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탱크가 지나간 자리는 참혹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오른쪽? 아니 왼쪽?

머리 전체에 딱따구리가 집을 지은 듯 울리고 흔들렸다. 골이 울린다는 말이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으으으 머리아파.”

 

아니, 속이 뒤집어질 듯이 울렁거렸다. 위장이 있는 곳에 손을 대고 몸을 옆으로 세워 누워보려 꼼지락거려보았다. 온 몸이 얻어맞은 듯 자근자근 뼈마디가 아파왔다.

아, 나 맞았지!

그리고 지난밤 격렬한 김식의 움직임을 받아낸 몸은 어긋난 로봇처럼 삐그덕 거렸다.

 

“으으으 ….”

 

내 목 뒤로 손 하나가 쓱 들어오더니 나를 일으켜 앉혀 주었다.

잠에서 깨었다. 눈을 뜬 것 같았다. 아니 눈을 뜬 것 같은데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통창으로 환한 햇살이 쏟아져 눈이 부신데 또 앞이 흐리게 뿌옇게 보였다.

 

“물 마셔.”

 

입가에 차가운 물기가 다가왔다.

허겁지겁 입에 닿은 물을 받아 마셨다.

 

“골 울려.”

 

시끄럽게 울리는 머리를 손으로 잡았다.

 

“ …앞이 잘 안 보여.”

“그러겠지.”

 

턱을 한껏 치켜들고 나서야 작게 뜨인 눈에 김식의 얼굴이 보였다.

픽하고 비웃는 듯 하더니 잔뜩 못마땅한 표정으로 김식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 밥먹고 약 먹어야 해. 일어나. ”

나를 쳐다보는 김식의 눈초리가 요상했다. 뭔가 마음에 안 차는 것 같기도 욱하고 올라오는 것을 참는 것도 같고, 이상한 구경거리를 보는 것도 같고.

햇살 아래에 선 김식은 어제에 다정함이 사라지고 쌀쌀맞은 관심만 남았다.

 

“나, 화장실.”

 

이불을 들추고 겨우 일어섰다. 머리가 울릴 새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입고 있던 큰 웃옷이 후르르 엉덩이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래 속옷이 없었다. 훅하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김식이 팔을 내밀어 주었다.

 

“잡아.”

 

단단한 김식의 팔뚝이 손에 닿았다. 나는 마치 눈이 안 보이는 사람처럼 턱을 치켜든 채 조심조심 걸었다. 게처럼 옆걸음으로 걷지 않기 위해 느리게 집중했다.

 

김식이 열어준 화장실 문 안으로 엉거주춤 걸어 들어갔다.

눈을 반쯤 감고 볼일을 보고 세수라도 할까 싶어 세면대 앞으로 조심조심 걸었다. 조금만 더 속도가 붙는다 싶으면 여지없이 골이 울려왔다.

 

“으아악.”

 

거울 속에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왈칵 놀라 한발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왜? 뭐?”

“아니, 아니. ”

“난 또…”

 

난 허둥거렸다. 순간 너무 놀라 골이 울려 찌릿한 통증도 잠깐 잊었다.

 

“야,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나가 빨리. 으으 골 울려. ”

 

김식이 내 꼬라지를 한번 훑어보더니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틀어졌다.

 

“씻겨줘?”

“미쳤나봐.”

“너 칫솔 보라색이야. 그거 써. 아직 물 닿으면 안 되니 세수는 하지 말고. ”

 

김식이 화장실 문을 닫아주고 나갔다.

거울 속에 내 꼴은 엉망진창이었다.

영화 [록키]에서 마지막 라운드를 뛴 실버스타스텔론 같은 그런 얼굴이 거울 속에 있었다.

왜 앞이 잘 안보였는지 명확하게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눈 두덩이가 한껏 부풀어 올라 시야를 거의 가리고 있었다. 잠깐 졸다 깬 택시에서 내릴 때 김식이 내 얼굴이 커지고 있다고 했었다. 그 말대로 내 얼굴이 커져 있었다.

