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고 이쁜 것들은 잘못에 대해 관대하다.

어깨가 한 뼘 정도 큰 교복을 입고 아버지의 아들이 대문을 들어섰다. 위축된 어깨가 교복을 더 겉돌게 하고 있다.

 

“다녀왔습니다.”

 

큰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꿉벅 인사를 하자 엄마가 웃었다.

시청 언니들이 퇴근했을 때 처럼 엄마는 어떤 거리낌도 없이 그 아이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나는 모른체 외면하고 마루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엉덩이를 번쩍 들었다. 지팡이를 들고 뒤뚱뒤뚱 걸음이 사라지고 기운차게 소리 질렀다.

 

“아이고, 내 새끼 왔어?”

 

평상에 앉아 있는 내 눈치를 슬쩍 본 아버지의 아들은 할머니 얼굴을 보자마자 보조개가 들어가게 환하게 웃었다.

 

“에미야, 빨리 딸기 내 와라. 아이고 내 새끼. 배 고프재?”

 

저 어리고 이쁜 아버지의 아들에게 어떤 잘못이 있지 않겠지만 미움이 차올랐다. 나도 태어났을 때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그럼에도 할머니의 미움을 받았으니 이건 공평하다.

마루 위로 올라서는 아버지의 아들의 뒷모습을 보는 내 눈빛이 날카롭게 날이 섰다. 내 공격을 막아주기라도 할 듯 할머니가 아버지의 아들을 감싸며 내게 등을 보였다.

 

요즘 나의 일주일은 3과 4로 구분되었다. 금요일 마지막 수업이 끝나면 바로 춘천으로 출발하여 월요일 첫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다. 춘천에 머무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현기와 진우의 공부를 봐주고 나면 나의 짧은 춘천행의 목적은 끝난다.

 

 

 

수돗가에서 막 씻어낸 빨간 딸기를 엄마가 평상위에 내 몫의 딸기 접시를 내려놓고 할머니에게도 가져다 주었다. 할머니는 아버지의 아들에게 포크에 달린 딸기를 제비새끼처럼 아 하라고 하며 먹여주었다.

그 꼴이 보기 싫어 다시 내 눈이 세모꼴이 되었다.

 

“너도 얼른 먹어.”

 

물 묻은 손을 한 엄마가 내 옆에 와 앉았다. 환한 봄 햇살 아래 선명한 딸기가 탐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선뜻 손을 내밀지 않았다.

 

“넌 왜 자꾸 마르니? ”

 

엄마는 왜 할머니를 받아 주었을까?

엄마가 처음으로 할머니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내게, 언니들에게 쓸모없다고 욕하지 말라고. 할머니의 모진 말을 20년이나 들었으면서 이제야 그만하라고 겨우 엄마는 말했다.

할머니와 나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할머니는 습관처럼 내게 욕이 나올까 봐, 나는 할머니에게 이 집을 나가라고 소리칠까봐. 어쩌다 나를 볼 때 입을 씰룩거리는 할머니의 습관이 된 욕은 긴 시간동안 할머니와 하나처럼 되어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당당한 할머니가 미웠고, 고분고분 하지 않은 내가 할머니는 싫었을 것이다.

 

“애들 과외 힘들면 그만 둘까?”

“아니.”

 

마루 위와 평상 사이엔 날선 침묵이 존재했다. 신경을 곤두세워 서로를 신경씀에도 불구하고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자존심을 세우는 날카로운 공격과 방어가 있었다.

나의 3일은 단지 과외 때문이 아니었다.

할머니에게서, 아버지의 아들에게서 엄마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나의 몸부림이었다.

뻔뻔한 할머니는 어느새 슬금슬금 안방까지 들어와 엄마와 나란히 저녁 드라마를 보며 웃기도 한다. 신이 난 엉덩이를 흔들며 버리고 갔을 땐 언제고, 늙고 병든 몸뚱이로 수발 들 라며 들어온 할머니가 역했다.

“대장.”

 

진우가 땀에 전 얼굴로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마당 한 켠에서 저녁 준비를 시작한 엄마에게도 크게 인사를 하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그제야 평상위에서 느리게 일어섰다.

진우가 마루위에 먼저 올라섰다.

 

“진우 형.”

 

할머니 앞에 어린 아이 모양 앉아있던 아버지의 아들이 화색을 하며 진우를 아는체 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아서 그런지 진우만 오면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 나와 할머니 사이의 무거운 침묵 사이로 눈치 없는 진우가 들어섰다.

 

“승효, 햄버거 먹을래?”

 

진우가 손에 들고 온 까만 봉지에서 싸구려 햄버거를 불쑥 꺼내 아버지의 아들에게 건넸다.

