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혼자 사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깨끗한 수건이 늘 준비되어 있어 몰랐다. 속옷이나 양말도 언제나 뽀송뽀송하게 준비되어 있어 몰랐다. 누군가는 늘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붕대를 풀고 상처가 아물자마자 밀린 집안일을 해야 했다. 더 이상 깨끗한 수건이 없고, 더 이상 신을 양말이 없을 때야 비로소 서경언니의 잔소리를 인정해야했다. 난 그동안 서경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하루에 세 번씩 오는 끼니도 곤혹스러웠다. 밥을 먹어야 인간은 활동할 수 있는데, 그 끼니 자체가 번거로웠다.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아졌다.

고작 3월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나는 엉망이 되었음을 인정해야했다.

 

언니의 흔적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둘이 살던 집을 정리하고 나 혼자 살아가야 할 집을 구하기로 했다. 처음 둘이 살았던 단촐한 살림이 꽤 많이 늘어 있었다. 언니가 그리울까봐, 짐을 정리 하기로 결심했다. 언니의 흔적이 많이 묻은 짐은 춘천 본가로 보내고 단촐하게 꾸려 생존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이미 학기가 시작되어 학교 가까운 쪽에 혼자 살 집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 모든 일들을 서경언니는 지금의 내 나이 때부터 혼자 해냈던 일들이었다.

한심하고 멍청한 나를 마주해야 했다.

결국 비어있는 방을 잡아 급히 이사를 했다. 취향 따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냥 부동산에서 소개해주는 대로, 가깝다 하나만 믿었다.

그렇게 사월은 지나갔다.

 

 

가까스로 지각을 면했다. 뒷자리부터 채워진 학생들을 비집고 겨우 자리를 잡았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집에 현주를 초대하기로 한 날이다. 3월엔 오른손을 다쳐 필기도 못했는데 이제는 무슨 소린지 몰라 필기를 못하겠다. 반쯤 멍하니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이미 친해진 사람들이 모여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나도 가방을 정리하고 일어서려는데 누군가 내 옆에 와서 섰다.

 

“잠깐만. 얘기 좀 해.”

나에게 하는 소린가 싶어 주위를 둘러 보았다.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 이제 막 나가려는 사람들 사이로 내 옆에 당당히 선 사람을 쳐다보았다.


“나?”

“어, 너.”

조그맣고 눈이 동글동글 영리하게 생긴 여자가 내 옆에 당당히 섰다. 무슨 말을 하려나 기다리는데 잠시 말이 없다. 마치 나를 사람들 시선으로부터 가리려는 듯 등을 돌리고 서서 모두가 나갈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잠깐만.”

마지막 사람이 강의실을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도 종종종 걸어 출입문 쪽으로 갔다. 마치 밖에 누군가 있나 살피듯 두리번 거리더니 열린 출입문을 꼭 닫고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뭔가 비밀스럽고 은밀한 대화가 있는 냥 잔뜩 조심하는 기색이었다.


“이거 족보.”

탁하고 내 책상위로 복사한 종이 뭉치를 내려놓았다.

족보? 왜에? 나에게?

“그리고 이건 시험 날짜 나온 거. 과목과 범위.”


노란 포스트 잇 한장을 뜯어 착하고 족보 위에 붙였다. 똘망똘망한 눈을 크게 뜨고 단어 하나 하나 정확히 말하는 낯선 얼굴을, 난데없는 친절함을 황망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건 시험 대신 레포트로 대체. ”

또 한 장의 노란 포스트 잇이 착하고 족보 위에 땅따먹기 하듯 붙었다.

“더 이상 출석 놓치면 위험할걸. 그리고…”


 

어째 나 야단 맞는 건가?

대학에도 반장 같은 게 있는 건가? 생각했다. 마치 고등학교 교실에서 반장이 선생님 전달사항을 전하듯 특별한 감정 없는 말투였다.

당돌하고 거침없는 반장 같은 말을 건넨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도 또 무슨 말이 나올까 빤히 쳐다보았다.

 

“너 찾는 사람 있었어.”

