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2학기가 시작되었다.

 

두 달여 만에 한껏 게으르게 지내다 돌아온 내 방은 뜨거운 여름을 지난 흔적이 혹독하게 새겨져 있었다. 방은 사람이 살지 않는 다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벽을 타고 올라온 곰팡이가 올라오고 구석구석 거미줄이 집을 만들어 놓았다.

 

뒷집과 연결되는 담에 이불을 내다 널었고 벽을 닦고 청소를 하는 데에만 이틀이 걸렸다. 이상하게도 힘들지 않았다. 햇살과 게으름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온 것처럼 힘이 났다.

맑은 가을하늘 만큼 마음이 명쾌했다.

 

시선이 자꾸 따라왔다. 학교 가는 길 어느 한 가운데서, 혹은 강의실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문득. 혹은 공강 시간에 게으르게 볕 바라기 하고 있을때도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좌우로 살펴보면 특별히 이상한 건 없었다. 다시 하던 것을 계속하려 치면 이상하게도 시선이 따라왔다.

 

 

학생식당의 메뉴는 그다지 다양하지 않았다. 일단 오전 열시부터 네시까지 식사시간과 상관없이 기본메뉴인 라면을 판다. 전날 과음을 한 학생들에게 해장하기 좋은 메뉴이다. 인기 있는 메뉴는 적당히 달짝지근하고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먹을 수 있는 한 그릇 요리 정도다. 짜장밥, 카레밥, 하이라이스가 대략 순번을 정한 것처럼 나오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백반이 나온다. 지방에서 올라온 그저 돈 없는 학생들에게 학식의 저렴한 가격은 몹시 매력적이었다.

 

나는 짜장면을 먹지 않는다. 짜장 밥이 나올 때면 메뉴판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멀리서부터 양파 볶는 그 특유의 냄새를 코가 알아채기 전에 세포가 먼저 알아챘다. 그런 날은 학생 식당 안으로 아예 들어가지도 않았다. 밥을 굶고 공대관 근처 벤치에서 게으르게 앉아 있었다. 그런 날에도 문득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학생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후끈한 습기와 요리냄새와 사람의 냄새등이 훅 끼쳐왔다. 오늘도 학생식당 메뉴는 백반이다. 맛없기로 유명한 만큼 학생식당안의 밀집도는 널널했다. 오전 수업이 없는 날이라면서 늑장을 부리며 나오겠다던 현주가 먼저 도착해서 내게 손짓했다.

 

“인경.”

 

오늘도 무릎길이의 하얀 넥 카라가 달린 네이비 원피스에 까만 구두까지 예쁘게 단장한 현주가 나를 불렀다. 이미 그 옆에 이지수도 함께였다.

 

학생식당 안에 테이블을 미리 잡아놓고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활짝 웃는 표정이 가을 코스모스만큼 예뻤다. 느긋이 앉아있던 이지수가 나에게 끄덕하며 아는 체를 했다.

 

“이리 와.”

 

짜장밥이 나오지 않는 날에는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식당에 혼자 앉아 밥을 먹을 때면 같이 먹을 사람이 나타났다. 늘 같은 시간에 가는 것도 아닌데 꼭 일부러 맞춘 것처럼 앞자리에 사람이 나타났다.

가장 많이 만난 것은 김식이었다. 내 시간표를 꿴 것처럼 식판을 받아 앉았으면 곧 김식이 나타났다. 내 앞에 무뚝뚝하게 식판을 내려놓고 묵묵히 밥을 같이 먹고 난 후 내 식판까지 치워주고는 사라졌다.


또 어떤 날은 뒤늦게 이지수가 나타나면 의자 하나 건너 앉아 일행이 아닌 듯 일행처럼 앉아 식사를 했다.

이지수와 먼저 밥을 먹는 날에 김식이 늦게 나타나면 내 앞에 마주 앉아있던 이지수가 후다닥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그럴 때마다 김식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으나 별 말 없이 무뚝뚝하게 앉아 밥을 먹었다. 이상하고도 특이한 점심시간이 이어졌다.

 

왜 그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두 사람 모두 내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처음엔 두 사람이 내게 보이는 호의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어색했다. 두 사람은 아무것도 원하는 것도 없고 특별히 말을 걸지도 않았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한번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자 점차 익숙해졌다. 나도 나름대는 고작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빼 이지수와 김식에게 내밀어주었다. 식판만 치워주고 훌쩍 사라지던 김식도 이지수도 내가 내민 200원짜리 커피까지 마시고 자리를 떴다.