혹하나 달려있는 것처럼 얼굴이 팅팅 부어올라 있었다. 푸르딩딩하게 올라온 멍이 얼굴 반을 가리고 있었다. 무슨 점박이도 아니고.

 

그리고 오른쪽 뺨엔 지난밤 꿰맨 자리에 거즈붕대가 붙어 있었다.

지난밤에 왜 김식이 잠이나 자라고 했는지 알겠다.

이런 몰골로 지난밤 김식을 무려 먼저 꼬셨다. 나는 꼴린다고.

지난밤의 나는 정말 미쳤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자 숨과 함께 알콜 냄새가 훅하고 끼쳐왔다.

겉만 이상한 게 아니라 속도 엉망진창이었다.

 

왜 이런 몰골이 되었는지 또렷이 생각났다.

어젯밤 술집에 모였던 많은 수의 사람들 앞에서 내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냥 무시할걸.

그 더러운 말들을 어떻게 무시해.

내내 하던 대로 모른 척 할걸.

그 신입생 여자애한테 한 꼬라지를 봤잖아.

그래도 안 들리는 척 했었어야지.

아니, 그 복학생을 진짜 한 대 때렸어야 하는데….

세면대에 비친 내 모습을 훔쳐보며 머릿속에서 혼자 묻고 혼자 대답했다.

 

복학생의 멱살을 무섭게 쥐고 있던 김식.

손에 소주병을 쥐고 내가 죽이겠다고 날뛰던 나와 나를 막고 서서 자기가 하겠다면서 화를 내던 김식. 내 뺨을 닦아주던 이지수. 내 손을 잡은 김식과 가게 문을 나섰던 그 순간.

그 모든 것을 보고 들었을 학과 사람들의 얼굴이 뿌옇게 떠올랐다.

저것들 삼각관계야 하던 복학생의 열 받은 목소리도 떠올랐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향한 소문 따윈 무뎌졌다. 동네에서 긴 시간 나를 따라다녔던 소문 덕에 익숙해 졌으니까.

적당히 사람들 사이에 최소한의 관계만으로도 무사히 4년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뒤통수를 따라 나오는 이지수의 마지막 말도 떠올랐다.

딱 보면 여자구만. 눈이 삐었나.

폭력과 주사와 멜로와 치정에 성별 사기까지.

앞으로 3년, 귀찮은 소문을 내 손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아… 망했다.

 

“매운 쪽? 맑은 쪽?“

“뭐가?”

 

화장실에서 오래도록 나오지 못했다.

내 꼬라지가 창피하기도 하고 어젯밤의 내가 부린 난동이 부끄럽기도 하여 오래 샤워를 했다.

다시 문이 벌컥 열릴까 싶어 문고리를 잠그고 지난밤 은밀하고 음란한 흔적이 남은 몸을 씻어냈다. 머리가 울려 천천히 움직였다. 아니 김식의 얼굴과 빨리 대면하고 싶지 않아 느리게 느리게 움직였다.

 

김식의 재촉하는 노크 소리에 겨우 화장실에서 나왔다.

 

“해장라면 끓일 거야. 어느 쪽?”

“해장할 정도로 마신 적 없어 모르겠어.”

 

김식의 시선을 느끼면서 천천히 식탁으로 가 조리대에서 등을 돌리고 벽을 바라보며 앉았다.

등 뒤에서 풋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두 가지로 끓인다. ”

 

뒤쪽에서 들리는 소리가 예민하게 들려왔다.

라면 봉지 뜯는 소리, 국자를 잡는 소리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의식되었다.

 

“나 어제 병원부터 이 꼴이었어?”

“아마도.”

“아 씨…”

 

의자 위로 두 다리를 올리고 웃옷을 발목까지 잡아당겨 꽁꽁 가렸다.

“새삼스럽게…. 난 말했다. 니 꼴을 보라고.“

“안 꼴린 건 아니라며? 이 꼴을 봐 놓고는.”

