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정문에 대동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었다.

5월 축제의 기간이다.

그 정문 앞에 택시 한 대가 서 있었다.

그 앞에 경비 복을 갖춰 입은 아저씨가 택시 기사와 실갱이를 하고 있었다.

 

“아니, 축제 기간이라 외부 차량은 못 들어간다고요.”

“손님이 안에 들어가야 요금을 준다잖아요.”

“학생들이 위험해서 못 들어간다고요.”

“아니… 안에 들어가야 요금을 받을 수 있다고요.”

 

같은 말을 둘이서 옥신각신 하며 한 치도 밀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학교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찾기엔 애매한 시간이었다. 수업 시작 시간은 이미 지났고 다음 수업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가끔씩 중앙도서관 상주하는 취업준비생들이 간간히 서서 싸움의 광경을 구경하는 정도였다.

 

“택시비를 받아야 할 거 아뇨?”

“못 들어가요.”

누가 더 목소리가 큰가 하는 마음으로 싸움하는 두 사람 옆에 병원에서 막 도망쳐 나온 것 같은 하얀 사람이 맨발에 얇은 슬리퍼 차림으로 서 있었다. 눈동자에 초점이 맞지 않는 듯 멍한 시선으로 오가는 학생들을 보고 있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몹시 아픈 사람처럼 보였다.

눈 아래에 검고 퀭한 그늘을 달고 흐린 금발머리는 앞머리를 모아 사과머리를 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진짜 정신병원에서 도망쳐 나온 건가?

 

“아침부터 재수 없게… 미친… 태워갖고는.”

 

아무리 봐도 환자복 차림의 사람에게는 지갑 따윈 없어 보였다. 돈 받을 일이 요원해진 택시기사가 화가 끝까지 치밀었는지 상기된 얼굴로 바닥에 탁하고 침을 뱉었다.

 

“아니, 왜 침을 뱉어요. ”

“다른 차는 들어가는데 왜 나만 잡냐고요?”

“저 차들은 허가 받았으니까 들어가지. ”

 

두 사람은 서로 완강했다.

삶의 전투력이 쌓인 두 사람은지지 않고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곳을 그냥 스쳐 지나가려고 했다.

 

“학생, 어쩔거야? 아침부터. 그 김 뭐시기만 찾으면 따블로 준다며?”

김 뭐시기란 말 때문에 잠깐 멈칫했다.

택시에 기대여 나른하게 서 있던 환자복의 사람이 멍한 눈으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잠깐만요.”

 

타닥타닥. 병원용 이라고 글씨가 쓰여 진 얇은 슬리퍼를 끌고 환자복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너…나 알지? ”

 

안다.

저 화려한 금발 머리와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한 선명한 이목구비를 나는 알고 있다. 여자라고 해도 될 만큼 얇고 가는 몸과 타인을 거리낌 없이 대하는 저 어투는 이미 경험했다.

 

“지갑 좀 빌려줘.”

 

피곤해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쩌렁쩌렁 한 단전에서 끌어올린 과장된 어투로 내게 명령했다. 부탁치고는 지나치게 당당했다.

 

“너 김식 알지?”

 

김 뭐시기가 역시 김식이 맞았다.

말없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내밀었다.

 

“나중에 김식 찾고 나면 갚아줄게.”

 

내 손에서 원래 제 꺼 였던 것처럼 지갑을 채가더니 지갑 안에서 만 원짜리를 몇 장이나 꺼냈다.

 

“돈 좀 넉넉히 갖고 다녀.”

 

내게 지갑을 돌려주며 핀잔까지 돌려준 놈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돈도 없는 놈한테 들을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사정이 있거든. 내 짐이 다른 차에 실려 가는 바람에….”

내게 건네준 지갑을 가방에 넣는 사이 환자복이 당당하게 택시기사 쪽으로 걸어갔다. 외양은 형편없지만 걸음은 거만했다.

