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나… 미치는 건가?”

 

혼잣말에 하얀 입김이 허공에 흩어졌다.

크리스마스가 막 지난 후였다.

뉴스에서 밤부터 폭설이 예상된다고 했다. 대부분 비껴가는 예보도 많았지만 자꾸 그게 마음에 걸렸다. 아랫목에서 귤을 먹다 말고 간단히 짐을 챙겼다. 엄마가 다급히 어디 가냐고 물었다. 나는 집에 라고 말하고 바로 출발했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볕이 들지 않는 방에 살 때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혹한이든 폭설이든 별반 신경 쓰이지 않았다.

시장 통에서 먹거리를 살 때쯤 굵직한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눈발은 습기를 잔뜩 먹은 무거운 눈이었다. 시장 통 사람들이 내놓은 물건을 거두느라 분주해졌다.

 

시장을 지나 길을 건너 학원 건물까지 오는 동안 눈이 푹푹 떨어졌다. 그리 멀지 않은 길을 걸었는데 머리와 어깨에 눈이 한가득 내려앉았다. 머리에 묻은 눈을 털어내다 문득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길가를 지나는 사람들 머리마다 한 가득씩 눈이 내려앉았다. 시작부터 기세가 심상치 않은 눈이었다.

 

계단을 올라 마침내 옥상에 도착했다. 목에 걸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열자 그새 옥상 위로 하얗게 눈이 쌓여 있다.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에서 무겁고 진득한 눈송이가 뚝뚝 소리를 낼 것 같은 무게로 내리고 있었다.

 

보름이 지난날이었다.

비웠던 집 안으로 들어가 모든 불을 켜고 난방을 켰다. 나에게 집을 맡기고 간 집주인에 대한 예의 같은 거였다. 통창을 가렸던 커튼을 걷어내자 불빛 아래로 내리는 큼직한 눈송이가 예쁘게 날렸다.

 

“이쁘네.”

 

또 혼잣말을 했다.

가끔씩 엄마가 밥은 또 뭐를 해먹나 하는 것처럼 비어있던 집이 쓸쓸할까봐 혼잣말을 했다.

 

“진짜 미쳤나봐.”

 

나 혼자 김빠진 웃음으로 웃었다.

사온 먹거리를 꺼내 식탁위에 올려놓고 술 한 잔 하려 싱크대 문을 열었다.

툭하고 바닥에 하얀 봉투 하나가 떨어졌다. 허리를 굽혀 봉투를 잡으려는데 겉면에 [다 니꺼.]라고 적힌 글씨를 발견했다. 김식이 떠나 기 직전 내 귓가에 대고 [이집에 있는 건 다 니꺼]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얀 봉투를 손에 들고 어처구니가 없어 터덜터덜 웃었다.

 

작은 잔을 꺼내어 식탁에 앉았다.

창문 넘어 밖엔 굵은 눈송이가 끊임없이 떨어졌다. 군인들은 눈이 오면 뭘 하나 잠깐 생각했다. 눈 치워야지. 바로 옆에서 김식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아.”

 

어쩐지 열이 오르는 것 같아 마른세수를 했다. 뺨을 톡톡 두드리고 나서 까만 봉투을 열었다. 호떡과 김밥과 라면등을 보며 며칠 정도의 식량이라도 비축했어야 하나? 잠깐 생각했다.

 

호들갑스러운 폭설도 다음날이면 깔끔하게 해결될 도신데 뭐.

거기까지 생각하고 소주 뚜껑을 땄다.

처음엔 한 병 모두 마시려 했다. 기름에 튀긴 호떡과 소주가 나름 어울렸고, 창밖의 눈송이가 현주의 말처럼 낭만적이기도 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주정뱅이라고 놀리는 김식의 목소리가 울렸다.

 

[다 니꺼.] 라고 적힌 봉투를 쳐다보았다. 손을 뻗어 봉투를 잡고 안을 열어보았다. 만 원권 세장. 마지막 날 김식을 찾아온 분들이 주었던 봉투가 떠올랐다.

김식이 숨겨놓은 봉투나 더 찾아볼까? 결국 반병만 마시고 소주뚜껑을 꼼꼼히 닫았다. 할머니처럼 끙차 하고 몸을 일으키다 화들짝 놀라버렸다. 고작 같이 있었다고 할머니의 말투도 묻어서 왔다.

혼자 지키는 김식의 방에 눈과 함께 밤이 깊어갔다.

