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나는 조금 자신이 있었다.

김식을 버리는 날이 온다면 서로에게 상처 없이 잘 해낼 거라고 딱 한번 생각해 본적이 있었다. 버리는 사람은 나였고, 버림받는 사람은 김식이었다.

 

햇살이 좋은 어느 날에 김식을 향해 니 고추를 보여줘 했던 날처럼 우리 이제 그만해. 재미없어 졌어 라고 나는 말한다. 그러면 김식은 눈썹이 뾰족해졌다가 조금 곤란해진 표정으로 그러던지 라고 대꾸할 거야. 별 타격 없이 웃으며 깔끔하게 끝내는 그런 날을 그려보았다. 어른들의 놀이를 한 동료로선 괜찮았다고 말해줘야지 하고 생각 했다.

버리는 사람은 반드시 나여야 한다고 그런 오만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통 창을 통해 들어온 바람에 몸을 으스스 떨었었다.

뒷태가 늘씬하게 예쁜 여자랑 서 있는 것만 봤는데….

뭔가가 툭 끊어졌다.

제법 냉정하고 이성적이라 생각했던 나는 충격에 흔들렸다. 내 안에 독기가 빠른 속도로 부풀어 올랐다. 증오의 독기이고 했고, 배신의 독기이기도 했다. 자만의 독기이기도 했고, 두려움의 독기이기도 했다.

 

목이…죄여왔다.

소리도 공기도 사라진 물속에 나는 허우적거렸다.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야.

나는 차갑고 거센 영하의 바람 속에 서 있었다.

나를 억세게 끌어안고 있는 김식의 품안에서 그냥 서 있었다. 내 눈에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독기만을 담고 그냥 서 있었다.

 

“괜찮아.”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아무것도 아니야.”

웅웅 뭉개져 들리던 소리가 정확한 의미를 갖고 내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괜찮아. 괜찮아.”

 

내 등을 토닥토닥 김식이 천천히 두드렸다. 아주 작은 아기를 대하는 것처럼 김식은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내 등을 천천히 토닥거렸다.

내 안을 채웠던 위험한 독기가 스르르 빠져나갔다.

추위가 느껴졌다. 외투도 두고 나와 한겨울 길바닥에 서 있는 나는 비로소 추위가 느껴졌다. 꽉 움켜쥔 주먹에서 찌르는 손톱이 만든 통각이 느껴졌다.

 

“야, 니네 뭐하냐니까.”

 

목을 옥죄고 있던 숨이 하얀 입김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하아… 하아….”

 

숨을 몰아쉬었다.

고개를 들어 김식을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김식이 달달하게 물었다. 나를 꼼꼼히 살피는 눈은 진지했다. 김식이 꽉 움켜진 내 손을 슬쩍 잡았다. 겨울 한 조각 따스한 햇살이 김식의 얼굴에 부딪혔다. 아, 햇살 좋은 날에는 김식을 버리면 안 되겠구나. 내 표정이 김식에게 다 들키겠구나 문득 생각했다.

나는 부서진 내 표정이 자신 없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니네…길바닥에서 안 쪽 팔리냐?”

 

하얗고 오똑한 코를 가진 천사의 얼굴을 한 서경후가 긴 머리를 휘날리며 삐딱하게 서서 우리를 못마땅하게 보고 있었다.

 

내가 가장 밑바닥에 숨기고 있던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오래 방치하고 외면하고 있던 고통이 나에게 적나라하게 그 존재를 드러냈다.

그리고 김식에게도.

 

 

내가 두고 나갔던 자리에 여장을 한 남자, 남자 같은 여자, 군복을 입은 남자가 마주보고 앉았다.

 

“씨발, 드럽게 춥네. 추워.”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김식이 내 외투를 들어 나를 꼭꼭 감쌌다. 뒤늦게 느껴지는 아찔한 추위에 나는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여자들은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입고 다니는 거야.”

 

허옇게 드러낸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서경후도 오들오들 떨었다.

 

“잠깐 있어.”

 

카운터로 향하는 김식의 뒷모습을 보고 시선을 슬쩍 창밖으로 돌렸다. 내 안에 남아있는 차가운 한기가 내 뼛속을 울리는 것 같았다. 내 안을 채웠던 낯선 독기가 한기를 부추기는 것 같았다. 내 안에 처음으로 고개를 든 낯선 감정에 심장이 격하게 두근거렸다.

