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엄마의 월동준비는 김장부터 시작된다.

김장이 끝나고 나면 대문 옆 마당에 자라는 모과나무에 열린 것으로 모과청을 만들었다. 감기 기운이 있다 싶을때마다 대추를 넣어 끓인 물에 모과청을 타 주었다.

 

텃밭 한쪽에서 키운 옥수수를 여름 내내 삶아먹고 남은 것을 잘 말려 둔 뒤 낟알로 자루에 보관했다. 옥수수 낟알은 반쯤은 밥에 섞어 먹고 반쯤은 우리 몫으로 남겨뒀다. 겨울방학이 시작할 즈음이면 그 옥수수 낟알을 가지고 뻥튀기 가게로 달려갔다.

 

뻥튀기 가게로 가는 당번은 주로 서경언니였는데 그때마다 나를 꼭 데리고 갔다. 우리 몫의 옥수수를 맡겨놓고 뻥튀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요란한 뻥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터져 나오는 뻥튀기 기계가 신기해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구경했다.

다 튀겨진 뻥튀기를 자루에 담아주면 가지고 갔을 때 보다 몇 배나 커진 부피에 신기해 하기만했다. 서경언니가 큰 부피의 자루를 등에다 메고 걸으면 나는 그 뒤를 쪼르르 따라 걸었다.

 

“언니, 안 무거워?”

“하나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언니 뒤를 따라가며 그렇게 물었다.

 

“등이 뜨끈뜨끈해서 좋아.”

서경언니가 내 손을 잡아 뻥튀기를 짊어진 등에 넣어주었다. 정말 뜨끈뜨끈한 온기가 가득해서 그게 또 신기했다. 주경언니는 맵시가 안 난다면서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서경언니는 큰 자루를 산타 할아버지처럼 메고 가는 게 즐거운 듯 했다.

뻥튀기가 들어오면 엄마는 더운 김이 빠지고 나면 커다란 비밀로 큰 자루를 담았다. 눅눅해 지면 맛이 없다며 꼼꼼히 막아 주셨다.

그리고 곧 귤과 사과 한 상자 배달되었다.

그게 우리들의 겨울방학의 시작이었다. 귤과 사과와 뻥튀기가 집에 채워지면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았다. 귤은 삼 일 만에 바닥이 났고 뻥튀기는 오일이면 빈 자루만 남았다. 과도가 필요한 사과도 아침마다 한 알씩 꼭 먹어야 하니 한상자가 사라지는 것도 금방이었다.

그렇게 긴 겨울방학 동안 네 자매는 먹성도 좋아서 귤 몇 박스와 뻥튀기 몇 번을 먹고 나면 설 명절이 다가왔다.

 

 

엄마랑 중앙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

옥수수 낟알을 뻥튀기 아저씨께 맡겨놓고 바퀴달린 손수레를 끌면서 시장을 돌아다녔다. 고등어 자반도 사고, 고사리도 사고, 무도 사고, 소고기도 샀다. 과일가게 들려서 귤 한 상자와 사과 한상자도 주문했다. 마치 어린 시절 겨울방학이 시작된 것처럼 엄마는 그렇게 장을 봤다.

 

부피만 커다랗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자루 한가득한 뻥튀기를 이번엔 내가 등에 메었다. 나보다 더 많은 짐을 끌면서도 엄마는 내가 무거울까봐 걱정했다. 나는 서경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뜨끈뜨끈한 등이 좋아서 웃었다.

 

집에 도착하니 벌써 마당 평상위에 귤과 사과박스가 도착해 있었다.

 

마당 한 켠에 큰 솥단지에 엄마가 다시 불을 피웠다. 솥단지 안에 소고기를 잔뜩 넣고는 참기름을 넣고 달달 볶았다. 고소한 냄새가 마당 한가득 퍼졌다. 소고기가 어느 정도 익자 썰어놓은 무도 한가득 넣었다. 다시 참기름을 넣고 무도 같이 달달 볶았다. 그리고 물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엄마는 시장에서 사온 자반고등어를 씻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국이 끓고 한 김 죽은 숯불에 석쇠를 올려놓고 고등어를 구우면 자글자글 고등어의 기름이 끓었다.

