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엄마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다시는 내 새끼들에게 쓸모없다고 욕하지 말라고.

할머니는 험악하게 눈을 치켜뜨며 다시 평상을 지팡이로 탕탕 내리쳤다.

니 까짓 게 어쩔 건데.

 

엄마는 이 집을 팔아버리고 나와 함께 서울 어디로 이사를 갈 거 라고 했다. 찾지 못할 곳으로 가버리겠다고. 혼자서 늙으시라고. 우리 애들한테 또 손지검하고 욕설을 하면 절대로 이집 안으로 못 들어오신다고.

엄마는 처음으로 할머니에게 대들었다.

파르르 떨던 할머니가 못된 년이라고 엄마에게 말했다.

서방 잡아 먹은 년이라고 또 말했다.

내 입으로 말도 못하냐고 소리를 질렀다.

혼자 소리 지르는 할머니 앞에 선 엄마는 완강한 표정이었다.

 

뭐가 저리도 당당한지 화가 났다.

우리를 버리고 아들손자 하고 살겠다고 나간 지 십년이 넘었건만 왜 맨날 당당하기만 한지 불끈 울화가 치밀었다.

여긴 더 이상 할머니의 집이 아니라고, 다 팔아먹고 가지 않았냐고 할머니에게 덤비려 했다. 그런데 엄마가 앞으로 나서던 나의 팔을 잡았다.


나보다 엄마가 먼저 말했다.

그런 못된 년하고 왜 살러 오셨냐고 할머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선택을 하라고.

엄마는 당당하게 말했다.

 

엄마와 할머니의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파드득 눈가를 떨며 니가 감히…하고 선 할머니와 가슴을 펴고 선 엄마가 대치를 했다.

추운 바람이 사정없이 마당에 들이닥쳤다.

예전 내가 쓰던 방을 쓰겠다.

이상하게도 얼마 못 버티고 풀이 죽은 할머니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기우뚱 기우뚱 걸으며 마루로 올라섰다.

승효도 따라 들어와라.

할머니의 말에 마당에 들어선 내내 고개를 수그리고 서 있던 아버지의 아들이 엄마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훌쩍하며 눈가를 닦아내고는 담벼락에 바짝 붙어 서 있는 미스김 언니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죽은 지 백일도 채 되지 않아 할머니가 아버지의 아들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서경언니를 따라 엄마를 떠났던 그 나이에 아버지의 아들도 제 어미의 품을 떠나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다시 훌쩍이며 눈가를 닦아낸 아버지의 아들이 제 어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의 아들의 뺨에는 내가 어릴 적 갖고 싶었던 깊은 보조개가 훈장처럼 있었다.


담장 밖에선 미스김 언니가 아버지의 아들이 집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쉽게 자리를뜨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엄마는 못 본 체 하고 나는 노려보았다.

 

대문 밖에 할머니와 아버지의 아들의 못다 들인 짐만 덩그라니 남겨놓고 미스김 언니는 우리 집 마당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그렇게 떠났다.

엄마는 나에게 그게 호적 값이라고 했다.

 

 

 

 

“인경아. 조인경. 일어나봐. 병원 다 왔어. ”

 

따뜻하고 일정한 속도감이 준 나른함에 깜빡 잠들었나보다.

눈을 뜨려고 했는데 잘 떠지지 않았다. 설풋 든 잠이 잘 째지 않아 앞이 뿌옇게 흐리게 보였다.

 

“그대로 있어.”

 

먼저 택시에서 내려 선 김식이 몸을 깊숙이 넣더니 내 무릎과 목뒤로 팔을 넣었다.

“왜? ”

 

갑작스런 김식의 행동에 화끈 열이 올랐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이지수가 신경 쓰였다.

 

“가만히 있어.”

“나 다리 안 다쳤었거든.”

 

내가 뭐라 투덜거리는데 김식은 나를 진짜 환자처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내 뒤로 가방 세 개를 여전히 든 이지수가 따라 내렸다.

 

“나 내려놓고 가방이나 들어.”

“시끄러. 너 얼굴 커지고 있거든! 쳐 맞기나 하고. 씨바.”

