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무적, 무적, 무적”

“컴공, 컴공, 컴공. 위하여.”

 

적당히 넓은 가게 안에 우렁찬 함성이 터졌다.

학생회장의 선창에 마치 군기가 든 군인처럼 남자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답을 했다. 모두가 손에 든 잔을 신나게 부딪쳤다. 잔과 잔을 넘어 술이 튀었다.

 

우와아아.

한껏 신이 난 함성이 가게를 뒤흔들었다.

 

 

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 국사선생님이 딸기아빠 즉 딸아이 하나 기집애 하나의 아빠가 되었다는 시시한 농담을 하던 날이었다. 그 농담이 거슬려 날카롭게 신경이 곤두섰다. 그날 옆에 앉은 현주가 작은 목소리로 자기는 딸이 셋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내 귀로 들어왔다. 나는 빗장을 풀고 손가락 네 개를 펴보였다. 우리 집은 넷이야, 딸딸딸딸 경운기라고도 해. 내 오랜 상처가 농담이 되었다. 그렇게 현주는 빗장을 열고 들어왔다.

 

춘천에 있는 내내 이지수가 마음에 걸렸다.

방학이 있기 전까지 내 주변을 돌며 뭔가 할 말이 잔뜩 있는 표정을 하고 있던 그 얼굴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시시하게 군 내 말이 마음 한구석에 생선가시처럼 불편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 나는 이지수를 찾았다.

사과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지수는 나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움찔 놀라기도 하고 뭔가 곤란한 얼굴을 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사라지면서 나를 피했다.

200원짜리 커피만으로도 내 편이 되었던 이지수에게 시시했던 나를 지워주고 싶은 작은 욕심이 있었다. 다시 예전처럼 내 편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냥 그것만으로 족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상한 자리에 와 있다.

[선후배미팅]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단 학과 행사였다.

각 학년마다 몇 명씩 각출하여 팀을 만들어 선후배 인사를 가장하여 술을 마시는 자리였다. 공대답게 여학생 수보다 남학생 수가 월등히 많았다. 대부분 남자 무리에 고작 여학생이 한 두 명 구색 맞춰 끼여 만든 팀이었다. 학기 초 어색함이 가득한 신입생과 기득권을 가진 선배들의 호의를 기대하는 그런 행사였다.

 

한 테이블에 고작 일곱 여덟 명 쯤이 한 팀이었다.

그렇게 만든 팀이 가게 안 테이블을 제각각 차지하고 있었다.

 

 

적당히 넓은 술집 몇 개를 잡아놓고 학생회장이 장소마다 돌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테이블마다 적당한 인사를 나누고 아는 얼굴끼리 친분과 후배에게 적당한 허세가 안주였다.

 

처음 시작은 뚜렷한 목적에 맞게 화기애애를 흉내 내기도 했다.

술이 더해질수록 분위기가 점차 느슨해지고 흥건해졌다.

흥건해질수록 사회적 가면을 벗는 종족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거슬리는 게 두 가지가 있었다.

적당히 있다 집으로 가려했는데 내 신경을 갉작거리는 두 가지 때문에 나는 버티고 앉았다.

가끔씩 내 등 뒤에서 나를 쳐다보는 뜨거운 시선에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그리고….

 

“나 때는 말이야 선배들하고 이박삼일을 굴렀다고. 피 토할 때까지 마셔봐야 진정한 공대생이 되는 거지.”

 

어깨 길이의 단발머리에 까만 뿔테 안경을 쓴 새내기 여학생은 우리 테이블에 유일한 겉보기 여자였다. 그 옆에 복학생이라며 군복 야상 잠바를 입은 남자 하나가 신입생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올해 신입생들은 여덟이나 들어왔다며? ”

“역대 기록이라는데요.”

“아, 선배 그러니깐 우리 팀에도 여학생이 한명 낀 거죠.”

“원래 각 팀당 두 명 쯤은 된다고 들었는데?”

복학생의 목소리는 우리 테이블을 넘어가는 큰 목소리였다. 본인이 이곳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는 과장된 목소리였다.