“안 추워?”

 

차가운 물을 틀어놓고 소쿠리에 씻어놓은 자반고등어를 차례로 놓는 엄마를 향해 물었다.

 

“ 안추워, 항개도 안 춥다. ”

“안에서 하면 안돼?”

“물도 시원하게 잘 나오고…여기가 낫다.”

 

외투를 한껏 여미고 평상에 옹크리고 앉아 튀겨온 뻥튀기를 열어놓고 야금야금 먹으며 엄마가 하는 냥을 지켜 보았다. 구름이 가려 햇볕도 들지 않는 하늘이었다.

“계세요…. 인경이 있니?”

 

대문 밖에 까만 머리가 보이는가 싶더니 대문을 열고 굵은 펌 머리를 한 사람이 들어왔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철퍽철퍽 물일을 하던 엄마가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손에 물기를 닦으며 일어섰다.

 

“이게 어쩐 일이야? 아파트로 이사 간 후로는 안보이더니.”

“다시 이사 하셨다는 소식 들었어요. ”

 

털이 몽실몽실한 외투를 입고 들어온 사람은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뻥튀기 자루를 여미며 일어서 어정쩡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인경이 와 있었네. 어머 무슨 장을 이렇게 많이 보셨나? 벌써 49재인가요?”

“아니야, 그냥 애 먹일려고.”

“이거, 떡좀 사왔어요.”

분홍 보자기에 쌓인 상자를 슬쩍 엄마에게 건네며 나에게 다가왔다.

 

“너는 어쩜 한번을 인사 안오니?”

 

샐쭉 한번 나를 흘겨보며 웃는 사람은 진우 엄마다. 할아버지때부터 중앙시장에서 큰 종묘상을 하고 있는 이 동네 나름 실속있는 부자집 며느리였다. 어린 내 눈엔 가장 열성적으로 현기네 가게에서 동네 골목에서 우리집 소문에 귀를 곤두세우고 입을 보태던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이 보일때마다 덕분에 진우는 몇 번 더 나에게 얻어 맞아야했다.

 

“현기네서 너 소식 들었다. 넌 어릴때부터 키가 크더니 이렇게나 컸어?”

 

내 옆에 다가와 불쑥 손을 내밀어 내 팔을 잡으며 친한체를 하였다. 딱히 대꾸 할 말도 없어 멋적게 엄마를 쳐다보았다.

 

“추운데 안으로 들어와.”

 

난데없이 찾아온 진우 엄마를 엄마는 반갑게 마루 위로 안내했다.

 

“어머, 집이 많이 달라졌네요. ”

“수리를 좀 했어.”

“돈 많이 들었겠는데요. 집이 훨씬 아늑해지고 좋아졌네.”

 

신발을 벗고 마루위로 올라서는 진우엄마가 구석구석 빠르게 눈을 돌렸다.

유리문을 단 마루 안에는 두꺼운 카페트가 깔렸고 그 옆에 연탄난로를 야무지게 설치했다. 엄마는 또 큰형부가 와서 도와줬다고 칭찬했다.

온기가 돌지 않는 마루에 난로 하나가 생기자 아늑한 공기가 가득 찼다.

 

“이집 할머니 병나셨다는데 … 들었어요?”

 

내준 방석위에 미처 엉덩이를 올리기 전에 진우 엄마가 그 말부터 꺼냈다.

 

“저랑 같은 아파트라서 가끔 오가다 마주치긴 하는데 영 얼굴이 못쓰게 되셨더라구요.”

“들어요.”

 

혼자 신이 난 듯 떠들고 있는 진우 엄마에게 엄마는 따뜻한 모과차를 건넸다.

 

“얼마 전에 병원에 실려가셨다고도 하고… .”

 

또 소문을 캐러 온 건가? 빠르게 마루를 훑어보는 눈과 아무 말이나 내뱉는 빨간 입술이 싫었다.

 

“그렇게 아끼던 아들을 앞세우셨는데 병이 안…”

“진우엄마.”

 

엄마가 흐리게 웃으며 말꼬리를 잘랐다. 난로에 끓고 있는 주전자에서 물을 받아 엄마는 진우 엄마에게 모과차를 건넸다.

