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경계선

 

 

  

 

한문고에는 유명한 것이 세 가지가 있다.

대한민국의 고등학교라면 가져야 할 S대 합격률이나 의대 입시를 얼마나 성공 했나 등의 꼬리표와는 상관없는 유별난 유명세가 있다.

 

첫째, 사립학교인 한문고는 교복이 유명하다.

잠깐 동안의 자율화 시대를 즐겼던 학생들에게 새로운 교복은 자유로움과 규칙의 절묘한 경계선을 지킬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한문고의 교복은 나이키와 아디다스 운동화에 익숙해진 학생들에게 뜻밖의 틀을 내놓았다. 교복 자체는 자율화 이전보다 한결 편안하고 자유로워진 디자인이기는 했다.

그러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독 학교에서 요구하는 차림새는 까다로웠다. 여학생은 메리제인 슈즈를 신어야 하며 남학생은 로퍼를 운동화 대신 착용하고 교문을 들어서야 했다. 한창 활동성이 많은 남학생들은 따로 운동화를 따로 챙겨 점심시간 내내 운동장을 뛰어다녀야했다.

 

 

때때로 노구의 교장이 학생과 똑같이 교복을 차려입고 교문에 서있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다. 신입생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재학생들과도 친밀도를 과시하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다. 교장은 나름대로 재기 넘친 이벤트라 여길 테지만 학생들에게는 기기괴괴 행태가 아닐 수 없었다.

 

둘째, 한문고는 남자 핸드볼구단을 가진 학교이기도 했다. 나름 인기 있는 농구나 배구였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인기도 없고 감동도 없는 핸드볼단이 꾸준히 운영되었다. 적어도 올림픽에서는 여자 핸드볼 선수단의 선전이 있어 4년마다 열풍이 불기도 하였지만 남자핸드볼은 초라한 성적으로 외면이 일상이었다.

 

나름 전국체전에서 유수한 성적을 낸 것이 8강이 전부이다. 투자 대비 성적은 미비한 한문고의 저주라 불리는 핸드볼구단이었다. 그러나 몇 년에 한 번씩 국가대표 후보 정도는 낼 정도의 실력 있는 선수가 나오기도 했다.

 

셋째, 첫째와 둘째와는 달리 조금은 음습하고 조금은 숨기고 싶어 하는 유명세이다. 법적으로도 몹시 아슬아슬하고도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마녀 음악교사라 불리는 이가 있다.

이름은 최명주 이며 혹자는 로맨스소설 작가라기도 하고, 빨간책 작가라도 하지만 그녀의 필명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교사는 부업이며 실제 수입은 물려받은 유산과 외설과 야설의 경계를 위험하게 넘나드는 19금 딱지가 붙은 저작물에서 나온다고 한다.

 

매해 신입생이 입학하면 그 중에 한명만 집어내어 과한 애정과 추한 집착을 드러내기로 유명하다. 그녀의 취향은 다양해 어느 해는 보호본능 일으키는 작고 뽀얀 미소년이기도 하고, 어느 때는 거친 욕설과 싸움을 일삼는 일진이기도 하였고, 어느 해는 핸드볼 선수단 중에 성실한 주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양한 취향 속에 공통점은 한결 같이 이쁘다는 것이었다. 소설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본인의 흑심이기도 했다.

최명주가 가장 좋아하는 이벤트는 더운 날 그 학생이 있는 반 전체에 체육 시간이 끝날 무렵 아이스크림을 쏘는 것인데 아이스크림은 주로 붉은 색 아이스바 였다. 더위에 쩔은 아이들이 그늘에 모여 앉아 붉고 둥글고 긴 그것을 먹는 모습을 한쪽에 서서 흐뭇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바라본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한문고에는 무조건 마녀에게 찍히지 마라. 3년이 힘들다 라는 소문이 적극적으로 돌기도 하였다.

 

 

3월이 시작되었다.