 

춘천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와 언제 올거냐고 닦달하던 것과는 달리 내게 별다른 말도 요구도 없었다. 나는 어떤 행동을 돌려줘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아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셋이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서울에 도착한 다음날 만난 현주는 살이 올랐다고 좋아했다. 그리고 오늘 쫌 만 더 찌워보자며 어머니 냉장고를 털어왔다.

 

커다란 삼단 찬합을 사이에 두고 현주와 이지수가 마주 앉아 있었다. 나는 현주 옆에 앉았다.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을 가리키며 내게 손짓했다.

 

“우리가 먼저 밥도 받았어.”

 

은색 식판에 하얀 밥과 김치만 썰렁하게 놓여져 있다.

 

“안 무거웠어?”

“어, 교문까지 택시타고 왔어.”

“난 저 찬합 봐도 배부른 것 같아.”

 

이지수가 까만 바탕에 은색 클로버 모양 자개장식이 바람에 날리는 화려한 문양의 현주의 3단 찬합에 벌써 기가 눌린 듯 했다. 그 찬합은 명인 몇호 쯤 되는 사람이 만든 것처럼 화려하고 묵직하고 딱 봐도 비싸 보였다.

“무려 …삼단이야.”

“나도 저 찬합 처음 봤을 때 그랬어. 어마어마했지.”

 

내 대답에 현주가 가볍게 눈을 흘겼다. 처음 현주가 고등학교 교실에 저 찬합을 갖고 왔을 때 교실 안이 난리가 났었다. 시끄러운 여고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구경하는 진풍경이 일어났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 찬합의 모양에 먼저 기가 질렸었다. 지금은 현주 어머님의 과한 취향도 익숙해졌다.

“그럼 연다. 두구두구구”

 

나와 이지수가 기대에 찬 눈으로 찬합을 바라보았다.

장난끼 가득 찬 웃음으로 현주 역시 마술사가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듯 천천히 찬합의 두껑을 열었다.

 

“우와! ”

“와아….”

 

나와 이지수가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열 지어 누워있는 잘 구워진 떡갈비에 잣가루까지 뿌려져 있었다. 임금님 수랏상에나 오를 것 같은 고급스러운 모습에 입을 벌렸다.

 

“먹기 아깝겠는데….”

“자 다음꺼 또 연다.”

 

현주가 으쓱 하더니 떡갈비가 든 찬합을 들어 옆으로 내려놓았다. 아랫단이 드러났다. 고급스러운 전이란 전은 다 들어있는 듯 예쁜 색깔의 전이 정갈하게 누워있었다. 육전, 표고버섯전, 초록과 붉은기가 도는 두가지색 연근전에 깻잎전까지 솜씨란 솜씨는 다 들어있는 것 같았다.

나와 이지수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

 

“나 밥 세공기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잠시 후 이지수가 말했다.

 

“밥을 왜 많이 먹어. 그냥 전만 먹어.”

 

현주가 똑 부러지게 대꾸했다.

 

“저 마지막 단에 뭐가 있을지 겁난다.”

 

그리고 나는 뭐라 칭찬 할 말을 찾다 포기하고 그냥 말했다.

이지수는 도깨비불에 홀린 듯이 표정으로 현주의 찬합을 보았다. 기대에 찬 눈으로 젓가락을 손에 들고 있었지만 감히 찬합 가까이 댈 수 없는 것 같았다. 나와 혹은 김식과 셋이 있을 때는 무겁게 침묵하더니 오늘은 여고생마냥 신나는 표정이었다.

 

“자, 이제 마지막 단이다. ”

 

현주가 마지막 찬합을 열었다. 찬합의 자개 색깔과 비슷한 전복 껍질에 칼집을 넣어 노릇노릇 잘 구워 올린 전복구이다.

 

“어머님, 진짜 멋지시다.”

 

찬합의 모양부터 찬합에 담은 모양새까지 ‘으리 으리 삐까번쩍’이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음식이었다.

 

“이렇게 예쁜데 어떻게 먹지? 너 맨날 이렇게 먹고 사는 건 아니지?”

“할아버지 제사였어.”

“너네 할아버지는 대단한 분이시구나.… 근데 이걸 어떻게 먹냐.”


의자에서 엉덩이를 반쯤 떼고는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은밀한 비밀문서를 몰래 읽는 것 처럼 진지하게 찬합을 내려다보았다. 자랑스러워 하는 현주와 지나치게 화려하고 엄청나 보이는 음식에 기가 죽은 나와 이지수가 잠깐 동안 세 칸의 찬합을 감상했다.

 

“먹자, 그래봤자 먹으면 똥 돼. ”

 

다시 침묵 후에 내가 거침없이 말했다. 가끔씩 현주네 음식을 받아 먹어봤지만 이번 것은 최강이었다.