“선빵 먼저 맞고 내가 처리하려고 했는데 지가 막아놓고는. 아.”

 

발끈 소리를 치자 왼쪽 관자놀이가 찡하게 아파오는 것 같았다.

 

“토할 거 같아.”

 

땅이 아니라 공중에 떠 있어서 그런지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내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김식은 빠른 속도로 병원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우리 뒤로 이지수가 세 개의 가방을 낑낑 거리며 종종 뛰며 따라왔다.

 

 

 

[세종병원]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김식의 동네 전철역 가장 가까이에 있는 중형 병원이었다. 언젠가 김식의 옥상에서 환한 간판 빛으로 보았던 바로 그 병원이었다.

 

생각보다 응급실은 바쁘지 않았다.

보통 응급실을 떠올렸을 때의 급박함과 위험함은 다행히 보이지 않았다.

환절기 열 감기에 걸린 아이와 술취한 남자와 어디서 구른 몰골을 한 남자 정도가 다였다. 꼴랑 술에 취해 얻어맞은 내가 들어가도 되나 하는 염려 따윈 필요없 을 정도로 행복한 사람들의 적당한 응급실이었다.

 

나를 침대에 내려주자마자 김식이 나갔다.

이상하게도 머리가 자꾸 무거워 뒤로 넘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침대에 벌렁 누워서도 자꾸 넘어지는 기분에 눈을 감아버렸다. 까만 암흑 속에서도 하늘이 빙빙 도는 것처럼 울렁거렸다.

 

이지수가 내 옆을 지키고 서서 내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화장실에서 끅끅 토하는 동안 내내 내 등을 쳐주었다. 그랬음에도 환한 빛 아래 서자 이지수는 슬금슬금 눈을 피하다 내가 눈을 감았을 때만 나를 대놓고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뒤 키가 훌쩍 큰 남자 의사와 김식이 같이 돌아왔다.

 

“내가 너 전담 의사냐고? 왜 자꾸 나한테 오는데? 내가 며칠 만에 쉬는… ”

 

의사는 며칠째 제대로 씻지 못한 것처럼 불쑥불쑥 올라온 수염과 가스스한 머리가 엉망이었다.

 

“설마 널 두고 결투라도 한건 아니지? ”

 

의사가 나와 내 손을 잡고 있는 이지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둘이 체급차가 나는데?”

“그냥 한 대 얻어 맞았어.”

“니가 때렸을리는 없고. 넌 뭐하느라 그걸 못 막았어? ”

“씨바 …애새끼들이 잡고 있어서.”

의사는 김식과 주고니 받거니 하더니 후레쉬를 켜 내 눈동자를 꼼꼼히 확인했다. 나는 자꾸만 뒤로 넘어가는 의식을 겨우 붙잡고 눈을 뜨려 애썼다.

 

“머리에 이상 없나 봐줘. 쳐 맞으면서 의자랑 같이 굴렀어. 얼굴에 상처도.”

 

초조한 듯 김식이 옆에서 의사에게 말했다. 그런데 나를 진료해주는 의사와 오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친근했다.

 

“머리가 뭐 그렇게 쉽게 깨지는 줄 알아? 상처 좀 볼께요.”

 

이지수가 열심히 피를 닦아낸 오른쪽 관자놀이 아래 뺨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쫌 애매한데… 그냥 놔두기엔 잘 안 붙을 거 같고 한 세 바늘 정도? 여긴 성형외과 선생님 없어요. 흉터 남을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요?”

 

“아, 그냥 뭐라도 해.”

 


김식이 욱하고 의사에게 대들 듯이 말했다.

 

“어떤 미친 새끼가 얘한테 컵을 던졌어. 파편에 맞은 거 같아.”

 

“흠… 머리는 너가 찍어봐야 할 거 같다. 그때 니 친구는 머리를 갈았는데도 안 죽는다며? 니 입으로 말 한 거 같은데? 일단 파상풍 주사부터 맞자. ”

 

“진단서 꽉꽉 눌러서 해줘. 쥐새끼를 잡으려면 치즈가 두꺼워야지.”