 

“이거 니꺼야? 좀 마셔도 돼?”

 

서경후가 내 눈치를 슬쩍 보며 해맑은 표정으로 물었다. 커피 잔을 빠르게 가져가 남아있는 온기를 후루룩 한 모금 마시고 두 손으로 컵을 감쌌다.

 

정말 정신이 …나갔다.

불과 몇 분 전의 일이건만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나는 파르르 떨리는 손을 숨기려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김식이 뜨거운 김이 오르는 음료를 들고 왔다. 서경후에게는 진한 코코아를 내려놓고 내 앞에는 맑은 우유를 내려놓았다. 내 옆자리에 앉은 김식이 내 주머니 안으로 손을 불쑥 집어 넣었다. 따뜻한 체온이 차가운 내 손으로 전해졌다.

 

“손이 너무 차갑잖아. 이거 잡고 있어.”

 

주머니 안에 숨겨진 손이 김식의 손에 끌려 나왔다. 뜨거운 김이 오르는 잔에 내 손을 갖다대었다.

 

 

“뜨거우니 조심하고.”

“참나, 눈꼴셔서 못 봐주겠네. 나는 길바닥에 팽개치고 가더니… 누가 보면 아주 임신한 마누라 수발드는 줄 알겠다.… 니네 진짜 그거 아니지?”

 

입술을 삐죽거리며 서경후가 김식에게 힐난했다.

 

“것도 나쁘진 않은데…”

 

말 같지도 않은 서경후의 상상력에 대꾸하는 김식을 흘깃 보았다. 나를 빤히 살피고 있는 시선과 잠깐 마주쳤다. 나는 다시 슬그러미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어 뜨…으윽, 달아.”

 

서경후가 요란하고 오만상을 쓰며 후후 입김을 불며 한 모금 한 모금 온기를 들이켰다.

 

“야, 너 진짜로 나 여잔 줄 알았어? 흐흐흐.”

 

해맑게 웃으며 서경후가 내게 물었다.

잠깐 시선을 돌려 서경후를 돌아보았다. 예쁜 얼굴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서경후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내 시선 끝에 나를 쳐다보는 김식의 시선이 언뜻 들어왔다.

“이게 다 주기도 그 시키 때문이라구. 어쩐 일인지 나 여장 한번 해보라고 엄청 꼬시더라니깐. 부대에서 커플 사진 대회라는 게 있었대. 난 것도 모르고 찍을 때 비싼 돈 주고 화장도 했는데, 그때 한 장우도 같이 있긴 했는데 지랑 나랑만 있는 사진만 골라서 냈다는 거야. 얍싹한 놈 같으니라고. ”

 

빠르게 말을 쏟아낸 서경후가 진한 코코아를 얼굴을 찌푸리며 한 모금 마셨다.

 

“내 얼굴이 어떤 얼굴인데, 당연히 일등을 했겠지. 그 놈이 특별휴가까지 챙겨 받았다는데 입 싹 닦은 거 있지. 이게 말이 돼? 어딜 봐서 내가 지 여친이냐고. 여우 같은 시키.”

 

시선을 내리다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찬찬히 두드리고 있는 김식을 보았다. 내게 할 말을 고르고 있는 듯 느리지만 규칙적으로 토독 토독 허벅지를 두드렸다.

 

“야 근데 너, 내 말 듣고 있어?”

 

서경후가 엉덩이를 들고 내 코앞으로 바짝 얼굴을 들이댔다.

 

“나는 절대 주기도의 여자 친구가 아니라고 보여주러 갔지.”

 

나 잘했지? 라고 서경후는 눈으로 물었다. 등을 의자에 기대여 앉으며 팔짱을 끼고 쳇 하는 표정을 한 서경후는 진짜 여자 같았다. 인형같이 예쁜, 누구나 한번쯤 돌아볼 정도로 예쁜 여자 같았다. 작고 하얀 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걷어내는 서경후는 예뻤다.

 

“저 미친놈이 저러고 부대 앞에 서 있었어.”

