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날은 기분이 꽤 좋았다. 아니 꽤나 들뜬 날이었다.

오랜만에 춘천 본가에 식구들이 모이는 날이었다.

내 대학 입학을 축하한다며 큰 언니와 형부와 조카 지온까지 집으로 찾아온다고 했다.

내 어린 시절에 예쁜 집에 살었었다.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예쁜 마당이 있는 그 집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마냥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을 낳겠다며 나간 후 그 집이 팔렸다.



엄마는 꽤나 고군분투 했지만 큰 집을 사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 집이 다시 돌아왔다. 엄마의 노력도, 아버지의 뒤늦은 반성도 아니었다. 뜻밖에도 둘째 언니 덕분이었다.

첫 번째 이혼을 하고 그 집에 있던 가장 비싼 악어 가죽 백에 집문서를 넣어 왔다. 눈가가 퍼렇게 멍들고 팔 한쪽에 기브스를 했지만 어쨌든 내가 이긴 거 라고 당당하게 웃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우린 다시 마당 넓은 그 집을 얻었다.

다시 그 집에 모여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만도 기분이 좋았다. 그 사이 둘째 언니는 여행을 하겠다며 외국으로 떠났다. 명랑하게 깔깔 웃으며 집문서를 남겨놓고 떠났다. 어쩌면 엄마에게 외국인 사위를 보여줄지도 모르겠다며.

 

엄마는 저녁상을 보느라 분주했고, 큰 형부는 입학 선물이라며 조카를 돌볼테니 세 자매의 외출을 권했다. 날씨는 추웠지만 춥지 않았고, 설레고 또 설레는 그런 날이었다.

 

.

세자매가 나란히 춘천 명동 상가를 걸었다. 한쪽 길을 막아 오가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자꾸 헤실헤실 웃음이 났다. 어린 시절 즐거웠던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아 좋았다.

 


큰언니는 새 학교라고 새 가방이 필요하다며 가방을 사 주겠다 했다. 학교 선생님을 그만두고 시집살이만 하며 살고 있지만 모아놓은 용돈이 많다며 자꾸 사주고 싶다고 했다. 싫은 척, 필요 없는 척 하면서도 큰 언니에게 가방을 받았다. 아가씨 흉내를 내야 한다며 손바닥 만한 작은 가방도 하나 얹어 사주겠다고 해싸. 저런 가방은 현주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데… 하면서도 피식피식 웃으면서 가방을 걸쳐보았다.


서경언니가 서울에 가면 백화점도 많은데 굳이 여기서 사야하냐고 타박을 잠깐 하기도 했다. 시어른들 모시고 사는 처지라 서울 나들이가 쉽지 않다며 꼭 직접 사주고 싶었다고, 피시식 웃으며 기어이 나에게 가방을 덥썩 안겨주었다. 낮술을 한잔 한 모양으로 효경언니는 한껏 들떠 있었다.

 

“인경이 치마 하나 사줄까?”

“치마 안 입어.”

“으이구, 그래도 신입생인데 하나정도 있어야지.”

큰언니가 손을 끌어 잡아 예쁜 옷가게로 들어갔다. 쇼윈도에 걸린 체크 무니가 예쁜 치마 하나를 입어보라고 했다.


하도 성화를 부려 치마를 갈아입고 나와 거울을 보자 어정쩡히 어색하게 서 있는 내 모습이 웃겨 웃었다. 등 뒤에서 슬금슬금 웃음을 참는 서경언니 모습이 보였다.

“아, 이상하잖아.”

“그래도 하나는 있어야지. 입다 보면 익숙해져.”

껑충하게 긴 다리가 드러난 치마가 낯설고 우스워 나도 같이 키득거렸다.

“남들 다 입는 거 이걸 하나 못입어? ”


“맞아, 언니 말 들어. 맨날 남자애들처럼 입고 다니지 말고.”

결국 합세한 서경언니 덕분에 성화에 못이기는 척 치마 하나를 받았다. 내 생애 처음으로 무릎 길이에 오는 주름이 잡힌 체크 치마를 받았다. 키가 커 모델같다며 뒤에서 추임새를 넣는 가게주인의 말에 세 자매는 눈을 맞추며 웃었다.

