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대학생 남자들에게 문무대라는게 있었습니다.

(88년도가 마지막이었다고 하네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대학생이 되면 일정기간동안 군사훈련을 받으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의무)



합숙기간도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데

과에서 남학생들이 단체로 문무대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여학생들만 남은 과에선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때 여학생들은 어떤 일을 하는가?

문무대에 간 남학생에게 야한? 편지를 써주는 나름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여고때까지 군인아저씨에게 라는 편지를 썼던것이

좀더 애인이 된 것같은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편지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고작 일년 차이인데

군인아저씨에서 나의 애인이 군대갔다는 너무 큰 변화였습니다.




저는 공대라

남학생 보다 여학생 수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편지를 못 받는 남학생들도 있었겠지요.



그때 저는 어떤 현란한 솜씨로 야한? 편지를 쓸까 고심하다가

제 짝꿍 이름하여 원규 에게 

원규의 원과 은영의 영을 합쳐서 원영이 아빠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원영이 아빠

당신이 군에 가고 나서 우리 아기가.... 등등의 그런 편지를 몇통 보냈습니다.



뭐 나름 그 편지는 이슈화 되었습니다.



그 문무대 훈련을 하는 이유는 

남북 문제를 크게 이슈화한 정권유지하기도 있었겠고

군 복무 기간을 조금 줄여주는 효과가 있었다고 하네요.

- 그 무렵 군대에서 대학생들은 며칠이라도 빨리 전역하는 것이 

 몹시 차별화된 부러움을 샀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그 원영이 아빠와 저는 일말의 썸? 일말의 눈빛교환도 없었음을

저에게 그 원영이 아빠는 무성의 존재였고

걔도 저를 무성으로 여겼습니다만....



그 원영이 아빠가

첫번째 여름방학때 오토바이를 끌고 우리집에 놀러왔습니다.


농담으로 너네 본가와 우리 본가가 큰 산 하나 넘으면 만난다더라... 라는 말을 했는데

방학때 심심하다고 그 산길을 진짜 넘어와버렸지 뭡니까?

넘어오는 동안 오토바이가 넘어질정도의 아주 험한길이였는데....


지금은 그 산이 유명한 스키장으로 변신을 했지만

그 시절엔 돌만 많은 산길 꼬불꼬불한 길을 겁도 없이 넘어왔었더랬습니다.

그때의 그 오토바이는 스즈키도 아니었고 훨씬 작은 버전의 오토바이였습니다.



요즘도 가끔씩 그 원영이 아빠가 가끔씩 전화를 합니다.

전화가 오면 저는 원영이아빠? 하고 전화를 받습니다.

제가 낸 책중에 뭔가를 선물한 모양인데(뭔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그 원영이아빠의 진짜 부인이 친구중에 이런 고급진? 친구가 다 있었냐고 했다고 합니다.



아무런 썸도 눈빛교환도 없는 무성의 친구였는데

이 친구 자대배치 하던 날에도 제가 무려 면회를 갔었습니다.

춘천에서 멀지 않은 곳이여서

그집 부모님과 함께  다녀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웃기지 뭡니까?


그집 어른들은 그 까만애? 로 저를 부르다고 합니다. 



그친구는 처음에 딸만 둘 낳아서

아내분이 몹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집안 어른들땜시)

결국 셋째로 아들을 낳았다더군요.

그리고 우연히 넷째까지 낳아버렸다고....(딸이라고) 합니다.




푱이가




덧- 요즘 아이들은 이런일들을 거의625 시절쯤으로 알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교련수업도 양호수업도 심지어 부상자에게 붕대 감아주는 수업도 받았는데말입니다. 

가끔 뻥도 칩니다. 임진왜란때 벽돌도 날랐다고



큰 태풍이 올라온다고 합니다.

어제까지는 극심하게 덥더니

여름은 정말 요란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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