 

 

나는 왈칵 소리를 쳤다. 아, 골 울린다.

 

“그래서 그냥 자자고 했잖아. 난 참으려고 했다고.”

 

내가 내 무덤을 팠다.

 

“지가 먼저 꼬셔놓고는.… ”

 

의기양양한 김식의 목소리가 내 등을 때렸다.

등을 돌리고 고집스럽게 앉아있는 사이에 냄새가 풍겨왔다.

지난밤 안주도 제대로 먹지 않고 마신 술 덕에 위장이 요동쳤다.

“나도 얼굴이 이렇게까지 더 커질 줄 은 몰랐어. 내가 밟아줄게.”

“니가 왜?”

김식이 식탁위에 김치도 놓고 수저세트도 세팅했다.

그리고 두 개의 그릇을 내 앞에 놓았다.

콩나물과 파와 고춧가루와 다진 고추도 잔뜩 들어간 빨간 라면과 콩나물과 파만 들어간 하얀 라면.

“먹어. 이따 다른 거 해줄게.”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에 스르르 몸을 돌려 앉았다. 김식이 내 앞자리에 앉다 말고 내 얼굴을 보고는 또 눈을 찌푸렸다.

 

“필요 없어. 집에 갈 거야.”

“그 꼴로? 너 못가. 너 옷 다 빨았어. ”

 

웃옷 하나로 겨우 가린 내 몸을 김식이 흘깃 쳐다보았다.

잠깐 눈싸움을 했다.

나는 입을 삐죽 거리곤 라면을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뜨겁고 매운 라면이 입안에 닿자마자 따갑고 쓰려왔다.

 

“어느 쪽이 맞는지 둘 다 먹어 봐.”

 

끙끙거리는 나를 건네다 보며 김식이 또 눈살을 찌푸렸다.

고개를 30도 쯤 기울려 겨우 하얀 라면 쪽을 먹었다. 뜨거운 국물에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결국 다 먹지도 못하고 젓가락을 내려 놓았다.

 

“약 먹자.”

 

김식이 어제 병원에서 받아온 약봉투를 가져왔다. 진통제와 항생제가 든 약을 물 한 모금에 약 한 알씩 삼키는 나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김식은 멍이 든 얼굴에 연고를 꼼꼼히 발라주었다.

“실밥 풀 때까지 여기 있어. 병원도 가깝고…”

 

큰 손으로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조심해서 연고를 발랐다. 난 눈을 감은 채 순순히 얼굴을 내밀고 가만히 있었다. 타인의 손길에 얼굴을 내민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느리게 움직이는 손길이 어느 순간 가만히 멈췄다.

나는 실눈을 슬쩍 떴다.

 

“다 한 거야? ”

 

애매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김식의 찌푸린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멍 들면 계란 같은 거로 문지르지 않나? 날달걀? 삶은 달걀?”

“집에 계란 없어.”

 

내 질문에 김식이 얼굴에 닿은 손을 떼면서 쌀쌀맞게 대답했다.

김식이 연고 두껑을 닫고 약봉투를 정리하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마녀한테 받은 다른 건 있는데… 그거라도 줄까?”

“마녀는 또 뭐야?”

 

성큼성큼 걷더니 주방 한 켠 냉장고 냉동실을 열어 사과 하나를 꺼냈다. 비닐 랩에 똘똘 잘 말려있는 얼린 파란 사과.

 

“그거….”

 

매미가 시끄럽게 울던 여름 날, 현기네에서 받아왔던 아오리 사과가 퍼뜩 떠올랐다.

“그게 왜 냉동실에서 있어?”

“독이 들었을까봐? ”

 

기막혀 입이 턱 벌어졌다.

그때 김식이 이번엔 내가 백설 공주인가? 했던 말이 설핏 떠올랐다.