어쩌면 작년 신입생 환영회에 앉아있던 나는 이런 비슷한 장면을 보았을 수도 있었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거슬렸다.

 

 

“졸업반들이 튀었나보네. ”

 

시시하고 특별한 대화다운 대화가 이어질 거라고 기대도 없었다.

 

“ 어차피 졸업하면 시집이나 갈 것들이 왜 자꾸 공대에 오고 지랄이냐고. ”

“ 그래도 토목이나 기계처럼 되는 것보다는 낫죠. 거긴 완전 남탕이잖아요. 건축에도 여학생들 들어왔대요. ”

“거긴 진짜 군대네 군대. 좀 짠하긴 하다. ”

복학생은 딱히 대상이 있는 건 아닌 무의미한 대화를 큰 목소리로 본인이 리드를 하고 있다는 자만감이 가득했다.

그래서 거슬린 것은 아니었다.

 

“너, 중간에 내빼면 죽는다. 수염은 안 나도 의리는 있어야지. ”

 

대화는 옆에 앉은 남학생과 하면서도 시선은 옆에 앉힌 신입생 여학생을 값을 매기 듯 훑어 내렸다. 한 팔은 여학생 의자 뒤쪽으로 자연스럽게 팔을 걸쳐 놓고 여학생 쪽으로 몸까지 40도쯤 틀어 앉았다. 두 다리 사이로 여학생의 의자를 끼워 넣을 듯 위험하게 가까웠다.

“야, 너네 이학년은 여자 몇 명이냐? ”

“작년에 다섯? 아니 네 명 들어왔어요.”

“꼴랑 네 명인데 그걸 말아먹었냐? 니네 이학년. 작년 탑은 기집애라며? 달린 것들이 그것도 하나 못 이기냐.”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복학생의 행동이, 눈빛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에이 선배, 공부하는데 남자 여자가 어딨어요?”

“그러니까 니네가 병신 같다는 거야. 그거나 떼버려라 새끼야. 씨발 좆도 없는 게 어디서 알랑방구나 껴서 어디서 족보 얻었겠지…. ”


처음엔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친절한 척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같은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명, 네 명으로 이야기는 각자의 주제로 흘러갔고 곧 뒷자리의 친한 무리로 이탈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이번에 신입생 우리 과에서 공대수석 나왔잖아요. 남자래요. ”

“그거 다행이네. ”

 

그리고 깨달았다.

자리를 이탈하는 사람은 어쩌면 저 복학생의 불편한 말을 피하기 위해 자리를 일부러 뜨고 있다는 것을.

 

“근데 걔가 아주 골 때리는 놈인 게 작년 우리학교 다른 과 다니던 놈이라는데 자퇴하고 다시 시험 쳐서 들어 왔다고 요란해요. ”

 

 

아무도 복학생의 행동과 위세를 제지하지 않았다.

 

“제대로 좆 값은 하는 놈이네. ”

“교수님들이 벌써부터 대학원까지 납치해가고 싶다고 난리래요.”

 

 

복학생 가까이에 앉아 꼬박꼬박 대답을 하는 남학생은 복학생의 전담 마크맨이고, 옆자리에 앉은 신입생은 복학생의 재물이었다.

가게 구석 쪽으로 밀어놓은 내가 앉은 자리는 의도된 자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묘하고 비겁한 술수에 헛웃음이 나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복학생의 단어는 점차 폭력적이었다.

마크맨은 힘에 부쳤고, 신입생은 얼굴이 파랗게 얼어갔다.

오늘 이 자리의 벌거벗은 임금님은 저 복학생이었다.

 

복학생의 험한 말을 고스란히 듣는 건 여학생과 오늘의 전담 마크맨 남학생. 그리고 복학생과 끝자리에 앉은 나도 그 거지같은 말을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복학생의 언어 하나하나가, 눈길 하나하나가 계속해서 내 신경을 자극했다.

 

“공대에 왔으면 이런 자리도 익숙해져야지. 마셔라.”

“선배, 저랑 마셔요. 짠.”

