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영님의 "혜잔의 향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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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came from the north wit icy winds
얼음처럼 차가운 칼바람을 지고 북쪽에서 온 사내...

The wanderer found one flower. It was made from the haze.
아지랑이 꽃을 만난 방랑자.

Haze was Spring's daugther. He loved her.
봄의 딸 아지랑이, 북쪽의 방랑자는 그와 다른 온기를 사랑하게 된다.

Whenever he breathed, Haze froze.
겨울을 이기지 못한 아지랑이는 얼어버리고 만다.

Like a block of ice.
얼음처럼 단단하게 얼어버린 사랑.

In the end, she broke to pieces.
결국, 얼어붙은 아지랑이 아가씨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The wanderer‥‥‥, sowed her high and low.
사내는 연인을 잃었지만 주저않지 않았다. 먼 곳에서 칼 바람지고 온 사내는 봄의 처녀를 세계 도처에 뿌렸다.

She became wide, ocean, earth, and so many little creatures.
아름다운 처녀는 바람이 되고, 대양에 섞이고, 땅에 스몄다. 그리고 결국에는 수많은 작은 생명으로 거듭 태어났다.

He is always with her. Severe winds are dead and gone.
혹독한 북풍은 죽어버렸다. 그리고 언제나 연인들은 함께.........
  

그래서 겨울과 봄은 행복했을까... 그가 물었고
응. 행복했을 거예요. ... 그녀가 대답합니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은 끝이 아니라 고리 그리고 재생이었습니다.
그녀가 노래한 사랑은 처음보다 강해졌죠.

그럼 나는... 그가 다시 물었고
뭐, 행복은 가까운 데에 있다면서요. 그러니까 당신도... 그녀가 다시 답하죠.

맞아. 가까운 데 있어. ... 그는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눈 앞에 그만의 '행복'이 있었으니까요.


* 라칸의 작업실에서 즉흥곡처럼 서로 노래를 주고 받았던 대목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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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잊어버리기엔 아까울 정도로 너무 예뻤고, 두 연인에 대한 느낌을 한 곳에 잘 표현하지 않나 싶어 처음을 여는 글로 올려봤습니다.


... 한번 붉은 실에 묶이면
     원수라 해도, 신분이 차이가 난다해도, 인종이 달라도 피해 갈 수 없다고.......

옛날 옛날 아주 머언 옛날에......

중국에 전해 내려오는 중매쟁이 월하노인 이야기.

천생연분인 연인들 서로의 다리에 묶여 있다는 '운명의 붉은실'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듯 조근조근 말해주는 이가 있었습니다.

샨징 부인의 이야기 소리에 누구보다 귀기울려 듣는 아이가 있었으니...

은빛 물결 같은 말간 눈을 집중하며 듣는 라칸 그 아이의 '운명의 붉은실'은 과연 누구와 연결이 되어 있을까요....

혜잔의 향낭은 그렇게 낭만적이고 아리따운 동화를 읽는 듯한 별천지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 합니다.

원없이 읽어본다는 말을 해야할 거 같네요. 두터운 책 두께에 하나 가득 담긴 알콩달콩 사랑이야기...
그래서 너무 행복했다는...*^^*

사랑스러운 커플, 혜잔과 라칸 이야기를 보며
이번에도 탱볼이님만의 색감을 유감없이 발휘한 거 같아 보면서 내내 뿌듯해 했답니다.

탱볼이님 글의 장점 중에 하나라고 한다면...

아마도 한 공간속에 옛 것과 현대적인 게 서로 조화가 잘 어우러지게 하는...
숨어있는 혹은 자주 사용하면서도 미처 알지 못하고 새삼스러울 정도로 여겨지는 여러 우리네 말들, 그 쓰임새가 얼마나 멋진 정취가 흐르고 사랑스러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데에 있지 않나 싶은데요.

한국적인 미가 가장 세계적인 미라는 어느 문구가 떠올려지게끔 말이죠.

예를 들어.. 허든허든, 그녀는 힘없이 발을 옮겼다 라던지...
다복다복 다보록하게 자란 머리칼이라던지...

이전 작품 <단팥빵>에서의 달공달공, 시공시공... 하던 것만큼이나 구수한 정감이 느껴지는 단어사용이 돋보였더랬습니다.

그리고 위에 잠깐 소개하기도 했지만 책 속에 사용되고 있는 노래들의 가사와 연인들의 심리가 절묘하리마치 맞아떨어져서 책 읽는 즐거움이 더했다는 말도 빼놓으면 안될 거 같네요.

