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두 번째 키스는 아무 맛이 없었다.

 매끈한 혀가 입안으로 거침없이 밀려 들어와 혀를 희롱할 때 몸 위로 쏟아지는 남자의 체중이 무거웠을 뿐이다. 취기에 다시 울렁거렸다. 알콜과 니코틴이 한데 어울려 멀 리가 날 것 같았다.

 

“집중해.”

 

 입술과 입술을 맞댄 채 남자가 잔뜩 가라앉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남자의 움직이는 입술모양 그대로 내 입술도 따라 움직였다. 서툰 바람둥이처럼 내 돌발제안에 머뭇거리던 남자는 이제 노련한 바람둥이처럼 굴었다.

 

“집중하고 있는데?”

 

 냉큼 대답을 되돌리며 방금 남자가 자신에게 했었던 것처럼 혀를 내밀어 남자의 입술을 핥아 보았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욕망이라곤 한 푼어치도 묻어있지 않은 시선으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쿡쿡, 낮게 남자가 웃었다.

 

 커다란 남자의 손이 흐트러진 옷자락을 들어 올려 가슴을 찾아냈다. 커다란 손이 내 가슴을 감쌌다. 등이 조금 간지러운 느낌이 지나갔다.

 

“확인했지?”

“그러네. 있긴 있네.”

“너 손이 큰 거야.”


 넉넉하게 가슴을 감싸고도 남은 큰 손이었다.

 

“뭐 얼마나 대단한 걸 기대한 거야? 그 손을 다 채우려면 혼자 서지도 못할걸.”


 난 두 손을 만세 하듯 두 손을 머리위로 올려 가슴을 활짝 폈다. 내가 여성이라는 당당한 증거를 내밀었다.

 남자의 입술이 가슴을 베어 물었다. 너무나 직설적인 행동에 움쯜 놀랐지만 살짝 인상을 썼다. 남녀 간의 노골적인 행위 따윈 몰랐다. 가끔씩 현주가 들려주는 환상같은 로맨스만 들었을 뿐.

 

 내 기분 따위는 모르는 듯 이번엔 혀끝으로 유두를 살짝 핥았다.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 몇 번이고 혀를 내밀어 뾰족하게 고개를 든 유두를 희롱했다. 남자는 그것이 재밌는 듯 여러 번 반복했다. 가슴을 활짝 연 채로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았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살짝 머리를 들어 시선을 내리자 가슴을 탐닉하느라 정신없는 까만 머리통이 눈에 들어왔다. 손을 뻗어 머리통을 만졌다. 밤송이처럼 까쓸한 머리카락이 만져졌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촉감이 부드러우면서도 따가웠다. 그 느낌이 재밌어 키득거리며 웃었다.

 갑자기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다시 남자와 시선이 맞부딪혔다.

 

“재미없어?”

 

 나는 재빨리 도래 도래 고개를 저었다.

 어둠 속에서 다시 남자가 쿡 웃었다. 내 몸 위에 체중을 반쯤 걸치고 있던 남자가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잔뜩 긴장한 주제에….”

 

 남자가 혼잣말을 하듯 툭 내뱉었다.

 

“누가 긴장을 해?”

“허리 좀 들어봐.”

 

 바로 반격을 시작한 내 말을 무시하고 짧게 명령했다. 커다란 손에 단번에 바지가 벗겨졌다. 공중전화 박스 앞에서 길게 망설였던 것과는 반대로 신속하게 속옷까지 단번에 벗겨냈다. 그리곤 자신의 몸에 걸치고 있던 옷을 간단히 벗어냈다.

 남자의 맨 몸이 빠르게 드러났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보고 까만 눈을 한 채 말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는데…….”

“꽤 말 많네.”

 

 남자의 말에 빠르게 대꾸했다.

 손을 내밀어 남자의 가슴에 손을 댔다. 쿵쿵 심장소리가 손바닥을 통해 울려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부끄러워 하기는…….”

 

 이번엔 내가 그 말을 돌려줬다. 피식 웃는 것 같더니 남자의 체중이 다시 내게 실렸다.

 

 다시 입술과 입술이 만났다. 축축하고 온기를 가진 혀가 살짝살짝 허락을 얻듯이 입술을 핥더니 이내 입안으로 침입했다. 몸을 내리누르는 체중과는 또 다른 날카롭고 묵직한 무엇가가 허벅지를 불편하게 자극했다.


 마치 불덩이 같기도 한…….

 나는 끄응 낮게 신음하며 허리를 틀었다. 골반을 내리누르는 뼈가 아파왔다.