“저런 불량식품 같은 거 막 먹으면 안 되는데….”

 

할머니의 잔소리가 이내 따라왔지만 아버지의 아들은 진우가 내민 얄팍한 햄버거에 이미 홀려버렸다.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진우의 신발을 한쪽으로 모아놓고 허리를 펴다 아버지의 아들의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아들의 신발이 얼추 내 신발크기만 하다. 키는 작은데도 곧 발 크기가 나를 따라 잡을 기세다. 다시 미워져 신발을 발로 툭 차서 밀어버렸다.

 

“대장도 햄버거 먹을 거지?”

“아니.”

“오예. 그럼 나 두 개 먹는다. ”

 

진우가 이제껏 할머니와 아버지의 아들이 앉았던 자리에 당당히 앉아 신이 나 외쳤다. 우리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할머니가 쯧쯧 하며 낮게 혀를 찼다.

 

“저거, 먹는 만큼 공부를 했으면 벌써 전교 일등은 했겠다. 남의 집 애들 공부나 봐주지 말고, 지 동생 공부도 좀 봐주지.”

 

내 눈을 비껴 보며 기어이 할머니가 한마디 했다.

할머니를 따라 방으로 따라 들어가는 아버지의 아들의 등이 움찔했다.

 

진우와 수업을 하는 내내 건넌방의 방문은 닫히지 않았다. 열린 문으로 힐끔힐끔 우리를 훔쳐보는 아버지의 아들은 가끔씩 진우의 엉뚱한 소리에 혼자서 키득거리며 웃었다.

 

아버지의 아들은….

할머니가 자랑스러워 하는 손자는….

나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 있어도 보지 않는다.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는 나보다 한참 작은 그 아이를 나는 보지 않는다.

고작 중학생이 된 아버지의 아들은 낯선 집안에서 나름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모른 체 했다. 나는 단호하게 내 영역을 지키려 했고, 선 밖에서 눈치를 보는 아버지의 아들에 자비는 없었다.

어리고 이쁜 아버지의 아들은 도청 언니들과도 금세 익숙해졌다. 살면서 가장 큰 고민이 운동회 날 비가 오면 어쩌나 정도의 인생을 살아왔을 아이는 이곳에서도 잘 적응했다. 꼬박꼬박 큰어머니라고 부를 때마다 엄마도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이 집에서 가장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아마 나인 것 같다.

가장 위로 받았던 장소가 가장 예리한 장소가 되었다.

 

 

3일 동안 내 신경은 예민했고, 날카로웠다.

내 안에 가득 찬 미움으로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았다.

이른 새벽 기차역에서 작은 가게로 들어가 담배를 샀다. 해가 떠오르는 한가한 거리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제야 내가 3일 동안 내내 긴장한 어깨로 숨을 쉬었던 것을 깨달았다. 폐로 깊게 빨아 당긴 담배가 쓰게 입안을 돌고 허공으로 흘러나갔다.

지독한 미움의 맛이었다.

이른 새벽 올라탄 기차가 출발도 하기 전에 자리에 앉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월요일 이른 아침의 학생식당은 한가했다.

점심을 준비하는 주방만 부산스러울 뿐 이용하는 학생 수는 극단적으로 적었다. 집으로 가지 않고 바로 학교로 와 학생식당의 구석진 자리를 찾아 가방을 끌어안고 모자란 잠에 빠졌다.

 

따뜻한 햇살 같기도 하고, 가벼운 바람이 스친 것 같았다. 잠을 자는 것 같은데 잠에서 깬 것 같은 경계에 있었다. 나른하고 포근포근한 기분이었다. 이불 밖으로 나가기 싫은 겨울 아침처럼 딱 그 만큼의 온도로 나른했다.

 

강아지풀이 얇은 피부를 지나간 듯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잘까 깨야할까 망설이다 무거운 눈을 겨우 떴다.

 

시선 안에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제법 성실한 학생 같은 김식이 보였다.

기척을 느꼈는지 김식이 고개를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또 불만을 잔뜩 품은 눈매를 했다.

 

“…왜?”

 

목소리가 가라앉아 쉰 소리가 나왔다.

 

“꼴통새끼가 말 안 들어? 목이 갔는데?”

눈꺼풀이 무거웠다. 피곤할 때면 세 겹씩 생기는 쌍꺼풀을 풀기위해 꿈뻑 꿈뻑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김식이 손을 뻗어 뺨에 손을 댔다. 간질이는 내 머리칼을 쓸어 올려주고 손을 뗐다.

 

“…벌써 반팔이야?”

