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처럼 툭 부러질 것 같았던 옆집 여자
옆집 여자는 가시처럼 말랐었다. 초등학교 3학년 남짓 되는 아이가 있으니 나이는 마흔 남짓? 나랑 같이 살던 유진언니도 마른 걸로 치면 상위 2퍼센트에는 너끈하게 들 정도였는데 그녀는 그보다 더 말랐었다. 분지르기라도 했다면 바로 힘없이 똑, 하고 소리가 날 것 같은 몸매에 아무렇게나 틀어올린 머리카락 아래로 드러난 목은 빼빼로처럼 가늘었다.
그러나 옆집 남자는 그렇게 가느다란 그녀를 신나게 쥐어 팼다. 새벽 두 시까지 죽이네 살리네 하는 욕이 난무했다. 처음에는 옆집인지 몰랐다. 그렇게 가느다란 여자한테 때릴 게 어디 있다고 때렸는지, 얼핏 보면 조폭처럼 건장한 그는 자기 아내를 질긴 샌드백처럼 여기는 모양이었다. 옆집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던 나는 112를 돌려서 구원을 요청했고, 그들은 이 동네엔 이런 일이 아주 익숙하다는 듯 말 그대로 전화를 끊자마자 사이렌 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아, 소리질렀다고 더 맞은 건 아닐까. 나는 숨을 죽였다. 며칠 후 옆집 여자가 찾아왔다.
신나게 두들겨 맞던 옆집 여자
그녀가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벨을 눌러서, 가짜 새소리 벨이 혼잡한 닭장처럼 울었다. 문을 열자 창백한 얼굴의 그녀가 뭐라고 화를 냈다. 밤에 우리가 문을 너무 쾅쾅 닫는다는 거였다. 그 전에 나는 그녀가 조금 불만스러웠는데, 우리 현관 앞에 재활용품을 수거하려고 비치한 상자에 그녀가 마구 자기네 물건들을 버렸기 때문이었다. 다 쓴 쌀 푸대부터 오란씨 페트병까지, 그녀가 내놓는 재활용품은 다채로웠다. 그 큰 상자에 우리가 버린 건 500밀리짜리 우유팩 한 통 뿐이었다.
내가 우리 쓰려고 둔 상자에 재활용품을 버리셔서 곤란하다고 어물어물하며 말을 꺼내자마자, 그녀는 얼굴에 생기가 자르르 돌며 자기가 버린 증거 있냐고, 당신이 봤냐고,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내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며 기대감에 가득 차 기세등등한 그녀의 얼굴은 화사하기까지 했다. 그 화사함 앞에서 나는 할 말을 모조리 잃어버렸다. 말하려면 백 마디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단어들이 기력을 잃었다.
“그녀의 짜증은 이웃으로 향하네”
그래서 다만 고개를 깊숙이 숙여 보이고 제가 오해했나 보네요, 실례했습니다. 문 소리 때문에 불편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꼭 주의하겠습니다. 라고만 말했다. 고개를 들고 난 다음 눈에 들어온 그녀의 얼굴에서는 아까의 등등한 화사함은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녀의 표정은,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런 표정이었지만 굳이 찾자면 곧 울음을 터뜨리려는 얼굴에 가장 가까웠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문을 쾅 닫고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현관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한숨을 쉬고 개끈을 묶어 산책을 나갔다. 현관문을 열쇠로 잠그는데 울음 섞인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개 같은 자식아. 사는 게 왜 이렇게 더럽냐고오... 그 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울기만 했다. 아, 그러게. 사는 게 왜 이렇게 더럽나. 그 날 산책은 몹시 칙칙했다. 나는 밤 산책은 원래 다 그런 거라고 개에게 말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더럽냐고오오오…”
그 다음에 그녀가 벨을 누른 건 장마 때였다. 이번에도 가짜 새소리 벨은 모가지를 쥐어잡힌 닭처럼 울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나가보니 그녀는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지금 하수구가 넘쳐서 우리 집 다 잠겨요! 안 도와주고 뭐해요! 당황해서 망연히 그 집에 들어가니 과연 다용도실이 오물 섞인 물로 찰랑찰랑했고, 아들내미는 어쩔 줄을 모르고 거기 서 있었다.
집에서 대야 같은 걸 가져와서 그녀가 쭈그리고 물로 통들을 채우는 대로 바깥에 내다 버렸다. 약간 고된 노동이었다. 생각보다 물은 무거웠다. 곧 그 물이 나를 적셔서, 나한테선 하수구 냄새가 났다. 일곱 통째의 물을 내다 버리고 들어오니, 그녀는 그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아니 지금 그렇다니까.. 물이 넘쳐서.. 왜 사람 말을 안 믿는 거야.
남편분이세요? 하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굵직하고 약간 중후하기까지 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다. 옆집입니다만, 지금 댁에 하수구 문제가 좀 크게 생겨서 사모님하고 자제분 두 분께서 대처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저희도 돕고는 있지만, 바깥어른께서 즉시 와 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짧게 알았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가능한 한 빨리 와 주십시오. 내가 생각해도 나답지 않은 말씨였다. 지금 곧 오신다네요, 하고 말하자 그녀는 또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표정을 설명할 말은 없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까”
건강도 안 좋아 보이시는데, 제가 할게요. 좀 쉬세요. 라고 말하자 그녀는 나, 입원했다 퇴원한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속상해 죽겠어요... 했다. 어디가 편찮으신가요? 라고 했더니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속상해 죽겠어요..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도 속상했다. 물은 무겁고 냄새도 심했지만, 난 상관없었다. 이미 옷도 다 젖었고 힘도 좋으니까. 다만 그녀에게 더 그 물을 만지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다용도실에 물이 빠지고, 그녀의 아들은 작은 손으로 마루에 넘친 물을 닦고, 내가 물통을 챙겨서 나가려는데 그녀가 작게 고맙다고 했다. 잘 쉬세요, 하고 말하자 그녀는 살짝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바로 며칠 뒤에 그 집은 비었다. 그녀는 잘 쉴 틈도 없이 이사했던 거였다. 얼마 뒤에 나도 그 집을 떠났다. 그래도 가끔 새벽이면 그녀가 생각난다. 내가 그녀에게 말 한마디 걸었더라도, 그녀의 인생에서 달라지는 거라곤 없을 거였다. 이곳은 이웃을 생각하기가 참 난해한 도시이다.
김현진(게임 시나리오 작가)
===> 이것 역시도 돌아다니다가 찾았습니다.
글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이 어쩜 이렇게 유려할수 있을까요?
읽으면서 내내 아!!!! 만 하고 말았다는....
이웃을 생각하기 난해한 도시라는 그말이 가슴아프게 느껴졌어요.
생각을 많이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