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 정류장 앞에 택시 한 대가 섰다.

뒷문이 열리더니 빼꼼,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예쁘게 반달 눈을 하고 웃더니 손짓을 했다.


“이거 받아줘.”


아직 하차 하지 않은 현주가 뒷문으로 짐을 내밀었다. 하나, 둘, 셋, 넷.

커다란 비닐봉지에 혹은 튼튼한 비닐 가방에 가득가득 담긴 짐을 덥석덥석 잡아 나를 향해 건네주었다. 급한 대로 길가에 내려놓으니 작은 가방 하나만 맨 가벼운 몸으로 현주가 택시에서 내렸다.

오늘도 말갛게 밝은 얼굴로 현주가 반갑게 웃었다. 그리고 갑자기 내 등 너머 이쪽저쪽을 슬쩍 슬쩍 살폈다.

택시가 남기고 난 매연을 맡으며 현주의 돌발 행동을 지켜보았다.


“오늘은 그 사람 없지? ”

‘그 사람?“

“키 크고 무섭게 생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속삭였다.


“미.친. 김.식. 말이야.”

내가 김식의 손에 끌려 오토바이를 타고 간 날 이후 처음 만났다.

“없어. ”

“다행이다.”


현주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과장되게 큰 숨을 쉬었다. 그날 나를 쭐래쭐래 따라오던 현주의 표정이 떠올랐다. 걱정과 호기심이 혼재된 그 얼굴이.

 

“너 괜찮은거지?”

현주가 빠르게 내 두 팔과 두 다리를 스캔했다. 그날 둘이 나눈 노골적인 대화를 들었음에도 김식을 살인자 정도로 여기는지 피식 웃음이 났다.


 

“이거 다 뭐야?”

“필요할거 같은 게 자꾸 늘어서. 어디로 가면 돼?”

내려놓은 짐 덩이 중에 양손에 하나씩 잡더니 현주가 물었다. 나도 나머지 두 개를 들었다.

“좀 걸어야 해.”

현주가 택시를 타고 올 줄 알았다면 좀 더 길을 위쪽으로 말해줄걸 그랬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하숙생과 자취생들이 거주하는 곳은 내내 언덕길이다.

언덕을 따라 학생들을 위한 원룸 혹은 하숙집이 빼곡이 들어서있다. 길도 좁아 차들이 조심스레 달려야 하는 곳이다.


살림을 하는 안주인의 노동력을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에게 제공하면서 쏠쏠한 돈벌이가 되었다. 그래서 이 골목의 집들은 쪼개고 쪼개고 쪼개어 방을 만들고 또 만들어 벌집 같은 기이한 형태가 많았다.

 

 

10분쯤 걸었을 때 현주에게서 불평이 터져 나왔다.

“학교랑 가깝다며? ”

“학교 갈 땐 내리막이잖아. ”

현주가 내 대답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헤 벌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못 본 척 짐을 추어 올리고 다시 걸었다.

 

5월 한낮의 햇살에 언덕을 등정하는 길은 숨이 차고 땀이 맺힐 정도로 힘들었다.

“멀었어?”

“다 왔어.”

겨우 5분 지났을 때 다시 현주가 물었다.


“헥헥, 힘들다. 멀었어?“

“다 왔다구.”

나름 큰길이란 곳을 지나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차량 두 대가 나란히 지나기엔 좁은 골목과 골목이 엉킨 길 앞에 현주가 섰다.


“여기야?”

손바닥을 파고드는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긴 한숨을 쉬었다. 나의 집 구하는 실력을 가늠하는 듯 나름 진지하게 눈 앞에 나타난 집을 탐색했다.


본다고 아나?

정면에서 볼 땐 멀쩡한 삼 층짜리 집이었다. 맨 위 삼층의 방은 처음 지어졌을 때는 없던 뭔가 이어 붙인 조금 이질감도 있었다. 그러나 언덕길 오르는 내내 기이한 방도 많았기에 그 정도는 괜찮았다. 부동산에서는 이집 주인이 공무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믿을 수 있다며 그 점을 특히 강조했었다.

혼자서 오롯이 세상 속으로 나온 첫발에 보증금을 안전하게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잇점이었다.

 

“음…괜찮은데? ”

품평회를 마친 듯 현주가 말했다.

나는 그저 피식 웃었다.


 

집은 남향으로 자리를 잘 잡았다. 하루 종일 햇볕을 바라볼 수 있는 괜찮은 구조였다. 내려놓았던 짐을 다시 챙겨들고 활짝 열린 녹색대문으로 현주가 기운차게 들어섰다. 그리고 맨 처음 눈에 바로 보이는 철제 현관문을 향해 걸었다. 널찍하고 단단해 보이는 철제 현관문은 중세 성처럼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쪽 아니야.”