새 학교, 새 교복을 장착한 새내기들이 학교에 나타났다. 2학년과 3학년 선배들은 올해 마녀에게 찍힐 불쌍한 재물을 두고 은밀한 내기를 시작했다.


1학년 복도를 오가며 마녀의 눈에 들 재물을 찾기 위한 선배들의 숨은 노력이 발빠르게 움직였다.

남학생 반 7반, 여학생 반 4반 1학년 안에서도 재물에 대한 소문이 번개처럼 날아올랐다. 최명주보다 먼저 찾아내야 하는 호기심에 가득한 시선들이 바빠졌다. 2주가 되기 전에 세 명의 후보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한문고에는 새로운 유명세가 생겨났다. 새로 입학한 일학년에 마녀의 재물 후보자 세 명에 대한 은밀하고도 세속적인 소문이었다.

 

첫 번째 후보는 주기도. 할머니가 교회 권사라는 주기도는 그 이름도 주기도문에

서 따왔다고 한다. 남자치곤 지나치게 하얀 피부와 빨간 입술은 흡사 뱀파이어의 모습을 상상해서 현실화 한 것 같아 보였다.

진한 쌍거풀과 깊게 들어간 눈동자는 한국계보다 다른 피가 섞인 듯 해 보였다. 게다가 웃을 땐 악마의 미소라 불려 질 만큼 잔인해 보이기도 했다. 신성한 이름과 악마의 미소를 지닌 17살의 소년은 여학생들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주기도에 대한 지지율은 30프로가 넘어갔다.

 

두 번째 서경후는 해사하게 맑은 얼굴을 하였다. 남성호르몬이 피해간 것처럼 어찌 보면 여성성 얼굴이 더 강하였다. 키 175에 주기도가 악마의 미소를 가졌다면 서경후는 천사의 얼굴을 가졌다고 했다. 얇은 뼈대와 얄쌍한 쌍거풀 게다가 풍성한 곱슬머리를 귀여운 인상을 가진 그리스 로마 시대의 동상 같았다. 여학생들 보다는 남학생 쪽에서 70프로를 웃도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마지막 후보는 키가 컸다. 학생들 사이에 서 있어도 위로 한 뼘 더 올라왔다. 단순히 키만 컸다며 후보에 오를 수 없었을 거다. 눈꼬리가 올라가 조금 예민하고 사나워 보이는 눈매에 박력 있는 콧날을 가지고 있는 어딘가 위험한 뒷골목의 냄새가 풍겨났다. 커다란 키 만큼 커다란 주먹이 있어 한 대 맞으면 그대로 찌그러질 것 같은 남자보다는 남성의 향기를 지닌 김식이었다.

 

비밀리에 네 번째 후보가 안타깝게 탑 쓰리에서 떨어졌다. 이유는 세 번째 후보와 이미지가 조금 겹친다는 것이었는데, 후보는 한장우 였다. 육군사관학교에 있을 것 같은 곧은 자세와 단정한 얼굴, 멀리서 봐도 모범생 같은 걸음걸이를 가진 학생이었다.


진한 송충이 눈썹에 각진 코와 턱은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무신이라고 불릴 것 같은 인상이었다. 게다가 진짜 검도를 익혔다고 한다. 17살 남자아이가 가지기엔 이른 대단하고 딴딴한 팔 근육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키 180에 나무 막대기 하나만 들고 있어도 검을 든 것 같은 남자다움에 은근한 지지율이 있었다.

 

 

비밀리에 내기가 시작되었다. 적게는 천원부터 많게는 한 학기 학비까지 은밀하고 위험한 도박이 시작되었다. 소문은 빠르게 돌았다. 올해는 풍년이 들었다면서 3학년은 좋아했고 2학년은 후보자를 겨우 한 명 밖에 못 냈던 작년을 기억하며 새로운 학년을 시기했다. 1학년은 어차피 남학생과는 건물도 따로 쓰고 있어 못 먹는 감이라 군침만 삼켰다.

