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03/09/19 18:31


뒤주 속에서 비명에 죽은 사도세자는 안타깝게도 그후에 수많은 무당의 표적이 됐다.


영월에 쫓겨가서 노산군으로 강등됐다가 문고리에 목을 매 죽은 단종이 그러했듯이…. 한양의 무당들은 새로 생겨난 사도세자의 영혼을 받아서 무업을 개시하려 경쟁했다.

생전에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억울하게 죽으면 한이 맺혀서 그 영험(영혼의 힘)이 무척 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재를 올리자 사도세자가 나타나 말을 덧붙여 주었다.



“여태 단 한 번도 제대로 제 죽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아버님 영조대왕이 왕권을 위해 죽인 아들이 돼버렸습니다.

이로써 희빈 장씨는 목적을 달성한 셈이죠. 무수리였던 저의 할머니를 언제나 무시하고 경멸하다가 자기가 죽게 되자 아들인 경종의 급소를 눌러 아이를 갖지 못하게 했고 사약을 먹고 죽어서는 저한테 들어와 정신병 환자로 만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죽이라고 했다고 하지만 세상에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할 아버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제가 무슨 역모를 꾸민 것도 아닌데…. 부친이신 영조대왕께서는 희빈 장씨의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정성을 기울이다가 그런 오명을 뒤집어쓰신 겁니다.

부디 이 점을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주세요.”

세자는 자기의 죽음이 잘못 알려진데 대하여 무척 서운하다고 했다.



“저는 한양 무당 조씨에게 모셔져 기거하다가 그 집에 세습돼 연지동에 있던 신당이 사라질 때까지 거기 있었지요. 어느 날 전쟁이 나서 다 타버리고 저는 구천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를 찾아 주시고 사연을 모두 알아봐 주시니 정말 고맙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세자는 몰골이 초라했다.

왕세자로서의 기품이라고는 전혀 찾아보기 힘든 여염 남정네 차림일 뿐이었다.

무당들이 제대로 격식을 갖춰 주려면 격에 맞는 복장을 준비하고 의관을 태워 올려 주는 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의식은 고사하고 왕족들이 입는 옷이 어떤 것인지 잘 알 리도 없으니 뜻대로 될 까닭이 없었다.

새로 세자복을 지어 입으라 권하자 세자는 매우 고마워했다.



드디어 세자가 영혼세계로 완전히 떠나는 천도의 마지막 날이 왔다.

그는 새삼스럽게 이런 말을 해 좌중을 놀라게 했다.



“지금부터 300년 전 사약을 먹고 죽은 희빈 장씨의 원혼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칠궁(七宮:청와대 옆에 있는 죽은 일곱명의 빈을 위한 위령전)에 가보시면 제 말을 알게 되실 겁니다.

제 할머니 위패를 타고앉아 있습니다.



의식을 끝내고 다음 날 칠궁으로 향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서 양해를 얻어 잠시 들어가 보니 그 말은 사실이었다.



장희빈의 영혼은 백골화된 상태로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알고 보니 조선조 마지막 200년간을 외척들의 세도정치로 몰고간 영혼이 바로 희빈 장씨였다.



여인의 한은 한 왕조가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대를 이어가면서 영조의 핏줄이 힘을 못 쓰게 막고 있었다.

더구나 자신의 한을 다 해결했음에도 여전히 그녀는 다른 비빈들과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파렴치한 영혼이었다.

<끝>



===> 자료 찾다가 찾은 글인데
옮겨 와 봤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요즘 나름대로 바쁜일이 있서 정신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