 

“네?”

“모과차 마셔. 이젠 나무가 오래되서 잘 열리지도 않았어. 옛날 맛이 나는가 모르겠네.”

“어머, 언니 솜씨야 동네에서 다 알지요.”

 

그제야 호호 불고 호로록 소리를 내며 차를 마시는 진우 엄마가 잠깐 조용해 졌다.

“우리 막내 보러 온 거 아니야?”

“아니, 내가 좀 섭섭해서… 어쩜 너는 현기만 공부 봐준다니? 우리 진우도 공부 좀 봐줘. ”

 

현기네 가게에서 동네 골목에서 틈 날때마다 ‘나는 걱정이 돼서 그러지’ 하면서 소문을 떠들던 그 입술이 선명하게 생각이 났다.

 

“그래도 우리집 장남인데 대학은 가야 할 거 같아서… 걔가 대장 너 말이라면 끔찍했잖니? 그러지 말고 진우도 좀 봐줘.”

“제가 왜요? ”

“ 아휴,내가 정말 속상해서… 걔가 공부를 너무 안 해서 말이야. 머리는 나쁜 것 같지 않은데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더니 공부를 아예 놨어, 아주. 혹시 너 말이라면 들을지 아니? 이젠 남들 다 대학 간다는데 진우도 문턱은 밟아봐야지. ”

 

“그러니깐 그걸 왜 제가 해요?”

 

나는 말귀를 하나도 못알아 들은 것처럼 순진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너는 어쩜 대장이라며서 애를 차별하니? 현기만 봐주고. 너 봐준 뒤로 현기 수학은 전교 일등이라고 하더라.”

“현기는 혼자서도 잘 해요. 제가 내내 춘천에 있는 것도 아니고.”

 

진우엄마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냥 저처럼 독한 애 말고 좋은 사람 찾아보세요. 언제적 대장을 가지고…참. ”

 

샘 많고 말 많은 그 엄마는 제 욕심껏 움직이지 않는 나에게 서운함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어쩜 너는 어른이 부탁하는데… 한마디도 안지니?”

“진우엄마? 오늘은 그냥 가. 나중에 따로 전화줄테니.”

 

분해 숨을 크게 들썩이는 진우엄마에게 엄마가 대신 말했다.

그리곤 진우엄마가 가지고 온 분홍 보자기를 진우엄마에게 내밀었다. 가빠진 호흡으로 가슴을 들썩이며 진우엄마는 가지고 왔던 분홍보자기를 그대로 들고 돌아갔다.

대문을 나서는 뒷모습을 나는 딴딴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 저 아줌마 싫어. ”

 

나는 싹퉁머리 없이 말했다.



 

 

◆◇◆



 

나른한 오후였다.

하늘은 한껏 낮게 깔려있어 뭐라도 한바탕 내릴 것 같은 그런 날씨였다. 라디오에선 올해 첫눈이 내릴 것 같다고 설레발을 떨었다.

일요일 한낮이었다. 도청 언니들 중 두명은 외출하고 시간은 느리고 더디게 지나가는 날이었다. 엄마의 이상한 노래가 낮게 흐르고 따뜻한 방안에 꼬물꼬물 움직이며 낮잠이나 좀 잘까 하며 게으름을 부리고 있었다.

 

쿵, 쾅.

요란하게 철문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한가로움이 단번에 부셔졌다.

나른한 졸음이 한달음에 달아났다. 퍼득 몸을 일으켜 앉았다. 어떤 사고라도 난건지 외부의 소리에 귀를 기울렸다.

 

쾅쾅.

다시 요란하게 철문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안방문을 열고 단번에 마루로 달려나가 유리문을 열었다.

대문 안으로 김식이 남자 한명의 목덜미를 잡고 의기양양하게 들어와 있었다.

김식에게 목덜미를 잡힌 남자는 벗어나려 버둥버둥거렸다. 수세미 같은 군데군데 탈색된 머리카락 김식보다 작은 키에 왜소한 몸짓, 한눈에 봐도 싸움이 되지 않는 체격차가 있었다.