 

그리고 다시 소문이 돌아 후보자들에게도 내기가 전해졌다. 그들은 나름 방비를 시작했다. 주기도는 앞머리를 게으르게 길러 눈을 가렸다. 어수룩해 보이도록 시각적 혼란을 주어 본인의 악마스러움을 은밀히 감추었다. 하교 후에 올백으로 머리를 넘겨 이마를 드러내어 잔인한 모습이 인근 주변 학생들까지도 설레게 했다는 후문이다.

 

서경후는 시력과 상관없이 촌스러운 안경테를 장만했다. 지나치게 큰 뿔테는 서경후의 선량한 눈빛과 사랑스러움을 적당히 감출 수 있었다. 서경후 역시도 하교 후에 빠르게 안경테를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 본인의 미모를 만천하에 알렸다.

 

김식은 좀 태평했다. 미모로 따지자면 주기도의 악마적 미모와 서경후의 천사적 미모가 본인보다 앞선 터라 위급을 자각하지 못하였다. 평상시 자신의 외모에 대해 심각히 생각해 본적이 없는 터라 긴장감이 없었다. 아니 탑 쓰리 들었다는 것 자체가 김식에게는 의아한 일이었다. 다만 음악시간마다 부반장을 닦달해 전체 인사를 시키는 것으로 어찌되었든 최대한 눈에 안 띄어 보려고는 했다.

 

 

그해 3월이 되자 최명주는 일학년 교실 복도를 수시로 탐사했다. 낯선 행성을 연구하는 탐사선처럼 고요히 집요하게 집중하여 올해 자신의 놀잇감이 될 만한 학생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막 사춘기의 호르몬이 날뛰던 남학생들이라 어떤 녀석은 코밑의 수염이 보숭 보숭해서 보기 흉했고, 또 어떤 남학생은 아직 덜 자라 사내의 냄새가 없었다

보통은 입학 이주일 안에 간택할 아이가 나타났지만 올해도 작년에 이어 이상하게도 마음에 차는 학생이 나타나지 않아 조금 초조해 질 참이었다.

 

처음엔 핸드볼선수인줄 알았다. 다른 남학생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학생들로 가득찬 복도에 훌쩍 올라온 뒤통수를 보고 운동선수인줄 알았다. 수업종이 울려 얼굴을 제대로 확인 못했지만 나름 피지컬이 마음에 들었다. 올해는 그 정도에서 만족해야 하나 본인의 기준치를 조금 낮춰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4월이 되었다.

지금껏 이런 경우는 없었다.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재물이 나타나지 않은 것에 대해 조바심이 들었다. 혹여 삼재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인재가 없다니….

수업 시작 전에 구령을 하려 일어난 그 학생의 훌쩍한 키로 한눈에 알아봤다.

슬쩍 출석부를 확인해보니 1반, 그리고 반장.

올해의 신입생은 아주 훌륭했다.

 

쌍거풀이 없는 눈이지만 시원스레 큰 눈, 눈꼬리가 샐쭉 올라가 예민해 보이기도 했고, 쭉 뻗은 콧날에 두둠한 입술. 또래 아이들의 소년향보다 뭔가 위험한 남자의 냄새가 풍기는 듯 독특했다. 여태 본인의 레이더를 어떻게 피해왔는지 궁금할 정도로 취향에 맞았다.

 

최명주는 피하지 않았다. 마녀 답게 바로 돌진했다.

 

“얘, 너 이름이 뭐니?”

“김식이요.”

이름도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시선을 마주하는 것도 좋았고 목소리도 괜찮았다.

 

최명주는 저도 모르게 학생에게 다가가 덥썩 학생의 팔뚝을 잡았다. 교복 자켓을 벗은 셔츠 위로 뜨끈히 느껴지는 근육이 또렷했다.

그 반 아이들 모두 입을 쩍 벌리곤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잊을 정도로 학생은 훌륭했다.

 

“너 이쁘게 생겼구나.”