 

“얼리면 독이 사라지나? ”

“날 깨워줄 왕자님도 없는데 덥썩 먹을 수가 있어야지. 바로 대면 차가우니까 손수건으로 싸줄게. 이거라도 대고 있어 봐.”

“설마 그때 준 거 다 넣었어?”

“한개는 먹었어. 예쁘게 다보탑으로 쌓아놨지. ”

 

김식의 눈이 예쁘게 반달로 접혔다. 김식은 이렇게 웃는구나! 나를 만날 때마다 삐뜨름 하고 불만스러운 눈이라 몰랐다.

뭐라 대꾸하려 했는데 놓쳐 버렸다.

 

“ 쉬고 있어. ”

 

김식은 통창을 바라보는 자리에 작년엔 없었던 쇼파 자리를 가리켰다. 삼인용 아담한 베이지색 쇼파가 창밖을 바라보기 딱 좋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오토바이도 가져와야 하고, 갚아줄 것도 있고.….”

 

그리곤 김식은 나 혼자 두고 집을 나갔다.

또다시 김식의 방에 혼자 남았다. 정말 볼일이 있는 것인지 나를 위한 배려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온 김식의 옥탑방은 조금씩 변한 것이 있었다.

통창 앞에 새로 생긴 쇼파가 그랬다. 알록달록한 쿠션도 구색 맞춰 있지만 김식의 취향보다는 타인의 취향이 깃든 것 같았다. 통창 밖 옥상에는 일인용 침대만한 평상이 처마 아래 새롭게 생겼다. 어쩐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딱 적당한 곳에 알맞은 모양으로 있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김식의 방안에 혼자 나른하게 새로 생긴 쇼파에 앉아 밖을 보았다.

 

통창 밖에는 보물섬을 발견한 선장이 승리의 깃발을 꽃은 것처럼 빨랫줄에 지난밤 내가 입고 있던 옷가지와 내 속옷이 삼월의 여린 햇볕아래 펄럭이고 있었다.

 

“하.”

 

헛웃음이 나왔다.

 

김식이 수건에 싼 파란 사과를 부어오른 뺨에 대어 보았다.

차갑다.

손에 든 사과를 쳐다보았다. 찬 기운이 손끝에서부터 내 심장까지 내달았다.

차갑고 사과 같지 않게 생긴 못생긴 파란 아오리 사과는 마치 나 같았다.

 

통창 밖에 환하게 쏟아지는 3월의 햇살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들지 않는 안쪽에 편안하게 앉아 바라본 햇살은 따뜻했다.

 

차가움과 따뜻함 사이에서 나는 잠깐 생각했다.

나 조금만 따뜻한 쪽으로 가 봐도 되지 않을까?

딱 걸음만!

내가 세워 놓은 경계선 쪽으로 딱 한발 정도만.

나는 거짓말을 제법 잘 하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손에 든 마녀의 사과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어제의 맹렬했던 전사의 기운은 사라지고 나는 피시시식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었다.

 

 

 

 

 

 

 

 

 

 

◆◇◆

 

 

 

뾰로통하다.

김식의 저 표정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다.

실밥을 뽑으러 가는 날이다.

 

 

김식이 알바를 간 사이 나는 내가 머물렀던 자리를 청소했다. 처음 김식의 옥탑방에 온 날에도 느꼈는데 김식은 깔끔하게 산다. 내가 사는 손바닥 만한 작은 방보다 이곳을 더 신경 써서 정리하고 청소해놓았다.

내가 뒹굴던 침대커버도 벗기고 이곳에서 입고 지냈던 옷도 같이 빨아 널었다.

고작 며칠 사이에 햇볕은 한 뼘만큼 더 진해져 있었다. 통창 밖에 적당한 바람에 옷자락이 춤을 추었다.

 

내 옷을 갖춰 입었다.

내가 놓친 게 무엇인가 꼼꼼히 둘러보고는 식탁 위에 봉투를 올려놓았다.

 

퉁퉁 부어올랐던 눈두덩이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눈가에 멍은 아직 덜 빠졌지만 제법 사람꼴을 한 모양새가 되었다.

