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수업을 끝내고 공대관을 나오는 길이었다.

공대관 앞에 주차구역에 김식의 오토바이가 보였다. 학교 축제 준비 위원회라도 맡은 것처럼 아주 바쁜 모양이었다.

 

학생식당으로 내려가는 계단 쪽에서 머리 하나가 둥실 떠올랐다. 그 뒤로 작은 공같은 머리가 보인다 싶은 순간 도도도도 소리가 들릴 것처럼 한 여학생이 달려왔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스커트에 까만 안경을 쓴 여학생의 움직임은 넘어질 듯 위태위태해 보였다.

 

“나 이거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이지수가 내 생각과 똑같은 말을 했다.

 

“언니…언니들.”

 

우리를 향해 두 팔을 흔드는 여학생 주희를 2학년 여학생 네 명이 나란히 서서 바라보았다.

 

“넘어질 거 같은데?”

 

또 이지수가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긴 스커트에 걸리든 스텝에 걸리든 아슬아슬 뛰는 폼이 위험해 보였다.

 

“언니.”

 

내 앞까지 달려온 여학생이 숨을 헐떡이며 인사를 했다. 짧은 거리를 뛰었지만 마라톤을 뛴 듯 격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 언니.”

“숨, 그냥 숨셔요.”

 

이지수가 친절하게 여학생에게 말을 건넸다.

 

“후우, 후우 언니들. ”

 

숨소리 반 말소리 반을 내는 여학생을 신기한 듯 보았다.

 

“김식이 오빠가… 언니들 … 역전의 우동… 먹으러 오래요. ”

 

곧 숨이 넘어 갈 것 같이 숨을 몰아쉬면서 건네는 말을 알아들었다.

“역전의 우동?”

 

함께 서 있던 주영이 먼저 물었다.

 

“그 건축과 주점에서 지금 역전의 우동 팔아요. 엄청 맛있어요.”

 

겨우 호흡을 찾은 주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때… 그 머리 노란 오빠가 서빙도 해줘요. ”

 

머리 노란 이라고 할 때 이지수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날의 기억은 꽤나 강렬했었다.

 

“자리 빼놨다고 언니들 오래요. 지금 여자애들이 엄청 많아요.”

 

겨우겨우 주희는 우리에게 전달 할 말을 끝냈다.

 

“다음부터는 위험하게 뛰지 마. 기다릴테니 천천히 와도 돼.”

“네.”

 

마치 엄청난 말을 들은 것처럼 주희가 고개까지 끄덕이며 감동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은근히 다정하다니깐.”

 

이지수가 주희를 보며 눈을 찡긋하며 한마디 보탰다.

건축과의 주점 앞은 주희의 말대로 사람이 북적거렸다. 축제 첫날 차려진 다른 부스들은 서툴거나 어수룩했는데 이곳은 달랐다. 종합 운동장 시설에서 끌어온 전기로 식당에서 쓰는 음식 냉장고에 주류 냉장고까지 들어와 있었다.

건축 답게 자신들의 영역을 확고히 표시하는 경계선에 낮고 작은 담까지 세웠다. 현수막으로 [역전의 건공] 이라고 타이틀까지 달아놓았다.

 

시선이 모이는 맨 앞에 조리대를 세워놓고 김식이 머리에 두건까지 쓰고는 뜨거운 철판에 요리를 하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 능숙해 진짜 전문가 같았다. 같이 두건을 쓰고 서 있는 학생들이 몇 있었지만 한눈에 김식이 리드를 하고 있었다.

 

 

 

돼지껍데기와 순대볶음을 하는 뜨거운 철판을 앞에 두고 내내 냄새를 풍겼다. 그 냄새만으로 이미 술을 불렀다.

철판 옆에는 가게에서 공수해온 어묵 통에서 어묵이 한 가득 끓고 있고 있었다.

 

임시주점 앞에 넷이 나란히 서서 건축과의 주점을 나름 눈으로 평가하였다.

안쪽에는 싸구려 야외용 테이블마다 테이블보가 예쁘게 씌워 임시 주점이 아니라 진짜 음식점이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서빙을 맡은 남학생들의 모습이 우월했다. 아마 모든 학생들을 모아놓고 컨테스라도 한 것인지 체형도 비주얼도 좋았다. 단정한 카라 티셔츠를 입은 그 모습은 첫 데이트에 나온 다정한 남자친구처럼 보였다. 그중에 발군은 역시 앞머리를 묶은 사과머리와 여전히 아래는 환자복 바지를 입은, 핑크색 티셔츠를 구해 입은 서경후였다. 택시에서 내릴 때의 환자 같은 모습은 없고, 생기 있고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남자친구 역을 잘해내고 있었다.