 

내게 강탈해간 돈을 하사라도 하는 표정으로 택시기사에게 내밀었다. 떠블을 받을 기회를 놓쳐 억울해하던 택시기사의 표정이 단번에 환해졌다. 오늘의 불운이 행운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제 된 거죠? 아, 골 울려 씨발.”

 

머리가 진짜 지끈거리는지 염색한 머리통을 감싸 쥐는 것을 보고 나는 등을 돌렸다.

중간고사가 끝나자 학교가 온통 축제로 어수선했다. 동아리마다 과마다 아이디어를 내고 나름 전통으로 이어 내려오던 것을 준비하며 북새통이었다.

요즘의 김식도 축제 일 때문에 바빴다. 주로 건축과 사람들하고 어울리더니 어제부터 아예 제대로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결국 나는 중간고사 시험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김식의 옥탑 방으로 갔다.

대단한 공부를 하냐며 이죽거리던 김식은 도서관 끝나는 시간에 내 손을 잡고 내 방으로 데려다 주는 그 길을 좋아했다.

아니, 내 방으로 들어가는 그 좁고 어두운 그 길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완벽한 사각지대의 키스가 아슬아슬하고 욕망에 허덕이는 내가, 안 된다는 단호하게 굴지 못한 내가 열어주는 그 문을 은근히 좋아했다.

 

늦은 시간 한껏 소리를 죽인 그 행위가 아슬아슬하고 위험했다.

김식의 뜻대로 또 옥탑방으로 갔지만 간밤에 늦게 들어왔다 새벽부터 나간 덕분에 얼굴은 보지도 못했다.

중앙도서관이 보이는 학생식당 앞에 서 있는 현주가 보였다. 올려 묶은 머리에 흰 티셔츠 차림의 현주는 이제껏 내가 알았던 현주의 모습과 판이하게 다르다. 언제나 세련된 부잣집 아가씨 같은 예쁜 차림은 어디에도 없다.

 

게시판에 붙인 대자보를 읽고 있던 현주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요즘의 현주는 만나기가 힘들었다. 학생회 활동하는 선배를 따라다니며 일을 돕는다며 갑자기 전사가 되어 버렸다. 옷차림은 평범해졌지만 현주의 표정은 생기 있게 반짝거렸다.

 

“안 추워?”

 

반팔티셔츠만 입고 선 현주가 생글생글 웃었다.

 

“응. 별로.”

 

한낮엔 오월의 햇살이 뜨겁지만 아침 저녁은 아직 선선한 날씨다.

나는 김식이 또 예전 옷이라며 건네준 얇은 점퍼를 목까지 올려 입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신고 있는 신발도 김식이 사다 준 것이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

“요즘은 감기 걸릴 새도 없어.”

 

현주의 이쁜 얼굴을 보며 나도 웃었다. 요즘 가장 신난 얼굴을 한 현주를 보기만 해도 나도 조금 행복해 진 것 같았다.

 

“누구? 여자친구?”

 

등 뒤에서 불쑥 하얗고 작은 얼굴이 현주와 나 사이로 끼여 들었다.

 

“엄마야.”

 

내게 지갑을 강탈해 갔던 환자복이 어느새 내 뒤를 따라 와있다.

 

“누구야? 너 알아?”

 

화들짝 놀란 현주는 기이한 표정으로 환자복을 바라보았다.

햇살아래에 어울리지 않는 환자복을 입고 처연하게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은 이질적이고 아름다웠다.

 

“잘 몰라. 그냥 김식한테 삥 뜯으러 간대.”

 

내 대답에 현주가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도 김식을 알아? 근데 아까는 왜 한 놈도 안 보인거야?”

 

멍한 표정의 환자복이 자연스럽게 말을 했다.

 

“저 사람…병원에서 도망 나왔나봐.”

 

현주가 작은 소리로 내 귓가에 우리 옆에 서 있는 환자복을 눈짓하며 말했다.

 

“아니거든. 환자 육 하느라 입은 거거든.”

두 팔로 팔짱을 끼고 현주를 보며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나는 현주를 내 등 뒤로 세우고 뻔뻔한 환자복과 눈 싸움을 시작했다.