 

 

덜컥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안으로 들어서던 김식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보고난 후 눈이 잠깐 삐뚜름해졌다.

 

 

“실밥 뽑을 때까지 만 있으라며?”

“만 이라고 한 거 같지 않은데?”

“어쨌든. 집에 가야지.”

 

신발을 벗은 김식이 성큼성큼 걸어 내 앞으로 왔다.

 

“빨리 가고 싶었나봐? 준비가 끝났네.”

 

뭔가 가늠하듯 나를 삐딱하게 보더니 바닥에 가방을 툭하고 내려놓더니 등을 돌리고는 옷장으로 걸어갔다.

내 집에 내가 간다는데 김식의 태도는 어쩐지 불만이 드러났다. 이제 학교도 가야하고 나도 할 일이 있었다.

 

“이거 입어.”

 

김식은 옷장에서 가져온 블랙에 가까운 네이비색의 후드 집업을 내밀었다.

 

“왜? 내 옷 있어. ”

“못생긴 거 너무 티 나.”

입술을 삐죽거리고는 순순히 겉옷을 벗고 내민 옷을 받았다. 그런데 어쩐지 김식의 옷치고는 내 품도 팔길이도 잘 맞았다.

 

“이거? 나한테 맞아.”

“사이즈 잘못 샀어. 내 팔에 맞는 옷 사기가 쉬운 줄 알아? ”

초록색 야구 모자를 내 머리위에 꼭꼭 눌러 씌워주었다. 그리곤 후드를 잡아 푹 머리위로 덮었다.

 

“쫌 안보이네.”

 

그런데 내가 입은 옷과 김식이 입고 있는 옷이 굉장히 닮아있다.

 

“야! 이거 설마…같은 거야? ”

“색이 비슷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 ”

 

왼쪽 가슴에 작은 상표도 비슷한 거 같은데….

“멍이 시간이 오래 걸리겠는데? 아직 흉해. ”

 

후드와 야구모자까지 눌러쓴 내 얼굴을 볼수 없었지만 빤히 쳐다보는 김식이 눈을 살짝 찌푸렸다.

어쩐지 말을 돌리는 느낌인데? 아닌가?

 

“사과가 효과가 없나봐. ”

 

그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나 병원비 많이 나왔지? 식탁위에 봉투 올려놨어. 모자라면 말해.”

“하아.”

김식이 한숨을 깊게 내 쉬었다. 나를 건네다 보는 눈빛이 살짝 사나워졌다.

 

“너 여친이 너랑 같이 있다가 다쳐서 응급실에 갔어. 그럼 넌 어떻게 할거야?”

“현주? 내가 옆에 있어주고, 계산도… 아!”

 

김식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근데 넌 현주랑 다르잖아. 지난번에 엄마 지붕 만들어 준 것도 있고. 난 빚지는 거 싫어.”

 

정확히 이런 뜻은 아니였다. 김식의 표정이 이상했다.

 

“아니…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뭘 많이 받아 본 적이 없단 말이야. 어색해서 그래.”

 

아주 작고 빠르게 시선을 먼 곳에 돌리고 말했다.

 

“니 여친은?”

“걔도 처음엔 힘들었다구. ”


안간힘을 다해 변명했다.

빤히 쳐다보는 김식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최선을 다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아니 내가 왜?

 

“가면 언제 또 올 건데? 주말마다 과외 하러 춘천 가야한다며?”

 

목소리는 불퉁하지만 한결 나아진 목소리다.

 

“집에 가서 할 일 있어. ”

“여기서 하면 되잖아. 필요한 거 있으면 내가 갖다줄게.”

 

목소리가 한톤 낮아졌다. 어쩐지 살살 꼬드기는 듯한 목소리다.

“못해. …생리할 때 됐거든. 여기서 더 추한 꼴 보이라구?”

 

내 얼굴을 빨개졌고 김식은 쿡쿡 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김식은 굳이 늦은 시간에 병원에 왔다.