나도 처음에 저 철제 현관문 안에 내 공간이 있을 줄 알았다.

현주가 멈춰 서더니 오른쪽으로 가파르고 좁아 보이는 계단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일층이라며? ”

“이쪽”

 

나는 중세 성과 같은 단단한 현관문도 좁고 가팔라도 위로 올라가는 계단도 얻지 못했다.

건물 왼쪽으로 옆집 담장을 따라 집을 옆으로 돌아갔다. 집을 끼고 깊숙이 들어갔다. 옆집 담벼락과 약 일미터 정도의 공간이 남은 그곳을, 건물 그림자가 드리워진 그곳을 현주를 데리고 걸었다.

 

 

그리고 뒷마당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잡초밭이 나타났다.

“여기 방이 있다고?”

 

내 뒤로 따라오던 현주가 내 등에 콩 하고 부딪혔다. 그리고 뒷집 낮은 담을 바라보는 허름한 문을 발견했다.

내 방은 집 뒤편에 자리한 문 하나가 다였다. 그래도 나름 철문이었다. 주인집의 위풍당당한 요새 같은 철문은 아니지만 외부로부터 나를 보호할 회색 철문이었다.


 

“에에? 여기야?”

현주의 표정이 당황한 표정이다.

집 뒤편에 또 방이 있을지 상상도 못한 표정이었다.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열었다. 활짝 문을 열자마자 바로 방이 나타났다. 문 하나로 바로 밖과 안이 구분되는 형태였다.


다닥 다닥 붙은 옆집이나 뒷집이나 그 건너 옥상에서 눈여겨 본다면 누가 출입하는지 훤히 보이는 구조였다. 게다가 깜빡하고 신발을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면 비를 고스란히 맞거나 밤이슬을 맞아야 하거나 신발 도둑을 맞아야 할지도 몰랐다. 비를 가릴 처마도 신발을 벗어 놓을 현관도 없었다.


“들어와.”

안으로 먼저 들고 온 짐부터 들여놓았다. 그리고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는 현주의 손에 든 짐을 빼앗아 들었다.


 

“안에는 괜찮아.”

“…집이 이상해.”


내 방에 들어온 현주의 첫마디였다.

나도 안다. 집이 쫌 이상하다는 것을.

현주가 벗어 놓은 신발과 내 신발을 입구에 챙겨놓은 삼단 철제 수납장에 나란히 올려놓았다.

 

그래도 방은 괜찮은 것 같았다. 출입문 옆으로 보너스처럼 창문 하나가 있다. 그 옆에 한쪽짜리 싱크대 하나가 겨우 주방이라고 할 만한 곳이다.


 

내 짐은 키 작은 냉장고 한 대와 옷장, 책상, 삼단 서랍장, 헹거 책꽂이를 대신할 칼라박스 두개 가 다여서 벽을 따라 일렬로 늘어놓아도 좁지 않았다. 그나마 서경언니와 함께 살았던 살림이라 나름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싱크대 옆에 알루미늄 재질로 아래가 조금 틀어진 그 문은 시간의 흐름이 쌓여 낡고 비틀어져 있었다.

 

“저기는?”

“화장실.”

 

현주는 모른다. 방안에 딸린 화장실이 있다는 것으로 가격이 얼마나 비싸지는지.

화장실은 본 건물 밖으로 급조해 이어 붙여 만든 곳이었다. 급하게 벽을 만들고 쪽창을 내고 수도와 배수관을 끌어다 놓은 허술한 곳이었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언덕길 주변의 많은 집들이 하고 있는 형태였다.

 

뭔가 할 말이 많은 기색이다. 아니면 적당한 언어를 고르는 중이거나.


 

“보러 다닌 집 중에선 이게 제일 나았어.”

현주는 내 변명에 더 이상 이 집의 당황스러움은 말하지 않았다.

 

“저 문은 안전한거지? “

 

나는 문 안쪽에 동네 철물점에서 사온 안전 걸쇠를 가리켰다. 그리고 창문틀에 반밖에 없는 방범틀을 가리켰다.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현주가 그제야 표정을 풀고 웃었다.


 

“자, 짐을 풀어 봅시다.”

 

두 손으로 손뼉을 탁 치더니 현주가 바리바리 싸온 짐을 풀기 시작했다.

감각 좋은 현주 어머니가 집을 꾸몄던 하얀 광목에 자수 놓은 커튼도, 예쁜 레이스가 꼼꼼히 달린 쿠션, 맛있는 반찬도 심지어 망치까지 네 개나 되는 보따리에서 화수분처럼 계속 나왔다.

