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04/05/03 09:12





아이를 낳고 , 얼마 안 되어서
알고 지내던 모 작가가 계약을 하게 되었다면서,
모니터를 부탁해 왔습니다.

모니터를 해줄 처지가 아니었으나 (몸조리 기간 중이었으므로.)
아끼던 사람이었고, 또 [수수께끼풀기]를 계약할 당시 만났던 사장님께
참 좋은 캐릭터를 잡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해준 바도 있기에
빨리는 못해주지만, 그러마 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먼저 준비해야할 것이 있다고....
이것부터 준비하고 시작하라고 말을 했습니다.

자신의 키만큼의 자신감.
그것을 먼저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내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그 정도로 갖고 시작한다고 해도
출판 수정을 하는 동안 그 자신감은 점점 더 작아지고,
출판사와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입씨름하는 동안에 더 작아지다가
마지막에 책으로 나올 때는 사ㅣ끼손가락만큼의 자신감이 남습니다.

그리고 독자에게 오픈 된 순간
남았던 사ㅣ끼손가락만큼의 자신감은 산산히 부서져 버립니다.
zero 상태가 되기도 하고, 그보다 더한 마이너스 상태가 되기도 하지요.

어떤 작가 분은 이 상태에서 그대로 주저앉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다시 일어서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zero상태 따윈 가볍게 무시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작가의 글을 프린트로 뽑아 꽤 열심히
눈을 몹시 아껴야하는 상황임에도 이러저러한 지적을 해주었는데,
그 작가는 도저히 키 만한 자신감은 갖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얼마 후에 제가 모니터 해준 보람도 없이 출판사가 출판일정을 너무 빨리 정하고,
또 출판사의 눈에는 그 작품이 그대로 마음에 들었는지
수정 없이 그냥 출판이 되었답니다.
(몹시 서운했음. 아직도 난 지나친 눈 혹사로 후유증에 시달리는데 말이지요.)

그 후로 느낀 것은 그 작가 분은 출간전보다 더 큰 자신감을 회복한 것 같더군요.
작년 한해에 두 번의 출간작업을 했고, 이제 곧 다른 책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출판을 한다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연재때랑은 다른 압박감을 느끼는 거죠.

그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는 성장을 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으면서 조금씩 지치기도 합니다.
그리곤-- 그.로.기 상태에 빠지게 된답니다.

작가 분마다 조금 다르겠지만,
이게 제가 상상력의 빈곤함이 결정타이긴 하지만, 많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랍니다.


사라졌던 자신감이 점차 자라기 시작하면,
다시 제 키만큼 자라면 다음 작업을 한답니다.
사실 플러스때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기 때문에
[수수께끼풀기]를 다시 작업하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또한 플러스는 한계치 100% 보다 더 많은 120%의 노력과 애정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단순히 즐겁다 라는 이유로만 쓴 [수수께끼풀기]를 출간한다는 것이 몹시도 민망스럽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수수께끼풀기를 수정할 마음을 갖기까지 그리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실은 다시는 출간 같은 것은 안하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때 마침 임신을 하기도 했구요. (난 은퇴얏.)라는 소리를 하기도 했구요. 측근들한테.;;;

이게 플러스가 나온 뒤에 10개월만에 수수가 나오게 된 배경입니다.


순서를 바꾸어 낸것도 몹시 민망해 하고 있으며
연달아 내지 못한 점에 몹시 미안해하고 있으며
처음에 플러스 계약시 출판사가 했던 말들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수수를 수정하고 출판 할 수 있도록
꾸준한 눈총과 애정을 담아준 고구마파 식구들에게 많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식구들이 아니었으면 정말로 (나 은퇴얏! 배째) 로 그냥 버텼을지도...


마치 이제는 말할수 있다. 프로그램 같습니다요. 푸훗.
제목도 그렇게 적었음. -.-;;;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