 

복학생은 혼자만 여자인 것이 어색해하며 잔뜩 긴장하고 앉은 신입생에게 자꾸 술을 권했다.

 

“새끼야, 자꾸 감싸지 마. 군기는 처음부터 잡아야지.”

 

곤란해 하는 신입생의 표정이 이지수와 조금 닮아 있었다.

 

 

아무도 내게 술을 권하지 않았다.

나는 꼿꼿하게 앉아 복학생이 여학생에게 마시라고 권할 때마다 한잔씩 마셨다.

중간에서 마크맨이 나름 막아주고 있지만 세 번에 한번은 여학생은 어쩔 수 없이 쓰고 싸한 소주를 마셔야 했다.

 

“화장실 좀….”

 

이미 주량을 넘어선 것 같은 여학생이 비틀거리며 울 것 같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 너 가방 놓고 가.”

 

복학생이 여학생이 들고 일어서려던 가방을 빠르게 잡아챘다.

 

 

“화장실 간다고 하면서 튀려는 거지? ”

“아, 아니에요.”

“꼬락서니가 딱 그런데 뭐가 아냐?”

복학생은 여학생의 가방을 빼앗다 시피 하여 제 옆자리에 당당하게 내려 놓았다.

 

나 혼자 여학생의 취기 상태를 가늠하고 있었다.

초보 여학생에겐 이미 과한 양의 술이 들어갔다. 난 확신할 수 있었다.

내 호흡이, 잠깐씩 정신이 아득해졌다 돌아왔다.

당황해 더 빨개진 얼굴로 여학생은 벽과 테이블의 좁은 사이를 겨우 빠져나왔다. 내 뒤로 걸어가는 여학생의 걸음걸이는 아슬아슬한 한계를 겨우 붙잡고 있는 듯 잠깐 휘청거렸다.

 

복학생은 화장실 가는 신입생의 뒷모습을 보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이왕 공대까지 기여들어왔으면 기집애들이 이쁘기라도 하던지.”

“에이… 선배 왜 자꾸 그러세요?”


여학생이 나가자 내가 앉은 테이블은 거의 비였다.

복학생과 나 그리고 남학생 하나.

뒤쪽 테이블에서 거하고 왁자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리 테이블은 폐허 직전이건만 안쪽 사람들은 모두 흥이 오른 것 같았다.


“새끼들 다 어디 간 거야? ”

“담배 피우러 갔나봐요. 형, 마셔요. 마셔.”

 

아까부터 꼬박꼬박 대꾸해주던 남학생이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면서 말을 돌리려 나름 애쓰고 있었다.

 

“뭘 내가 틀린 말 했냐? 저건 숨 쉬는 돈까스고, 저건 걸어 다니는 제육이네. 그리고…쟤는 삶은 돼지머리. 쓸모가 없어. 쓸모가. 학교 다닐 맛이 안나네.”

“다른 애들 들어요, 선배.”

 

뒤쪽 테이블의 여학생을 이쪽 저쪽을 턱짓을 하며 노골적인 희롱이 쏟아졌다.

 

뭔가가 탁하고 걸렸다.

내 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 저 술 더 가져올게요.”

 

복학생 옆에 전담 마크맨이 거의 비어있는 테이블에 안심하고 처음으로 자리를 떴다.

이제 이 타원형 테이블엔 나와 복학생만 남았다.

 

“기집애들은 화장실 간다더니 만들어서 싸나? 뭐 이렇게 오래 걸려? ”

 

툴툴거리는 말을 들을 사람은 이 테이블에 나 밖에 없었다.

 

“야, 너 거기… 야! 귀가 처 먹었나? 야!”

 

이건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오늘 벌거벗은 임금님을 상대할 착한 어린이는 나인가보다.

 

 

“야 새끼야, 안 들려? ”

 

나는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뭐요?”

“ 뭐요? 부르면 따박따박 대답이나 할 것이지. 사내새끼가 혼자서 뭐 하는거야? 궁상떨지 말고 이쪽으로 와. ”

 

내 앞에 잔을 단숨에 털어 넣었다. 싸한 액체가 목안을 타고 넘어갔다.

