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상은 개인적인 시각에서 본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쓰기 전에 먼저 몇 마디만 한다면, 이 글의 감상을 정리하기는 참 어려웠다. 원래 편하게, 생각이 나는 대로 쓰는 감상을 써왔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몇 가지 집히는 점은 있었지만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찾기가 힘들었달까. 개인적으로 연재글을 보았고 또 연이 닿던 작가분이 아니었다면 아마 감상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책의 선호도보다는 게으름 때문에. ^^;)  

‘러브 인 메이저리그’를 읽고 난 후 가장 눈에 뜨이는 점은 소재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로맨스소설로는 첫 번째는 아니지만 글에 이 정도의 자료를 풀어낸 것은 이 책이 처음일 것이다. 게다가 작가는 더 많은 자료를 사용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점은 작가로서의 태도에 큰 미덕이다. 흔하지 않은, 그러면서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소재를 발굴하는 힘. 그리고 투철한 자료 조사와 함께 아는 자료를 다 쓰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는 자제력. 여러 번 출간한 작가라면 모르지만 첫 출간에서 이만큼 자신을 붙잡고 있기는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야구 이야기를 썼더라도 좋았겠지만 말이다.  

두 번째의 이 작가의 강점은 기본적인 틀을 이미 갖추고 있는 문장이다. 문장이 빼어난지 그렇지 않은지 하는 점을 따지기 이전에 자신만의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 문장을 가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테크닉은 닦을 수 있지만 문장의 개성이란 것은 쉽게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러브 인 메이저리그’의 문장은 짧고, 또한 수사를 별로 담고 있지 않다. 그리고 단순하면서도 안정적이다. 로맨스 소설에서는 드문 일이다. 일반적으로 로맨스 소설의 독자들은 무거운, 또는 화려하거나 세련된 문장을 선호한다.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꾸며서 반복하는 일도 흔하다. 로맨스 소설의 성격-사랑을 추구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 독자층이 보수적인 탓도 있을 것이다. 또한 독자들이 사건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보다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문체는 실은 작가들의 발목을 잡는 일이 왕왕 있다. 적절한 수사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글이 질질 끌린다. 로맨스 소설도 소설인 이상, 분위기와 심리만으로 글을 끌고 간다는 것은 무리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로맨스 소설에서 전형적인 사건들이 많다는 것은 로맨스 소설을 분위기와 심리 위주로 생각하는 작가나 독자들이 많다는 데 그 이유가 상당히 있지 않나 싶다. 사건을 가볍게 보는 탓이다.) 확실하게 분위기와 심리로 승부하는 글이 아니고서야 주인공들의 구구절절한 심리를 미사여구로 줄줄 늘어놓다보면, 냉정하게 말해 지리멸렬한, 결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글이 된다. ‘러브 인 메이저리그’는 그렇지 않다.

또한 이 글에는 보기 드문 남자 주인공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독자로서의 내’가 ‘러브 인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남주인공 ‘후연’이었다.
말을 적게 하고 연인에게도 존댓말을 하는 조용한 남자. 자기 분야에서 성공했지만 성실한 노력파이며 조심스럽고 다정한 뉴욕 양키즈의 ‘영혼’, 후연.
‘러브 인 메이저리그’에서 후연의 환경 설정은 굉장히 전형적이지만 개인으로서의 후연의 성격은 전형적이지 않다. 야구선수에 걸맞는 근육질의 멋진 몸매를 가진 후연이지만 소심해보일 만큼 여자에게 능숙하지 않고 폭력적인 아버지의 그림자 탓에 육체적인 힘을 과시하는 것을 싫어한다. 재력과 외모, 능력을 갖추었으면서도 그는 마초가 아니라, 수줍어할 줄 아는 남자였다.
외국물에서는 가끔 본 적이 있지만 국내물에서는 태생 상 여주인공의 신분보다 낮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조용하면서 예의바른 남자주인공을 보지 못한 것 같다. 또한 지현의 비서들이나 잭 경감 등, 귀여운 조연들도 이 글의 호감도를 높여주는데 한 몫 했다.

장점을 말했으니 단점도 말해보자. 단점이라기보다 이렇게 되었으면 더 재미있는 글이 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이지만.

우선 소재. 야구, 더 정확히 말하면 ‘메이저리그’가 이 글의 소재다. 하지만 왜 ‘메이저리그’를 소재로 정했을까? 이런 질문은 야구를 소재로 해서 몇 년 전에 나온 어떤 로맨스 소설에도 던져진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러브 인 메이저리그’에는 야구에 대한 현장감이 많이 느껴진다. 메이저리그에서 현재 뛰고 있는 팀 이름들, 야구 용어들, 리그의 진행상황, 팬들의 현지 반응과 팀에 대한 애정표현들 등등.
하지만 굳이 ‘메이저리그’여야 할 필연성이 없다. 후연은 그저 회사원이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예를 들면 한 벤처기업의 연구팀장 정도로. 물론 꼭 회사원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야구선수여도 괜찮다. 다만, 야구, 즉 메이저리그가 사건에 어떤 필연성을 가져다주었으면 훨씬 좋았으리라는 생각이다.