여기에 놓칠 수 없는 또하나의 백미는, 아마도 '이야기가 있는 혜잔 인형'이라는 소제목으로 독자들에게 들려지는 여덟가지 개성 강한 인형들의 유래에 대한 부분이겠죠.
마치 소설 속의 또하나의 소설을 보는 듯 저마다 달큰 새콤한 재미를 안겨주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백일 붉어 고운 꽃, 자미(紫薇)' 편은 어렸을 적에 봤던 인형극이 슬퍼서 - 돛에 붉은 피가 물들은 걸 보고 회인이 죽은거라 여기고 바다에 몸을 던져버리고 뒤늦게 그 사실을 안 남주가 통한 섞인 슬픔을 보이던  - 무척이나 울었던 기억이 남아 있었던 때문인지 두 연인들의 해후가 어찌나 고맙던지.

그러면서 '백단전설'을 보고프다는 욕심이 새록새록 생기더이다.헤에..;;

연재글과는 정말 많이 달라져 있더군요.

<IF> 때는 남준이 전반적으로 앞에 나오는 경향이 있었다면,
<혜잔의 향낭>에선 남준이 뒤로 좀 빠지고 레오니드가 앞으로 부각되어 라칸과 대립이 더욱 선명하게? 그려지게 보였다면 맞은 표현이려나...

연재때의 '알렉스 기포드'가 러시아의 '레오니드 뜨로쉰'이라는 더욱 날렵한 모습으로 변신해 있기도 하고
남준이는 약혼자도 아닌 근 20여년동안을 그저 외사랑지기 해바라기만 하다가 눈물을 머금고 혜잔을 놓아주는 역할을 하니...

왕복과 편도의 차이... 되돌아오는 사랑과 가면 끝나는 사랑의 차이점을 아프게 알아버린 남준을 보노라면, 솔직히 나중에 가란과 행복하게 잘 살거란 걸 미리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훨씬 안쓰럽게 보일 뻔했습니다.
설마... 하고 외국 파견 나갔다가 이 무슨 날벼락이냐구요~
남준이가 무력증에 걸려 고생한 것도 무리가 아니지 싶은 게.. 쿨럭~^^;

두 연인들의 닭살스런 모습들을 많이 보는 것만큼이나 무엇보다 맘에 드는 부분이 있다면, 연재때처럼 얄미운 여조 마리안 때문에 1여년 동안 라칸과 혜잔이 헤어져 있어야했던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거겠죠.

새털 같이 많은 날이라곤 하지만 역시나 연인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만 해야하는 것만큼 가슴 졸이는 건 없을 겁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제 마음대로 이번 <혜잔의 향낭>을 포함해서 전작 두 편과 더불어 전주 아가씨 시리즈라는 작은 타이틀을 붙여보게 되면서 조금만 더..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책 나온 순서대로 보자면, <은장도>의 '사현', <단팥빵>의 '가란' <혜잔의 향낭>의 '혜잔'

전주가 배경이며, 혜잔의 이야기가 맏언니 뻘?되는 경우이면서도 세 작품 중에 제일 늦게 나오게 되었는데, 늦은만큼 연재글 때보다 더욱 알차고 꽉찬 느낌을 줘서 보기만해도 푸짐해지는 느낌이 들어 좋았지만

다만, 책을 읽으면서 - 제가 세 작품을 시리즈로 보게된 계기가 되기도 했던 - '은장도'와 '단팥빵'의 그림자가 살짝 살짝 엿보일 때가 있더군요.

그런 점에 있어서도 <은장도>나 <단팥빵>이나 <혜잔의 향낭>을 연장선상에 놓고 바라본다면 딱히 아쉽다고 할것도 없지 싶기도 합니다만.
음, 지극히 만족한 가운데에도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라 해야 할까요...

어쨌든 '혜잔의 향낭' 이야기는 전주 아가씨 시리즈가 완결된 듯하다고 제 나름대로 의미를 담아봤답니다.

여기서잠깐,
백일몽에 빠지기 좋아하는 스*티*양, 오늘도 놓치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하니...

IF.......
만약에 ....... 이랬더라면.

만약에 세 사람이 함께 자리에 모이면 어떤 모습일까 문득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평생 반려자들과 여섯이 한자리에 모이면 어떤 모습으로 서로와 조우하게 될까...