그리고 반쯤 차 있는 소주병을 잡고 느리게 일어났다.

 

복학생이 내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쳐다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 등 뒤에서도 뜨겁고 따끔한 시선이 하나 따라왔다.

 

“현역? 뽀송 거리는 거 보니 아직 군대 맛도 안 봤겠네. ”

 

 

나는 자연스럽게 복학생이 맡아놓은 여학생 가방을 들어 내 옆쪽으로 가방을 옮겼다. 그리고 가방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았다.

 

“잔 비였다. 따라 봐.”

 

불쑥 술잔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잠깐 복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가만히 버티고 복학생을 쳐다보았다.

 

 

“그 잔 말고.”

 

테이블에 있던 음료수 잔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남자라면 …좆. 값. 해야 한다면서요? ”

 

복학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뭐?”

 

술기운이 오른 눈이 번들거렸다.

나는 스윽 손을 내밀어 음료수 잔에 남은 액체를 버렸다. 그 잔에 들고 온 소주를 따랐다.

“하, 요 새끼 봐라.”

 

아슬아슬 넘치도록 가득.

소주가 넘실거리는 그 잔을 복학생 앞쪽 가까이로 밀었다.

“만만한 일학년 그만 갈구고 붙어보던가.”

 

나와 눈이 마주친 복학생은 나를 꼼꼼히 파헤치듯 쳐다보았다.

 

“미친 새끼가… ”

 

나를 빤히 보는 복학생의 숨결에서 진한 알콜 냄새가 훅하고 끼쳐왔다.

복학생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거… 사내새끼가 뭐 이래? 눈까리봐라. ”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복학생이 흠흠 거리며 마른 침을 삼켰다.

“이거 아주 좆같이 생겼네.”

 

화장실에 갔던 여학생이 돌아왔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 뒤쪽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서 있었다. 이곳에 들어와 처음으로 가방이 옮겨진 자리와 싸울 듯 쳐다보고 있는 나와 복학생을 보고 어찌할 바 모르고 서 있었다.

 

“너 다른 자리에 가서 앉아. 화장실을 한 번 더 다녀오면 더 좋고. ”

 

난 복학생과 시선을 풀지 않고 여학생에게 말했다.

 

“뭐야 새끼야.”

“나랑 붙어보자고요. 선배님.”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붙어보자고. 기집애도 아닌 놈이 꼴리게 생겼어.”

 

내가 밀어놓은 유리잔을 잡았다. 그리고 한 호흡으로 가득찬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리 깐 시선을 내 얼굴을 떠나지 않았다.

내 눈동자와 내 뺨, 그리고 입술을 핥듯이 시선으로 훝어 내려갔다.

 

 

탁하고 소리가 나도록 유리잔을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이 새끼 군대 가면 재미 볼 일 많겠는데?”

 

신입생과 앉았던 것처럼 한 팔을 내 뒤 의자에 걸쳤다. 복학생은 내 쪽으로 몸을 틀고 앉았다. 무릎이 내 무릎에 닿을 만큼 가까이 있었다.

 

여직껏 내가 만났던 남자의 눈빛과는 달랐다. 동물의 냄새가 날 것 같은 눈빛이었다.

취한 복학생의 눈빛은 위험했고 취한 나도 아슬아슬했다.

“선배님은 입에 걸레를 물어 재미 볼일 많겠습니다. ”

나는 복학생 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낮게 속삭였다.

나는 피식피식 웃었다.


“이게 미쳤나?”

 

복학생이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툭툭 밀었다.

“야! 야! 너 내가 만만하지?.”

 

복학생의 손짓은 할머니의 어투와 닮았다.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강한 힘이었다.

 

한번 밀릴 때마다 내가 휘청일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머리가 울렸다.

 

“씨발, 아주 선배도 몰라보고.”

“선배 같아야 선배지.”

 

뒤쪽 어느 테이블에서 와하하하 하고 또다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 몫이 아닌 행복한 웃음이었다.