 

“야아….”

현주가 내 옆구리를 툭하고 밀었다. 용수철처럼 잠깐 밀렸다 다시 돌아왔다.

 

“어머님 솜씨는 볼 때마다 적응이 안된다.”

“그래, 어차피 먹으려고 만든거야. 자아, 먹어보자고.”

 

현주가 굳은 결심을 하고 현주가 찬합과 한 셋트인 것 같은 비단주머니에 감싸인 나무젓가락을 꺼냈다.

 

“그건 또 뭔데?”

“가운데 두고 덜어가라고.”

“헐…우린 맨손으로 집어 먹어도 괜찮은데. 우린 야생에서 살았나보다.”

 

현주가 시범으로 고급 진 자개 장식 나무젓가락으로 우리 식판에 떡갈비를 하나씩 먼저 얹어 주었다. 이지수와 나와 눈이 잠깐 마주쳤다. 우린 굳은 결심을 하고 잣가루가 솔솔 뿌려져 있던 떡갈비를 한입씩 베어 물었다. 입안에서 육즙이 퐁하고 터졌다.

 

“음, 맛있어. 나, 이런 거 처음 먹어봐.”

“직접 하신 거 아니야, 늘 맞춰 오시는데 있어.”

“뭐 그래도 이런 퀄리티를 찾아내신 것도 실력이지. 너는 진즉부터 먹었던 거지.”

 

떡갈비를 맛본 이지수가 나에게 물어보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현주가 날라주어서 어머니의 음식 사는 솜씨를 익히 알고 있다.

 

“몇 번. ”

“니네랑 있으니 재밌어.”

 

이지수가 정말 즐거운 듯 웃었다.

현주가 이번에는 육전을 하나씩 식판위에 올려주었다.

 

“감질난다. 그냥 많이 많이 덜어줘.”

“나물 반찬은 쉴 것 같아서 뺐어. 많이 먹어.”

 

전복구이도 식판에 올려주면서 현주가 예쁘게 웃었다. 전복구이의 만족스러운 맛에 셋이서 눈을 맞추며 음식의 퀄리티에 흐뭇하게 웃을 때 철컹 하며 이지수 옆으로 식판 하나가 무심하게 놓여졌다.

 

현주가 정지화면처럼 딱 멈췄다. 안그래도 큰 눈이 더 동그래졌다.

이지수가 화들짝 놀랐다. 자신의 식판을 우리쪽 방향으로 밀더니 다람쥐처럼 빠르게 일어나 나와 현주가 앉은 방향으로 건너왔다.

김식이다.

셋이서 작당모의를 하듯 머리를 모으며 감싸고 있던 현주의 화려한 찬합이 김식의 시선에 드러났다.

 

“뭐하나 했더니…참 나, 너 아주 의자왕이다.”

 

한 줄로 나란히 셋이 앉은 모습을 스윽 훑더니 방금 전 이지수가 앉았던 자리 옆에 풀썩 앉았다. 불쌍하게도 김식의 식판에 맛없는 된장국과 비린내 나는 생선조림이 얹어있다. 한상 가득 펼쳐놓은 화려한 현주의 찬합과 밥과 김치만 얹어있는 우리의 식판은 남극과 북극만큼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건 진상품이냐?”

 

턱으로 화려하고 요란한 차림새를 한 찬합을 가리켰다.

 

“쫌 무서워.”

시뻘건 눈을 하고 나타난 김식에 대한 기억이 강렬한 현주가 잔뜩 얼어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 안 물어.”

 

나도 현주 귀에 속삭여 줬다. 하지만 현주의 목소리도 내 목소리도 다 세어 나왔다.

쪼르르 급하게 자리 이동을 한 이지수가 둘의 대화에 억누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좌 청룡 우 백호도 아니고 겨우 좌 양현주 우 이지수 이게 내 위치다. 의자왕까지야?

 

“뭐래? 꼴랑 두명 밖에 없는데 의자왕은 무슨…지는?”

“나… 뭐?”

“저 쪽에 너 아는 애들….”

 

난 턱으로 김식 뒤쪽 두 테이블 옆쪽에 무리지어 앉아 있는 여학생을 가리켰다. 김식도 내 시선을 따라 몸을 틀어 뒤편을 쳐다보았다. 김식이 우리 테이블에 앉을 때부터 우리를 주시하던 무리들의 긴장한 어깨가 느껴졌다.

“재들이 자주 너 얘기 해.”

“맞아.”

 

이지수가 내말에 추임새 장단 맞추듯 한마디 보탰다.