 

“너 뼈 아파.”

“네가 더 아파. 뼈다귀만 있는 주제에.”

 

 그런가? 잠깐 생각해보았다.

 

“다리 좀 벌려 봐.”

 

 나는 착한 학생처럼 말을 따랐다. 가장 깊은 붉은 속살에 단단하고 공격적인 그것이 와 닿았다 싶은 순간 그것은 거침없이 안으로 진격했다.

 

“아앗.”

 

 주저 없이 진격하던 남자가 내 비명과 같은 탄식에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최초는 무언가로 후려 맞은 듯 한 느닷 없는 고통이었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불편함이었다. 내 것이 아닌 것이 내 안을 차지하고 있는 낯선 이물감…. 그리고 몸을 내리누르는 건장한 사내의 무게와 체온. 모든 것이 불편하고 낯설었다.

 나도 모르게 몸을 틀었다.

 

“역시 처음이네.”

 

 남자는 내 작은 움직임에 무거운 신음을 하며 속삭였다.

 

“겁도 없이.”

 잠깐 움직임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몸 위로 무게만 내리누르고 있었다.

 

“…끝이야?”

 조심스럽게 묻는 내 질문에 남자는 대답 대신 내 귓불을 물었다 놨다.

 

“그럴리가…… 시작이지.”

 

 동시에 남자는 느리게 진격을 시작했다.

 내 몸을 달래려는 듯 느리게… 그렇지만 단호하게 진입을 시도했다. 하나로 꼭 맞닿은 두개의 몸이 같이 움직였다.

 최초로 비행기를 탄 비행사처럼 어지럼증을 느꼈다. 남자는 내가 비행기에서 떨어질 새라 어깨를 단단히 끌어안고는 진입과 후퇴를 하며 이끌었다.

 

 어느 순간 나도 떨어질 새라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드러난 맨살이 꽤나 단단했다.

 

 거친 숨소리가 고스란히 입술 위로 귓가로 머리카락 위로 떨어져 내렸다. 낯선 불편함과 이물감이 익숙해진다 싶을 때 남자는 내 위로 천천히 내려왔다. 한 치의 틈도 없이 꽉 맞물린 몸이 이제 다 끝난 거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처음 경험한 섹스는 잠깐의 고통과 불편함과 아릿한 피 냄새가 날 것 같은 단단한 근육의 맛만 기억에 남았다. 몸을 태울 것 같은 극렬한 오르가즘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활화산 같은 애틋함도 없었다.

맞닿은 낯선 남자의 체온이 불편하지 않을 뿐이었다. 나는 남자의 머리카락을 다시 살곰살곰 만졌다. 까스스한 감촉이 손바닥에 길게 남았다.

 나를 버리는 거창한 의식은 그렇게 끝났다. 

 어쩌면 0.1 그램쯤 가벼워졌을지도.



 

 

 

“아빠 보고 싶어, 아빠.”

“아빠를 지금 어떻게 봐.”

“싫어, 싫어. 아빠 보고 싶단 말이야.?”

 

 까만 어둠의 장막이 두껍게 내려진 깊은 밤, 며칠째 집에 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다 울음을 터뜨렸다. 떼를 쓰는 나를 달래려 엄마가 한껏 감정을 억누르며 설득하려 했지만 어린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냥 아빠를 보고 싶었다.

 어제도 그제도 아빠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은 들어오겠지. 종일 기다렸건만 아빠는 오늘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음식냄새 배인 커다랗게 믿음직스런 팔에 안겨 어리광부리고 싶건만 더 이상 아빠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까무룩 잠 속에 꿈을 꾸었다.

 내 첫 번째 상처를 만났다.

 어쩌면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

 잠든 눈꺼풀 위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눈물이…… 흘렀던 것도 같다.

 아주 오래 전 통곡하듯 서럽게 울었던 그 밤의 눈물이 다시 뺨으로 흘렀던 것도 같다.

 

“괜찮아 …… 쉬잇. 괜찮아.”

 

 아빠를 닮은 커다란 손이 부드럽게 등을 쓸어 내린 것도 같다.

 뺨 위로 흐른 한줄기 눈물위로 부드러운 입술이 조심스럽게 닿았다 떨어졌다.

 달래듯, 위로하듯, 부드러운 그 입술은 다정하고 따스했다.