나와 복학생의 시선이 팽팽하게 얽혔다.

작은 자극에도 스파크가 튈 것처럼 위험했다.

술 가지러 간다던 남학생이 돌아왔다. 비겁하게 쓰레기 같은 복학생만 남기고 자리를 피했던 남학생이 복학생 옆쪽으로 급하게 다가섰다.

 

“선배 취했어요. ”

 

나는 테이블위에 놓인 소주병을 천천히 말아 쥐었다.

 

“넌 빠져. … 요 새끼 봐라? 눈깔을 파버릴라. ”

 

난 취했다.

그래서 조금 만만하게 생각했다.

나는 피식피식 웃었다. 가소롭다는 듯이. 이게 복학생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나를 물어뜯고 싶어 하는 야수의 눈빛, 난 자극했다.

 

“… 좆같네. 정말. 지는 밟아놓은 개떡 같은 게.”


 드르륵 쾅.

의자를 거칠게 밀치며 복학생이 달아오른 얼굴로 내 머리를 후려 갈겼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거친 힘에 테이블을 쓸어내리며 의자와 함께 나동그라졌다.

와르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빈 소주병 몇 개가 나와 같이 바닥에 떨어졌다.

 

선배는 테이블 위 손에 잡힌 유리잔을 내게로 던졌다.

파삭 깨진 유리조각이 나에게로 튀었다. 



 

“너 뭐라고 했어? 씨발 새꺄.”

 

뭐가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소주병이 와르르 떨어지는 소리인지,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터져나온 비명소리인지, 아니면 ….

 

드드륵 쾅

내 뒤쪽 화기애애하던 테이블에서 거의 동시에 아니 어쩌면 더 빠르게 거칠게 의자가 밀리는 소리였는지.

 

“선배, 선배. 그만해요. ”

 

저벅저벅.

발소리가 머리를 울릴 듯이 크게 들렸다.

 

나는 손에 말아 쥐고 있던 소주병을 들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세게 얻어 맞은 머리가 띵하고 울려왔다.

그건 예상치 못한 압도적 힘이었다.

내가 가진 힘과는 근본이 달랐다. 남자인 체 하는 나와는 다른 힘이었다.

술 취한 개였고, 군대도 다녀온 예비역이었다.

 

저벅저벅.

시끄럽던 가게 안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그 사이에 급한 걸음이, 모여 있던 사람들을 헤치며 걸어오는 걸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꼴랑 좆대가리 가지고 유세는 … ”

그냥 툭하고 말이 쏟아졌다. 나는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씨발 새끼가. 더 나대면 죽인다 ”

 

미쳐 날뛰기 시작한 복학생을 마크맨이 뒤에서 가슴을 꽉 붙잡았다. 제 맘껏 날뛰지 못한 복학생은 자신을 잡은 마크맨을 떨꿔내려 힘을 썼다. 붉어질 대로 붉어진 얼굴, 거칠어진 호흡 그 사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엔 살기가 돌았다.

 

나는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힘을 다해 손에 잡고 있는 소주병을 잡고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형. 취했어요? 왜이래요?”

“내가 저 새끼 죽여 버린다. ”

 

저벅저벅.

마치 카운트를 하듯 발소리가 점점 크게 다가왔다.

일어나지도 못하는 나에게 발길을 하려 날뛰는 복학생 앞에 김식이 섰다.

내가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두 번째!

내 등뒤 쪽에서 거슬리던 뜨거운 시선. 얘가 여기에 있었다.

김식이 아까부터 우리 과 선후배미팅이란 요상한 자리에 함께 하고 있었다.

 

 

복학생보다 머리 하나 더 큰 김식이 복학생 앞으로 거침없이 걸어갔다.

파랗게 날이 선 시선으로 붙잡고 있는 남학생을 떨치려 힘을 쓰던 복학생 앞으로 그냥 걸어갔다.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복학생을 향해 김식은 그냥 걸어갔다.

 

“너, 넌 뭐야?”

“나? 신입생.”

