤 술에 취한 내 눈에 낯이 설기도 낯이 익기도 했던 남자가 현주와 내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던 사람과 같아서였다는 걸.
현주가 다가오지도 못하고 좀 떨어진 곳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나를 쳐다보고 서 있었다. 나는 김식이 내민 헬멧을 받으며 현주를 향해 괜찮아 라고 입모양으로 말해주었다. 그리고 김식의 오토바이 뒤에 올라탔다. 내가 헬멧을 잘 착용 할 때까지 김식은 기다려 주었다. 제대로 착용했는지 만지작거리며 확인을 한 후에야 본인도 헬멧을 쓰고 앞자리에 앉았다.
“꽉 잡아.”
나는 오토바이를 태어나 처음 탔다. 부릉 하고 요란한 시동소리가 들리는 가 싶더니 황망한 얼굴을 한 현주를 뒤로 하고 빠르게 학교를 빠져나왔다.
속도가 빨라 그저 김식의 허리를 꽉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차들이 다니는 대로를 겁도 없이 쌩쌩 달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그저 등 뒤에 매달려 나를 스쳐가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오토바이가 선 곳은 번화가와 가까운 주택단지였다. 전철역에서 멀지 않은 시끄럽지 않지만 생활의 편의성에 좋은 입지였다. 어쩌면 화목한 가정들이 있을 것만 같은 깨끗한 주택들이 밀집한 거리였다.
일층은 빵집과 작은 세탁소. 이층부터는 피아노 학원과 속셈학원, 삼층에 태권도 도장과 4층엔 미술학원과 발레학원과 5층엔 보습학원까지. 동네 초등학교 아이들이 방과 후에 몰려오기에 적당한 건물이었다.
어쩌면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들을 위한 다목적 케어 공간 같기도 한 느낌이었다.
김식이 건물 뒤편에 오토바이를 주차했다.
나는 머리를 죄일 것 같은 헬멧을 빨리 벗었다.
“와, 키 큰 형아다.”
헬멧을 건네어 주는데 올망졸망한 초등학생 네 명이 가방을 메고 나란히 서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참새들처럼 입을 모아 김식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힐끗 아이들을 보는 김식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내 헬멧을 받아 오토바이 뒤편에 달린 콘솔에 넣었다.
그런 김식을 보던 여덟 개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나에게 닿았다.
“우와 저 형아도 키 크다.”
아이들은 고개를 한참 꺽어 우리 둘을 올려다보았다.
‘이쁜 형아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중 한아이가 나를 향해서도 꾸벅 인사를 하자 옆에 아이들도 덩달아 꾸벅 인사를 했다. 이쁜 형아란 말에 김식이 쿡쿡 거리며 낮게 웃었고 나는 눈을 찌푸렸다.
“스즈키야 안녕.”
‘스즈키 안녕.“
이번엔 아이들이 오토바이에 대고 손을 작게 흔들며 인사를 했다.
“오토바이 만져 봐도 되요?”
“나중에.”
김식의 오토바이에 익숙한 아이들이었다. 짜증을 감내하는 듯 김식의 눈썹이 뾰족하게 모였다.
“오토바이 넘어지면 다치니까 막 만지면 안된다.”
“네에 ”
“네에.”
학교 선생님이라도 된냥 나름 엄하게 말을 하자 아이들이 또 참새처럼 입을 맞춰 대답을 했다. 성깔 사나운 눈매를 가졌는데 동네 아이들과 친해져 대장 같은 모습이 의외였다. 이번에는 내가 쿡쿡 웃었다.
아이들은 엘리베이터로, 우리는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갔다. 건물의 계단 끝까지, 내 숨이 흐트러져 헉헉 거릴 때 겨우 도착했다.
계단 끝에 나타난 문을 김식이 열었다.
햇볕을 가득 받고 있는 넓은 옥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옥상 한 켠에 마당이 있는 집에 서 있는 단독주택과 같은 형태로 집이 하나 나타났다.
그날 새벽에 내가 나선 그 집이다.
네모와 네모로 이루어진 도시의 집들 사이에 멋들어진 지붕을 가진 집이었다. 오층짜리 건물보다 더 공들여 지은 듯한 옥상에 집은 옥탑이라고 하기엔 과했고 주택이라고 하기엔 소박했다.
비가 오면 비가 다 들이치는 내 조그만 집과 다르게 처마를 가진 집이었다.
옥탑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했는데 저 지붕이 섬세한 배려 같아서 마음에 쏙 들었다.
“이쁘다.”
내 몸 하나를 눕힐 공간을 찾느라 학교 근처를 꽤 돌았다. 도시의 집들은 그런 모양인줄 알았다. 좁고, 강팍하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햇볕조차도 가격표가 붙는.
등 뒤에서 김식이 옥상문을 달칵 하고 잠갔다.
“애새끼들이 자꾸 올라와.”