 

강의실 안에는 둘 밖에 없는데 갑자기 목소리 톤을 낮게 낮추며 은밀히 말했다.

 

“키 엄청 크고, 무섭게 생긴 남자애가 몇 번이나 과사무실에도 왔다갔어. ”

 

비밀이라도 나누는 듯 작게 속삭이며 내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섰다.


“쫌 화가 난 것도 같았어. “

어차피 주변엔 우리의 대화를 들을 사람도 없는데 조심하는 기색이었다. 첩보작전 펼치는 과장된 초보 비밀요원 같아 피식 웃음이 났지만 참았다.

낯선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지키는 공간의 선을 이미 넘어 내 얼굴에 바짝 다가와 있는 모습이 지나치게 자연스럽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멀뚱히 쳐다보았다.


“오른손에 붕대감고 다니는 키 큰 여자애라고 묻던데. 너 맞잖아. 조인경.”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니 나를 아는 사람이 맞나보다.

 

“내가 지난 두 달 관찰해 본 바 보통 남자들은 너보고 그렇게 부르지 않아. 여자라고 먼저 밝히지 않는 이상.! ”

똑 부러지게 하나하나 지적하며 말하는 폼새가 나 야단맞는 거 맞는 거 같다.

 

“그냥 붕대감고 다니던 애나 그냥 남자인줄 알지. 일단 우리과 아니라고 했어.”

 

선거 유세에 나가 연설을 했다면 저 아이에게 표를 주고 싶을 정도로 전달하는 언어는 정확했다. 말이 어찌나 똑 떨어지는지 뉘 집 딸이 저리도 잘 자랐나가 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넌 누군데?”

내 느닷없는 질문에 상대방이 허를 찔린 듯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짓는다.

 

“나, 이지수. 너랑 같은 학교 나왔는데….”

아! 멋쩍어져 뒤통수를 긁적였다. 나에 대한 친절함은 아마도 같은 학교 동기라서 인가? 그런 거 치곤 과도하게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

별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쪽도 내가 못 알아 본것에 대해 딱히 상처 받은 얼굴도 아니었다.

 

“나도 현주랑 같이 일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 ”

갑작스런 친절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미안함과 함께.


“그래서… 뭐라고?”

“어떤 남자애가 계속 너 찾고 다닌다고. 난 우리 과에서 그런 애 못 봤다고 했는데 우리고등학교 나온 애들 중에서 너 아는 애 있을 거 아니야? 너네 쫌…”

이지수가 눈으로 내 모습을 슬쩍 흝어 보았다.


“ 눈에 띄였잖아. ”

“다 끝난 거지? ”

“어. ”

그 아이가 먼저 돌아섰다. 한참을 잔소리를 쏟아내고 개운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고마워.”

난 어색하게 뒷모습을 보며 겨우 말을 했다.

나도 가방을 챙겨 천천히 일어섰다. 책상위에 놓인 족보와 노란 포스트 잇을 들어 가방에 집어 넣었다. 과에서 완전 아웃사이더 인줄 알았는데 뜻 밖에 든든한 아군이 있었나보다.

또 늦었다. 현주에게 잔소리를 듣겠다 싶어 빠르게 일어섰다.

 

 


 

중앙 광장 쪽에 작은 행사가 있을 예정인지 몇 명의 사람들이 사물악기를 들고 모여 연습하고 있었다. 5월이 시작된 햇살은 지나치게 풍요로웠고, 봄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와 폭신한 솜이불처럼 부드럽고 나태한 날이었다.

 

조금 늦게 중앙 광장에 도착해 현주를 찾았다. 그늘 벤치 아래 기대여 한가롭게 앉아 있었다. 물장구를 치듯 두 발을 흔들고 있는 모습에 픽 웃음이 났다.

현주는 무릎길이의 예쁜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있었다. 큰 언니가 내게 사주었던 것과 비슷한 손바닥만한 가방, 긴 머리에 머리띠까지. 정말 딱 부잣집 공주님이다.

 

“또 늦어. 치.”

“오래 기다렸어? 다음 주 공동 과제가 있어서 그것 좀 의논하느라고.