 

허공에 발길질을 하던 복학생의 정강이를 가볍게 걷어찼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복학생의 멱살을 잡았다.

 

“찢어버리기 전에 입 마무십시오. 씨발 선배님아.”

 

차가운 어투였다.

나를 향해 짐승의 눈을 하고 날뛰는 복학생의 멱살을 단단히 틀어잡고 김식은 단단히 섰다.

 

“너 손 안 놔? 손 놔 새끼야.”

 

나와 복학생의 싸움에서 김식과 복학생의 싸움으로 변했다.

 

“야, 너까지 왜 그래. 아, 쫌 말려 봐요. ”

 

김식은 핑 돌은 눈빛이었다. 언젠가 핏줄 터진 눈으로 찾아 왔을 때처럼 핏줄이 터지지 않았어도 붉은 눈을 한 것도 같았다.

 

“놔 새끼야.”

 

주변에서 조용한 소음이 속삭이는 소리로 터져 나왔다.

 

“저 개 선배 또 지랄이야.”

“저 선배는 왜 졸업도 안해.”

“뭐야? 뭐야? 쟤는 왜 나서?”

“야, 야, 저 선배 발이 들린 것 같아. ”

 

그 사이로 타닥타닥 가벼운 발소리가 나더니 내 옆으로 이지수가 튀어 나왔다.

일어나려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이지수가 다가와 내 팔을 잡았다. 바닥에 깨진 유리잔과 뒹구는 소주병 사이로 조심스럽게 나를 부축했다.

 

겨우 일어섰다. 핑그르르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내 팔을 잡은 이지수의 팔을 조심스럽게 밀어냈다.

 

“잠깐만.”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려 했다.

그리고 나도 터벅터벅 걸었다. 우리 쪽 테이블을 구경하는 사람들 시선 따윈 보이지 않았다. 단단히 나를 가로막고 있는 김식을 향해 나는 걸었다.

 

“너 비켜. 나 아직 안 끝났어.”

 

나는 김식의 등을 보고 거만하게 말했다.

짐승의 눈을 한 복학생과 나는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있었다. 나는 여기서 그만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할게. 내가 죽여 버릴께.”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김식이 말했다.

 

“니가 왜? ”

 

그러나 나는 발끈해서 소리쳤다.

 

“내 싸움이야.”

 

김식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복학생의 멱살을 더 세게 틀어쥐었다.

 

“이것들이… 으으윽. 손 놔. 씨발 …호모새끼들. ”

“선배고 나발이고, 진짜 죽입니다. 개새끼는.”

이를 악문 것처럼 김식이 말했다.

등 뒤로 오싹 소름이 지나갈 만큼 차갑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인경아, 너 다쳤어.”

 

어느새 곁에 다가온 지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쩐지 젖은 것 같은 목소리였다.

 

순간 김식이 거칠게 잡고 있던 멱살을 풀었다. 그 기세에 버둥거리던 복학생과 잡고 있던 남학생이 동시에 휘청이며 뒤로 밀려났다.

김식이 화를 가라앉히듯 숨을 크게 쉬더니 느리게 나를 돌아봤다. 이곳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김식과 마주했다. 내내 등 뒤에 눈이 달린 것처럼 거슬려했던 김식과 마주하고 섰다.

 

나는 김식을 노려보았다. 김식도 나를 쳐다보았다.

 

“너 비켜. ”

 

“너 다쳤어.”

 

내가 김식 앞으로 나서려 할 때 내가 단단히 잡고 있던 소주병을 잡은 손목을 천천히 감아왔다.

 

“ 내가 한다고.”

 

난 소주병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취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떤 분노가 가슴에서 일렁거렸다.

이지수에게 숨 쉬는 돈까스라고 놀린 것도 신입생에게 노골적으로 짐승의 시선을 보낸 것도 다 거슬렸다. 말끝마다 좆 좆 거리는 것도 그놈의 좆 값도 죽이고 싶었다.

 

“내가 할께.”

“니가 뭔데? ”

 

엉망진창인 가게 안에서 둘이 시선이 한 치의 양보 없이 버텼다.