 

까만 반팔 티 아래 김식의 맨 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게으르게 엎드려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어깨에서 툭하고 뭔가가 흘러 내렸다. 제대로 정신도 차리기 전에 흘러내리는 것을 잡으려 몸을 숙였다. 테이블 아래에 내 신발 끝에 닿아있는 김식의 신발이 보였다.

다행히 먼지가 묻기 전에 잡은 까만 가디건을 잡고 고개를 들자 김식이 피식 거리며 웃었다.

 

“더 걸치고 있어도 괜찮은데?”

 

딱히 대꾸 없이 김식에게 옷을 건네주었다. 빤히 나를 보던 김식이 천천히 내 손에서 가디건을 받아가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두었다.

내 앞으로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김식이 사는 건물 일층 빵집의 샌드위치를 월요일마다 꼬박꼬박 사왔다.

그리고 우유팩 입구를 꼼꼼히 열어 또 내밀었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

거울을 보지 않아도 눈꺼풀이 무거웠다. 왼쪽만 쌍꺼풀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았다.

 

“당분간 수업 끝나면 도서관 갈 거야. ”

 

샌드위치 포장을 뜯으며 겨우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씩 돌아왔다.

 

“왜?”

“중간고사. ”

 

김식이 노골적으로 마음에 안 든 티를 냈다.

 

“소파 앞에 테이블도 하나 갖다놨는데… 집에서 공부하면 안 돼?”

“안 돼.”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툭하고 발끝에 또 김식의 신발이 발 끝에 와 닿았다.

 

“그 시험 말이야. 대단하게 공부할 게 있어?”

“난 누구처럼 학과를 척척 바꿀 만큼 천재가 아니라서….”

 

별로 입맛이 없지만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김식에게 별로 대꾸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햄스터 한 마리 키우는 거 같은데.“

 

조금씩 베어 먹는 나를 보고 김식이 말했다.

 

샌드위치를 베어 먹는 와중에 눈에 익은 키가 큰 학생이 우리 쪽 테이블로 다가왔다. 김식보다 내가 먼저 알아챘다. 김식과 자주 함께 다니는 사람이다.

 

 

“주희가 너 건축과 랑 만 논다고 서운해 하더라.”

“주희? 너 따라다니는 일학년? ”

“그냥 건축과 다니지. 의대도 안갈 가면 뭐 하러 요란하게 과를 바꾼거야?”

 

툭하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김식이 키가 큰 그 학생을 봤다. 두 사람 사이에 시간이 쌓인 익숙하고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한 번도 김식이 누군지 제대로 인사시켜주지 않았다. 나도 누군지 따로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방도 나도 저절로 얼굴을 익히게 되었다.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쪼끄만 애랑 과방에 간다며? ”

 

자리에서 일어서며 가방을 챙기던 김식이 말했다.

잠시 서서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너 잡으러 간 거지. ”

 

김식이 툭하고 내 머리에 손을 올려 톡톡하고 두 번 두드렸다. 우리 뒤쪽에 서 있는 키 큰 학생이 당황한 듯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이따 도서관으로 갈게.”

 

가방을 챙겨든 김식이 옆 테이블로 옮겼다. 대화는 들리지 않지만 시야엔 내가 정확히 들어오는 자리에 김식이 앉았다. 그리고 내가 안 보이는 자리로 키 큰 학생이 앉았다. 그리고 얼마 뒤 몇 사람이 더 나타났다. 중요한 회의를 하는지 나름 진지한 표정이었다. 가운데 종이를 놓고 서로 뭔가를 쓰기도 하는 회의였다.

 

샌드위치를 조금씩 베어 먹다 나른한 졸음이 다시 밀려왔다.

요즘은 자도 자도 피곤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끔씩 어지럼증을 느꼈다. 길 가운데에서도, 아침에 세수를 하다가도 눈앞이 핑 돌며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자 사람들 머리 너머로 김식과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크게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햄스터처럼 먹는다는 말에 저항하듯 베어 물었지만 입안이 말라 급하게 우유를 마셔야했다. 그런 나를 보고 김식이 또 피식 웃었다.

나른한 햇살에 살짝 눈을 찌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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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아주 우연히 19금 딱지가 붙은 웹툰을 보게되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가슴이 벌렁거려서...


아, 요즘은 

정확히 21세기는 무료 네이버 웹툰의 수위가 저 정도라니....


옛날 사람 (20세기) 이라 그런지

충격이 컸습니다.


게다가 파트너가 계속 바뀌고 있음에도

댓글에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가는 독자들?

거부감도 없는...

이게 진짜 로판(로맨스 판타지- 이것도 얼마전에야 알았음) 세계인건가요? 




푱이가



dupiyongsta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