오토바이에 키가 큰 형아에 호기심을 보내던 올망졸망했던 아이들이 떠올라 쉽게 수긍했다.
성큼 마당 같은 옥상을 걸어 처마가 이쁜 집의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활짝 열고는 단단히 섰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김식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모험의 세계로 들어가는 용사처럼 어깨를 펴고 한발, 집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넓은 통창이었다. 직사각형 길이의 집 중간 부분에 무릎높이부터 시작한 큰 통창에 햇볕이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통창에 하늘하늘한 예쁜 커튼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날 밤 내가 새벽빛을 바라봤던 창문이 바로 저 창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있었다.
옥상에 있는 이 집은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아무렇게나 지어진 집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애정을 듬뿍 담아 이 안에 살 사람을 위해 정성껏 지은 집이었다.
숨이 훅하고 막혀왔다.
내가 지난 한달 돌아다니던 그 많던 집에는 이런 애정과 배려는 없었다. 그저 공간을 기술적으로 가르고 쪼갠 능력만 있었을 뿐이었다.
“집, 집이…. 엄청 비싸겠다.”
현관문도 못 넘어선 나는 고작 이런 말을 했다.
“사촌형 살 던 데야.”
“그럼 같이 살아?”
“아니, 나한테 넘기고 나갔어.”
이 집에 깃든 정성과 사랑이 김식의 것이 아니라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나는 겨우 신발을 벗고 한발 안으로 들어섰다. 그 날 밤의 기억은 뜨문뜨문 떠올랐다. 술에 취했고, 담배에도 취했던 밤이었다. 그때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햇볕아래 환하게 드러나 있었다.
왼쪽 바닥에 깔린 큰 매트리스. 나는 낯선 눈으로 매트리스를 쳐다보았다. 저 매트리스에서 통창을 바라보고 앉았을 내 뒷모습이 바로 보이는 위치였다. 김식은 봤을까?
“사촌형꺼. 시중에 파는 건 짧아서 맞춘거래.”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김식이 툭하니 말했다.
“너 가드가 꽤 좋더라.”
이제 제대로 대화를 하자는 듯 김식이 불쑥 말을 꺼냈다. 무슨 뜻인지 몰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쪼끄만 애 때문에 씨발…. 내가 공대 전체를 몇 바퀴나 돌았는지 알아? 오늘은 튀지마.”
“안 튀었어.”
“내가 눈 떴을 때 없었으면 튄거야. ”
학교 벤치에서 나를 찾았을 때처럼 다시 빡친 표정이 되었다.
“이제 과도 알았고… 이름?”
“나?”
아! 김식은 내게 이름을 두 번이나 말했다.
“이제 그 붕대 없잖아. ”
나는 한 번도 이름을 말해 준적이 없었다.
김식이 턱짓으로 내 오른손을 가리켰다. 손에 붕대한 키 큰 여자애. 그게 그동안 내 이름이었나보다.
“조인경.”
‘주소도 말해. “
아예 취조할 기세다.
‘얼마 전에 이사해서 아직 주소 못 외워.“
“그럼 너 여친 꺼라도 대.”
“별…. ”
어처구니가 없어 나도 발끈했다.
“나 왜 찾았어?”
“니가 튀었으니까.”
“안 튀었다니까.”
“튀었어. ”
둘이 눈이 부딪혔다. 김식은 알아야겠다고 단단히 버티고 섰다.
“씨발, 이름도 모르는데 그게 튄 거지. ”
그냥 하룻밤 나를 버리고 나면 끝인 줄 알았다.
이렇게 단단히 화가 난 얼굴을 마주 보고 서게 될 줄 몰랐다.
“그냥 깔끔하게 잊을 줄 알았어.”
“나를 뭘로 보고?”
“미친 김식이라며? 그냥 미친 짓 정도로 생각할 줄 알았지.:”
‘아무나 하고 자자는 주제에… 누구보고 미친 김식이래?“
“미안, 근데…?”
“뭐?”
“내 손. 이제 놔줄래?”
김식이 허를 찔릴 듯 아 하는 표정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우린 아직 현관에서 고작 한발작 나아가 있었다. .
김식이 단단히 옥죄였던, 오토바이에서 내리자마자 단단히 잡고 있던 내 팔을 스르르 놓았다. 그리고 두 손바닥을 내 쪽으로 항복하듯 들어 보이며 살짝 반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제서야 나는 한걸음 더 김식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집 안의 가구나 묘하게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제각각의 취향이 섞였다고 해야하나? 통창 옆에 책상은 무거운 느낌의 두툼한 나무로 제작되었다면 매트리스 옆의 길고 큰 옷장은 세련된 흰색으로 장식이 없이 깔끔 모던했다.
또 오른쪽 벽의 주방은 취향보다는 구색만 갖춘 듯 개성이 없었다. 내 집에 것보다는 훨씬 좋았지만. 모던함과 무심함과 올드함, 적어도 세 사람 정도의 취향이 혼재한 듯 한 그런 느낌이었다.