 

김식이 반쯤 포기한 듯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리고 있는 내게 변명을 했다.

 

“부대 앞에서 보초 서던 사람들이 다 나 봤겠지? 크크크크.”

 

신이 난 듯 서경후가 몸을 흔들며 크게 웃었다.

공기가 어딘가 날이 서 있었다. 신이 난 서경후와 달리 나와 김식 사이엔 미묘한 긴장감이 날선 공기가 존재했다. 김식은 내게 할 말이 있었고 나는 김식에게 숨기고 싶은 게 있었다.

 

“주기도 진짜 악마 같은 놈. 특별휴가 같은 건 취소 안 되나? ”

“어차피 곧 제대인데 뭔 상관이야?”

“그 새끼는 영창 같은데 안 끌려가나? 한 삼년 쯤 푹 썩어줬으면 좋겠는데.”

 

후루룩 후루룩 코코아를 거칠게 들이켰다. 외양은 여자지만 이쁜 여자는 저렇게 코코아를 마시지 않는다. 연기 연습을 좀 더 해야겠네. 팽팽해져가는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혼자 들떠있는 서경후를 보며 그런 생각도 잠깐 했다.

 

“내가 택시까지 대절해서 갔는데, 김식이 이놈도 내가 택시비 계산하는 사이에 튀었어. 나를 버려두고 말이야… 야, 내 말 듣고 있어?”

 

서경후가 또 내 코앞으로 바짝 얼굴을 들이댔다.

 

“내 말 듣고 있냐고? 너 아까부터 좀 이상해.”

“너 때문이잖아.”

“나? 왜에?”

 

큰 눈을 껌뻑 껌뻑 하는 서경후를 보다 못해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김식이 나를 따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도미노처럼 서경후도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려고?”

 

서경후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또 나 버리고 어디 가려고?”

 

햇살이 풍성하게 들어오는 통창 아래서 세 사람이 황야의 결투를 하는 냥 눈치를 살피며 섰다.

 

“담배.”

“나도.”

 

김식이 속삭이듯 꺼낸 내 말에 즉각 답을 달았다.

서경후가 큰 눈동자에 잔뜩 서운함을 담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서경후를 향해 손을 훠이 저었다. 무슨 감정 변화가 저리도 격렬한지 잠깐 사이에 진이 빠지는 것 같았다.

 

“너 담배도 펴?”

 

서경후가 소리를 다시 질렀다. 조용한 가게 안에 서경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뭐? 나 성인인데….”

이를 악물 듯 낮은 소리로 서경후를 향해 대답했다.

 

“담배가 얼마나 피부에 안 좋은 줄 알아?”

 

서경후와 시선을 마주쳤다.

 

“코코아가 너의 이쁜 다리에 얼마나 안 좋은지는 알아.”

 

눈싸움이라도 시작한 듯 시선을 마주했다.

 

“그럼 나는?”

 

서경후가 내게서 시선을 돌려 김식을 쳐다보았다.

나는 조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서경후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표정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 나만 버리고 가려는 건 아니지?”

 

이제껏 활달하기만 하던 서경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친구라면서…. 사는 곳도 안 갈켜주고. 친구라면서 길바닥에 버리기나 하고. 친구라면서…씨이.”

‘누가 아니래?“

“근데도 나만 또 빼고… 지들끼리만 군대 가고.”

“정신 사나워.”

 

가게 안으로 들어와 처음으로 김식을 쳐다보았다. 너가 해결해 눈빛으로 그렇게 말했다.

 

“너는 그 흉칙한 얼굴부터 어떻게 해야겠다.”

김식이 한숨과 함께 서경후에게 말했다.

 

“내 얼굴이 왜 흉칙해?”

“쟤가 정신 사납다잖아.”

 

김식의 말에 거세게 대꾸하는 서경후를 두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나를 따라오는 날카로운 김식의 시선이 등 뒤로 꽂혔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부서진 표정을 단단히 고쳤다.