적당히 거짓말을 지어내며 벤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조금 전 이지수와 있었던 일들을 적당히 숨겼다.

.

                       갱 갱 갱 개ㅅ 갱

 

한차례 연습이 끝났는지 어수선히 서 있는 사람 사이로 꽹과리 소리가 잠깐 들렸다.

뭐 하고 있었어? 눈 뜨고 자는 거처럼.”

“응. 저기, 저거. 꽤 재밌네. 저 사람들 축제 때 연습하나봐.”

 

뭔가 현주의 표정이 멍한 것 같다. 내가 아닌 좀 더 먼 곳을 보는 느낌이었다. 손가락을 들어 한창 사물놀이 연습하는 패거리를 가리켰다. 나를 기다리는 대신 다른 일이 있었다는 건 좋은데, 어딘가 좀 이상했다.

 

“저게? 난 시끄럽다 야.”

 

현주는 계속 시선을 사물놀이 준비하는 사람들을 쫒고 있었다.

 

“아직 수업 중인데도 있을 텐데 정말 제대로 신이 났네.

“어쩜 너는? 낭만이 없어, 낭만이.”

 

짧은 꿈에서 깬 듯 현주의 정신이 돌아왔다.

 

“너 머리 그만 잘라.”

3월에 바짝 자른 후 부스스 길어진 내 머리를 보고 현주가 말했다. 손을 뻗어 내 머리칼을 흐트렸다.

“지금 보다 더 짧게 자르지 마.”

“지금 눈 찌르는데…”

“앞머리 묶어 볼까?”


두 손으로 앞머리카락을 모아 어린 아기들 사과머리를 하듯 만들어 보더니 까르르 웃었다.

“이마가 아주 자알 생겼다.”

현주가 할머니 같은 소리를 다한다. 끌어 모았던 머리칼을 풀고 다시 예쁘게 만지며 정리해 주었다.

 

“애들이 자꾸 너보고 남친이냐고 놀린단 말이야.”

“고등학교 때 커플이라고 놀림 받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잖아.”

“그건 우리 여고니까 니가 여잔 거 애들도 다 알고 놀린거잖아. ”


현주가 잠시 말을 멈추고 잠깐 언어를 고르는 것 같았다. 그러다

 

“애들이 너 진짜 남잔 줄 안단 말이야.”

 

자신이 뱉은 말이 마음에 안든지 입술이 삐죽 내밀었다. 그 모습이 웃겨 크게 웃었다.

“왜 싫어?”

“나한텐 미팅 하자고 안 해 .”

“우유, 그게 서운했어요?”


현주의 예쁜 얼굴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현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꾸 남자친구 있으니까 빠지라고.”

 

이제야 아까 키 작고 딱 부러지게 말을 하던 이지수의 말의 의미가 정확히 왔다. 보통 남자들은 나를 손 다친 키 큰 여자애라고 부르지 않는 다는 말이…. 여.자.애라고.

 

얼른 가자. 점심 먹은 지 언제라고 벌써 배가 다 꺼진 것 같아.”

 

벌떡 일어나 현주를 재촉했다. 발로 토닥토다가 바닥을 두드리며 조급하게 재촉했다. 내 머릿속에 조금 전 들은 말들을 전환하려.

 

“빨리 해.”

 

현주가 딱 멈췄다. 내가 아닌 내 등 뒤의 뭔가를 본 듯 숨도, 움직임도 딱 멈췄다. 휙하고 고개를 돌렸다. 내 뒤로 갑자기 까만 그늘이 생겼다.

 

“너.”

 

키가 훌쩍 큰 남자가 성큼 다가와 내 뒤에 바짝 서 있다. 나는 현주쪽으로 몸으로현주를 막아서며 팔을 양쪽으로 뻗었다. 모양새가 어찌 되었든 갑자기 나타난 남자에게서 현주를 보호해야했다.

내 모습에 남자의 표정이 뭔가 어이가 없다는 듯 픽 비웃음을 흘렸다.


“찾았다. ”

현주가 아니라 나를 향한 말이었다.