 

최명주는 저도 모르게 실룩샐룩 웃었다. 그러나 표정 없는 학생은 시선을 본인의 팔을 잡고 있는 최명주의 손을 한번 보고 최명주 얼굴을 한번 본 후에 다른쪽 손을 들어 최명주의 손을 먼지따위를 털어내듯 탁 쳐냈다.

 

“미치셨어요?”

 

기백도 당당하게 부딪혀 오는 날선 눈빛이 신선했다.

그래도 선생인데 학생은 두려움도 거침도 없었다. 대학 입시에 유리하려면 교사에게 잘 보여야 할텐데 어떤 망설임도 없다.

 

그 반항적인 모습이 좋아 최명주는 싱긋 웃으며 손을 뻗어 남학생의 머리카락을 만지려했다. 그러나 빠르게 남학생이 머리를 한 치 정도 뒤쪽으로 피했다.

도전적이었다. 눈매가. 박력 있는 그 태도와 위험해 보이는 얼굴이 몹시 매력적이었다.

마녀 최명주는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자, 수업하자.”

 

그렇게 마녀음악 최명주는 그해 신입생 중에 김식을 찜했다.

아직 시간은 넉넉했고 최명주는 한가했다. 몇 년 전에 졸업한 김호가 떠오르기도 했다. 혈육이라면 아주 훌륭한 혈통이라고 순간 생각했다.

 

 

다음날, 김식은 파르라니 깍은 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절에 데려다 놓는다면 누가 스님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삭발을 하고 나타났다. 예민한 눈매와 짧은 머리는 오히려 위험한 향기가 풍기는 남자처럼 보여 최명주는 더 좋았다. 수많은 학생들 숲에서 민머리가 동동 떠올라 오히려 김식을 찾아내기 편해졌다.

 

어디에 있던 김식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는 오히려 쉽게 눈에 띄여 버리는 불상사가 되어 버렸다. 김식이 있는 곳에 마녀가 나타난다. 전교생이 ‘김식찾기 놀이’를 즐기게 되었다.

 

내기에서 진 자는 한탄이 내기에 승리한 자는 환호를 즐겼다. 재물에서 벗어난 주기도와 서경후는 김식에게 깊은 애도를 표했다. 그리고 한 장우는 김식의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결국 김식은 교장실로 찾아갔다.

교묘한 추행과 희롱의 경계선에서 놀고 있는 최명주를 사직시키지 않는다면 한국 최고 대학을 가지 않겠노라고. 학교의 명예를 절대 높여주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버렸다.

S대 입학 가능성이 있는 학생과 이사장 과 연관 있는 선생의 줄다리기는 팽팽했다.

 

학교 선생님들도 파르라니 깍은 머리를 한 김식에게 소심한 응원을 보냈다.

 

김식의 방어는 철저했다. 최명주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접근할 때마다 미치셨나는 질문으로 일관하는 김식 덕분에 학교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달아 부풀어 올랐다.

 

최명주의 아이스바 공세는 점점 더 지능적이 되었고 더운 여름날 뚝뚝 녹아내리는 아이스바가 왔고 날씨가 선선해지자 핫도그와 다양한 길이의 음식이 미끼로 사용되었다. 최명주의 오묘한 눈빛이 진해 질 때마다 김식의 눈빛은 날카로워졌다.

 

 

그리하여 한문고에는 미친 김식이라는 새로운 유명세가 생겨났다.

고3이 되자 김식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날쎄게 학교에서 벗어났다.

 

 

 

 

 

 

◆◇◆

 

 

[불티나 숯불 닭발집]은 힘든 노동으로 하루를 버텨낸 사람들에게 저렴하고 든든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좋은 가게였다.

싸구려 테이블 탁자 가운데 숯불을 피워놓고 빨간 양념에 재워둔 닭발과 풍성하게 솟아오른 계란찜 하나와 소주 한 병 만 있으면 하루의 피로를 날리기 좋았다.

