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어쩌면 이십년 가까이 일인듯 하다.

시골에서 유학나와 자그마한 아파트에서 타향살이를 하던 삼남매 아래
부모님이 심심하시다가 낳은 늦동이 막내가 여름방학이면 도시 구경을 나왔다.

나와 무려 13년이란 나이차가 있는 그 녀석은
내가 고3때 지금 내 아들만한 나이였다.

산 중턱에 자리한 학교에 엄마와 함께 내 도시락을 열심히 날라주었던 그 녀석.


우리 삼남매는 어리디 어린...그 막내의 화려한 도시원정 여름방학 스케줄에 동참해주기로 결정했다.

막내녀석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바로 영화를 보는 거란다.
바로 영구와 *** 시리즈....

우리 삼남매의 반응은 비슷했다.
-제발 그것만은....... ㅠ.ㅠ;;;


어쨌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막내인지라
결국 우리집 장남이 막내를 떠안았다.
어쩔수 없다. 누나들이 온갖 사탕발림으로 떠안겼으니...

그리고 문제의 영구와 *** 시리즈를 막내와 함께 봐준 우리집 장남은
그날......
저녁내내.....
몸부림을 쳐야만했다.

고작 자기도 고등학생였던 주제지만
본인이 이해하기엔 너무 너무 너무 유치하다못해 찬란해서 라스베가스처럼 번쩍거리던
그 얄팍하고, 무게감없는 스토리의 세계에 대한 거부감으로 내내 방바닥을 긁고 다녀야했다.

그 처참한 모습에 나는 사알짝 꾀를 내었다.
-너 유령좋아하지?
-먹는거 엄청나게 좋아하는 유령이 나오는 영화가 있는데 한번 볼래?
-그거 엄청 재밌다.

난 막내를 꼬시고 꼬셔서 고스트바스터로 방향전환을 시켰다.

역시 영구와 ***도 재미나게 본 막내놈.
고스트바스터의 세계를 보고는 퐌타스틱한 새로운 세계로 몰입해버렸다.


막내녀석 아직도 기억할까?
지금은 군대까지 다녀와 아랫배가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한 녀석이
과연 저 영구와 *** 시리즈를 기억할까?



모처럼 받은 남편의 휴가 기간동안 시어머님의 병원 입원 때문에
남편과 교대로 병원 지킴이를 해야했다.

그렇게 올해 휴가는 완전 쫑났다.

시어머님의 몹시 심한 모습에 남편은 계속 짜증을 떨구고,
그 짜증내는 꼴을 보다못한 나는
결국 낮에도 남편에게 에어콘 리모콘과 아이들을 맡기고
병원에서 수발을 들었다.
-왜 자기새끼는 안들여다봐도 암말 안하고 메누리인 나는 그게 트집의 대상이 될까?

밥때면 집에 들어와 밥상 차려주고,
또 다시 나가고, 병원에서 꼴딱 밤새고.. 삼일만에 체력이 바닥 나더라.
물론 아들녀석 5일동안 외출도 못하고 집안에서만 갇혀지내다
방바닥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왼손이 퉁퉁붇는 사태까지..
날도 더운데, 나를 죽어라 죽어라 내모는 母子때문에 엄청 힘들었다.


암튼... 그게 미안해서인지
남편이 큰 선심을 쓰면서 영화를 보러가자고 하더라.

내 아들녀석은 벌써부터 용보러 가자고 노래하던 터라
디워를 선택했다.


딸아이는 무서운 영화는 싫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왜 그 영화를 봐줘야 하는지
그 감독 주머니에 푼돈이라도 더 들어가도록 해야한다는 마음에
암튼... 그 영화를 봤다.

영화 내용은 각설하고..
마지막 앤팅 장면이 끝나고 감독의 독백 장면이 나올때...
박수를 안쳐줄수가 없더라.

그 유치찬란하다못해 우리집 장남을 방바닥을 기게 만들었던 영구와*** 시리즈를 만들었던
감독의 눈부신 진화야 말로 박수감이었다.
물론 색기 넘치는 용한마리의 몸부림도 환상이었다.
-니가 용인데 얼마나 색기가 넘기겠냐 했지만, 역시 보는 눈은 비슷한가보다.

깜깜한 극장에서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박수 소리를 냈던것 같다.
이어.. 박수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당신들도 박수를 치고 싶었구나....
그래, 저 사람의 노력은 박수를 받을만해.



독백장면의 마지막 사진은 헐리우드를 배경으로 둔 감독의 사진이었다.
그래..당신은 헐리우드 영화를 만들었구나.
스토리는 빈약하지만, 때리고 부수고 터지고, 람이 퍽퍽 죽어 자빠지는.....
그렇게만 해도 팔리는  헐리우드영화.

애국심을 부추키는 영화홍보도 좋다.
어차피 그것도 기술이니까....
그치만, 그거 하나만은 꼭 딸아이에게 아들에게 얘기를 해야겠다.
저 사람의 포기하지 않은 근성을 말이다.






덧- 백단이는 언제 승천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