 

“그냥 김식한테나 가지?”

“너… 아까부터 생각이 날랑 말랑 하는데… 어디서 봤지?”

 

미간을 찌푸리며 얇은 슬리퍼를 탈탈 거리며 우리 둘에게 물었다.

멍한 눈빛이 먼 곳을 헤매고 있다.

 

“같은 학교는 아니야. 분명 아니야. ”

 

탐정이나 된 듯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생각에 잠긴 환자복에게서 등을 돌렸다.

“오늘 저녁에 공연 하는 거 알지? 같이 가는 거다. ”

“알았어. ”

“학생회 일 피곤한데 재밌어.”

 

으히히히 하며 개구쟁이 같이 웃는 현주를 보며 나도 웃었다.

 

“밥은 잘 먹고 다니지?”

“요즘은 잘 먹어. ”

“내가 바빠서 반찬도 못 가져다주는데….”

 

현주가 내 몸을 요리저리 훑어보았다. 살이 좀 붙었나 재보는 것 같았다.

 

“밥! 근데 너네 밥 안 먹어? 나 배고픈데.”

 

등 뒤에서 골똘히 생각을 하던 환자복이 우리 둘 사이에 다시 불쑥 끼어들었다.

내가 몸으로 가리고 있는 사람을 현주가 굳이 고개를 빼며 다시 환자복을 쳐다보았다.

 

“신경 쓰지 마.”

 

현주 양팔을 잡으며 다시 환자복 남자를 가렸다.

 

“이런 비슷한 상황… 있었는데….”

“저 사람 왜 안가고 자꾸 너한테 친한 척 해? 이쁘게 생겼는데….”

 

현주가 환자복을 향해 쯧하고 안타까운 표정을 했을 때였다.

 

“생각났다. 너! 너였어. 김식이 취향 안다고 하던 애.”

 

등 뒤에 서 있던 환자복이 드디어 나를 알아챘다. 환자복이 등 뒤에서 내 어깨를 잡았다. 내 몸에 닿은 손을 빠르게 어깨를 흔들어 쳐냈다.

 

“너 맞지? 그때 내 젖꼭지 봤던?”

 

 

 

현주가 괴상한 표정을 했다.

나를 찾아온 남자 -김식-의 충격에 이어 하늘 하늘 이쁘게 생긴 남자의 뜻밖의 말에 놀라움과 그 표정을 어떻게든 숨겨보려는 노력으로 표정이 이상해졌다.

 

“또 뭔데, 뭔데?”

 

내 옷자락을 손가락 두 개로 잡은 현주가 앞에선 남자의 눈치를 보며 겨우 말했다. 나는 현주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현주가 신기한 것을 보는 냥 내가 가리고 선 남자를 꼼꼼한 시선으로 살폈다.

 

“맞네. 흥.”

 

과장된 자세로 허리에 손을 척 올리고는 당장이라도 싸우자는 기세로 환자복이 나를 노려보았다.

“쟤 혼자 헐벗고 다녀서 그냥 본거야. 별거 없어. ”

“진짜 이상한 사람이구나. ”

 

현주가 얼굴을 찌푸리며 내 귓가에 작게 말했다. 그 모습에 나는 빙긋이 웃었다.

 

“나 이상한 사람 아니거든. 연기 하는 사람이거든.”

 

내 등 뒤에서 소리치는 환자복을 무시하고 현주를 안심시키려 어깨를 잡았다.

 

“괜찮아.”

 

현주가 신기한 사람을 보는 듯 환자복을 한 번 더 쳐다보고는 나를 두고 떠났다. 최근 바빠진 현주 덕분에 아주 짧은 만남이 끝났다. 현주의 뒷모습을 찬찬히 본 다음에 내 곁에 나와 싸울 준비를 하고 있는 환자복을 향해 돌아섰다.

 

“지금 시간엔 아직 밥 안 나와. 라면 있는데.”

“너… 너, 이따 주기도 오면 내가 이른다.”