정말 현주가 알면 기절 하겠네.


치마에 어울리는 로퍼 구두에 기초 화장품 한세트와 연한 핑크 립스틱 하나까지. 평범한 신입생이 받을만한 선물을 잔뜩 받고 말았다.

나는 진짜 평범한 신입생이 된 줄 알았다.

 

 

손에 쇼핑봉투를 두 개씩 나눠들고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뭔가 싸한 기분이 들었다. 한낮보다 추워지긴 했지만 갑자기 선뜻하게 차가움이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 깔깔대던 웃음기가 삭 사라졌다.

마루 밑에 놓여 있는 커다란 남자신발. 그 옆에 여성용 털 슬리퍼. 그리고 남자아이 운동화. 큰형부가 신고 온 신발과는 다른 신발 세 켤레가 나란히 놓여있다.


“누가 왔나?”

큰언니가 당황을 숨기며 말을 했다.

“누군지 알아?”

“글세….”

큰언니가 뭔가 숨기는 듯 말꼬리를 숨겼다.

“들어가 보면 알겠지.”


셋째언니가 내 팔을 잡아 당당히 걷기 시작했다.

마루에 봉투를 내려놓고 당당하게 안방 방문을 열었다.

앞장 선 서경언니가 발을 멈췄다.

따라 들어가던 나도 발을 멈췄다.


숨이… 숨이 막혔다.

미닫이문을 열자 안방에 한가득 음식이 차려진 큰상에 큰 형부가 이미 술을 했는지 벌건 얼굴로 앉아 있다. 내 뒤로 따라오던 큰 언니가 멈춰선 내 등과 쿵 부딪혔다.

그리곤 어깨 너머로 상황을 단번에 파악해냈다.

 

“지온이는?”

“장모님하고 건넌방에.”

등 뒤에서 어색한 듯 효경언니가 형부에게 말을 먼저 물었다. 어떤 표정을,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조금은 난감한 표정으로 형부가 말했다.

따뜻한 방안에 차가운 한기가 돌았다.


그리고 가장 가운데에 오랜만에 본 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느새 소년이 된 아버지의 아들이 따뜻한 방에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건강하게 그을린 까만 피부, 사랑받고 자라 활달한 눈동자, 그리고 웃음을 머금은 입매까지. 우리중 가장 평범한 생을 살아온 아이가 아버지와 할머니 옆에 앉아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런, 예상치 못한 아버지와의 만남이었다.

잠들기 전에 몇 번이나 어떻게 만나지나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만나면 어떤 말을 할까 이런 저런 언어를 생각해 본적도 있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내 공간 안에 들어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승효야, 누나들이다.”

아버지의아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엔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안녕하세요.”

눈꼼만치도 걸리는 것이 없이 해맑은 얼굴로 아버지의 아들이 고개를 꾸벅 인사를 했다. 뭐라고 설명했을까? 사촌누나? 아니면 친척누나 쯤? 절대 친누나들이라고 말하지 못했겠지 라는 생각이 들자 화가 올라왔다.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며?"

삐죽거리는 입매로 할머니가 말을 했다.

 

가끔씩 아기를 업고 엄마를 찾아와 꼬추 구경을 시켜주던 할머니였다. 때론 빨리 이혼을 하라며 패악을 떨던 할머니였다. 한집에 살 때는 그럭저럭 사이가 나쁘지 않은 고부였는데 아버지의 아들이 생기고 나서부턴 기세당당하게 욕심을 드러냈다.

아주 오랜만이지만 그때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이가 자랄수록 그 패악은 더 심해졌다. 귀한 아들이 엄마 호적에 올라갔을 땐 그 패악이 극에 달해 나는 서경언니를 따라 집을 나왔다.

 

“기집년들이 그래도 머리는 있나보네. 좋은 학교도 가고. 다 애비 덕이지.”

말문이 막혔다.

조잘거리는 할머니 목소리 위로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큰 언니 결혼식에서 한번 작은 언니 결혼식에서 한번. 엄마가 이혼을 안 하고 버틴 덕분에 두 번의 결혼식에서 마주쳤었다.