 

 

지난 밤 새 하얀 눈이 내렸다.

무서운 기세로 소복소복 내린 눈이 옥상 한가득 쌓였다. 차가운 바람이 불때마다 허공에 눈송이가 날렸다. 오랜만에 일기예보가 제대로 들어맞았다. 뉴스를 보지 않아도 출근길이 난리가 났겠다 싶었다.

 

따뜻한 집안에서 제법 쌓인 눈을 바라보았다.

이 집에서 처음 지내는 겨울이라 저 눈덩이를 어찌 처리해야 하나 고심했다. 춘천집 앞마당처럼 눈을 쓸기만 하면 되려나?

따뜻한 물 한잔을 만들었다.

식탁엔 지난 밤 찾아낸 [다 니꺼] 라고 써진 봉투 네 개가 있었다. 안에 든 액수도 제각각 달랐다. 찌푸리고 봉투를 바라보았다.

뜨거운 물을 호르륵 호르륵 마시며 봉투만 보았다.

 

“지가 뭐라고.”

 

봉투를 감추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손바닥으로 봉투를 괜히 툭하고 때렸다.

얼마나 추울까 나름 가늠을 해보았다. 얼마나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할 지 생각하다 옷장에서 김식이 쓰던 비니 모자를 꺼냈다. 모자 안에서 툭하고 또 봉투가 떨어졌다.

 

다섯 개.

옷장은 나중에 뒤져보기로 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옷을 최대한 껴입었다.

주방 뒤쪽에 세탁실 옆에 청소도구함에서 큰 빗자루와 사용한 흔적이 있는 눈 치우는 가래도 찾아냈다.

 

집안에 찬 기운이 들어 올새라 문을 꼭꼭 닫아두고 장갑 낀 손을 팡팡 손뼉을 치며 두드렸다. 숨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사정없이 쏟아졌다.

 

통창 앞쪽으론 눈을 굴려 나름 눈사람을 만들었다. 잘 보이는 곳에 눈사람을 두고 앞 문 쪽 눈을 쓸기 시작했다.

 

처마 아래에 쌓인 눈을 최대한 배수관 있는 쪽으로 쓸어 모으기 시작했다. 뺨은 차가웠고 손끝은 시렸지만 어쩐지 이 눈이 얼기 전에 해야 할 것 같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요즘 듣는 엄마의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며 옥상 입구와 가까운 부분은 배수구 가까운 곳으로 최대한 눈을 쓸어 모았다. 평상시 다닐 땐 몰랐는데 막상 눈을 쓸어 모으니 넓은 옥상이었다. 등에 후끈하게 땀이 솟았다.

 

 

끼이익.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를 놓쳤다.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내 앞에 낯선 어른이 다가와 있었다.

예상치 못한 방문이었다. 잠군 옥상 문을 당당히 열고 들어온 사람. 하얀 머리칼에 강단 있고 매서운 눈에 훤칠한 키의 중년인이었다. 마치 호랑이 눈처럼 형형한 눈빛이었다. 날이 선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꾸벅 인사를 하고 말았다.

 

그냥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가끔씩 김식이 투덜거리며 말했던 악덕주인. 함부로 옥상 문을 열고 들어와 낯선 나를 발견함에도 당당한 자세가 그렇게 알려주었다.

 

“집을 살피러 왔는데 늦어버렸네.”

 

방한 점퍼를 단단히 차려입고 가죽장갑을 낀 주인은 내가 쓸어놓은 옥상을 스윽 살펴보았다.

 

“여기 살던 애는 군대에 가서… ”

 

어쩐지 말끝을 흐리면 혼이 날 것 같았다.

 

“제가 집을 돌보기로 했습니다.”

 

나를 봐도 놀라지 않은 것을 보면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제껏 이런 어른은 처음 만났다. 보이지 않는 강한 눈빛과 강한 기에 눌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밥은 묵었나?”

 

대뜸 묻는 말에 뭐라 대답해야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잘 쓸어놨네.”

 

제 맘대로 말을 하고는 옥상 구석을 꼼꼼한 시선으로 빠르게 훑어보았다.

 

“따라 와라.”

 

뭐라 대답을 하기 전에 주인이 먼저 등을 돌려 옥상문 쪽으로 걸어갔다.

순간 머릿속에서 많은 언어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앞서 내려가는 반듯하고 커다란 등을 따라 가야 할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사람을 굽히게 하는 힘에 끌려 평상시 늘 삐딱하던 나는 포로처럼 따라 나섰다.