흡사 비밀작전 하는 요원처럼 해가 진 뒤에 응급실로 찾아왔다.

접수대 뒤 대기 의자에 둘이 바짝 붙어 앉았다. 둘 다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마치 도망자처럼 맨 끝 의자에 꾸겨지듯 앉았다.

 

“왜… 숨어 있는 거 같지? ”

“아, 쫌 귀찮아질까봐 그래. ”

“아는 사람들 만날까봐? ”

“뭐 대충.”

 

“너도 학교에서 나랑 아는 척 하지 마.”

“왜?”

“나도 귀찮아질까봐 . 사고 쳤으니 조용히 지내려고. 이미 시끄럽겠지만. 그리고 오토바이도 안탄다. ”

 

후드 사이로 보이는 김식의 눈이 또 삐뚜름해졌다.

 

“이미 늦은 거 같은데? 원한다면. …뭐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

 

뒤에 따라오는 말에 뭐라 대꾸를 하려 했는데 우리 쪽으로 지난번 의사가 다가왔다.

 

“아주 꽁꽁 싸매놨네. 넌 여기 있고.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나는 왜?”

“과장님 아직 퇴근 안했어.”

 

벌떡 일어서던 김식이 얌전히 앉았다.

알바를 했다더니 큰 사고라도 친 건가?

지난번 처치실에서 간단히 실밥을 제거했다. 따꼼 할 새도 없이 다 사라져 버렸다.

 

“ 쟤는 지꺼는 꼭 이렇게 싸고 감추더라. 분간 햇볕은 조심하고… 쟤가 알아서 꽁꽁 싸줬으니 당분간은 이대로 다녀요. ”

 

실밥 뽑아낸 자리를 꼼꼼히 살피던 의사가 툭하고 말했다.

지난번에는 정신이 없어 놓쳤는데 어쩐지 김식과 많이 친한 것 같았다. 내가 느낀석 보다 훨씬 더 많이.

 

왼쪽 눈두덩이 멍자국까지 꼼꼼히 확인해 보고는 어이없을 만큼 간단히 끝이 났다.

 

 

“멍자국이야 시간이 지나면 사라 질 테고. 나중에라도 상처 신경 쓰이면 꼭 수술해요. 또 봐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의사가 인사를 했다.

나랑 또 볼일이 있으면 안되는거 아닌가? 이상한 의문이 들면서 김식이 준 모자와 후드를 꼼꼼히 다시 눌러썼다.

김식은 여전히 한구석 의자에 내 가방을 지키는 커다란 강아지처럼 풀죽어 앉아 있었다.

 

 

“앉아봐.”

“귀찮은 일 생긴다며? 나가는 게 낫지 않아?”

“확인할 건 해야지. 돌팔이 의사가 뭐래?”

 

내 손목을 잡아 끌어당겨 다시 의자에 앉았다. 김식은 초록색 모자를 들춰 방금 실밥을 제거한 내 상처를 꼼꼼히 살폈다.

 

“잘 아물고 있대. 당분간 햇볕 조심하라고.”

“너 이제 이런 거 하지 마. ”

 

김식의 손이 내 상처에 닿았다.

연고를 바를 때 처럼 가만히 내 상처에 손을 대었다.

 

“어떤 거?”

“너 자꾸 상처 입히는 거 하지 마. ”

 

진지한 눈으로 김식이 나를 쳐다보았다.

새까만 눈동자가 따뜻하게 나를 걱정했다.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너 그때 손도 니가 한 거지?”

 

그래서 김식의 진지한 충고를, 정성을 담아 대답을 돌려주었다.

 

“남이사.”

 

김식은 …진짜 삐졌다.


나는 김식의 귓가로 바짝 다가가 낮게 속삭였다.


 "옥탑방 열쇠나 내놔. 담엔 내가 밥해줄께."


김식의 표정이 빠르게 변했다. 

한사람의 감정이 온전히 내 손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