 

오랜만에 본 아버지는 늙어 있었다. 좋은 옷을 입고 윤기 나는 안경을 쓰고 있어도 알 수 있었다. 나를 훌쩍 들어 어깨에 올렸던 단단한 팔뚝이 조금 말라 보인다. 여름날, 툇마루에서 큰 대접에 석석 비빈 밥을 먹을 때의 건장함 대신에 몸에는 윤기가 빠지고, 어깨도 한층 내려앉은 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눈은 젖어 있었다.


"하!“

잘 먹고 잘사는 줄 알았는데, 그 꼬락서니를 보자니 입이 떡 벌어졌다.

뭔가 할말이 많은 눈으로 아버지가 나를, 서경언니를 바라보았다.

 

“여기… 왜 왔어요?”

아버지를 노려보며 말했다.

 

“왜긴? 기집애들도 이제 다 컸으니 니 네 엄마하고 이혼시키려 왔지.”

 

할머니의 염장을 쑤시는 말투의 날카로움을…잊고 있었다. 피부 하나 하나 찌르듯 안하무인으로 내 뱉은 저 단어의 파괴력을 잠시 놓치고 있었다.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날 세운 시선으로 쏟아대던 할머니에게서 받은 상처를 아물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언제나 아버지 편, 언제나 아버지의 아들 편.


“빨리들 좀 오지 지집년들이 해가 질 때까지 뭘 그렇게 돌아다녀. 그러니 이혼이나 하고 돌아왔지. 애비가 음식도 해왔는데…짜장면 다 불겠네. ”

 

하는 말마다 못된 할머니의 언어들이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심장에 콕콕 박혔다.

기름에 볶은 중국음식 냄새가 훅 올라왔다.

 

내 눈빛이 표독스럽게 날이 서버렸다.

저 아이 때문에 우리를 버린 거다.

저 아이 때문에…… 나는 유년시절을 잃어 버렸다.

 

“뭐래? ”

“저, 지집년이 뭐라는거야.”

할머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 표독한 눈 꼬라지 봐라. 고추도 못 달고 나온 딸년한테 그래도 상이라도 차려주려고 왔더니… "

아버지 옆에 앉아 있는 조그만 아버지의 아들을 노려보았다.

 

“씨발, 자장면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

목을 치고 올라온 짜증을 기어코 내리 누르지 못하고 폭발했다

 

“인경아.”

 

이때껏 아무 말도 없는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름 부르지마. ”

“저 호랭이가 물어갈 년. 못된 년.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할머니가 급하게 다가왔다. 내 어깨춤도 안오는 할머니가 나를 손바닥으로 힘을 다해 내리쳤다. 짝하고 살과 살이 닿는 소리가 날카롭게 퍼졋다. 할머니가 그 기세로 또 나를 내리쳤다.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할머니의 힘은 꽤나 거칠었다.

서경언니가 빠르게 할머니와 나 사이로 파고 들었다.


“인경이 때리지 마세요.”

보호자처럼 서경언니가 단단히 내 앞을 막고 할머니 앞에 섰다.


“뭔데 나를 때려, 뭔데?”

난 아버지를 향한 시선을 놓지 않았다. 뭔가 뚝 끊어진 것 같았다.

악다구니를 썼다. 아버지 옆에 놀라 눈을 똥그랗게 뜬 아버지의 아들의 얼굴이 보였다. 아버지를 꼭 닮은 얼굴.

“씨…발, 언제 키웠다고? ”

나는 사나웠고, 거칠었다.

몸으로 부딪힌 건 할머니였지만 내 말의 대상은 아버지였다.

말이 칼이 된다면…. 찌르고 또 찌를 수 있었다. 잘 벼린 칼날처럼 아버지의 가슴에 쑤셔 박을 수 있다면…. 나는 계속 할 수 있었다. 아주 날카롭게 비명 질렀다.

 

서경언니를 사이에 두고 나를 굳이 굳이 손을 뻗어 잡아 뜯는 할머니의 우왁 스런 손길에 휘청거렸다. 손톱이 할퀴고 지나갔다. 내 오랜 상처보다는 얕게. 그 자리에서 피가 방울 올라왔다.