건물 밖 큰길가엔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치 한 팀원인 것처럼 손발을 맞춰 눈을 척척 치우고 있었다. 차가 다니는 도로가 아닌 사람이 다니는 길을 내고 있었다. 어쩐지 이상한 주인과 함께 온 사람들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김식의 오토바이를 놓던 주차장 자리에 일반 승용차보다 큰 짐칸이 있는 파란색 픽업트럭이 있었다.

 

“타.”

 

차를 타고 갈 줄은 예상 못했다.

당황스러움에 머리에 눌러쓴 김식의 모자를 손으로 꾸욱 눌렀다. 조수석에 조심스럽게 타자마자 차가 출발했다. 거리에서 눈을 쓸던 사람들이 파란트럭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나는 어색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애꿎은 손가락만 꼼지락 거렸다.

 

 

도착한 곳은 전철역 건너편이었다.

김식이 데려갔던 병원이 있는 뒤쪽 골목이었다. 병원 옆에 한참 층수가 올라가는 건설 중인 건물 하나가 보였다. 그 뒤쪽으로 넓은 주차장을 지나 주유소와 세차장을 겸한 부지가 나타났다. 파란 트럭은 세차장 마당으로 들어가 한켠에 차를 주차했다.

 

도시에선 땅이 돈이었다. 설마 이 모든 땅의 주인은 아니겠지. 위축된 기분으로 차에서 내려섰다.

“태사장. 벌써 눈을 다 치웠나?”

 

트럭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건물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목도리를 칭칭 감은 사람이 휠체어를 탄 노인이 특이한 억양으로 말을 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하마 들어오길래….”

 

반가운 미소가 악덕주인 뒤쪽에 있던 내게 향했다. 세월의 노련함과 깊이가 묻어있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꽁꽁 싸맨 옷차림에도 나는 내 깊은 속까지 보는 것 같은 사람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난 또 군대 갔다던 녀석이 돌아 왔나했네. 갸가 저런거 쓰고 다니지 않았나?”

“옥탑에서 눈 치우고 있더군요.”

“좀 봐주지. 또 찾아냈구만.… 하하하.”

 

휠체어에 앉은 노인이 활짝 웃었다. 하얀 입김이 쏟아지는데도 어린 소년처럼 해맑게 웃었다. 나는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멀뚱히 보다 다시 김식의 모자를 손으로 꾸욱 눌렀다.

 

“이쪽으로.”

 

내 앞에 태사장이라 불린 사람이 성큼성큼 걸었다. 나는 다시 휠체어에 앉은 노인에게 꾸벅 인사하고 따라 걸었다. 뭐라 반문하기 어려운 이상한 분위기였다.

길 건너 건물이었다.

[태 건축설비]간판 옆에 [밥집]이라는 무심히 지나치면 알수 없는 작은 간판이 있는 가게 문을 열었다.

 

“최 사장. 얘 밥 좀 먹여주소.”

 

문을 열자마자 안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태사장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가게 가운데 기다란 진짜 목제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무겁고 정성을 들인 나무의 옹이까지 보이는 커다란 테이블 뒤쪽으로 6인용 테이블들이 벽을 따라 둘러 있었다. 그 사이 빨간 불이 훨훨 타는 난로 위에 커다란 노란 주전자에서 수증기를 뿜고 있었다.

따뜻하고 다정하지만 격식은 없는 이상한 식당이었다.

 

“멕아리도 없게 생겼고만, 얘도 눈 치웠소?”

“피아노 학원 옥탑을 치우고 있더군요.”

“하요! 거기서 주워왔소? ”

 

나를 쳐다보는 아줌마의 눈빛이 요상했다. 어쩐지 반가움과 신기함 같은 시선이었다.

나는 또 낯선 이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두툼하고 튼튼한 배 위에 질끈 앞치마를 메고 한 치의 틈도 없을 것 같은 파마머리를 한 흰머리의 사장이었다.

 

주방과 가까운 가운데 커다란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혼자 앉기엔 넓은 자리인데 두 사람의 눈짓으로 거기에 앉아야 할 것 같았다.

최 사장이 내 앞에 은색 투박한 쟁반을 내밀었다. 김치와 하얀 콩나물무침 뜨거운 김이 오르는 빨간 국물 든 대접을 내려다보았다.