 

김식의 키 큰 친구가 우리 일행을 발견했다.

파란색 티셔츠를 단정하게 입은 한장우가 우리를 손짓했다. 밖에서 봤을 때 빈자리가 없을 듯 했는데 우리를 자리로 안내했다.

 

“여기는 다른 사람 받지 말고 비워두라고 했어.”

 

김식이 서 있는 철판과 멀지 않은 곳에 안내하고 나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적 대화는 처음이었다.

“우리 자리 빼놨다는 게 이 자린가?”

“그 말뜻 같은데?”

“건축과 자리 잘 잡았네. 이 길목이 예대랑 인문대랑 공대 쪽 갈림길이잖아.”

“그러게 누가 했는지 아주 영리하네.”

 

한장우가 얼마 뒤 쟁반에 어묵꼬치가 두 개씩 올라가 있는 우동국수를 날라 왔다.

그릇도 시장통 가게에서 쓰는 녹색 점점이 박힌 플라스틱 국수그릇이었다. 그 안에 어묵과 함께 올라간 고명도 쑥갓 냄새도 진짜 같았다. 제법 진짜 같은 외양에 네 사람 모두 감탄했다.

 

 

“맛 좀 볼까?”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동 육수 맛을 보았다.

 

“와아. 진짜 가게에서 파는 것 같은데.”

“진짜 맛있다.”

 

이지수가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마주보고 웃었다.

 

“오라고 부를 만 했네.”

 

역전의 우동은 맛이 아주 좋았다. 학생식당 밥에 물린 학생들에게 별미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야!”

 

핑크색 티셔츠를 입은 서경후가 우리 테이블로 왔다. 이지수가 어깨를 흠칫했다.

테이블위로 올망졸망하게 만든 참기름 냄새 고소한 주먹밥이 담긴 접시를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근데 너네 어묵꼬치가 왜 두 개씩 있어?”

 

우리 테이블에 놓인 우동국수를 바라본 서경후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누구 덕분에 이자 붙여준 거 같은데?”

 

내가 대꾸하자 칫하고 삐진 표정을 했다.

겨우 두 번 만났는데 아주 오래 친했던 사람처럼 거침없이 말했다.

 

“여기 이쁜 애는 하나도 없구만. 왜 차별 하는 거야?”

 

잔뜩 삐진 티를 내며 돌아섰다.

테이블에 같이 앉은 세 사람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해보였다.

 

“야, 주먹밥 일인당 세 개씩 먹으면 되겠다.”

 

은우가 빠르게 셈을 하고는 말했다.

네 명은 빠르게 우동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어묵꼬치 두 개도 국수도 주먹밥도 여학생의 입맛에 너무 잘 맞았다. 그릇은 순식간에 비어버렸다. 이 길을 오가는 여학생들을 공략하기에 아주 훌륭한 음식이었다.

 

“이따 혼자 가지 말고 또 오라는데?”

 

시원한 사이다 두병과 잔을 가져온 한 장우가 빈 그릇을 치우면서 허리를 굽혀 내 쪽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계산은 안 해도 돼.”

 

허리를 곧게 펴고는 네 명을 향해 간단히 말하고는 빈 그릇을 들고 돌아섰다.

뒤통수만 보이는 김식 대신 또 한 장우가 전령 노릇을 했다.

“뭐야? 우리 진짜 특별대우였네.”

 

다른 테이블로 나가는 우동국수위에는 어묵꼬치가 하나씩 올라가있었다.

싸한 탄산이 올라오는 사이다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올해 축제에 중심은 건축공학과였다.

위치도 좋았지만 메뉴의 맛도 훌륭했다.

처음엔 맛으로 소문이 났지만 오후 쯤엔 피부가 하얗고 예쁜 연예인 급의 남자가 환자복에 핑크색 티셔츠를 입고 여학생들에게 서빙을 한다는 소문이 빠르게 돌았다. 저녁때쯤엔 올백머리를 한 살벌하게 잘 생긴 남자 하나가 나타났다는 소문도 보태어 돌았다.

수업이 하나씩 끝나고 이동할 때마다 아는 얼굴을 만나면 하나같이 건축과 주점 이야기를 했다. 남자들은 안주 맛에 대해서, 여자들은 서빙해주는 남자들에 대해서, 주당들은 특별히 공수해 왔다는 특별한 막걸리에 대해서 얘기했다.