 

“지 새끼도 내 버린 주제에 왜 때려. ”

때리려는 사람, 힘으로 뻗대는 사람, 말리려는 사람, 세 사람의 힘이 서로 엉켜버렸다. 서경언니 옆으로 팔을 뻗어 힘껏 할머니를 밀어내려다 실강이 하는 두 사람 힘에 그만 상 쪽으로 휘청하고 쓰러졌다.

 

와르르 쨍! 잘 차려진 중국식 요리접시가 우르르 밀려 떨어지기도 뒤집혀지기도 했다. 순간 손에 잡힌 컵을 들어 상위로 그대로 내려쳤다. 날카롭게 부서진 유리조각 비명 같은 깨지는 소리. 그리고 위험스럽게 조각이 파고드는 위태위태한 손.

 

미친 것 같았다.

눈 앞이 뿌옇게 열기로 가득차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 같았다. 한때 가족으로 행복한 시간을 누렸던 이를 향해 맹렬한 적의가 피어올랐다.

 

“저 못된 년. 저 나쁜 년. 꼬추도 못 달고 나온 게 어디서 ”

할머니가 분이 잔뜩 오른 목소리로 욕설을 했다.

나는 다시 내 손을 상위로 내리쳤다. 조각난 유리가 더 깊게 파고들었다.


뚝. 뚜둑.

시뻘건 선혈이 잘 차려진 상위로 떨어졌다.

피가… 점점이 뿌려졌다.

바들바들 떨리는 주먹 안에 꽉 잡은 유리가 살을 찔러왔다. 난장을 칠수록 손바닥을 찌르는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점점 더 깊게 배여 왔다.

 

“인경아.”

“재수 없어. ”


나는 한 번 더 내리치려고 손을 들었다.

“그만하세요, 어머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난장이 된 방안에 나지막이 들려왔다.


“가지고 가라.”

상위에 통장 하나를 내려두고 아버지가 빠르게 일어섰다.

“미안하네.”

한쪽 구석에서 어정쩡히 서 있는 큰 형부를 향해 아버지가 말했다.


“가자, 승효야.”

그리고 아버지의 아들을 데리고 방을 나갔다. 난장판이 된 방안에 우리를 두고 놀라 히끅거리며 울고 있는 아버지의 아들을 데리고 나갔다.

“애비도 못 알아보는 년, 천벌 받을 것 같으니라고.”

할머니가 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모질게 말했다.

 

“모처럼 애비가 왔는데 몹쓸 것 들. ”

 

뽀족한 입술로 분풀이를 하듯 모질게 쯧쯧 거리고는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보무도 당당하게 방을 나섰다.

난 패잔병처럼 난장판 위에 주저앉았다. .

뚝,

어느새 피가 흥건히 상위로 흘러 번지고 있었다.

 

 

 


 

“으이구 독한 것.”

손에 박힌 유리를 빼내는 작업은 길고 신중했다. 혹여라도 작은 조각이라도 남아 있을까봐 식염수를 부어대며 의사는 이지저리 꼼꼼히 살폈다.

“지 손을… 아이고,”


유리를 뺄때도, 낚시 바늘을 닮은 수술용 바늘이 벌어진 손바닥을 잇는 동안 신음하나 내지 않았다. 내 어깨를 안쓰럽게 쓸어주는 엄마가 속이 달아 말했다.


“살살해주세요, 선생님, ”

건넌방에서 지온이를 보고 있던 엄마가 우르르 쨍 깨지는 소리에 단숨에 넘어왔다. 문 밖에서 할머니가 쏟아내는 잔인한 욕도, 내가 내뱉는 날카로운 가시도 다 들었다.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보고 놀라 그 길로 근처 인성병원까지 달려온 길이다. 오늘 같은 날 괜히 들어오게 했다고, 다친 내 모습이 안타까워 내내 종종거렸다.

“아프다고 해도 돼. 참지 마.”