“왜, 아주 니가 의사를 하지. ”

 

의사가 사라진 후 겨우 눈을 뜨고 난 후 김식에게 물었다.

 

“너 저 의사랑 친해?”

“아는 형이야. 지난겨울에 여기서 알바했어. ”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나를 내려다보고 선 김식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서 의대에 간다는 소문이 돌았나?

별별 집에서 알바를 하는 김식은 이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겠네. 별스런 생각이 들어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뭘 잘했다고 웃어?”

 

침대에 누운 채로 실려 여기저기로 갔다. 그때마다 김식이 옆에 있었다. 참 별스럽다고 생각했다. 또 침대채로 실려간 방에는 내 얼굴 위에 초록색 천을 덮어두고 아까의 그 의사가 진지한 얼굴로 내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찢어진 상처에 소독한다고 식염수를 부을 때마다 부르르 추위가 밀려왔다.

 

“마취 주사 아파요. 참아요.”

내 손을 잡아주던 이지수는 없었지만 내 옆에 김식이 단단히 서 있었다.

작년엔 손을 마취도 안하고 꿰맸는데… 이 까짓거야.

몇 번 꾹꾹 주사바늘이 내 얼굴을 찔렀다. 주사 바늘에 찔릴때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을 더 깊게 찌푸렸다. 다시 까무룩 머리가 뒤로 넘어가는 듯 암흑이 왔다.

 

“추워.”

 

나도 모르게 낮게 한숨 같은 말이 나왔다.

내내 옆에 불안하게 서 있던 김식이 덥썩 내 손을 잡았다.

 

“똑바로 해. 애 춥다잖아. ”

“너 … 조용히 안 해? ”

 

조금씩 멀어지던 의식으로 김식의 울퉁불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나가. 보호자처럼 굴지 말고… 재수 없어.”

 

잠깐 암흑이 걷혔을 때 낮은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내 옆에 바짝 앉은 의사의 끅끅끅 숨죽인 웃음소리가 바로 귓가에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까무룩 깊은 암흑이 찾아왔다.

 

 

 

 

 

◆◇◆

 


 

병원에서 모든 일이 끝났을 때는 자정을 한참 넘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김식의 옥탑 방으로 왔다. 나를 매트리스에 앉혀놓고 물수건을 만들어 온 김식은 내 손을 꼼꼼히 닦아 주었다.

어둠속에서 김식의 표정이 어떤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인형처럼 김식이 하는 대로 맡겨두었다.

 

“만세 해봐.”

김식의 낮은 목소리에 나는 말 잘 듣는 유치원생처럼 두 팔을 바짝 올렸다.

김식이 내 웃옷을 한 번에 벗겨냈다.

속옷 한 장만 남고 맨살이 통창을 타고 들어온 어스름한 빛 사이로 드러났다.

 

“너도 꼴려?”

“니 얼굴이 지금 어떤 꼴인지 모르지? ”

“아까 그 복학생이 나한테 꼴리게 생겼다고 했어.”

“씨발 새끼가!… 또?”

“여자 애들한테 숨 쉬는 돈까스 라하고, 또 걸어 다니는 제육이래.”

 

벗겨 낸 내 옷을 매트리스 아래로 던져놓고는 내 머리위로 툭하고 새로운 옷가지를 덮었다.

 

“손”

 

마치 어린아이에게 하듯 소매 밖에서 손을 집어넣어 내 왼 팔을 소매 쪽으로 잡아뺐다.

 

“또?”

“지는 밟아놓은 개떡 같은 게 라고 해줬지. 크크크”

 

이상한 밤이었다.

술이 덜 깨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마취주사에 취한건지 나는 수다스러웠다.

 

“손.”

 

이번엔 또 반대쪽 소매 밖에서 손을 넣더니 내 오른손을 빼냈다. 얘는 이런 걸 어디서 익혔을까?

어릴 적 엄마가 뽀얗게 목욕을 시켜놓고 내게 옷을 입혀주었던 것처럼 김식이 웃옷을 제대로 입혀 주었다. 소매 밖으로 나온 손바닥을 들어 반짝반짝 흔들었다. 그게 신기해서 또 키득키득 웃었다.