덤으로 잘 볶은 꼬들꼬들한 닭똥집도 이 집의 별미메뉴였다. 특히 서비스로 나온 주먹밥은 다음날의 힘든 노동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든든했다.


오늘 그 가게의 숯불을 나르는 사람은 키가 꽤나 큰 어린 학생이었다. 아직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땀을 흘리며 잠시도 쉬지 않고 숯불을 준비해오고 자리가 파한 테이블을 정리했다. 머리에 수건으로 질끈 묶은 두건까지 몸에 익숙한 일인 듯 힘들다 한마디 없이 열심히 일을 했다.

 

9시가 되자 복잡했던 테이블 어느 정도 빠지고 두 테이블 정도만 미적거리는 자리가 이어졌다.

 

그때였다. 낡은 유리문이 열리고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다.

까만 가죽 점버에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살벌하게 잘 생긴 남자 한명이 가게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이른 저녁 장사를 주로 하는 가게에 새롭게 들어오는 손님은 불티나 숯불닭발집에는 드문 일이었다.

마무리를 하던 안주인이 입을 떡 벌리고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하얀 얼굴과 빨간 입술을 가진 남자. 이 동네에선 보기 드문 살벌한 미남자였다.

 

“씨바. 찾는데 고생했잖아. ”

당당히 말하더니 정 가운데 자리에 익숙한 듯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운데 불도 빼고 조금 남은 술과 함께 식은 안주만 두고 일어나려 준비하던 남은 두 테이블의 사람들도 새롭게 들어선 남자를 쳐다보느라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잊었다.

 

가게 안을 정리하던 학생은 흘끗 그 자리를 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숯불 하나를 가져다 놓았다. 흘끔흘끔 그 자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바빴다.

 

또 낡은 문이 덜컹 열리더니 키가 훌쩍 큰, 몸이 곧게 선 남자 하나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오면서 꾸벅 인사하는 자세가 어딘지 군인을 연상케 하는 절도가 있었다. 이번에 들어온 사람은 방금 전의 남자의 살벌한 미모와는 달리 단정하게 잘 생긴 모습이었다. 그 남자도 중앙에 앉은 남자 앞에 별다른 말도 없이 그냥 앉았다.

 

일행이라고 하기엔 서로에게 딱히 아는체도 하지 않았다.

조용한 침묵으로 일관하는 두 사람을 사람들은 흘깃거렸다.

 

그리고 또 문이 활짝 열렸다.

 

“아윽, 춥다. 뭐가 봄이란 거야. 붕알이 얼겠는데”

 

거친 입담을 하며 새롭게 문을 열고 나타난 남자는 미소년이었다. 청바지가 여기 저기 찢겨 안에 살을 드러내는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얇은 뼈대를 하고 해사하게 맑은 얼굴을 한 미소년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낡은 가게가 환해지는 것 같았다. 풍성한 곱슬머리가 작은 얼굴을 감싸고 있어 혹시 TV에 나오는 사람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 남자 역시도 가운데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으으 …춥다.”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 가운데 놓인 숯불에 불을 쬐듯 손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뭐 얼 붕알이나 있고? 기집애 같은 놈이.” ”

 

다리를 여유있고 꼬고 앉아있던 살벌하게 잘생긴 미남자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아, 시끄러. 개가 또 짖네.”

 

가게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가운데 테이블에 앉은 낯선 세 사람에게 향했다. 가게 안주인도, 가게 바깥 주인도 남은 테이블의 사람들도.

 

뭔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어울리는 세 사람은 일행인 듯 일행이 아닌 듯 제 성격대로 앉아 있었다. 그 사이에 가게 알바는 하던 청년은 그 테이블에 음식을 차곡차곡 날랐다.

숯불 위에 불판을 올리고 푸짐하게 쌓아올린 닭발을 불판위에 올렸다.

새로운 테이블에선 따로 주문도 없었다. 그러나 알바생은 알아서 척척 상을 차렸다.

“사장님, 계란찜 해주세요.”