 

“이 양아치 새끼가 니네 집을 훔쳐보고 있었어. ”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김식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리곤 내 옆에 서 있는 엄마를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꾸벅 인사를 했다.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 나타난 김식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중앙 마루엔 나와 엄마, 기역자로 꺽인 창문엔 도청 언니둘이 달려 나와 졸음이 묻어나는 흐린 겨울날 난데없는 침입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야, 대장. 아니야. ”

 

목덜미를 잡혀 버둥버둥거리던 남자가 겨우 소리를 냈다.

 

“대장?”

 

김식이 잡고 있는 옷을 좀 더 바짝 잡아 당겼다. 작은 덩치는 아니지만 김식의 힘에 남자가 달랑 달려갔다.

 

“너…아는 애야?”

“아니, 난 그냥 대장 좀 만나려고.”

 

당황한 사건에 입을 벌리고 보다 그제야 김식에게 붙잡혀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꼬락서니가 진우엄마의 걱정이 빈말이 아님을 알겠다 싶었다. 어디서 머리는 그 꼴을 하고 온 건지 노르스름? 아니 누르 틱틱한 머리카락은 손만 대어도 부스러질 것 같은 상태였다.

 

“진우?”

“대자앙.”

 

진우의 그 말은 마치 살려줘처럼 들렸다.

나는 마루를 내려가 신발을 찾아 신었다. 대문 앞 겨우 한걸음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을 향해 걸었다.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아는 애 맞아?”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김식이 바짝 잡은 뒷덜미를 풀어주었다. 막강한 힘에 풀려나자 진우가 휘청거리다 겨우 중심을 잡고 서며 말려 올라간 패딩을 정리하며 어깨를 움직였다.

 

“아…씨발.”

 

그러나 바로 진우의 뒷통수를 짝 소리가 나게 갈겼다. 때렸다 보다 갈겼다가 맞는 것 같았다. 이미 몇 대 때린 듯 진우가 확연히 억울한 표정으로 뒤통수에 제 손을 갖다 대었다.

 

“쳐 맞아야지. 아주. 어린노무 새끼가 담배나 피고 말이야.”

 

나는 마당 가운데에서 그 꼬락서니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대문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 온 온 김식을 향해 놀란 마음과 괘씸한 마음으로 비분강개해서 외쳤다.

 

“왜 애를 때려?”

 

진우가 내 옆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그런데 정말 꼬락서니가 보고 있기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진우의 어깨로 손을 올려 목을 단단히 감았다. 진우가 순순히 내게 딸려왔다. 동그란 진우의 머리가 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린노무 새키가 담배나 쳐 피고. 키 안 크면 어쩌려고. ”

 

나만큼 커버린 진우에게 나도 모르게 어릴 적 대장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맵게 야단했다.

 

“너 이 시키. 그리고 머리 꼬라지가 이게 뭐야? ”

 

나는 정신 사나운 탈색 머리를 한 진우의 뒤통수를 쳤다. 어느새 키가 나만큼 자란 진우는 묵묵히 뒤통수를 맞았다.

어느새 내 옆에 와 섰던 김식이 쿡쿡 웃었다. 그러면서 진우의 팔을 잡아당겼다. 내 팔에 갇혔던 진우는 고고한 귀족의 댄스처럼 한 바퀴 돌면서 내 품에서 빠져나갔다. 김식은 나와 진우 사이로 교묘하게 들어와서 섰다.

 

“김시기 학생?”

 

엄마가 김식을 알아봤다.

난장판에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정신이 돌아왔다. 빠르게 휙 뒤돌아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순간 김식의 상복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엄마가 아주 상냥한 얼굴로 김식을 아는 체를 했다.

나는 빠르게 김식을 마주보고 김식의 양 팔을 단단히 잡았다.

“너 빨리 나가. 나가서 얘기 해.”

 

나는 낮고 빠르게 말하면서 김식을 밀어내려 했다.

 

“너 때문에 온 거 아니거든?”

 

그러나 김식은 우리 집 마당에 단단히 버티고 서서 밀어내는 내 힘을 가소롭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셨습니까? 어머님.”