칼이스마 삼총사들은(^^;) 어쩌면 은근히? 서로를 살펴보며 그래도 하듯... 가름하며 볼 수도 있을테고,

아니면 누가 누가 더 팔불출인가... 아내 자랑, 아가 자랑에 열변을 토할 수도 있을 거며,

그것도 아니면 카리스마가 넘친다 하더라도 언제나 아내들에게 지고 마는 묘한 동질감을 느껴 서로를 다독이며 향후 '요렇게 하면 아내를 이겨볼 수 있다' 뭐 그런 걸 정보교환하면서 호형호제 할 수도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후후...
( 이러다가 저두 예전에 탱볼이님 말처럼 꿈 속에 세 남주들이 나타나 우리가 모이도록 상상했다지. 으흠, 이렇게 보니까 내가 좀 낫지 않나? 어때..하며 묻는 건 아닐런..헛...^^;; )

한가지 재미난 경험을 털어놓자면, 혜잔이를 보면서 책내용과는 상관없이 저도모르게 살풋 미소가 지어질 때가 많았더랍니다.

이제 탱볼이님에 대해 어느정도 조금은 안다고 - 헛, 아직도 전 모른다구요.^-^; - 생각되었기 때문일까요...  사현이나 가란이 때도 잘 모르고 있었던 느낌이 강하게 와닿곤 하더군요

글 속에서 혜잔이 그녀가 만든 인형하고 닮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혜잔이를 보면 문득문득 탱볼이님이 연상되더라는...

혜잔이 하는 양이, 특히나 볼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다거나 귀여운 행동들을 볼때면 탱볼님이 이러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 웃음이 새어나오곤 했지요.
은잔이는 한수영님 동생분이 상상되구요.


향낭, 그 안에 혜잔이 보입니다.

혜잔과 향낭은 어쩌면 처음부터 둘 다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의미였는지도 모르죠.

향낭(香囊)... 향기로운 주머니, 꿈을 가득 채운 주머니 라는 의미처럼
자신을 잃지 않고 꿈을 이루려는 마음을 담은...

향낭(香娘)... 향기로운 아가씨 라는 의미처럼
올곧은 영혼에 가슴에 담은 마음이 아름다워 달리 향을 덧대지 않아도 절로 향내가 배어나오는 아가씨.


혜잔의 향낭은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그녀만의 맑은 향과,
그녀만의 사랑과 행복이 담겨져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알차고 커다래질 겁니다.

참, 이제 그 옆에는 라칸의 향낭이...
그리고 아직은 조그만 그들의 예쁜 아가들, 라관과 류잔의 향낭이 살포시 놓여 있겠군요.

각자 그들만의 사랑, 꿈을 담뿍 담고서 말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모두 옹기종기 한자리에 모여 있을 거라는 것.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의 붉은 실'로 묶여 있는...
자기 자신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느낌을 주는 단 하나,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이니까요.


자... 저는 책에다 한번 쪽,
탱볼이님한테도 한번 쪽~ 뽀뽀를 날려요.

늘 건필하시고, 항상 기쁨이 함께 하길...



덧. 사소한 듯 그치만 작가님의 내공(?)이 돋보인 것 중 하나...

자료 조사를 충실하고도 세세하게 한다는 건 분명 작가분들의 정성이 대단하시구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일 겁니다.

자료조사를 많이 한 작품들 중에 종종 나올 수 있는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랄까...

작가분이 자신이 얼마만큼 조사했는지, 그 지식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과도하게? 그 내용을 이래저래 집어넣어 알려주려는 시도를 한다는 거죠.

물론 주인공들의 직업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확실히 등장 인물들이 현실적으로 생생히 다가온다는 점이 있을 겁니다만,
문제는 자료조사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글 속에 녹아들어 갔느냐... 하는 거겠죠.

다량의 세밀한 묘사가 되어 있긴 하지만, 정작 극 전개에서 빠져도 아무런 무리가 없는 그런 정보라면 오히려 사족에 지나지 않을 이 이야기를 작가분은 왜 넣으셨던 것일까 의아하게 생각하게 될테니까요.

이런 부분에 있어서도 혜잔이의 인형장으로써의 여러 모습들은 저에게 '적당하다'라는 느낌으로 만족감을 주기 충분했습니다.

갈매나무와 감당목을 섞어 만든 압두록색... 연 열매로 물들인 연차색... 울금과 홍화로 염색한 홍비색... 팥꽃나무 꽃봉오리로 물들인 약간 붉은 흑색... 진달래뿌리에서 나온 비둘기색. 등등...

특히나 자연의 색이라는 천연염색된 색을 말할때 우리나라 색깔 이름들이 이렇게도 다양하고 이뻤었는지 감탄사를 섞어가며 새삼 놀라워할 따름이었어요.

아마도 안성맞춤이란 말... 이럴때 쓰는 것일테죠.  




*** 럽펜홈(http://www.lovepen.net/) 감상란에도 '스타티스'라는 아이디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감상글이 올려져 있습니다.

'미루'라는 닉은 제가 오랜동안 사용해왔던 아이디이므로 서로 동일인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