 

“많이 묵으라. 아가 부러지게 생겼구만. ”

 

장갑을 벗어두고 목을 메고 있던 머플러를 풀어냈다.

내가 하는 모양을 태사장이 찬찬히 보고 있었다. 최사장도 나를 보고 있었다.

소고기와 대파가 잔뜩 들어있는 국물을 한입 떴다. 최 사장은 옳지 옳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태 사장은 묵묵히 나를 보았다.

 

“이거 갖고 안 되겠고만. 계란 후라이라도 해야겠네. 태사장 그만 가소.”

 

태사장이 나갈 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또 인사를 했다. 나도 엉겹결에 엉덩이를 반쯤 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내 앞에 플라스틱 접시에 계란 후라이 세 개 가 올려져 있었다.

 

“기집애 맨키로 생겨갖고. 고생했다.”

강 여사가 내 앞자리에 앉았다.

 

“눈은 시커먼 놈들이 치우고 있으니 니는 밥이나 먹고 천천히 나가라. 미친 눈이 지랄아이가? 뭐 할라꼬 한꺼번에 이래 많이 오노. 지랄 염병이지.”

 

시뻘건 국물은 맛있었다.

나는 배가 고팠었나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 앞에서 평상시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밥을 먹었다.

 

“학생이가?”

“네.”

가게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섰다. 내 앞에 앉아 내가 먹는 모양을 쳐다보던 최 사장이 빠르게 일어섰다.

 

“큰 길 가는 다 치웠는가보네.”

 

가게 안이 바쁘게 움직였다. 새로 사람들이 들어오고 들어온 사람들이 나가고.

맞춰 입은 듯 한 방한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익숙한 인사를 나누며 들어왔다. 나는 빠르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얼른 먹고 자리를 비워줘야 할 것 같았다.

 

“니 계란 후라이 할줄 아나?”

 

커다란 국대접이 비워갈 즘 최 사장이 불쑥 나에게 말을 건넸다.

 

“밖에 가봐야 춥기만 하니 계란이나 부쳐봐라.”

 

쟁반째로 정리를 하려할 때 최 사장이 한손으로 은색 쟁반을 날래게 채갔다.

최사장을 따라 주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성의 없는 밥집 간판과는 다르게 넓고 설비가 좋은 주방이었다.

앞치마 하나를 내주기에 점퍼를 벗어 한 켠에 놔두고 앞치마를 받아 들었다.

 

“에고 얄궂어라. 요래 허리가 얇아가꼬 우째 힘을 쓰노.”

“밤일이나 제대로 할라나 모르겠네.”

 

주방 안에 바쁘게 움직이던 다른 아줌마가 나를 보고 농담을 던졌다.

[밥집]에서 내내 계란 후라이만 부쳤다.

새롭게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버너 앞에서 계속 계란 껍질을 깼다. 언젠가 김식이 계란말이를 백번도 더 넘게 부쳤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계속 계란 후라이를 부쳤다.

 

점심을 먹으러 온 휠체어 노인이 나를 보고 갔다. 최사장이 갈구치지 말라고 호통을 하는 바람에 알아챘다.

태사장도 주방 구석에 서 있는 나를 보고 갔다.

바쁜 주방의 동선에 걸리지 않도록 나는 최대한 한쪽 구석에 서서 계란 껍질을 까고 또 깠다.

밥집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또 나갔다.

그러나 아무도 따로 계산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상한 가게였다.

 

“고만하고 나와 밥 먹자.”

 

최 사장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앞치마를 풀고 주방을 나오니 커다란 나무 테이블에 언젠가 김식이 가져왔던 솥뚜껑이 놓여 있었다.

 

“쫌 있으면 저녁 손님들 올 테니 얼른 묵으라.”

 

최 사장이 불판위에 기다란 삼겹살을 올렸다.

능숙하게 고기를 구워 내 앞 접시에 올려주었다. 말투는 퉁명스러워도 손짓 하나 하나가 다정했다.

 

“반찬도 챙겨놨으니 가져가라.”

나는 이상한 나라에 들어온 것 같았다. 눈 치우다 말고 낯선 사장을 따라 온 낯선 밥집에 앉아있는 나는 이상한 나라에 있었다.

어느 순간에 휠체어를 탄 노인이 내 앞에 있었다.

 

“대추주 한잔만 내주라, 최사장.”

“다리도 없는 노인네가 술은 무슨 술이고.”

 

최사장이 휠체어 노인에게 퉁명스럽게 말하더니 진한 갈색의 술 두 잔을 가지고 나왔다.