 

자주 사용하는 손바닥이라 쉽게 아물게 하려면 살을 꿰매야 한다는 진단에 마취도 없이 손을 꿰매는 중이다. 마취주사가 더 아플 수도 있다면서. 엄마는 내내 안절부절하며 내 손이 찢긴 것도 본인 탓 마냥 서 있다.

 

“오지 말라고 할걸" 

몇 번이나 자신을 책망하듯 혼잣말처럼 한숨처럼 말했다.

"오지 말라고 할걸.... 저렇게 아픈데“

바늘이 들어갈 때 마다 나보다 엄마가 더 아픈 얼굴을 하고 찡그린다. 금방이라도 신음소리를 낼 것같이 고통스러운 표정에 눈까지 젖어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보자마자 외투도 안 입고 지갑만 챙겨 허겁지겁 달려온 놀랜 어미와는 달리 나는 자신의 시뻘건 속살을 보이는 손바닥을 낯선 시선으로 내려 보고 있다.

나에겐 오늘 밤의 전리품이었다. 영광의 상처였다. 처음으로 할머니에게 대든, 아버지에게 대든 되찾은 고지같았다.


 

의사가 눈처럼 하얀 붕대로 꼼꼼히 손바닥을 싸매자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이 빠져 문 옆에 간이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안 아파.”

 “정말 잘 참으시는데요. 며칠동안 소독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의사가 친절하게 말을 했다.

 

“끝난건가요?”

 

의사의 친절이 무색하게 얼음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은 엄마와 시선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항생제랑 진통제 처방했으니 받아가세요.”

 

한 시간이 넘어서야 진료는 끝이 났다.

 

물을 삼켜도, 밥을 꾸역꾸역 넘겨도 넘어가지 않는 가시처럼 긴 시간이 지나도 가슴의 통증을 불러일으키는 존재. 할머니가 가끔씩 아버지의 아들을 자랑하러 올 때마다 아무 말도 없이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엄마의 어깨가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또 얼마나 패악을 떨었을까? 그래도 이혼은 못한다고 버틴 엄마에게 엄마가 낳지 않은 아들이 생겼다. 이혼을 해줘야 아버지의 아들을 호적에 올릴게 아니냐고 뻔질나게 드나들었었다.


그 패악을 떠는 꼴이 보기 싫어 서경언니를 따라 엄마가 사는 두 칸짜리 쪽방을 떠났다. 나는 싫어서 떠날 수 있었는데 엄마는 여직 그 집에서 할머니의 모욕을 견디고 있었나보다.

욱씬거리는 손보다 가슴이 더 아팠다.

 


 

 

언니 둘이 난장판이 된 안방을 치우고 엄마가 준비한 음식으로 늦은 끼니를 때웠다.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처방받은 알약을 먹어야 한다며 어색한 분위기를 애써 누른채 다들 애를 썼다. 저녁상이 엎어진 덕분에 조금씩 남은 음식을 차린 소탈한 저녁 밥상이었다. 큰언니는 지온이를 재우러 가고, 큰 형부는 아버지와 대작한 술에 취해 일찍 잠이 들었다.

홧홧한 마음에 마당 한 켠에 나와 쪼그리고 앉았다. 차가운 밤바람에 열기가 조금 내릴까 싶었다. 뒤이어 서경언니가 따라 나왔다.


두 자매가 마당 한 켠에 쪼그리고 앉았다. 몽오리 진 동백꽃 옆에 나란히 패잔병처럼 앉았다.

“이거 ”

언니가 내게 담배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괘 효과 좋아.”

내 손에 감긴 붕대를 쓸쓸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너도 이제 어른이니까.”

언니가 익숙한 듯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함께 산지가 오래인데 언니가 담배를 하는지 몰랐다. 공부 잘하는 언니가 간호학과에 진학해 군말 없이 취업해 나를 건사하는 동안 눈치 채지 못했다.

“나도 주경언니한테 배웠어.”


언니가 하는 대로 어설프게 언니를 따라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라이터를 켜더니 불을 붙여 주었다. 담배 끝이 빨갛게 불이 붙었다. 어찌 할줄 몰라 하다가 한모금 살짝 빨아당겼다.