“자 추우니까 안으로 들어와요.”

 

나는 잠깐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나 능숙하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김식이 대문을 넘어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내가 그어 놓은 선 안으로 당당하게.

 

김식과 진우가 마루 위로 올라왔다.

도청언니들이 쪼르르 복도를 따라 중앙 마루로 따라왔다. 마루를 올라서는 김식의 키를 본 도청언니들과 엄마가 고개를 한번 올렸다. 다시 또 한번, 또 한번 고개를 들어서야 김식의 얼굴을 봤다.

 

세 사람 모두 익숙하지 않는 큰 키에 입을 벌리고 김식을 바라보았다.

두 명의 남자가 섰을 뿐인데 마루가 좁은 듯 꽉 차 보였다.

 

진우는 김식이에게 끌려오느라 담벼락 아래 놓고 왔던 떡이 든 분홍색 보자기에 든 상자를 테이블위에 꺼내놓았다.

김식은 등에 메고 있던 백팩 안에서 거창하게 황금색 보자기 안에 든 상자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엄마가 내준 방석 위에 진우는 무릎을 꿇고 앉았고 김식은 두꺼운 점퍼를 벗어놓고는 양반다리를 하고 당당히 앉았다. 그리고 그 앞에 엄마가 앉았다.

그리고 작은방 문 쪽에서 도청 언니 두명이 이 집에서 일어난 신기한 광경을 팔짱을 끼고 구경을 하고 있다.


“넌 어느 쪽? 나는 황금보자기.”

“나도 황금보자기.”

“처음부터 쫌 반칙이지. 먼저 기에 눌렸잖아.”

“키 봤어? 우리 막내하고 잘 어울릴 거 같아.”

“우리 막내가 쫌 괜찮지.”

 

도청 언니들의 속삭이는 소리가 다 들려왔다.

나는 엄마쪽도 김식 쪽도 아닌 테이블 가운데에 앉았다.

 

“…누구부터?”

 

엄마가 따끈한 모과차를 상냥하게 내놓고는 말문을 열었다.

 

“허리 피고 바르게 앉아.”

김식의 한마디에 진우가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마치 벌 받는 자세로 잔뜩 긴장하고 앉았다.

 

“엄마가 떡 갖다 주라고 했는데… 나는 그냥 대장한테 사과 하려고.”

 

분홍보자기 안에 든 물건의 정체는 들어났다.

이말 저말이 혼동되어서 진우는 횡설수설했다. 중간중간 울먹이는 듯 말끝이 더 흐려졌다.

 

“…….엄마는 괜히 이상하게 말해서….”

 

어른인체 하고 있지만 실상은 아직 내 뒤를 따라다니던 어린애 같았다.

진우와 현기는 내가 서경언니와 함께 춘천을 떠날 때 까지 내내 붙어 다녔던 사이다. 동네에 어떤 소문이 돌았는지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같이 지켜본 사이였다. 나는 진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 너 공부 안하고 나쁜 애들이랑 놀기만 한다며? 어머니가 걱정 많이 하시더라. ”

“쳐 맞으면 다 공부하게 되어 있어.”

 

내 말이 끝나자마자 김식의 사나운 대꾸에 진우가 움찔 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넌 좀 빠져있어.”

 

내 말에 김식이 심통이 난 듯 불퉁해졌다.

그런데 옆에 앉은 엄마가 자꾸만 입매가 느슨히 풀어진다.

 

“너네 동네로는 안가. 재수 없어.”

“알고 있어.”

“니가 알긴 뭘 알아? 니가 와. ”

“응.”

“학교 끝나고 바로 튀어 와. 대충 하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응.”

 

진우가 긴장이 풀어진 듯 단단하게 각잡혔던 어깨가 느슨해졌다. 옷 소매로 스윽 눈을 닦았다.

 

“울어?”

“안 울어. 쪽팔리게 … 왜 울어.”

 

그렇지만 진우의 자세는 엄마에게 야단맞고 억울해서 삐죽거리는 어린 아이 같았다.

 

“자 끝났어. 너 차례야. 넌 왜 왔는데?”

