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영님의 "설빙화"
"소좌님, 연꽃철이 이제 거의 끝나가요." ... 은류
이상도 하지요.
책장 사이사이... 이야기 군데군데...
가슴 우둔히 뛰게 만드는 말들이 하 많은데.
이상하게도 은류의 저 한마디 대사가 책장을 덮은 지금에도
자꾸 제 뇌리에 남아 참으로 아리게 합니다.
저가 일본인임을,
뉘에겐 영웅일지 모르나 그 바깥에선 침략자라 불리울 거라는 걸 부정하지 않는, 한 남자와
저가 조선인임을,
페퇴피의 시집에서처럼 '사랑과 자유, 제가 염원하는 모든 것'
사랑이 소중하나 그보다 귀하게 여긴 자유를 위해 사랑마저 기꺼이 바칠 것이다… 숨기지 않는, 한 여자
서로가 간절하다 하나, 보탬도 덜함도 없이 제 모습 그대로 다가서기에
그만큼 애틋하면서도 이미 그들의 이야기의 끝이 이별일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던 탓일까요.
슬픈 이야기를 무던히도 피해가는 저인데 그럼에도
그래도 살아지더라 하던 그 슬픈 세상, 어딘가에서 이런 사연 하나 간직한 채 스러진 연인이 있었노라…
그가, 그녀가, 제게 오니 그저 사랑하였노라…
찬찬히 그들의 발자욱을 따라갈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탓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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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백! 우리 살아 함께할 수 없다면, 죽어서라도 함께 합시다. … '양축'
"비극이라 생각하십니까?" ... 스털링
"저들이 아닌 바에야 왈가왈부 해봤자. 선생의 의견은?" ... 류
"비극이라 생각합니다만." ... 스털링
"밖에서 바라보는 군." ... 류
"안에서면 다를까요?" ... 스털링
"아마도." ...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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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舌)끝에 얼음(氷)이 가득찬 듯 시리운 말(話)…… 그대.
호소카와 류라는 이름의
주은류라는 이름의
……그대.
자유를 잃은 이에게 한치앞을 기약하는 것초자 버거운 것을
곧게 영원을 말하는 그대…
"기억해. 지금부터……
금생, 내세가 있다면 그 다음도."
저에게 그리움이 될 수 없는, 꿈이라도 차마 그리할 수 없는 이인데...
그대를 기억하라는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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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죽어, 사랑하는 당신이라서 행복……."... 류
"당신을 사랑해, 사랑해요."... 은류
"알……아." "책장……에 숨기고, 눈 안에 숨겨서……." ...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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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雪)산에 임이 저를 부르길(聘) 간절히 바라오며 홀로 맺힌 눈꽃(花),
고즈넉하나 차마 놓을 수 없는 붉은 마음…… 사랑.
이내 몸에 새하얀 눈이 쌓이고 쌓여
얼고 또 얼어도
그대라는 임을 알아 퍼덕이는 내 더운 심장을 어찌하진 못하리니.
"사랑……을 얻었으니 목숨 정도……, 값…… 싸군."
"살아…… 남아, 어떻게든……, 지금……처럼 아름……답게." ... 류
사랑하던 두 주인공이 죽는 건,
독자들에게는 새드이지만, 죽음후에도 함께 할 수 있는 그들에겐 어쩌면 새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만약 둘 중에 하나만 죽는다면,
독자들에겐 새드이나 그나마 다행,
이야기속 제 연인을 살리고자 한 이에겐 그것만으로 다행 연인을 떠나보내려는 이에겐 스산한 회한이 될지도 모르지요.
감정을 나누는 일이란 그 자체가 사치로 다가왔을 수도 있는 그 암울했던 시절,
사랑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지 말라… 당부하였을지도 모릅니다.
허나,
비록 내 눈가를 시립게 할지언정
사랑이 사랑을 부르지 못하게…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어찌하나요…
눈(雪)처럼 차갑게 시려도
얼음(氷)처럼 제 손마디마디 마음 구석구석을 송곳마냥 날캄히 찔리어도
그대가 저를 불러 꽃(花)이 됨이
… 행복하다 하는 것을요.
잘못된 시간, 어긋난 장소
그저 조금 이른 만남이었다고
그저 조금 늦게 해후하는 것이라
… 할 뿐입니다.
다음 생애는 이보단 덜 아프기를…
부디 다시 찾을 이번 생애에는 하얀 눈(雪) 위의 피 머금어 얼음(氷)진 붉은 꽃(花)점 점점이 피어나기 않기를
…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랑을 잃었어도 살아가라……
류, 그가 그리 말했으니.
설빙화, 주은류… 널리(周) 은빛(銀) 은은히 담겨 흐르는(流) 물길 되어
빙도, 호소카와 류… 잔(細)물결 굽이굽이 어느 내(川) 잠시 잠이 들어있을 용(龍)을 감싸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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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와가 무늬고, 어느 기와가 바탕일까요?" ... 은류
"겨울이 가니 눈이 녹는 걸까, 봄이 오니 눈이 녹는 걸까?" ... 류
사랑이라 그대를 바라게 된 걸까,
그대라서 사랑이 된 걸까…
멀잖아 눈녹아 봄이 오겠지요...
그대가 기다리면 나역시… 고이 머금은 그 꽃망울 터뜨리려오.
그대가 간직하고 있었노라 하면 나역시… 오랜동안 담아둔 그 말 전할테오.
당신을 기억합니다.
그대는 내겐 '사랑'이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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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예전 설빙화 후생편인 '설빙화, 그 후 이야기'의 소개글로 적은 글귀 하나 빌어
이 감상글을 마칠까 합니다.
사랑을 말하기에는 세월이 주는 무게가 너무 컸더라,
슬픔을 거둔 채 눈물로 인연을 말하고 사라져간 연인들.
제 설움에 이루지못하고 놓아버린 서로의 연인 찾아 다시 생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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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리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류와 은류… 가리고 가려져 못다한 애잔한 사랑.
그들의 련(連)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