“안 먹을 거면 나 그냥 가고.”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거 같은 환자복을 보고 말했다.

환자복을 빠르게 정리하기 위해 명확하게 말했다. 이정도면 나로선 길게 말을 한 거다.

 

“라면…어디로 가면 되는데? ”

 

길에서 미친놈 하나를 주웠다.

미친 김식 하나로도 벅찬데, 하나가 더 늘어버렸다.

밤샘 촬영했다며 퀭한 모습으로 내가 라면을 받아다 앞에 놔줄 때 까지 꼼짝 않고 나무늘보처럼 의자에 늘어져 있었다.

방금까지 나와 싸우겠다더니 라면 하나에 표정이 싹 바뀌었다. 진짜 환자 역할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표정을 바꾸는 일이 능수능란했다.

환자복을 입은 남자는 라면 두 개를 앉은 자리에서 국물까지 먹어치웠다.

 

“너 돈 더 있어?”

 

빈 그릇을 내려놓자마자 그 말부터 했다.

환자복이 양 팔을 들어 보이며 자신의 꼬락서니를 내게 가리켰다.

 

“김식이 보면 다 갚아줄게.”

배 고픈것만 해결해주면 될줄 알았는데, 제대로 혹이 붙어 버렸다.

 

학생식당 밖으로 나오자 고자상 주변에 동아리와 과에서 내놓은 홍보부스와 판매대로 가득했다. 가방 안쪽에 있었던 수업비 봉투 중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 내밀었더니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는 내 뒤를 병아리처럼 종종 따라오고 있다.

 

길거리 토스트를 어설픈 손놀림으로 파는 부스를 보자마자 방금 라면 두 개를 먹어치운 기억을 지운 듯 3일 굶은 강아지 같은 한껏 불쌍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종이에 싼 토스트를 우걱우걱 먹으면서 홍보에 열을 올리는 부스들을 돌아보기에 바빴다.

 

“너네 학교 축제는 첨 구경하는 거야.”

“나도 첨이야.”

 

환자복을 입은 남자가 나를 바본가? 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참 삭막하게 사네.”

 

독백을 하듯 말하고는 새로운 부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환자복이 가장 좋아하는 부스는 연못으로 내려가지 직전에 자리한 공예과 부스였다. 은제 악세사리를 예쁘게 디스플레이 하고 판매대를 내놓은 그곳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버렸다.

 

“이것도 이쁘고, 이것도 이쁘고….”

 

손가락마다 반지를 이리저리 끼워보고는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봤을 때 손가락과 팔목에 주렁주렁 하던 악세사리들이 환자복 사이로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환자 6을 했다더니 그 많던 악세사리 조차 다 뺀 모양이다. 이지수를 향해 날을 세우며 싸우자고 덤비던 그 날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야, 넌 어때? 이쁘지 않아?”

대꾸를 하지 않자 핏하고 입을 삐죽거리더니 몇 개의 반지를 더 끼어 보았다.

그냥 두고 갈까 하고 한발 옮길까 했는데 귀신같이 알아채고 나를 돌아보았다.

 

“이거 너 해봐.”

 

환자복이 바짝 마른 몸으로 쭈그려 앉아 매대에 놓여 진 은빛 팔찌를 들었다.

가죽 끈에 은빛별이 달랑 거리는 팔찌였다.

 

“손.”

당돌하게 내게 팔을 내밀라 하더니 팔찌를 채워버렸다.

손목에 딸랑거리는 작은 별이 햇볕 아래 예쁘게 반짝였다.

손가락마다 끼였던 반지 대부분을 원래의 자리에 내려놓고는 당당하게 두 개를 남겼다.

 

“제법 잘 만들었네.”

 

햇볕에 반지 낀 손을 이리 저리 비쳐보더니 만족한 듯 웃었다. 그 모습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쁜 요정같이 이뻤다.

 

“여기 이거까지, 계산해.”

 

달 모양이 달려있는 팔찌 하나를 손에 잡더니 내게 당당하게 명령했다.

욱하고 뭐라 할까 하다 다시 참았다.