무방비하게 내 안에을 채웠던 낯선 독기를 한 쪽으로 한 쪽으로 모으고 쓸어 꽁꽁 싸맸다. 천천히 계단을 하나하나 밟을 때마다

옥탑 방 넓은 처마 한구석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김식이 갖다놓은 작은 평상에 앉아 차가운 겨울바람과 햇볕 사이에 앉아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담배연기가 바람과 함께 허공에 빠르게 흩어졌다. 아직 몸 안에 남아있는 한기에 다시 부르르 몸을 떨었다. 느리게 연기를 빨고 허공에 뱉었다.

파랗게 맑은 하늘에 구름처럼 하얀 담배 연기가 잠깐 머물렀다 흩어졌다.

 

담배의 길이가 짤막해졌다. 아직 답답한 속이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짤동한 담배를 비벼 끄고 다시 한 개비를 더 물었다. 찰칵찰칵 라이터를 켜서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아직 떨리는 손에 몇 번 실패한 끝에 겨우 불이 붙었다.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추운데 왜 나와 있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김식이 내 옆에 바짝 다가와 섰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했다. 김식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도 김식이 알아 내지 못하는 표정을 하고 김식을 담담히 올려다보았다. 청명한 겨울 하늘에 잠깐 눈이 부셔 눈을 깜빡였다.

 

“…걔는?”

“피아노 학원에. 거기 샤워실에 밀어 넣었어. 그 낮도깨비 같은 얼굴부터 좀 치우자고 했어. ”

 

내 옆에 앉은 김식이 내 담뱃갑을 집었다. 자연스럽게 한 가치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나는 그 모습을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김식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문 담배 끝에 새로 입에 문 담배 끝을 갖다 대었다.

김식의 숨이 내 뺨 위로 떨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내 담배와 김식의 담배의 끝이 맞닿았다. 김식이 얼굴의 솜털까지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한번, 두 번 깊게 숨을 빨아들이자 김식의 담배 끝에도 빨간 불이 타올랐다.

 

비오는 어느 날 이렇게 담배를 붙여야 한다고 알려주던 그 날처럼 김식은 능숙하게 내게서 담뱃불을 가져갔다.

내 덜컹 하더니 거세게 뛰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집은… 받았던 대로 돌려줘야 할 것 같아서.”

 

불쑥 말을 꺼냈다.

 

“너 있을 때 안에서 담배 안 피웠잖아.”

 

허공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김식이 말을 기다렸으나 아무 대꾸도 하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내 앞으로 바람에 실려 온 김식이 담배 연기만 날렸다.

숨소리와 담배 연기만 그곳에 잠깐 머물렀다.

담배가 다시 작아졌다. 작아진 담배를 비벼끄고 일어설까 말까 잠깐 생각했다.

김식이 상체를 앞쪽으로 내밀었다. 단단한 허벅지 위에 팔을 걸치고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너랑 더 가고 싶은데… 이제 집 안에 둔 콘돔도 버리고 말야.”

 

계단을 오르면서 김식이 내게 어떤 말을 할까 내내 생각했었다.

 

“그 다음도 하고 싶어. 아까 서경후의 말처럼 말야.”

 

김식이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저 턱턱 막혀오는 숨이 끝자락을 겨우 붙잡으며 가슴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뿐이었다.

 

“근데 넌 또 니가 만들 틀 안으로 한발 물러서네. ”

 

김식도 어깨로 숨을 내리쉬었다. 참는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식이 나를 참는다. 참고 있다.

 

“인경아, 너는 말야….”

 

김식의 말 끝에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아버님한테 갔다 오는 게 좋겠어.”

 

김식이 내 눈을 바라보았다. 간신히 추스렸던 부서진 얼굴이 다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뭐, 뭐라는 거야? ”

“너는 그때 장례식에 갔어야 했어.”

“암 것도 말하지 마.”

 

나는 날카롭게 말했다. 계단을 오르면서 내내 예상했던 질문지보다 더 직설적이고 아픈 말을 김식이 꺼냈다.

 

“… 그때 갔어야 거기서 끝을 냈지. 차라리 거기서 욕을 하던 춤을 추던 그러지. 그래야 끝도 내고 시작도 하는데…넌 아직도 거기에 멈춰있는 것 같아. ”

“더 말하지 마.”

 

숨이 다시 또 턱까지 차올랐다. 밭은 숨을 겨우겨우 내쉬었다.