또한 이 작가의 문장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개성적인 것은 사실이나 아직 효과적으로 휘두르고 있지 못한 느낌이 든다. 짧고 명쾌한 문장이 주는 효과를 아직 의식하지 못하고 있달까.
글에 따라 효과적으로 문체를 바꾸는 노력을 하는 작가들이 있다. 왜냐하면 각 글의 소재와 분위기에 따라 적절한 문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짧고 수사가 적은 ‘러브 인 메이저리그’의 문장은 ‘스포츠’라는 소재나 경기의 흐름을 다루기에는 어울리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지현이나 후연의 심리를 그리는 데는 어울리지 않았다고 본다. 이 글에 대한 어떤 평에서 지적되었듯이, ‘명사형으로 끝나버린 문장들’이나 반점(쉼표)가 눈에 자주 걸리는 이유는 이 작가가 기본적으로 문장의 호흡이 짧은 데 반해 후연과 지현의 심리는 길어져야 하는 탓이다. 이어지는 문장을 짧게 처리하자니 그럴 수밖에.
개인적으로는 지현이나 후연이 좀 더 단호한 성격을 가지게 하거나, 짧지만 날카롭게 치고 들어가는 문장(실로 애매한 설명이긴 하지만;)을 썼으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것은 테크닉의 문제이기 때문에 노력하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제일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후연에 비해 여주인공인 지현이 기운다는 느낌이 있다. 후연과 지현은 모두 차분하고 내면적인 인물이지만 후연의 감정선과 그에 따른 행동이 분명히 읽히는데 반해, 지현은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는 듯 하다.
물론 지현의 행동과 감정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고 독자들은 그 인과관계를 알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알고 있는 수준으로는 모자란다. 주인공이라면 좀 더 생생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 글에의 몰입을 위해서다. 더구나 로맨스 소설에는 아무래도 여주인공이 그 중심에 서기 마련인데 인물이 약한 점이 ‘메이저리그’를 좋지 않은 면에서 ‘잔잔하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로맨스 독자들이 글에 가장 몰입하기 쉬운 조건은 ‘여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다. 평범한 여주이거나 고귀한 여주거나, 비참한 상태거나 행복하거나, 독자들은 ‘사랑을 하고 있는’ 여주의 감정에 몰입되어 울거나 웃음 짓는다.
때로 독자들은 종종 남주인공에게 몰입되는 경우도 있다. 너무나 멋진 남주인공이 상대(여주인공)를 절절히 사랑하는 표현을 할 때, 혹은 여주인공을 위해 때로는 목숨까지 걸고 희생하며 아껴주는 그들의 행동을 볼 때 독자들은 감동하고 눈시울을 적신다. 이런 경우는 남주인공의 성격이 강하거나(흔히 카리스마라고 표현되는 유형) 남주인공을 뚜렷이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많다.
아니면 드물게 사건이 주인공이 되어, 거기에 독자가 매력을 느끼며 몰입하는 경우도 있다. 로맨스 소설은 아니지만, 만화 ‘테르미도르’같은 경우에는 등장인물들과 더불어 프랑스혁명이란 사건 자체가 상당한 매력과 힘을 지니고 작품 전체를 뒤흔든다. 같은 혁명을 소재로 한 ‘베르사이유의 장미’가 여주인공에게 그 매력의 상당 부분을 힘입고 있는데 반해, ‘테르미도르’는 혁명에 얽힌 역사적 사건들이 인물을 어떻게 몰고 가는가, 어떻게 변화시키는가가 큰 의미를 갖고 있으니 독자들은 사건에 집중하게 된다.

‘러브 인 메이저리그’는 이런 식으로 주인공들에게 ‘몰입’할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하다. 특별히 사건이 강해서 거기에 시선을 뺏기는 글도 아니고, 남주인공 후연이 독특하기는 하나 로맨스 독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정도로 뚜렷한 인물은 아니었다.(개성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주인공 지현이 공감을 충분히 일으킬 정도로 생생한 감정을 드러내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야구를 소재로 하는 만큼 비장하거나 처연한, 분위기 위주의 소설도 만들 수 없을 것이고, 웃음을 위주로 하는 코믹물로 하기에는 두 주인공이 너무 진지하다.  

짧게 말하자면 ‘러브 인 메이저리그’는 글의 문장이나 사건 진행, 인물 성격 등은 안정되어 있지만 눈과 마음을 확 잡아당기는 초점 잡기에는 모자랐다. 그리고 로맨스 소설의 독자들은 안정된 문체나 아름다운 문장, 심지어 사건의 적절한 인과 관계보다도 ‘땡기는’ 글을 더 선호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브 인 메이저리그’는 나쁜 글은 아니다. 첫 글임을 감안할 때 장점이 많은 글이며, 장점이 많은 작가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이 작가가 어떤 식으로 노력해서 어떻게 독자들을 ‘땡겨줄’ 지, 기대한다.



덧; 자기 글도 이런 저런 점이 눈에 잘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