“어머, 내 정신 좀 봐.”

 

제각기 개성을 지닌 세 사람의 얼굴을 구경하던 안주인은 부리나케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주먹밥 몇 개 할까?”

주방 안으로 들어갔던 안주인에 밖에 앉은 세 남자를 보기 위해 다시 홀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스무개요.”

 

보통 1인 두 개의 주먹밥에 10인분의 주문이 들어갔다.

안주인의 머리가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알바생이 중앙 테이블에 따로 묻지도 않고 소주를 가져왔다. 소주잔 대신 맥주잔을 가져왔다. 중앙 테이블에 앉은 세명의 손님은 선택권이 없는 것 같았다.


곧이어 산처럼 쌓인 주먹만한 주먹밥이 나왔다.

곧이어 닭똥집 볶음도 큰 접시 가득 나왔다.

마지막으로 곧이어 곧 터질 것 같은 풍성한 계란찜이 네 개가 나왔다.

 

 

사람은 세 사람 뿐인데 차려지는 양은 어마어마했다.

상이 차려지는 동안 세 사람은 그 어떤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주문도 안했는데 앞에 차려지는 엄청난 음식을 쳐다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알바생이 묵묵히 숯불위에 익고 있는 닭발을 뒤적거리며 익기를 조절했다.

 

곧 음식이 다 나왔는지 안주인이 주방에서 다 나왔다.

 

“이거면 충분하겠어?”

 

테이블에 앉은 남자들 말고 알바생을 향해 물었다.

 

“네, 모자르면 라면도 있구요. 가게 문단속도 남은 정리도 제가 하고 갈께요.”

 

뭔가 미련이 남은 듯 안주인과 바깥주인이 머뭇거렸다.

 

“미안해서 그러지. 번번히. 근데 어쩜 저리도 다 잘 생겼다냐. ”

“그짝 테이블도 다 드셨으면 일어나시지요. 오늘 문 닫습니다.”

 

멍하니 새롭게 차려진 테이블과 남자들을 구경하던 사람들도 서서히 엉덩이를 뗐다. 이 가게가 생긴 이후 이런 모습은 처음일 것이다. 고작 고등학생을 벗어 난 것같은 젊은 미청년이 셋이나… 아니 넷이었다. 이제껏 써빙을 하던 알바생이 중간 테이블에 당당히 앉았다.

 

“쳐먹어.”

 

마치 먹잇감을 내밀며 동물에게 하는 말처럼 간단히 마지막에 앉은 청년이 말했다.

 

마치 그 말이 출발 이라는 신호처럼 그때부터 살벌한 남자와 해맑은 남자와 반듯한 남자가 수저를 들고 앞에 쌓인 음식을 짐승처럼 먹기 시작했다. 세 명의 미남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자리에 알바생이 앉자 마자 묘한 박력으로 세 사람을 내리 눌렀다.


 

그제야 사람들은 오늘 자신들을 위해 써비스 해주던 알바생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키가 커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던 능숙하게 일을 해주던 알바생의 얼굴을 보았다. 성깔을 누른 듯 한 이마와 위험스레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알바생이 세 남자와의 자리에 익숙한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남은 테이블의 남자들이 슬그머니 엉덩이를 들었다.

기가 죽은 주인 남자도 슬그머니 걸음을 옮겼다.

드라마 보다 더 재밌는 광경에 아쉬움을 담은 안주인이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옮겼다.

곧 가게의 문이 닫히고 영업 종료라는 삐뚤한 글씨로 써진 팻말 하나가 붙었다.

 

산더미 같은 음식이 무서운 속도로 줄었다. 네 명의 남자들은 30인분의 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어치웠다. 가을 들녘을 습격한 메뚜기모양 거침없이 먹었다.

 


소주병도 하나, 둘, 세병이 물처럼 마신 듯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숯불구이 닭발은 이미 끝났고 김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숯불을 빼 버렸다.

“이거 더 없어?”