 

“아 씨발! 드러운 호모새끼들이…. 지랄 염병하고 자빠졌네.”

나는 김식에게 잡힌 손목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꼼짝도 않았다.

 

“놔라. ”

내 등 뒤로 조심스럽게 이지수가 다가왔다.

 

“괜찮아 … 인경아. 이제 이거 놔도 돼. 괜찮아.”

 

나를 난감한 표정으로 보던 이지수가 나를 달랬다. 소주병을 단단히 잡고 있던 내 손을 슬그머니 잡고 천천히 달랬다.

 

“너 피난다 말이야. 그만해.”

 

어쩐지 젖은 이지수의 목소리에 내 속을 들끓었던 맹렬한 독기가 서서히 내려앉았다.

 

“저건 또 뭐야? 삼각관계야?”

“아, 선배 쫌. 입좀 다물어요.”

 

소리 지르는 복학생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리서 들려왔다.

 

어느 날 내게 다정하고 명쾌한 얼굴로 다가왔던 이지수가, 내가 사과하려 했더니 곤란한 얼굴을 했던 이지수가 뒷꿈치를 들고 휴지로 내 뺨을 꼭꼭 눌렀다. 그 사이에 김식이 내 손에서 소주병을 빼앗아 갔다.

 

“아.”

 

하얀 휴지에 빨갛게 피가 묻어 나왔다.

 

“으이구 여자애 얼굴이 이게 뭐야? ”

 

헉하고 크게 울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말도 안 돼. 저 선배가 여자인가봐. ”

“저 언니가 진짜 여자래.”

“쓰레기 선배가 여자까지 때렸어.”

 

김식이 복학생 선배에게 고개를 돌렸다.

 

“니넨 알고 있었지? 저게 쓰레기라는거. ”

 

그리고 김식은 우리 테이블에 앉아있다 다른 자리로 옮긴 사람들을 빠르게 찾아냈다.

 

“이딴 것들이 대학생이라고… 완전 개 쓰레기들이네. ”

 

경멸하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내 얼굴을 꼭꼭 닦아주고 있는 이지수 앞에 가만히 서 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병원가자.”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급작스런 다정함에 잠깐 휘청거렸다.

나를 끌고 김식은 모여든 사람들을 헤치며 가게 문을 향해 걸었다.

 

“딱 봐도 여자구만. 진짜! 눈이 삐었나? ”

 

조용해진 사람들 사이로 지나오는데 내 등 뒤로 이지수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씨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저 새끼가 왜 여자냐고?””

 

복학생을 잡고 있던 남학생이 빠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쟤가 이번 전체 일등하고 들어온 걔에요. 선배. 저 새끼 또라이에요. 지네 고등학교 선생도 고소해서 재판한대요. 선배도 조심해요.”

 

그리고 또 다른 말도 열린 문 사이로 따라오다 바람과 함께 흩어졌다.

 

 

 

 

3월의 차가운 바람이 훅하고 옷깃을 파고 들어왔다.

김식은 한 손으로 내 손을 단단히 잡고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근데 너 왜 여기 있어? 의대 안 갔어?”

“난 의대 간다고 말한 적 없다. ”

 

김식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생각해보니 까마귀떼처럼 김식을 따라다니는 애들에게 들은 말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 번도 김식에게 묻지 않았다.

 

“근데 너 왜 쓰레기 과에 들어왔어?”

지나는 택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김식이 고개를 돌려 흘깃 쳐다보았다.

 

“너가 여기 공부 재밌다며?”

 

어느 가을날 김식이 내게 물었던 말이 기억이 났다.

김식이 다시 도로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열심히 택시를 잡으려 손을 흔들었다.

 

 

“나, 병원 안가도 돼.”

“너 다쳤어.”

빈 택시가 우리 앞에 섰다.

가게에서 나와 내내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던 김식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빡친 눈빛이었다. 화를 누르는 그런 눈빛이었다.

화는 지금 누가 나야 하는데? 멋대로 내 싸움에 끼어든 주제에.