김식이 미간이 짜증스럽게 좁아지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오티 날, 나 아냐고 대뜸 말 걸었던 때처럼 그들 테이블로 바로 갈 기세다.

 

“애들 겁주지 말고… 앉아.”

 

김식의 식판에 떡갈비 하나를 얹어 주었다. 내 목소리와 의외인 내 행동에 잠시 옆쪽 테이블과 식판을 가늠하더니 스르르 자리에 앉았다.

 

“아주 제대로 진상품이네.”

 

식판에 올려진 떡갈비와 화려한 찬합을 번갈아 보더니 김식이 툭하고 내뱉었다.

 

“먹어.”

 

김식과 시선이 마주쳤다. 또 뭔가가 틀어진 듯한 눈빛이다.

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김식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잠깐 동안 줄다리기처럼 시선이 팽팽하게 얽혔다.

내 등 뒤로 현주가 몸을 스르르 기울리더니 이지수를 어깨를 톡톡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지수도 김식의 시선을 피해 내 등 뒤에서 현주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너도 저 사람 잘 알아?”

“가끔? 같이 점심 몇 번 먹었어.”

“아아~ 인경이랑 같이?”

“어.”

 

목소리를 낮춘다고 했지만 두 사람의 대화소리는 다 세어나왔다.

나는 아직도 김식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김식도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근데, 왜? 왜 의자왕이라는 건데?”

 

또 현주가 이지수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예 내 등 뒤에서 서로 크로스 하듯 잔뜩 몸을 기울여 한 몸이 될 참이었다.

“너랑 나. 궁녀…쯤? 이라고…”

"아아!“

 

다시 작은 소리로 이지수가 설명해 주자 현주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저 사람… 인경이 말 왜 잘 들어?”

 

이번엔 이지수가 대답 못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다 들린다.”

 

김식이 이지수의 대답 대신 말했다. 현주가 얼른 몸을 바로 세우고 앉았다. 이지수는 느리게 몸을 세우고 앉았다. 군기 잡는 것도 아니고.

마치 남북회담처럼 3대 1로 팽팽하게 밥도 못 먹고 대치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얽힌 시선을 끊었다. 이대로라면 밥도 못 먹고 체할 판이었다. 현주어머님의 화려한 나무젓가락을 들고 김식의 식판에 육전과 표고버섯 전을 올려주었다.

 

‘먹어.’

 

입모양으로 소리 없이 권했다.

김식도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숟가락으로 밥을 크게 퍼서 입에 넣었다.

그게 뭔가 웃겨서 피식 웃음이 났다. 평상시처럼 아무 대화 없이 묵묵한 식사시간이 되었다. 현주는 어색하게 이지수는 이제 익숙한 듯 김식은 살짝 삐뚤어져서 밥을 먹었다.

김식의 식판위에 전복구이 하나를 올려주었다.

이지수에게도 현주에게도, 김식의 눈치를 보는 두 사람에게도 하나씩 올려주었다.

내가 써버가 된 것처럼 화려한 찬합의 화려한 반찬을 화려한 나무젓가락으로 세 사람에게 골고루 전도 올려주었다.

처음엔 현주의 요란한 요리를 안 먹으려 버티더니 비린내가 나는 생선조림을 한입 먹더니 포기한 듯 떡갈비를, 전복구이를 먹기 시작했다.

 

또 김식의 식판위에 색깔이 다른 연근전도 두 개 올려주었다.

잠깐 다시 눈이 마주쳤다.

“편식하지 마.”

 

처음부터 찬합 속 반찬 같은 것엔 관심이 없는 김식에게 눈싸움을 하면서 하나씩 건네어 주었다. 이상하게도 하나씩 식판위에 올려 줄때마다 김식은 어쩐지 기분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조금씩 조금씩 세사람 식사 속도에 맞춰 날라주다보니 그 많던 양이 바닥을 드러냈다.

현주가 이지수를 또 손으로 톡톡 건드렸다. 또 둘이서 내 등뒤에서 크로스를 했다.

 

“근데 아까 너 왜 이쪽으로 자리 옮겼어?”

“나란히 앉아있으면 내가 여친이라고 소문날까봐. 아까 개들. ”

“뭐야… 그게?”

 

이지수의 대답에 현주가 키득거리고 웃었다.

“나도 나도. 인경이 여친이라고 소문났어.”

“나한테 인경이 새여친이냐고 쟤가 그랬어.”

“아아 그래서 의자왕이라고 한거구나.”

 

이지수가 현주에게 이르자 뒤늦게 현주가 김식의 농담을 이해하고 끄덕거렸다.

김식이 이번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 왜?”

“너 밥 사. 알바비 받았다면서?”