 

 

 

나는 그 주점에 공연이 다 끝나고 밤이 깊어서야 갔다.

공연은 그럭저럭했다.

밤공기가 주는 낭만이라고 현주가 말했다.

음대생과 통기타 동아리에서 하는 연주는 건축과가 내건 주점보다 뜨겁지 않았다. 마지막 즈음에 초대가수로 나온 통기타 가수가 불러주는 졸음이 가득한 노래를 현주와 이지수는 황홀하게 들었다.

삭막하다는 평을 들었던 나는 그냥 잘 들었다.

나는 벚꽃을 닮았던 그 피아노 소리가 더 좋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현주와 지수에게 말은 하지 않았다. 열심히 박수를 치는 그들과 함께 정상인처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주점 앞에는 재료 소진이라는 글씨가 크게 붙어 있었다. 안에는 손님이라기 보다 오늘 일을 한 사람들이 흥겨운 하루를 마감하는 자리 같았다.

나와 현주와 이지수가 겨우 그곳에 들어갔을 때 불판 앞에 서 있던 김식이 우리를 흘깃 쳐다보았다. 낮에 비워 놓았다는 사람들과는 떨어진 그 자리에 앉았다.

낮에처럼 한 장우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지금 주방 마감중이라 이게 다야.”

 

하루 종일 입소문이 돌았던 돼지껍데기와 순대볶음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양은 접시에 넘칠 정도로 그득 담겨 있었다.

 

“너네 밥 먹었는지 물어보라는데? 볶음밥 정도는 할 수 있대.”

“이거면 돼.”

“술은 뭐로 줄까? 막걸리 맛있어.”

“아, 나도 막걸리 먹어봤어.”

 

나와 한 장우가 주고받는 말을 듣던 현주가 신이 나서 끼여 들었다.

공연의 여운 때문인지 현주의 기분은 올라있었다.

 

“그거로 줘.”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도 없는 한 장우와 -이름도 오늘 처음 알았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대화를 나눴다.

 

“나도 역전의 우동 먹고 싶다. 맛도 못 봤는데….”

“여기 콩가루에 찍어 먹어봐.”

 

지수가 현주를 향해 먹는 방법을 설명했다.

돼지껍데기를 젓가락으로 한 점 집어 콩가루에 쿡쿡 찍어 먹는 지수를 보고 나와 현주가 따라했다. 현주가 눈을 질끈 감고 음식을 입안에 넣었다.

 

“뭐야? 신기한 맛이야. ”

 

현주가 처음 먹어보는 음식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름이 이상해서 맛도 이상한 줄 알았는데 맛있어.”

나도 꼼꼼하게 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수룩한 대학생 주점 맛 같지 않게 맛있었다. 이번엔 순대볶음도 한 점 먹어 보았다. 나를 따라서 현주도 이지수도 한 점씩 집었다.

 

“이것도 맛있어.”

“인정. 오늘 하루 종일 시끄러울 만 했네. ”

 

한 장우가 다시 올 줄 알았는데 막걸리를 들고 온 것은 김식이었다. 노란 주전자와 노란색 잔 세 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빨리도 왔다. 서경후한테 삥 뜯겼다며?”

 

모자 쓴 모습은 자주 봤지만 수건을 두건처럼 둘러 쓴 모습은 처음 보았다. 알바를 많이 했다 해서 그런지 그 모습이 어색하지 않아보였다.

김식이 슬쩍 손을 뻗어 내 손목에 옷자락을 들었다. 찾고자 하는게 있었는지 다시 반대쪽 손목으로 슬쩍 손을 뻗었다.

김식의 손목에서 딸랑거리는 은색 달을 보았다. 서경후가 반지 두 개와 함께 더 계산하라고 가져갔던 그 팔찌였다.

 

“왜?”

 

김식의 손끝이 왼쪽 손목에 달린 내 팔찌를 찾아냈다.

 

“기특한 짓을 했다 싶어서….”

“애가 많이 모자란 것 같던데.”

 

고개를 들어 김식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른 새벽에 김식이 나간 이후 오늘은 처음 마주친 시선이었다.

 

“가끔은 쓸 만 할 때도 있어.”

 

나와 김식이 말을 하는 사이에 이지수가 이런 상황쯤은 익숙해 하는 표정으로 세 개의 잔에 막걸리를 따랐다. 그 모습을 현주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노란색 전구의 불빛 아래 쪼르르 황금색 막걸 리가 나왔다. 거창하게 소매를 걷어 올린 이지수의 팔목에도 딸랑거리는 은색 하트가 달려있었다.