쌀벌하게 생긴 주기도가 양념 닭발을 가리키며 물었다.

“똥집 쳐먹어. 그냥.”


사흘 굶은 사람처럼 생긴 것과 다르게 마당쇠처럼 먹던 해사하게 생긴 서경후가 똥집 접시를 주기도에게 밀었다. 그리고 반듯하게 앉아있던 한장우는 배를 채운건지 옆 테이블 자리와 함께 빈 그릇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돼지시키들 같으니라고.”

숯불을 정리하고 돌아온 김식이 잔해만 남은 테이블을 보고는 욕설을 했다.

 

한문고 탑포가 모였다.

졸업하고 처음으로 김식이 이른 저녁부터 알바하는 곳에서 만났다.

 

대충 치운 테이블에 김식이 남은 닭똥집으로 볶음밥을 해 왔다. 볶음밥 위에 계란 후라이도 하나씩 네 개가 얹었다. 야채스틱도 만들어 내왔다.

 

“다 처먹었으면 내놔.”

 

다시 볶음밥을 향해 숟가락을 들이미는 세며을 보고는 김식이 단 한마디만 먼저 말했다.

 

“그냥 내가 퇴근는 길에 숨어있다 그냥 뒤통수를 깔게. 그러면 한 석달 열흘은 입원 할 껄. ”

 

빨간 입술을 한 주기도가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친새끼. 법대 다니는 새끼가 한다는 소리는.”

“참, 우리 김식이는 다정하게도 말하지. ”

 

주기도와 김식이 투닥거렸다. 그러더니 주기도가 가죽 점퍼 안에 숨겨온 빨간 표지의 책 한권을 내놨다.

 

“충격 받지 마.”

“이게 그 책이야? ”

해사하게 생긴 서경후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웃돈 주고 구했어. 이거 말고도 몇 개 더 수배 해놓기는 했어. 난 밥값 다 한거다.”

 

“나, 나도 봐도 돼?”

 

동그랗게 눈을 뜬 서경후가 중간에서 빨간책을 앗아갔다.

 

“이건 아무리 봐도 김식이야. 그 무식한 교도소 머리 하고 다니는 부분도 나와.”

“진짜 마녀 미쳤구나. ”

 

빨간책을 파르르 넘겨보던 서경후의 손에서 책이 한정우 손으로 넘어갔다.

 

“나도 애들한테 탄원서 받은 거 가져왔어.”

책을 뺏긴 서경후가 툴툴거리며 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여자애들도 재밌다고 많이 썼어. 나도 밥값 한거다.”

 

그 봉투 역시 한 장우가 챙겨갔다.

 

“너네 사진은 뭐 건진거 있어?”

 

서경후가 물었다.

 

“날짜별로 상황과 함께 정리 다 끝났어.”

김식은 어느 날부터 사진기를 가져왔다. 마녀가 출몰하는 예상 장소, 방향등을 관찰해서 한 장우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증거를 한 장우가 차곡차곡 모았다.

 

“진짜 할 거야? 어차피 우리 졸업했잖아.”

“대충 몇 번 주물럭거리게 뒀으면 빨리 떨어졌을걸. 삼년을 튕기니 그 여자도 더 감질나지”

 

이죽거리는 주기도의 말에 김식이 발끈했다.

 

“누구 맘대로 내 몸을 만지게 해. 유치원에서 안 배웠어? 낯선 사람이 만지게 하지 않는다.”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는다 아닌가?”

“결벽증새끼. 오토바이도 못 만지게 하더니 몸도 못 만지게 하냐?.”

 

오토바이가 몸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주기도가 어디가 틀린 그림인지 생각도 않ㄴ고 말했다.

 

“너 새끼 머리 깐 채로 마녀에게 갖다 던져준다. 당해봐야 알지?”

“김식이 눈깔 돈다. 진짜 던질 수도 있어.”

 

투닥거리는 주기도와 김식의 먹이사슬 관계에 서경후가 말을 보냈다.