 

둘이서 한참 끙끙대며 사이즈가 맞지 않는 커튼을 보너스로 주어진 창문에 달았다. 고작 커튼 하나 달고 방에 대자로 누워 숨을 고를 때 바람이 살짝 들어와 커튼을 살짝 흔들었다.

현주가 아주 만족한 듯 소리 내어 웃었다.

“오오, 쫌..... 좋은데?”

 

다시 벌떡 일어나더니 벽에 못질을 해달라고 했다. 왜 망치를 무겁게 가져왔는지 그때 알았다. 비어 있는 벽에 못질을 두 개나 했다. 현주가 그 위에 고흐의 해바라기를 걸었다.

 

“돈 들어오는 그림이래.”

 

화가가 가난하게 죽었다고 들었는데 저게 어떻게 돈이 들어오는지 고심해서 쳐다보았다.

 

“엄마가 그랬어.”

내가 의심하는 눈초리로 쳐다보자 현주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그 옆자리에 알록달록 색감이 있는 액자 하나를 더 걸었다.

 

“이건 내가 그린 거.”

 

현주는 고흐와 나란히 걸린 본인 그림을 바라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한쪽 벽이 해결되자 현주는 한쪽짜리 싱크대 옆에 옹색한 화장실 문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

“안돼. 내 그림하고 안 어울려.”

 

 

뭔가 재는 듯 고심하더니 네 개나 되는 보따리 안에서 커다란 천을 꺼냈다. 그리고 다시 망치를 내게 내밀었다.

“두개 더 박아.”

 

결국 흉한 화장실 문이 보이지 않게 문 위에도 예쁜 천이 액자처럼 걸렸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현주는 저녁 늦게까지 내 방 꾸미기에 집중했다. 나는 그저 현주에게 내내 귀찮다며 툴툴거렸다. 다정하고, 미안해서.

서툰 내 방에 새로운 향기가, 알록달록한 색깔이, 다채로움이 생겨났다.

 

 

 

현주가 떠나고 난 방에 혼자 누웠다.

벽 너머에 소란스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중세 성처럼 단단한 철제문 안에 든 사람들의 평안하고 안전한 웃음소리였다. 선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

창문 너머에서 짜증 섞인 비명과 괴성에 가까운 욕설이 들어왔다. 뒷집인지 그 너머인지 알 수 없지만 비난과 책임을 전가하는 싸움의 소리였다. 선 안에 들지 못한 불안정함이 배여 있는 사람들.

 

 

김식의 여러 가지 취향이 섞인 옥탑방이 생각났다.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이고는 알바를 나갔던 김식은 밤이 늦어서야 돌아왔다. 난 둘이 경쟁하듯 갈비찜을 먹고 난 설거지를 하고 김식의 책곶이도 뒤지고 옥상을 탐방하기도 했다. 커다란 옷장도 열어봤고 깨끗하게 청소된 화장실도 살펴봤다.

 

그러다 넓은 매트리스에 잠이 들었다. 잠결에 언뜻 김식이 돌아오는 것을 알았다.

이번엔 너가 나랑 자 라고 호기롭게 말한 것과는 다르게 김식은 잠만 잤다.

내 등 뒤에서 깊고 안정된 숨소리만 메트로놈처럼 일정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도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에도 밥을 같이 먹었고 한가롭게 서로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다시 알바를 나갔다. 내게 특별히 무언가 요구하는 것은 없었다.

밥 때가 되면 같이 밥을 먹고, 또 잠이 오면 같이 잠만 잤다. 고작 두 밤 만에 김식의 시뻘건 눈이 점차 흐려져 까만 동자와 흰자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요일 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를 이 동네까지 데려다 주었다.

마지막까지 내가 튈까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내가 살고 있는 집 주소를 알아갔다. 나는 집 주소는 말했지만 집 뒤편에 내 방이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이 집 어디에도 배려 따윈 들어 있지 않았다. 목적은 철저히 돈을 번 다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서경언니와 엄마가 나에게 햇볕 드는 방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춘천 본가에서 그 흔하던 햇살을 얻기 위해 돈이 든다는 것을….. 

 지금 알았다. 





================================


꼬랑쥐- 

예전에 오래된거짓말 리뷰중에

 현주의 운동권 활동을 두고

정작 무산계급이었던 건호는 알바하느라 프로레타리아를 위한 활동은

하지도 못했을거라는.......



인경의 방을 어찌할까 꽤 고심했습니다.

-시대도 90년대 어느즈음이고


요즘은 누구나 방에 거실은 있는거 아니야? 라는 인스타? 글도 봤고

집안에 화장실이 몇개씩 있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암튼 그래서 늦었습니다. 



푱이가



dupiyongsta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