 

“병원 안가.”

“타. 얼른.”

“이딴 건 침 바르면 돼.”

“내가 핥아 줘?”

“미쳤어?”

 

노려보는 둘 사이로 조수석 차창문이 스스륵 열리더니 택시기사가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학생들 안 타?”

“잠깐만요.”

 

김식이 내게 시선을 거두지 않고 택시기사쪽으로 소리쳤다.

 

“작년엔 나보고 먼저 가자고 잘도 꼬시더니.”

“작년엔 잘도 거절하더니.”

 

김식의 말에 지지않고 대꾸했다.

그때 가방 하나는 크로스로 두 개는 앞뒤로 맨 이지수가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나도 같이 가.”

 

아직 병원을 갈지 정하지도 않았는데 이지수가 실갱이 하는 우리 둘을 비집고 뒷자리에 낼름 올라탔다.

 

“빨리 타.”

 

김식과 눈싸움을 하고 있던 나는 시선을 풀고 먼저 자리를 잡은 이지수를 보았다. 어깨를 으쓱하고 이지수 옆자리로 천천히 올라탔다.

그리고 김식이 커다란 몸을 구부리며 내 옆자리로 따라 탔다.

 

“왜? 너 앞에 타. 좁은데 왜 이리로 오는거야?”

 

김식은 내 말을 무시하고 뒷자리 택시 문을 쾅하고 닫았다.

좁은 뒷 자석에 나는 이지수와 김식 사이에 낑겨 앉았다.

 

“세종 병원으로 가주세요.”

 

김식이 행선지를 빠르게 말했다.

택시가 출발하자마자 나는 말했다.

 

“나 다쳤다면서 왜 이렇게 대우 하는 건데?”

 

둘 다 대답하지 않았다.

어딘가 멋쩍은 표정으로 이지수는 시선을 슬쩍 돌려 창 밖을 바라보는체 하고 김식은 화가 난 표정으로 내 팔을 단단히 잡았다. 좁아서 도망 갈데도 없는데도 체포하는 형사처럼 나를 잡았다.

 

그러다 문득 세종병원 이름이 떠올랐다. 김식의 옥탑 방에서 봤던 병원간판의 이름이었다. 세종대왕과 병원이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피식거렸던 그 날이 생각났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났다. 작년 이맘쯤에 김식과 함께 나를 버리러 갔던 날 나는 가방을 어떻게 했더라? 나는 가방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 옆에 앉은 이지수에게 물었다.

 

“너 작년에도 내 가방 챙겨줬어?”

 

내 옆자리에 꼭 붙어 앉은 주제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던 이지수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그때 너 나가고 한참 지나도 안 들어 오길래 내가 갖고 갔어.”

 

순간 머리가 멍했다.

 

“너가 작년에 일 등했어?”

“어쩌다보니.”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으이구 그냥 못들은 척 하지. 얼굴인데 어쩌냐고. 입안도 터진 거 같은데?”

 

주섬주섬 가방 속에서 휴지를 꺼내더니 다시 내 뺨을 꼭꼭 눌러주었다.

“작년엔 주변에 뭔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으면서… 왜 자꾸 피가 나와. 속상하게. ”

 

나와 눈을 제대로 맞추지도 않고 피하던 이지수가 다정하게 말했다.

 

 

“저런 게 작년에도 있었어?”

‘저 선배 졸업도 못하고 학교 다닌 지가 몇 년인데 어련하겠어? “

 

이지수가 한숨처럼 말했다.


"내가 소주병으로 때려줬어야 했는데."

"괜찮아."


우리의 말을 들은 김식이 다른 쪽 주먹을 세게 움켜 쥐는 게 얼핏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내 가족과 현주만 있으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이른 봄 3월의 찬 바람 가운데에 나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사람과의 관계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난장판 가운데 또 내 마음의 빗장 하나가 스르르 풀렸다.

아주 위험한 3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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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저 선배의 대사중 3분의 1은 있었던 일입니다.

공대는 정말 위험합니다.





푱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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