홀린 듯 통창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아파트 베란다처럼 튼튼한 이중창문이다. 열린 문으로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오자 하늘하늘한 커튼이 휘리릭 날렸다.
통창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누군가 신경 쓴 듯한 커다란 화분과 키 작은 화분이 여러 개.
“그건 건물 주인꺼.”
내가 무얼 하는 지 간간히 살피는 김식이 묻지도 않은 답을 소리쳤다.
그 옆에 오래 사용한 흔적이 있는 역기가 놓여있는 운동기구. 누워서 역기를 들어올리나 요리조리 살펴보며 한번 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거 내꺼. ”
어느새 김식이 통창 앞으로 와 나를 보며 말했다.
“오래 쓴 거 같은데?”
“쫌. 됐어. 힘을 빼야 해서.”
“…힘이 더 쎄질 거 같은데?”
“들어와, 밥 먹자.”
학교 벤치부터 대단한 죄를 지은 범인처럼 몰아치더니 뜻밖에 제안을 했다.
“너 뼈 아팠어.”
반론은 무시한다는 투의 말에 나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지는? 낮은 혼잣말에 김식이 피시식 웃었다.
현관문 왼쪽 갖춘 티만 내는 주방 앞 식탁 앞에 김식과 마주앉았다. 집 구경 하라고 선심 쓰더니 밥을 차릴 줄은 몰랐다.
게다가 무려 갈비찜이 있었다. 명절도 아니고 제사도 아닌 날에 갈비찜이라니?
“너 이렇게 해서 먹어?”
“아니…집주인 아줌마가 … .”
옥상에 집만 정성이 가득 든 것은 아니었나보다. 세 들어 사는 사람에게 이런 거창한 음식이라니.
“집주인이 이런 것도 해줘? ”
내가 얻은 남편이 공무원이라는 주인 집 아줌마의 피곤한 얼굴이 떠올랐다.
“공짜 아니야. 이 건물 청소 다 해야 해. 먹어.”
그래도 남는 장사 아닌가?
이렇게 이쁜 집에 살면서 이렇게 좋은 반찬도 먹으면 신선이겠네.
김식이 먼저 밥을 한 숟가락 먹었다. 나도 따라 밥을 떠 넣었다.
김식이 갈비찜 고기를 한점 먹었다. 나도 따라 고기 한 점을 먹었다.
입맛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갓 지은 밥에 한점 먹은 갈비가 살살 녹는 것 같았다.
김식이 겉절이 김치를 먹었다.
나도 마늘냄새 확 풍기는 갓 담은 겉절이 김치를 먹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살 것 같다는 추임새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곳에 끌려올 때만 해도 이렇게 태평하게 밥을 먹게 될지 몰랐다. 그런데 처음 한 숟가락을 뜬 순간부터 맹렬하게 식욕이 솟았다. 밥 먹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김식이 먼저 먹지 않아도 앞에 놓인 반찬에 먼저 젓가락을 가져갔다.
내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김식도 반찬이 다 사라질 새라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깻잎절임도 맛있고, 멸치볶음도 맛있었다. 모든 접시가 빌때까지 꾸역꾸역 맹렬하게 먹었다.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빈 그릇을 개수대에 정리한 김식이 식탁 의자에 게으르게 앉아 있는 나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욕실은 알지? 거울 뒤에 문 열어보면 새 칫솔 있어.”
“어디…가?”
“알바.”
김식은 시뻘겋게 핏줄 터진 눈을 하고 말했다.
“너 눈 보면 나오지 말라고 할 거 같은데?”
그 밤에 김식이 내 팔에 대해 묻지 않았듯이 나도 김식의 시뻘건 눈의 이유를 묻지 않았다.
“눈알이 빠져도 나오라 할걸. 아주 악독한 주인이야. 빠지면 패널티도 있어.”
“도망가지마. ”
나가려다 말고 다시 휙하고 몸을 돌려 나를 보며 말했다.
“안도망갔다고.”
난 여전히 식탁 의자에 게으르게 앉아 버팅기며 말했다.
“다음엔 니 여친 잡으러 간다. 자고 있어”
마치 오랜 친구처럼, 익숙하게 말싸움을 하고는 소꿉놀이를 하듯 나를 제 집에 두고 김식은 나갔다.
자기랑 자자며 나를 끌고 올 때의 사납고, 극렬함은 없어졌다. 김식의 자고 있어란 말이 너무나 일상적이라 피식 웃음이 났다.
사나운 표정으로 찾아왔을 때 큰 일이 일어날 거 같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좋았다.
꼬랑쥐-
파트가 좀 모자랍니다.
머릿속에 장면은 있는데 아직 문장으로 나오는게 서툽니다.
푱이가.
모야
이 간질거리는 건..!!!
인경이만 모르는 썸??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