 

“이게 가을 대추로 담군 술이다. 니도 한 잔 해라.”

 

나는 휠체어 노인과 컵에 담긴 대추주를 마셨다. 달짝지근한 술이 왈칵 넘어 갔다. 최 사장과 휠체어 노인이 옳지 옳지 하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아새끼래 들킨 거 알믄 속 터지겠구만.”

노인의 눈이 예쁘게 휘면서 웃었다.

뭔지 모르지만 나도 애매하게 웃었다.

컵 안에 담긴 대추주 한잔을 다 마셨을 때쯤 태사장이 가게로 들어왔다.

 

“최 사장 챙길 거 다 챙겼소?”

“하이고, 어련히 안 챙겼을까봐. ”

 

내 앞에 큰 보자기에 짠 보따리가 안겼다.

 

“안에 대추주도 넣었으니 몰래 묵으라. 이 근처는 오지도 말고.”

 

최사장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휠체어 노인이 키득거리며 또 어린애처럼 웃었다.

 

“거는 또 오란 소리네. 최사장 맘에 아주 들었나보소.”

 

파란 트럭이 나를 학원 건물 앞에 내려놓았다.

 

“가끔씩 가게에 나 올 수 있나? 군대 간 그 놈이 하던 일인데?”

“가끔 본가에 있을 땐 빼고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받아라.”

 

손안에 툭하고 키가 날아왔다.

 

“ 가봐라.”

 

손안에 낯선 키만 남기고 파란 트럭이 떠났다.

길가엔 곳곳에 눈 산만 쌓여있었다. 누군가가 넘어지지 않게 사람이 다니는 큰 길은 깔끔하게 눈이 치워져 있었다. 그 많던 눈이 일사분란하게 정리되었다.

밥집이란 가게와 태사장이라 불리던 악덕주인이 오늘 하루 동안 해낸 일 같았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대추주의 따뜻한 취기로 천천히 건물로 들어섰다.

건물 전체가 까맣게 어둠에 있었다. 하나 둘씩 계단을 오를 때마다 불이 켜졌다. 마지막 칠층에 도착했을 때 마지막 계단 앞에 커다란 철문이 나타났다. 오전에 내가 나갈 때 까지만 해도 없던 문이었다.

 

단단한 철문이 마지막 계단 전체에 단단히 둘러져있었다.

설명서가 철문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아까 받은 키를 문에 대 보았다. 삐리릭 전자음이 들리며 문이 철컹 열렸다.

 

고작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금고를 지킬 것 같은 거창한 문이 하나 더 생겼다. 육중하고 단단한 문을 닫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철문 안에 갇힌 것 같기도 하고, 철문 안에서 보호 받는 것 같기도 했다.

이제껏 엄마 말고 나를 보호하는 것은 없었는데….

손에 든 보자기를 내려다보았다.

낮에 만난 낯선 어른들이 마치 나를 지켜주는 것 같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옥상 문을 열었다.

옥탑방 현관 앞에 전등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다 니꺼.]라고 써놓은 김식의 글씨가 저절로 떠올랐다.

입구의 철문을 시작으로 다 내꺼 안으로 들어섰다.

긴 하루였다.

신기한 하루이기도 했다.

 

 

 


 

3월 어느 날 과사무실로 군사 우편이 도착했다.

[ 다 니꺼 열개 찾으면 면회 와.]

딸랑 그 글씨만 있는 편지지를 몇 번이나 읽었다.

 

“뭐야? 이기자 부대?”

 

편지 봉투를 슬금슬금 훔쳐보던 지수가 말했다.

 

“원래 모든 군인은 이기려고 있는 거 아닌가? 이기자부대라니 뭐야?‘

“군인들은 뭘 좋아하지?”

 

편지 봉투를 접으며 지수에게 물었다.

 

“초코파이?”

 

심드렁하게 지수가 말했다.

 

“초코파이? 그걸 먹는다고? 애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먹고 싶다더라. 나 아는 애는 박스로 바리바리 군대로 소포 보냈대.”

“엑? 달아.”

 

지수와 얼굴을 마주보고 웃었다.

나는 조금 느슨해져있었다.

 





꼬랑쥐-

좀 더 속도를 내보고 싶은데

첫문장이 안나오면 낑낑거리기만 한답니다.

저도 매일 컴 앞에 앉아 

능수능란하게 써보고 싶단... 그런 생각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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