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퀸의 "프란체스카의 이중생활"


"날 보고 있었어요?" ... 프란체스카
"나야 항상 당신을 보고 있으니까." ... 마이클

도대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그의 앞에 서 있단 말이다. ... 마이클


…… 프란체스카가 자기 입으로 내가 보고 싶다고 하던가요? 아니면 그저 어머님의 추측입니까?

- 킬마틴 백작이 인도에 도착한 지 2년 2개월째 어머니인 헬렌 스털링에게 보낸 편지에서 -


                                               ... "프란체스카의 이중생활" 본문 중에서



<브리저튼 가> 이야기는 키득키득 웃는다 란 말이 잘 어울리듯 언제나 통통 튀는 유머와 재치로 독자를 즐겁게 했던 시리즈입니다.

그러기에 브리저튼 가 시리즈 중 하나인 "프란체스카의 이중생활"에서도 예의 그런 경쾌한 분위기겠구나 하기 쉬울텐데요.
그런데 뭔가 좀...? 다릅니다.

<브리저튼 가의 친구들>시리즈로 얼마전에 선보였던 전작 "애쉬번 공작 1816"이 오히려 브리저튼가 시리즈에서 맛볼 수 있었던 줄리아 퀸 특유의 매력이 여전히 발휘 되어 있다면,

평소 돌연변이 같다던 프란체스카 분위기 때문이었을까요,
브리저튼가 시리즈이면서 시리즈인가 싶게 읽는 내내 다가오는 느낌은 사뭇 생소한데 그게 또 그 나름대로 그윽한 매력으로 보여지죠.

책 첫장에 나왔던 위의 본문 글귀에서부터 어렵지않게 짐작할 수 있듯이 한 남자의 숨길 수 밖에 없었던 그렇다고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던 한 여인에 향한 짝사랑의 애틋함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평생을 함께 할 것을 당연히 여겼던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미망인이 된 프래니와
반려자의 자리에 자신의 사촌이 있으므로 프래니에 대한 오랜 연모의 마음을 아무도 모르게 가슴 깊숙히 간직하고 그저 좋은 친척으로 만족하려 했던 마이클.

항상 셋이던 그들이 이제 둘이 되어 다시 재회를 하고 서로를 마주보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이클이 고백을 하는군요.
난 항상 당신을 보고 있었노라고...

"당신과는 결혼 못해요. 알잖아요"
"왜냐면 내가…… 당신이…… 당신이 당신이니까요."

프란체스카에겐 자신이 자신이듯 마이클은 그냥 마이클이었습니다.

연인이니.. 장래의 남편감이니.. 하는 단어와 함께 생각하기엔 새삼스러운
언제나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머물러 위로와 든든한 버팀목 같은 그런 존재.

항상 변치않을 거 같은 존재가 어느날 나는 처음부터 너랑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 내 마음을 알아주오..한다면 적잖이 당황스러울 만도 할테죠.

하지만 마이클 입장에서 보면 또 가까스로 묶어뒀던 감정을 막을 존재가 사라져 버렸으니 그 사랑이 제 주인을 찾아가려 발버둥을 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아닌게 아니라 마이클이 프란체스카에게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멀리 떨어져 있지도 못하고 답답한 마음에 안절부절하던 모습을 떠올려 보노라면 지금도 안쓰러움과 귀여움?을 동시에 느끼게끔 해주니까요.

아무튼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한결같은 진심은 두려움에 움츠린 마음도 풀리게 해주는 건 만고의 진리이려나 봅니다.

그녀의 사랑 없이는 살 수 있지만, 그녀의 행복 없이는 살 수 없는 게 마이클의 단 하나의 진실인 것처럼 말이죠.


…… 고맙다. 마이클. 내 아들에게 그 아이를 먼저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 칼마틴 백작 미망인인 쟈넷 스털링이 킬마틴 백작인 마이클 스털링에게.


언제나 그렇듯 모두가 바라던 해피엔딩에 만족하면서도 이대로는 서운하다는 듯 책장을 덮긴 전 마지막에 제 코끝을 찡하게 만들던 메모 하나...

쟈넷은 어쩌면 진즉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애초에 마이클이 프란체스카에게 가감없이 마음을 열어보였다면 자신의 아들, 존에게는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전하는 기회조차 없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오랜 기다림이 그보다 몇배 깊었을 그리움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마이클은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프란체스카 눈동자에 오롯이 그의 모습이 담겨져 있음을 잘 알고 있으니...


여자에게만 순애보가 있는 게 아니다...
평생의 동반자에 대한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순정을 만나보고 싶은 분에게 권해드립니다.



왜 이제야 내 눈에 나타난 거요.

이 곳에 서서 얼마나 오랜동안 기다렸는지 아마 짐작도 못할 거요.

내가 나고 당신이 당신인 것처럼,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