 

나는 범죄자 취조하듯 물었다. 내 말속에는 니 맘대로 여긴 왜 들어와 도 숨어 있었다.

 

“김시기 학생 맞지? 지난번에 와줘서 고마웠어요. ”

“그때 집에 놀러오라고 하셔서… ”

“그럼. 언제든….”

 

마당에서 투닥투닥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마루의 유리문이 활짝 열렸다.

 

“대장. ”

 

뛰어 온 건지 숨을 몰아쉬는 현기가 마루에 앉아 있는 우리들의 이상한 대치를 황망히 쳐다보았다.

 

“요놈도 네 쫄병?”

 

김식의 또 눈꼬리가 사나워지며 물었다.

 

“현기야, 너도 들어와라.”

 

엄마가 정말 재밌다는 듯 웃음을 겨우 참으며 우아하게 말했다.

오랫동안 금남의 집처럼 지냈던 집에 한꺼번에 남자가 셋이나 들어왔다.

도청 언니들은 신났다.

나는 화끈 열이 올랐다.

 

“우리 막내는 통도 커. 한 번에 세 명이나 데려오다니… 역시.”

“외출한 애들 빨리 집에 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재밌는 걸 놓치다니.”

 

현기가 진우 옆자리에 단정한 자세로 앉았다.

 

“진우가 도와달라고 전화를 해서….”

 

금테 안경을 쓴 진우는 딱 봐도 전교 회장처럼 생겼다. 바르게 행동하고 리더쉽 있을 것 같은 모범생. 딱 그런 모습으로 숨을 고르며 엄마에게 얌전히 설명했다.

 

“이제 좀 그림이 되네. 아깐 너무 한쪽이 기울었어.”

“쫌 그렇긴 했지. 막내는 어디서 이런 보물만 데려올까? 제법 눈이 높아.”

“쟤 마트집 아들인거지?”

“연하에 그 정도 크기 가게면 괜찮지.”

 

등 뒤에서 도청 언니가 말했다.

 

엄마 앞에 나란히 셋이 앉았다.

이제 울음이 끝난 코끝이 빨간 진우와 찬 바람에 달려온 볼이 발그레한 해사하게 생긴 현기 그리고 그 와중에 목에 닿을 정도로 긴 머리로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앉은 김식.

 

 

셋이 나란히 앉아 있으니 알겠다.

청소년과 남자의 차이를. 내 눈에 그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럼 현기는 볼일이 그게 다 인거고?”

“네.”

“김시기 학생은 인경이랑 같은 학교라고 했지?”

“아니, 쟤 자퇴했어. 이제 같은 학교 아니야.”

 

마음이 급했다. 빨리 김식을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해 대답을 가로챘다. 김식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입모양으로 뭐? 라고 했다.

 

“김시기 학생. 아니 김시기 재수생. 저녁 먹고 갈 거지?”

“아니, 얘네 집 춘천 아니야. 바로 올라갈거야. 오토바이 타고 가려면 빨리 가야해.”

 

여태 쭈그리고 있던 진우가 허리를 펴며 눈빛을 반짝였다.

 

“오토바이? 우와.”

 

방금 전까지 억울해 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심지어 들뜬 표정까지 했다. 옆에 점잖게 앉아있던 현기도 눈을 반짝였다. 내가 뭐 잘못 말 한 건가?

 

“대장, 곧 눈 내릴 것 같던데?”

“ 눈오면 오토바이는 위험하니 자고 가면 되겠네.”

 

엄마가 말했다.

“너네들도 저녁 먹고 가.”

 

엄마가 진우와 현기에게도 말했다.

 

“그럼 우리, 오토바이 구경해도 돼요?”

진우가 김식을 향해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우리도 오토바이 구경해도 돼요?”

 

여적 팔짱끼고 우리를 구경하던 도청언니들도 거들었다.

아 진짜! 망했다.

 

 

 

모두가 우르르 김식의 오토바이를 구경하러 나섰다. 이게 구경거리가 되는 건가?

외투를 걸쳐 입고 신발을 신고 대단한 서커스라도 있는 냥 한꺼번에 마당을 지나 대문을 나섰다. 오토바이는 지난 여름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갈림길에 세워져 있었다. 진우가 제일 먼저 달려 나갔다.