 

"하긴 남자화장실 청소해 준다고 들어왔을 땐 나도 놀랐어."

 

"그 여잔 미쳤어."

 

김식이 단언하듯 말했다. 여느 학교에나 있는 이상한 선생의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밤은 한걸음 더 깊어졌고 소주병은 빠른 속도로 빈병이 되었다.

 

“어떻게? 반 수 할 꺼야?"

"하긴 해도 저 새끼 있는 데는 안가 . “

김식이 쌀벌한 미를 자랑하는 주기도를 향해 손가락 욕을 날렸다. 그러다 제 혼자 픽 하고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미친 여자 때문에 인생을 걸긴 그렇잖아."

"학교에서 재밌는 걸 하나 찾았어. "

 

김식이 소주병을 들어 앞에 세 명의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너네 새끼들 덕분에 삼년이 아주 재밌었다.”

 

이를 갈듯 으드득 한자 한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래서 지금 빚 갚잖아. 아주 지독한 시키… 미친시키… ”

 

서경후가 제일 먼저 소주에 지고 테이블위로 쓰러졌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주기도가 김식의 잔에 소주를 채워주었다.

남은 세사람이 소주를 한병, 두병 …세병 빠르게 비웠다.

“길고양이 하나를 주웠는데 말이야 … …튀었어.“

“그런데 관심 있었어? ”

또다시 비어있는 김식의 잔에 소주가 채워졌다. 뒷 테이블에 빼곡이 소주병이 열을 지어졌다.

 

“고게 좀 다쳤는데 경계심도 많고 ….”

 

머리가 반쯤 꺽어져 테이블과 박치를 할까 말까 하는 주기도와 아직도 꽂꽂한 허리를 한 한정우.

“보통 걔들도 출몰지역이 있지 않아. 걔들은 경계심이 많아서 다시 잡기 힘들텐데.”

“그럼…?”

 

“뭘 고민 하냐? 마녀가 하던 거 있잖아. 먹이로 유인해야지. 아무리 경계심이 많아도 먹이를 주다보면 친해지게 되어 있거든. 미친 김식이 빼고는 ”

 

주기도가 저처럼 말했다.

“ 잘 해야 돼. 한 번 섣부르게 잡으려다 놓치면 경계심만 더 심해질껄.”

 

이번엔 한 장우가 심각한 얼굴로 대답해 주었다.

 

“주워다 어따 두게? 우리는 그 집에 데려가주지도 않는 주제에.”

“너 같은 악마새끼를 집에 어떻게 들여.”

“치사한 놈. 아주 지 꺼는 꽁꽁 숨기지.”

 

취기에 버티던 주기도가 테이블위로 머리가 고꾸라졌다.

 

“젭에 데려가게? 어른들 아시면 싫어하실 텐데….”

“애가 위장술이 제법 좋아. 감추기엔 딱이지 .”

김식이 딱 잘라 말했다.

새벽 어스름한 빛 아래 다친 손을 들고 앉아 있던 마른 그 등을 떠올렸다.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그 등을. 일단 목줄을 달아야지.

“한번 내 손에 들어온 건… 내꺼지.”

김식의 눈빛이 위험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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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저는 여기까지가 대략 일권 분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이책으로 나온다면 말이지요.


피노키오의 꿈에서 빨간 눈을 하고 찾아온 김식의 사정과

경계선에서 빨간 눈을 하고 온 김식의 사정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주기도(아,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드는....)

가 가져온 빨간책에 어떤 내용이 있을지 

결국 저 책을 본 김식은 눈에 핏줄이 터져 버린다는....


오래된 거짓말에서 건호의 시점이 너무 적다고 해서

이렇게 김식의 관점을 적어봤습니다.


이번 파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처먹어. 입니다. 



악마같은 얼굴을 가진 주기도와 (가학성을 가진)

단정한 군인같은 한장우의 BL도 한번 써보고 싶다는... 쿨럭.



푱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