 

한여름 매미소리 가득한 춘천 길바닥에서 말한 것을 김식이 꺼냈다. 한달이 되도록 아무말 없기에 잊은줄 알았다.

 

“알바? 너 쫄병 과외 한거? ”

 

현주가 내 등뒤쪽에서 크로스를 풀고 몸을 앞으로 내밀고 김식의 말을 가로채고 아는 체를 했다.

 

“과외는 알겠는데, 쫄병은 뭔데? ”

 

이번에는 이지수가 김식이 말을 가로 막으며 몸을 앞으로 내밀며 내 얼굴을 보고 물었다.

이제껏 호기심을 드러내 질문 같은건 한적이 없었었다. 오늘은 아마 현주가 옆에 있어 여고 시절로 돌아간 듯 신난 것 같았다.

 

“춘천에 가면 쫄병 몇 명 있대. ”

 

이번엔 현주가 나를 사이에 두고 몸을 앞으로 내밀어 이지수를 바라보았다. 이지수도 몸을 한껏 내밀어 현주와 눈을 마주쳤다.

 

“뭐…남자?”

“고2래.”

“이쁘겠네. 고3을 지나기 전이면 세상 모든 사람이 이쁘지.”

뭐라 말을 하려던 김식이 입을 닫고 이지수에게 설명해 주는 현주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몇 명이나 있다면… 진짜 어릴때부터 의자왕이 맞네.”

 

이지수가 놀리듯 말했다. 현주가 까르르 웃었다.

 

“암튼 우리도 끼워주는거지 ”

 

“내가 선약이야. ”

 

유치하게도 이번엔 김식이 잘라 말했다.

 

“뭐 한턱 내는거면 닭,소, 돼지 중에서 뭐로 할까? ”

 

이지수와 현주가 엉덩이를 반쯤 들고 앞쪽으로 몸을 낮추더니 나를 사이에 두고 둘이서 의논을 시작했다. 김식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척 했다.

 

“닭은 안돼, 일 년은 안 먹어도 될 만큼 먹고 왔어.“

 

내가 말했다. 여름내내 엄마가 삶아주던 닭냄새가 아직도 위장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셋은 김식의 의견 따윈 상관없었다. 또 눈이 뾰족해져서 얼른 식판위에 마지막 남은 육전 하나를 더 얹어 주었다.

 

“그렇게 따지면 소도 빼야지. 지금 먹었잖아.”

“그럼 돼지로 가야하나?”

 

이지수와 현주가 진지한 표정으로 쓸데없는 토론을 시작했다. 앉은 자리에서 김식에게 겁을 먹었던 게 불과 몇 분 전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의 태세변화였다.

 

“너 수업 몇시에 끝나는데? 시간잡자.”

“나 다섯시쯤이면 될 거 같아.”

“그럼 이따 다섯시에 다시 봐.”

“근데 이 찬합은 어떻게 할거야? 들고 다닐 수 있어?”

“다 비웠는데 뭘. 별로 안 무거워.”

앞에 앉은 김식 따위는 없는 것처럼 계속 셋이 대화를 이어나가자 김식이 벌떡 일어섰다.

 

“다 먹은거지?”

 

우리 앞에 놓여있는 식판을 익숙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식판 네 개를 한꺼번에 들고 정리하러 간 김식의 뒷모습을 보고 이지수가 말했다.

 

“근데 너 이제 무서워?”

“인경이가 괜찮다고 했잖아. ”

 

이지수가 현주에게 묻자 현주가 깔끔히 정리하며 말했다.

너무 일상적인 대화 속에 내가 앉아 있어, 너무 평범한 상황 속에 내가 있어 이상하게도 자꾸 웃겼다. 뿌루퉁한 훌쩍 커서 잘 보이는 김식의 뒷통수도 웃겼다.

 

“진짜 이따 가는 거지?”

 

내가 물었다. 그런데…

“난 암만 생각해도 쟤가 질투하는 거 같단 말이지.”

나와 같이 김식의 뒷통수를 보던 이지수가 뜬금 없이 말했다. 현주도 갸웃하면서 김식의 뒷통수를 쳐다보았다.

질투는 무슨? 뭐가 있어야 질투를 하지.

“우리도 찬합정리하자.”

나는 빠르게 말을 돌렸다.

그런데 이지수의 그 말이…그게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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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현주가 건호를 만나러 도시락 들고가던 날이 생각났습니다.

 저 화려한 자개 찬합에 음식을 싸온 해맑은 현주를 보는

건호의 기분은 오늘의 인경과 이지수 같지 않았을까?

문득 생각났습니다.




푱이가


dupiyongsta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