 

“스즈키야, 스즈키.”

“진짜 스즈키야.”

 

현기도 신나서 같이 뛰어갔다.

동네 초등학교 어린애들도 읽을 줄 아는 스즈키가 뭔데?

 

도청 언니들이 우리 옆을 지나가자 김식의 옷자락을 잡았다.

 

 

“너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이런 날에 오토바이를 타고 와? ”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동안 신경 못썼는데 아주 동네 애새끼들 보모노릇까지 하고 있었냐?”

 

진우과 현기가 오토바이 주변을 천천히 돌더니 아예 주저 아 오토바이를 들여다 보았다.

 

“만져봐도 되요?”

진우가 간식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눈망울로 김식을 쳐다보았다.

 

“조심해서 만져.”

 

진우와 현기 둘다 보석이라도 다루는 듯 오토바이 운전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그 표정이 마치 내가 권총집을 차고 동네 골목에 나타났을 때처럼 만족감 같은 거였다.

 

김식이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여 낮게 말했다.

 

“설마 저런 쫄병이 또 나오는 건 아니지?”

“없어. 둘은 어릴 때 전학 갔어.”

“네 명이었다 이거군.”

 

도청언니들도 김식의 새까맣고 빨간 로고가 그려진 오토바이를 신기하게 구경했다.

 

“이거 타보면 안 되죠?”

 

이번엔 현기가 물었다.

 

“당연히 안되지.”

 

애들에게 대답을 한 김식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를 빤히 보면서 말했다.

 

 

“난 말했다. 똥 마려운 개새끼처럼 낑낑거리고만 있지 않겠다고.”

 

나는 김식을 노려보았다.

김식도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김시기 학생,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우리는 뒤에 태워줄 수 있나?”

“원래 인경이만 태우는데, 누님들이라면 …요 근처정도 됩니다.”

“어머, 김식이 학생. 인경이만 태운데. 너무 낭만적이다.”

 

도청언니들한테 김식이가 앞서 나가며 말했다. 언니들이 기분이 좋아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씨, 나는 요?”

 

진우가 김식이 한테 거하게 뒤통수 한 대를 얻어맞았다.

 

"넌 머리부터 정리하고 와. 아까 니네 대장한테 못 들었어?“

 

이상한 날이었다. 하늘은 낮게 찌푸렸는데, 날은 스산한데 우리 집에 사는 모두가 해실해실 웃고 있었다. 아주 이상한 날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니 엄마가 요상한 표정을 하고 있다.

 

“현기네는 내가 전화했다. 애들 여기서 밥 먹인다고. 그나저나 뭘 먹어야 하나?”

 

 

 

내 눈치를 보며 엄마의 광대가 자꾸 올라간다. 이미 깨끗한 테이블을 닦으면서 엉덩이를 실룩실룩하며 흥에 차 노래를 흥얼거렸다.

 

[산 너울에 두두우웅실 흘러가는 저 구름아…

너는 알리라 내 마음을… 부평초 같은 마음을

 

산너울에 두두두두둥실 흘러가는 저 구름아… ]

 

엄마의 마음이 자꾸 두두둥실 하는 것처럼 그 부분만 반복하며 흥얼거리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요즘 내내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어쩌고 하는 이상한 노래만 듣더니 엄마의 노래가 달라졌다.

나는 결연한 마음으로 비장하게 소리쳤다.

 

“아, 진짜 그런 거 아니라구.”

“누가 뭐라 했니? 난 아무말 안했다. 두두우우우시이이일 흘러가는 ….”

 

 

 







 

 

노래- 현철 [내마음 별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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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오늘의 가장 마음에 드는 단어는

쳐맞으면 과

황금색보자기입니다.


저 황금색 보자기에는 무엇을 담아 왔을지..

그리고 뒤늦게 뛰어온 금테안경의 현기는 아무런 보자기도 준비못해서

제대로 된 보자기 삼파전? 을 하지 못한게 못내 아쉽지만

큰 마트집 아들이라

집에서 뭔가를 보내시겠지 라는 마음으로 다음편으로 미뤄봅니다.




푱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