킥킥 웃으며 이지수가 내민 잔을 받아 든 현주의 손목에도 역시 딸랑거리는 은색 하트 팔찌가 달려있었다.

 

“전교생의 반쯤은 이 팔찌를 샀을걸?”

“하 진짜.”

 

김식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 사이에 현주와 지수 둘이 잔을 부딪히고는 막걸리를 홀짝홀짝 맛까지 보았다.

 

“이거 진짜 맛있어.”

“맛있다.”

 

이지수와 현주가 흥이 올라 잔째로 막걸리를 들이켰다.

 

나도 김식과 시선을 풀고 나도 막걸리 잔을 들어 마셨다.

달큰하고 시원한 맛이 목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마시는 양을 김식이 꼼꼼히 쳐다보았다.

 

“식아, 거기서 뭐해? 빨리 와.”

 

주점 가운데에 이어 붙인 이어붙인 긴 테이블에서 김식이 불렀다.

 

“김식 얼른 와.”

 

단숨에 마신 잔을 내려놓다 사람들 사이에서 서경후와 잠깐 눈이 마주쳤다.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보고 뭐? 라고 입모양으로 물었다.

 

“많이 먹으면 낼 고생한다.”

 

김식이 우리 테이블을 떠났다.

 

“언제까지 쳐 먹기만 할 거야? 내일은 장사 안해? ”

 

사람들이 잔뜩 모인 테이블로 가면서 김식이 소리쳤다.

 

그 한마디에 사람들이 우하하하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보통은 쳐먹는다 하면 기분 나빠야 하는 거 아닌가?

 

처음엔 떨어져 있던 테이블들이 밤이 깊어가고 사소한 인연을 발견하며 하나씩 둘씩 이어 붙어 점점 길어져 있는 테이블이었다. 사소한 인연의 중심에는 김식이 있었다. 건축과가 아닌데도 주점에서 뛰어다녔던 서경후와 함께 김식의 소문을 가끔씩 물어오는 일행도 섞여 있었다.

 

 

김식은 사람들을 다루는 데 익숙한 것 같았다.

상황을 주도하고 지시를 하는데도 저항감 없이 받아들였다. 본인 과도 아님에도 사람들은 꺼려하거나 거부하는 사람이 없었다. 김식은 기다란 기차처럼 요란하게 뭉쳐진 사람들 사이에서 서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데도 편안해 보였다.

 

 

나는 섬처럼 떨어진 자리에 현주와 이지수와 앉았다.

나는 요 정도면 충분했다.

 

 

저마다 김식을 불렀다.

기차처럼 길게 이어 붙인 테이블에서 각각 김식을 불렀다.

김식은 특별히 사람들에게 친절하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김식을 신뢰의 눈빛으로 호의의 마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김식도 그들을 좋아하는 것을 같았다.

나와는 정반대의 곳에 위치한 사람은 서경후보다 김식이었다.

 

나는 내 편임을 자처하는 두 사람, 현주와 이지수를 다시 보았다. 나와 같은 팔찌를 끼고 있는 진짜 내 편을 보았다.

“너무 재밌어.”

 

현주가 신이 나서 말했다.

 

“작년엔 너 없어서 재미없었단 말이야.”

 

순대 볶음 안에 순대를 골라먹으면서 현주는 재밌어 했다. 이지수는 막걸리를 홀짝일 때마다 행복해했다. 데려오기 잘했나보다.

 

학교 전체가 축제라는 말에 취한 것 같았다. 곳곳에 세워진 주점마다 남은 사람들이 흥겹게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간간히 취해서 지르는 고성도 들려왔다.

 

그리고 건축과 주점 안도 흥분으로 가득했다. 오늘의 성공적인 스타트가 다들 흥이 오르게 했다. 연달아 터지는 건배 하고 외치는 소리에 나와 이지수도 막걸리 잔을 부딪혔다. 한 공간에 있어도 섬처럼 떨어져 앉아 한 테이블로 뭉쳐 앉은 그들의 소리를 바람소리처럼 들었다.

 

“주여.”

“주여.”

 

잔을 부딪히며 건배하며 외치는 소리도 이상했다.

 

“야, 김식. 너도 한잔 받아.”

“오늘은 안 마신다.”

“그런 게 어딨어?”

“내 맘이지. 빨리 쳐먹기나 해.”

 

건너편 자리에서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가 우리 테이블로 건너왔다.

 

“우리도 짠.”