 꼭 끌어안은 맞닿은 심장소리가 오래 묵은 상처위로 겹쳐졌다. 다시 까무룩 잠에 빠졌다.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무저갱으로 쿵 떨어지듯 놀라 퍼뜩 깨었다. 무서운 꿈을 꾼 것처럼 식은땀이 나왔다. 아직 내 몸의 반쯤 찬 술기운 덕분에 울렁거렸다. 누워있는데도 어지러웠다. 가슴께가 묵직하게 압박감이 느껴졌다. 내 몸을 감싼 무거운 팔을 천천히 밀며 몸을 일으켰다. 온 몸이 뻐근하고 삐그덕 거리는 것처럼 어긋난 기분이었다.


“으으….”

 낮게 신음을 흘리며 앉았다. 맨몸이다. 옆에 흘긋 보니 커다란 강아지 같은 남자가 내 쪽으로 몸을 튼 채 자고 있다. 하늘로 올올이 솟은 머리카락에 손바닥으로 느꼈던 촉감이 되살아났다.

 

 슬금슬금 매트리스를 벗어났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속옷을 겨우 챙겨 입었다. 흐린 빛 사이로 티셔츠로 찾아 입었다.

 두통이 찌르르 찾아왔다. 손에 상처보다 머리 한 켠이 더 무겁고 날카로운 통증이 왔다.

 

 

 흐린 새벽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보였다. 홀린 듯 가까이 창 가까이 가 멍하니 보고 앉았다. 한쪽 무릎을 올리고 무릎위에 팔을 걸쳤다. 아직 풀지 못한 붕대가 하얗게 눈에 들어왔다.

 

 

 서경언니는 웃는 얼굴로 떠났다.

“쫌만 서운해 주면 안돼?”

“안돼. 아니 싫어. 난 신나.”

 

 공항에서 언니와의 작별 인사때 야박하리만치 매몰찬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 후련한 기색이었다.

 

“빨래 밀리지 마.”

 난 붕대 감긴 손을 당당히 들어 보였다. 서경언니가 난장을 치던 그 밤의 내 저항을 떠올린 듯 이마를 찌푸렸다.

“쓰레기 정리도 제때 제때하고.”

 나는 또 다친 손을 들어 보였다.


“밥 굶지마.”

“노력해볼게.”

“정말 거지꼴을 하고 살지나 않으련지…원.”

 마지막 헤어지기 전까지 내내 잔소리가 쏟아졌다. 그렇게 후련한 얼굴을 했으면서도 또 미련이 남은 듯 걱정하고, 또 걱정하고.

그리고 나를 꼬옥 안았다.


“엄마처럼 살지마.”

 가만히 내 등을 쓸어주었다. 담배를 건네준 그 날 밤처럼.

“큰 언니처럼도.”

“왜? 큰언니는 잘 살잖아?”


 서경언니를 밀어내고 항의하듯 물었다. 그래도 이 집에서 아직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은 큰언니 한 사람 뿐인데.


“그냥 발목 잡히지 말고 살란 소리야. 사랑하는 순간부터 잡히는 거야. 그냥 너 로 살아. ”

 언니가 손을 뻗어 본인보다도 키가 큰 내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

“아이구 귀여운 것.”

이제껏 진지하던 말투와는 완전히 다른 말투다

.

‘막냉이. 잘 있어.“

다시 끌어안아 내 엉덩이를 쭈물쭈물 하더니 손을 뗐다.

“진짜 간다. ”

 

 그렇게 서경언니는 아주 개운한 표정으로 한국을 떠났다. 오래 묵은 먼지를 탈탈 털어낸 듯 홀가분한 어깨와 상큼한 향이 풍기는 치약으로 칫솔질을 막 끝낸 것 같은 표정으로. 새로운 시작에 신이 난 미소를 달고 내게서 등을 돌렸다. 혼자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은 햇빛에 취한 양 비척이며 걸었다.

 그리고 지금 난 여전히 비척이고 있었다.


 새벽빛이 들어오는 창문에 다친 오른손을 들어 비쳐보았다. 내 영광의 상처를. 나를 다치게 한 것 만큼 아버지를 다치게 한 것 같아 조금 기분 좋았다.

진짜 혼자 서야 할 때가 왔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창이 환해질 때까지….







====================================================


꼬랑쥐-

 심봤다 군이 이번에 쓴 글은 본인도 보여달랍니다.

 다음학기에 소설 작법 수업이 있다더군요.


 -야해서안돼.

라고 했더니

 -나도 성인이야! 라고 합니다. 헐~


 과거에 더피용이 [피노키오의 꿈] 시절에 이 장면을 써놔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dupiyongsta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