주기도에게 이를 거라던 남자는 현주보다 이지수보다 더 내게 살갑게 굴었다.

남자인데도 여자들 친구처럼 굴었다. 아주 오랜 친구처럼. 외모부터 태도까지 나와는 정반대에 있는 남자를 손가락에 낀 반지로 신이 난 남자는 정말 이상했다.

 

공대 건물로 내려가는 길목에 주점들이 들어서있었다.

정성들여 현수막도 달고, 간판을 메단 각 학과들의 열악한 주점들을 보며 걸음을 옮길 때였다.

 

“서경후.”

 

주점을 준비하는 쪽에서 여자애 둘이 환자복을 향해 손을 흔들더니 길을 건너왔다.

 

“이번엔 환자역할이야?”

 

환자복을 입은 남자를 향해 까르르 웃었다.

 

“응, 환자6”

“뭐야, 이것도 잘 어울리네.”

“뭔들.”

“주인공은 언제쯤 할 건데?”

아무하고나 가볍게 웃고 아무하고나 말을 주고 받은 일이 익숙해보였다.

아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 나는 그냥 가던 길을 가려고 할 때였다. 빠르게 환자복이 내 점퍼를 잡았다.

“너네 김식 봤어?”

 

옷자락은 나를 잡고 질문은 여자애들에게 한 순간 두 여학생의 시선이 내 얼굴에을 빠르게 닿았다 지나갔다.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

"못 봤어? 어디에 박힌 거야? 얘한테 택시비랑 돈 갚아야 하는데.“

 

여학생 둘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쟤하고 가던 길 아니었어?”

 

환자복이 여자애들 시선을 따라 내게로 눈을 돌렸다.

 

“같은 과잖아. 김식하고. 작년부터 자주 같이 있던데.”

 

환자복, 서경후가 느리게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작년부터?”

 

나를 향한 그 자세 그대로 꿈뻑 눈을 감았다 떴다. 여태 멍했던 눈동자가 한순간에 맑아졌다. 기이한 변화였다.

 

“너 왜 말 안했어?”

“안 물어봤잖아. ”

 

나는 차갑게 말했다.

뒤쪽에 서 있는 여학생 두 명의 살피는 듯 한 눈초리를 차갑게 걷어냈다.

나는 다시 걸었다.

내 뒤로 타닥타닥 얇을 슬리퍼를 끌고 서경후가 따라왔다.

오 분 전까지만 해도 오래된 친구처럼 실실거리던 웃음이 사라졌다.

 

건축과 자리에 도착했다.

학교 종합 운동장 앞에 넓고 평편한 자리 앞에 건축과 주점이 자리 잡았다. 길하나 건너 연못이 있는 좋은 위치였다.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싸릿대로 만든 담장도 괜찮아보였다.

맨날 회의를 하더니 결과물이 나름 성공적인 듯 해 보였다.

 

그곳에서 아는 얼굴을 찾았다. 김식과 자주 같이 다니던 키가 큰 남자애를 찾아 눈으로 인사했다.

 

“야, 한 장우.”

 

서경후도 키가 큰 김식의 일행을 찾아냈다.

숙제를 끝낸 기분으로 나도 돌아섰다.

 

“너…또 어디가?‘

 

서경후가 또 내 옷자락을 잡았다.

 

“수업.”

“너 이름 뭐야?”

“뭐…주기도한테 이르려고?”

“이름을 알아야 돈 갚을 거 아냐?”

“김식한테 받아서 줄 거면 됐어.”

 

옷자락을 잡은 손을 탁하고 쳤다.

햇살 아래 길가에 환자복을 입은 서경후를 두고 돌아섰다.

“한 장우 너도 쟤 알아?”

 

내 등 뒤로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따라왔다.

 

나는 원래 사람을 싫어한다.

그런데 오늘은 아주 싫지는 않았다. 시시각각 감정과 표정이 변하는 이상한 남자를, 나와는 정반대에 있는 사람과의 시간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았다.

내가 김식의 세계로 한발 정도는 걸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