내 팔 뒤로 현주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동그랗게 놀란 눈을 뜨고 나와 말을 하는 남자를 관찰하였다.

 

“너를 찾을게 아니라 여친 쪽을 찾을 걸 그랬나?”

삐딱하게 서서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현주 쪽을 흘깃거렸다. 그리고 내 오른손에 잠깐 시선이 스쳐갔다. 뭔가 확인을 하려는 듯.


“뭔데?”

당장 싸움이라고 할 기세로 사납게 물었다.

 

남자는 시뻘건 눈을 하고 있었다. 두 눈 모두 실핏줄이 터진 눈동자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서있는 내가 한참 고개를 올려야 할 정도로 키. 엄,청.크. 고.


“ 또 둘이 알콩 거리고 있을 줄 몰랐지.:


 

그리고 까맸다. 까만 티에 까만 바지에 까만 워커. 어쩐지 낯이 익은 것도 같고, 또 낮이 선 것도 같은. 그리고 익숙한 언어들.

.

 

“너 누군데?”

순간 남자의 미간이 뾰족하게 모였다. 내 말이 마음에 안 든 것 같다. 인상이 순간 사납게 보였다. 

무.섭.게. 생긴?


“김식.”

김식? 김…식!

머리 속을 빠르게 뒤적거렸지만 딱 히 걸리는 게 없다

남자가 내 표정을 눈치챘다. 내가 진짜 누군지 모른다는 것을.

남자의 눈썹이 위험하게 꿈틀거렸다.


“하, 그날 나랑 자자더니…”

교묘하게 말끝을 흐리는 것 같았다. 내 등위에 현주를 향한 언어였다. . 본인의 말이 어떤 효과가 나는지 확인을 하고 있는 것처럼.

“ 날 이용한 거야?”

 

낮은 어조였지만 강한 목소리였다. 시뻘겋게 핏줄 터진 눈으로 나를 삐딱하게 쳐다봤다. 화가 난?

 

“아, 뭐라는 거야? 조…까.”

손가락 욕을 날리려다 퍼뜩 생각이 떠올랐다.

-까는 건 어렵지 않은데…

호기롭게 담배 한 대를 달라고 했던 그 날.

손바닥에 남은 까스스한 머리카락의 감촉.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훌쩍 큰 키, 그리고 날선 눈매. 평범한 머리카락.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 찬찬히 쳐다보았다. 그때 익숙하게 눌러 쓰고 있던 모자가 사라져 있었다. 현주를 막았던 팔이 절로 뚝 떨어졌다.


“너….”

 

순간 남자도 내가 기억이 떠올랐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제 기억나?”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고 내 앞에 당당히 섰다.

“미친 김식?”

내 말에 남자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이번엔 너가 나랑 자. ”

히끅. 등 뒤에 현주가 급하게 손을 올려 입을 막았다. 우리의 대화는 너무 빨랐고 저속했다.

그 날로 끝난 건 줄 알았다. 내가 나를 버릴 때 노련한 바람둥이를 이용하면 끝 날 줄 알았다.


“그, 그건 ….”

그냥 나를 버린거였다. 버린 내가 다시 내게 돌아올 줄 몰랐다

내 표정이 어떤지… .  표정을 단단히 할 여력이 없었다. 아마도 우스꽝스런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자, 이제 어쩔거야? 삐뚜름하니 서서 두 팔로 팔짱을 낀 자세로 나를 압박했다. 더해? 등 뒤에 쟤를 두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도 현주를 뒤에 두고 이런 내 바닥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럼 한번 갚아주면 빚은 없는거다”

히끅.

현주가 곧 기절할거 같은 얼굴이다.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이 안스럽다. 아니 내 꼴이 더 안스럽나?

그렇게 나는 김식과 다시 만났다. 







꼬랑쥐-

오래된 거짓말과 교차된 지점입니다.

오래된 거짓말을 쓰던 당시에도 

현주가 진규 선배를 만나는 지점에

인경도 김식을 만나게 되는 장면을 염두에 두었는데


무려 19년만에 네 사람이 한 공간에서 만났습니다.


오래도 걸렸습니다. 



푱이가.



dupiyongsta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