 

“ 또?”

“ 또? 흠… 나를 뱀처럼 쳐다보더니 좆같이 생겼다고 … ”

 

김식이 나를 천천히 밀어 뒤로 눕혔다. 폭신한 베개가 머리에 닿았다.

 

 

“군대 가면 재밌는 일이 많겠다? ”

 

아랫배에 스윽 김식의 손길이 닿았다. 그리고 마치 내 몸에 껍데기를 벗겨내듯 김식이 내 바지를 단번에 끌어내렸다. 하체 쪽엔 작은 속옷 한 장만 달랑 남았다.

내 표정 역시 김식에게 읽히지 않았을 것이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안 꼴린다며?”

 

나는 상체를 일으키며 김식을 향해 소리쳤다.

 

“니 얼굴 꼴을 보라고 했지…안 꼴린다고는 안했다.”

“…그럼 꼴려?”

“ 니 옷에서 병원 냄새 나. 자!”

 

다시 내 이마를 툭 밀었다. 나는 다시 베개로 떨어졌다.

자꾸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툭하고 희미한 어둠속에서 김식의 옷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김식이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 누웠다. 이불을 꼭꼭 싸매주며 나를 바짝 끌어 안았다. 병원에서 의식이 푹 꺼지듯 졸았다. 택시에서 내려 김식의 옥탑 방으로 올라오는 동안 김식에게 업혀 있을 때도 잠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꾸 까무룩 졸았다 깼다 빨리 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를 바짝 끌어안은 김식의 들숨 날숨이 의식되었다. 뺨이 간지럽고 내 안 깊은 곳에서 근질근질한 어떤 기분이 느껴졌다.

“숨 막혀.”

 

꼼지락거리며 김식에게서 약간의 틈을 벌이려했다.

 

“얼른 자.”

 

내 가슴위로 나를 꼭꼭 덮어놓은 이불 위를 누르는 김식의 팔이 너무 신경 쓰였다.

 

“근데…나는 꼴려.”

 

그래서 김식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아…. 진짜.”

 

깊은 한숨을 쉰 김식이 나를 꾹꾹 둘러싼 이불을 확 재꼈다. 내 위로 빠르게 올라탔다.

 

“멍청아, 니가 먼저 시작한 거다.”

 

 

내 몸에 남아있던 작은 속옷이 수식간에 사라졌다. 김식이 기껏 입혀놓은 웃옷은 한껏 말려 올라갔다.

 

“다리 벌려. ”

 

나는 순순히 명령을 받았다.

단숨에 뜨겁고 단단한 것이 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거침없는 속도였다. 나를 부서 버릴 것처럼 김식은 계속해서 밀고 또 밀고 내 안으로 들어왔다.

 

지난 번의 서툰 세 번의 섹스와는 다른 것 같았다.

나도 뜨거웠고 김식도 뜨거웠다.

나와 김식의 호흡이 얽혔다.

각자마신 술 냄새가 서로에게 닿았다.

뜨거운 몸이 꿈틀대는 근육이 나를 내리눌렀다. 내 안으로 조금 더 조금 더 가깝게 밀고 들어왔다.

 

김식이 내 오른손을 잡았다.

나에게 시선을 풀지 않으면서 내 오른손을 잡아 입술에 댔다.

나는 흔들리면서 문득 깨달았다. 처음 김식을 만났던 날 붕대가 감겼던 내 손. 김식은 그 손을 잡고 있었다.

나는 김식에게서 손을 빼냈다.


그리고 그 손으로 김식의 목을 감았다.

나 답지 않은 밤이었다.

 

스물 한 살의 남자는 탱크였다. 거침없이 밀고 또 밀고 들어오는 탱크.

없는 길도 가고, 멈추지도 않고 그저 직진마나 할 줄 아는 탱크. 나는 다이너마이트 시기를 지난 스물 한 살의 남자를 간과했다.

 마음이 이상하게도 일렁거리고 울렁거렸다.

3월은 정말 위험한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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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꼬랑쥐에 내일. 

 혹은 내일 또 옵니다.

 딱 이렇게만 쓸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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푱이가



dupiyongsta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