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글을 처음 접한 것은 온라인에서가 먼저였다. 그 때 이 글은 장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만족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 후 장편으로 출간이 된다는 말을 들은 후  상당히 기대가 되었지만 약간은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어떤 글이 길이가 늘어날 때는 때로 원래의 글에서 받은 감흥이 사라지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글에서 받는 감흥이 변한다고 해서 새 글이 나빠지는 것만은 아니지만, 처음의 중편에서 받은 인상이 워낙 좋았기에 더 이상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출간일에서 몇 주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손에 넣은 이 책을 좀 두려운 마음으로 집어든 몇 분 안에, 그 나의 걱정은 완전히 불식되었다. 기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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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거짓말’은 장르 소설이다. 다분히 여성 독자를 위해서 만들어진, ‘로맨스 소설’이라고 불리는 글의 하나고 그에 알맞은 매력을 갖추고 있다.

보는 내내 여성 독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한 실력 있고 깔끔한 외모의 남자 주인공, 그에 비해 다소 소심하고 그리 타산적이지 못한 여자 주인공, 그리고 그들 사이의 감정의 밀고 당김 등등. 여 주인공에게는 알쏭달쏭하기만 한 남 주인공의 애정은 독자에게는 확연하게 비춰져 애를 타게 만든다. 일단의 로맨스 사이트에서 이 책의 명대사로 회자되던 ‘과속할 거야’라는 남자 주인공의 말은 그 절정^^;이다.

반면에, ‘오래된 거짓말’은 정형적인 로맨스 소설에서 살짝 벗어나 있기도 하다. 이 점이 이 글을 더 특별한 장르 소설로 만드는 점이다.

로맨스 소설에서 흔한 신데렐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남 주인공을 오히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그 집안을 책임지고 나가야 하는 ‘가난한 수재’형으로 만든 것이라든지, 남녀 두 주인공 간의 애정사보다  더욱 빛을 발한다고도 볼 수 있는 남 주인공의 부친의 가족애라든지, 대단한 성격의 남 주인공이 열렬하게 구애하는 로맨스 구도가 아니라 은근하게 드러나는 남 주인공의 애정(한국 남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이라든지, 여 주인공의 운동권 남학생(영웅으로 기억되는)에 대한 풋사랑의 기억이라든지. 등등.

이 점은 ‘오래된 거짓말’이 한국 로맨스 소설 초기의 역사 로맨스물과 또 다르게 ‘한국형 드라마’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초의 역사물들이 외국 로맨스물을 보아왔던 독자들에게 우리나라의 역사, 우리나라 이름을 가진 검은 머리의 주인공들을 도입하여 ‘소재적인 면에서 한국적인’ 로맨스물을 느끼게 해주었다면, ‘오래된 거짓말’은 ‘한국적인 감정과 배경’을 가진 주인공들을 내세워 한층 더 진보한 한국 로맨스 소설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실제로 남 주인공인 건호 같은 성격과 외모와 실력을 갖춘 남자가 주위에 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오래된 거짓말’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잔잔하다, 현실적이다, 혹은 왠지 주위에서 볼 수 있을 거 같다’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유가 아마도 이런 한국형 드라마에 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오래된 거짓말’의 단점은 뭘까...? 로맨스 사이트의 감상 게시판에서 종종 ‘중편보다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라거나 ‘남녀 주인공 사이의 애정사에 대해 좀 더 많이 할애했으면 한다, 여 주인공의 첫사랑에 대해서 너무 지면이 많다’등의 단점;을 지적한 글을 몇 읽었다. 그러나 나는 의견이 좀 다르다.

중편과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만족한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달라지지 않은 장편에 오히려 점수를 더 주고 싶다. 왜냐하면, 실제로 길이가 길어졌음(이는 사건이 더 많아졌음을 의미한다)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스토리라인(큰 줄거리)나 주인공의 성격, 작가가 주고자한 메시지가 그대로 살아있음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작을 해서 중편이 장편이 되었다고 해서 그 글이 다른 글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고, 또 다른 글이 되어버림으로 해서 주는 참신한; 재미에 비해 어그러지는 구조나 깨어지는 통일성을 참아 낼 자신이 독자로서의 내게는 없다.

또한 여 주인공의 첫사랑인 운동권 선배(진규)에 대한 지면의 할애가 어느 정도 있었던 것도 나는 별로 걸리지 않았다. 이 글의 제목인 ‘오래된 거짓말’이 뜻하는 것이 바로 여 주인공인 현주의 입장에서는 대학 때의 풋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웅으로 기억되는 진규에 대한 아련하고도 가슴 떨리는 동경을 열렬한 사랑으로 기억하는 현주는, 남편인 남주인공(건호)에 대한 사랑을 사랑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여자의 입장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 부분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상과 현실 중 이상을 쫓아가는 이상주의자 현주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이 아닐까.

하지만 결국 여주인공은 자신의 진실한 사랑이 현실적인 인물, 즉 자신의 옆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남편임을 깨닫는다. 이런 점은 건호의 부친이 남긴 말 ‘사람의 배는 밥이 채우지만, 가슴을 채우는 것은 가족이다’라는 말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작가는 이상도 소중하지만 현실에서 맞대고 사는 사람이 주는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이야기 하고 싶었을 것이다.

감상을 쓰다 보니 너무 칭찬만을 늘어놓은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개인적으로 이 글은 정말 좋은 로맨스 소설이었다. 그만큼 내게는 단점을 찾기가 힘든 글이다. 좋은 소설이란, 개개의 요소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화살이 여러 개 꽂힌 과녁과 같은 글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재나 문체, 구성, 사건... 그 개개의 것들이 아무리 화려하고 재미있고 멋지더라도, 합쳐서 ‘한 편의 글’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 글은 범작에 지나지 못한다. 하지만 ‘오래된 거짓말’은 여러 개의 조각들이 둥글게 맞춰져 전혀 모가 없는, 그런 글이었다.

위에서 말한 사건이나 인물들뿐만 아니라 작가의 깔끔하고도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도 글이 표현하고자하는  ‘현실의 따뜻함’을 만들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독자들에게는 이 글보다 더 좋은 로맨스 소설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앞으로도 누군가가 써낼 수도 있겠지만... (제발 그래주었으면 좋겠다! 나날이 내 눈높이가 올라가고 있어서 요즘은 로맨스 소설을 별로 사지 않는 실정이다. -.-;;)

아무튼, 최은영님을 비롯한 다른 로맨스 소설 작가 분들 건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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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 중 알라딘을 이용하는데, 오래된 거짓말의 서평이 없어서
올려볼까 하고 썼던 글입니다.
여러 모로 좀 민망하지만... 홈피에도 올려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