쿠울럭. 쿠울럭

뭔가 쓰고 매운 것이 훅하고 들어왔다.위장까지 올라올 정도로 격하게 기침을 했다.


“이거, 어지러워. 쿠, 쿨럭.”

까슬한 목소리로 겨우 말을 했다. 담배가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격렬한 기침은 사나운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효과가 조금 있는 것 같았다.

“속 시끄러울 땐 괜찮더라고.”

서경언니가 내 등을 가만히 쓸어주었다.

"그리고 우리도 받았어.“

무슨 말인지 몰라 서경언니를 쳐다보기만 했다.

“ 그 통장 말이야. 나도 받았어. 너랑 살던 집도 그 돈으로 보탰어.”

처음 듣는 말이었다.

“주경 언니꺼는 할머니가 심부름 한다며 삥치다 들켜서 언니가 빼앗아 왔고, 큰언니도 결혼할 때 받았어. 그러니 너도 받아. 괜찮아.”

차가운 밤바람에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우린 그래도 아버지 하고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 미안해서 주시는 거니 너도 받아. 괜찮아. ”

차가운 밤하늘이 펼쳐진 마당 한가운데 쪼그리고 앉아 서경언니는 낮고 느린 목소리로 나를 위로했다.

 

“인경아”

서경언니가 가만히 나를 불렀다.

“나 유학 가려고.”

“응?”

“너도 이제 다 컸고. “

 

엄마대신 늘 서경언니가 나를 챙겼다. 이제 숨소리만 들어도 언니의 기분을 알아챌 정도였다. 딸 넷과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했어야 하는 엄마 대신 엄마처럼 나를 챙겨준 사람이 언니였다.

 

"언제?"

"이주 뒤에."

갑자기 찬 물 벼락을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입 밖으로 낸 말은 쉽게 뒤집지 않는 성격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 결정해놓고 통보를 할 줄은 예상 못했다.

 

 

"2주? 그렇게나 빨리?"

"어."

서경언니의 말투는 단호했다. 어떤 변수도 받지 않겠다는 듯이. 그리고 그동안 언니의 변수였던 나는 결심을 해야했다

 

"준비는 다 끝났어?"

"어."

 

아버지가 떠나고 집안이 몰락하듯 가세가 기울면서 나까지 책임을 맡게 된 이후로 내색한 적도 없었다.

 

"미안해. “

 

담배 연기를 후련하게 뿜고 난 언니가 바닥에 꽁초를 비벼껐다.

“언니가 왜 미안해?”

 

언니가 나를 끌어 안았다.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우리 막냉이 아직 이렇게 아픈데 혼자 남겨서 미안해.”

 

속에서 울컥하고 뭔가가 요동쳤다. 그래서 아무런 말을 할수 없었다.

 

"나도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래.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어. 공부도 하고, “

서경이 폭포처럼 속내를 쏟아냈다. 견고한 고집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거야."

 

언니도 상처 받은 눈빛이었다. 나만큼 .

“말 할 짬을 놓쳤어. 미안해."

 

서경 언니의 눈동자에 물기가 스몄다. 나 때문에 망설이고 망설였을 고뇌가 느껴졌다.

 

"괜찮아. 나도 이제 어른인데,"

 

아주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쉽게 떠날 수 있도록. 여직껏 말을 미뤄온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아직도 내가 어려 보여서 망설이고 망설이다 털어놓은 말이라는 것을 너무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서운했다. 같이 살 땐 늘 투닥 거리며 싸우기도 많이 했는데, 보호막에서 팽개쳐진 것처럼 허전하기도 했다.

 

“정말 괜찮아.”

나는 약간은 쉰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말했다.

나에게, 언니에게.

대학 입학식을 일주일 앞 둔, 아직은 겨울의 시샘이 남아있는 날에 나는 세상에 홀로 서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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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저 위에 호랭이가 물어갈 년은

저 아주 어렸을적에

제 어머니가 정말 화가 났을 적에 

저를 혼냈던 말입니다.


뜻은 어떨지 모르지만

제게는 아주 그리운 욕설? 입니다.


가끔 민지기콧구녕 이란 단어도 쓰셨는데

그 단어도 많이 그립습니다.



푱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