 

이지수와 현주가 또 막걸리 잔을 부딪혔다.

 

“술이 술술 넘어간다.”

 

두잔 째 잔을 마시면서 현주가 이지수와 함께 키득거리며 웃었다.

“야! 김식. 비겁하게 술 안 마실 거면 키스해.”

“그래 그거 좋다.”

“여기서 젤 이쁜 애 한테 키스해라.”

 

와아아아.

휘익! 누군가의 휘파람 소리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두들기는 짓궂은 소리가 요란했다.

 

“키스해.”

“키스해.”

“키스해.“

 

장난기 가득한 요란한 추임새가 터져 나왔다. 테이블을 두드리면서 난리를 쳤다.

 

“여기서 제일 이쁜 건 나 아니야?”

 

핑크 티셔츠를 입은 서경후가 벌떡 일어서더니 장렬하게 소리쳤다.

 

“넌 남자잖아 새끼야. 여기 채연이도 있어.”

 

누군가가 거창하게 말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진짜로 한다. ”

“야야 서경후 진짜 긴장한다야.”

 

사람들 사이에 있던 김식이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서경후가 꼴깍 침을 삼켰다. 옆 자리에 앉은 머리가 긴 여학생도 새침하게 머리칼을 넘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적당히 취했고 현주 말대로 밤바람이 낭만적이었다.

 

우리테이블까지 들려오는 오고가는 말에 현주와 이지수도 막걸리 마시기를 잠깐 멈췄다.

 

김식과 눈이 마주쳤다. 눈빛이 짖궂게 반짝인다 생각한 순간 김식이 섬처럼 떨어져 앉아있던 우리 쪽 자리로 걸어왔다.

 

“왜 그쪽으로 가는데?”

“쟤 김식한테 도서관에서 차인 애 아냐?”

 

“뭐 그럼 누구?”

“서경후 어쩌냐?”

 

당당한 김식의 걸음에 이지수가 먼저 의자를 뒤로 뺐다. 덩달아 현주도 왜? 하더니 엉덩이를 엉거주춤 들었다.

걸어온 김식이 내 얼굴을 보고 눈을 예쁘게 접으며 웃었다. 눈으로 해도 되지? 라고 묻는 것 같았다.

그리곤 내 의사와 상관없이 고개를 숙여 내 입술에 입술을 대었다.

 

방금까지 장난스러움과 흥분으로 엉킨 요란스러운 소리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내 입술을 가르고 김식의 혀가 들어왔다. 나는 그 혀를 담담히 받았다. 익숙하게.

 

짹각, 짹각.

시끄러웠던 공간이 한순간에 고요가 내려앉았다.

침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짹각 짹각

그 사이에 막걸리 맛이 남은 내 입안을 김식이 샅샅이 훑어갔다. 농밀한 키스였다.

김식이 입술을 떼었다. 멀리서 봐도 자극적이고 진한 키스였다. 입술에 묻은 침을 훔치며 김식이 긴 테이블을 향해 선언 하듯 말했다.

 

“했다. 제일 이쁜 애.”

딸꾹.

현주가 딸국질을 시작했다.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이지수는 별거라고 하는 표정으로 다시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담담하게 접시에 놓인 먹거리를 먹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가장 담담했다.

 

김식은 전리품을 챙긴 표정으로 걸었다.

나는 그냥 내 앞에 있던 남은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켰다. 목이 말랐다. 수많은 시선이 의문과 비교와 탐색으로 나를 보았다.

고요한 침묵 사이로 누군가는 탄식했고 누군가는 부러워했다. 또 누군가는 허탈해했다.

 

“서경후 너 김식한테 차였다.”

 

누군가가 장난스럽게 외쳤다.

 

“왜? 왜? 쟤냐고?”

“넌 남자잖아 새끼야.”

“쟤는?”

 

억울한 듯 외치는 서경후의 목소리가 다른 소리에 묻혔다.

 

“눈까리가 삐였냐? 쟤 여자잖아. 벼엉신. 식이 옆에 있으니 딱 티나는데.”

 

올백으로 머리를 깐 살벌하게 잘 생긴 남자애가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날선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쟤가 주기도인가?

 

내게 쏟아지는 많은 눈빛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막걸리 때문인지, 낭만적이라는 밤바람 때문인지.

나는 김식의 살아온 세상이, 살아갈 세상이 궁금해졌다.

어쩌면 김식이 군대에 들어가면 조금 서운할 것도 같았다.

그걸 지금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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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옛날일이긴 한데

저도 축제 주점 준비하다가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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