 

“너 아까 어떤 얼굴로 서 있었는 지 알아? ”

 

손바닥으로 가슴을 지긋이 눌렀다. 제멋대로 뛰는 심장이 있건만 자꾸만 숨이 찼다.

 

“…너는 너를 너무 방치하고 있어. 나도 그랬고. ”

 

김식은 느리게 나를 염려하며 말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칼날 같은 언어들이 내게 와 박혔다. 뜨거운 무언가가 내 안에서 치밀어 올랐다.

 

“ 너는 몰라. 사랑만 받고 자란 니가 뭘 알아? 꼴랑 군대 들어간다는데도 너를 염려하고 안타까운 얼굴로 봉투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저리 많은 주제에… 니가 뭘 알아. 맘먹은 건 다 할 수 있는 니가 뭘 알아? 내가 태어나자마자 처음 들을 말이 뭔지 알아? ”

 

아, 나는 왜 지금 이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쓸모없는 딸 년, 죽어버리게 엎어 놔. ”

 

비명처럼 말했다. 그리고 질끈 눈을 감았다.

심장에 찌르는 통증이 느껴졌다. 내 얼굴을 보는 김식의 시선에도 통증이 느껴졌다.

 

 

“ 나는 나를 지켜야 해. 너… 선 넘지 마.”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김식의 눈과 마주쳤다.

김식이 또 호흡을 한번 삼켰다. 꾸욱 참는다, 나를 또 참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한 얼굴을 가장하고 나한테 말했어. 나는 걱정이 돼서…. 걱정 되서 그런 거지 하면서 지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갔어. 너도 별반 다르지 않네.“

 

나를 참아주는 김식이 미워서 나는 더 격렬하게 말했다.

 

“나는 너에게 이 정도는 말해도 되는 거리쯤인 줄 알았는데 .”

 

김식이 씁쓸하게 웃었다. 저 웃음 뒤에 내가 날린 화살에 입은 상처가 있었다.

 

“…아직도 아닌가?”

“이쯤에서 그냥 그만두던가. 내기니 어쩌니 집어치우자고.”

 

내친김에 한발 더 나갔다.

 

“하아.”

 

김식이 긴 숨을 내쉬었다.

 

“너 옆에 있으려면 망할 선을 지켜야겠네. ”

 

잠깐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든 김식의 눈빛에 방어막이 하나 생겼다. 내가 던진 날카로운 말에 얻은 상처도 사라졌고 나를 향한 다정함도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 균열이 자리했다.

마음에 균열이 갔다. 관계에도 균열이 갔다.

 

김식이 일어섰다.

나도 따라 일어섰다.

김식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시선 안에 복잡한 생각이 숨어 있었다.

 

“쉬고 있어.”

 

김식이 한숨처럼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내게서 등을 돌렸다. 저벅저벅. 워커 신은 발이 내게서 멀어졌다.

 

쾅.

옥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나만 덩그라니 남았다.

 

나는 안다.

바람난 아버지가 기쁨이라고 불렀던 가족을 어떻게 찢고 부쉈는지 무엇을 외면하고 무엇을 모른 체 했는지 나는 안다. 아버지가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놓은 지 몇 년이 지났는데 나는 아직 아버지가 망가뜨린 폐허위에 서 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나는 아직 일곱 살 그 나이에 버려진 그 길가에 서 있었다.

 

김식의 말이 맞았다.

나는 아직 7살 버려졌던 그 폐허에 서 있었다. 그동안 꽤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는 여직 그때의 그곳에서 위태롭게 서 있었다.

바짝 마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어느새 김식은 내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거리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이제 상처받지 않고는 멀어질 수 없는 거리 안까지 들어와 있었다. 상처 받는 게 무서워 그렇게 선 안으로 선 안으로 숨어들었는데 어느새 김식은 그 안까지 와 있었다.

 

김식이 가버린 이곳에 혼자 남은 내게 초조함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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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요즘 새삼 성시경의 노래가 좋아서

자꾸 톻어놓았더니

심봤다군도 요즘 성시경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가사가 이제야 들립니다.

한창 성시경이 핫 할때보다

뒤 늦게서야 진짜 맛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대략 3권 분량인듯 합니다.

무슨 할말이 이렇게 많았을까요?


푱이가



dupiyongsta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