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가장 높은 언덕 끝에 일대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저택이 있었다. 고래 등 같은 그 집은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가문이 사는 곳이었다. 조선시대 왕비도 나고, 국회의원을 내기도 한 유서 깊은 가문이 사는 집이었다.

 

한때 거주하는 이가 수 십 이 넘었다는 그 집안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부식과 쇠퇴를 하고 있다.

 

전대 큰 어른이 지나치게 욕심이 많았다. 보이는 것은 모두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짓도 서슴지 않았다. 원래도 많았던 재산이 더 늘어났다. 원성이 높아지자 그 어른은 존경받는 집안에서 며느리를 들였다. 새로 들인 며느리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굶지 않는 일에 먼저 나섰다. 인근에 살던 이 중에 이집 큰 어른이 악행을 안 본이가 없기도 했지만 며느리의 덕을 안 본이도 없었다.

 

사람으로 북적대던 그 넓은 그 집안에는 지금 단지 네 명만 거주하고 있다. 집주인 부부와 겨우 성인이 된 안주인의 남동생과 어린 아들 하나가 다였다. 지나치게 큰 그 집은 귀신도 함께 살고 있는 듯 고요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 집의 육중한 대문이 이른 아침에 활짝 열렸다.

깨끗이 정리된 안마당에는 넓은 차양과 멍석이 놓였다. 잔칫날이기라도 하는 듯 넓은 상이 멍석자리 위로 준비되어 있다. 마당 뒤쪽으로 예전에 사용하던 넓은 주방과 가마솥 가득한 마당이 오늘의 분주한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은 돌아가신 전대 안주인의 제삿날이다. 전대 안주인의 기일이 되면 많은 이들이 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이른 사람을 싣고 온 큰 차에서 힘을 쓰는 남자들과 주방 일을 할 여자들이 한 무리 내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삼삼오오 혹은 혼자서도 이 집 대문을 넘어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일손을 보태기도 혹은 들꽃 한 송이라도 들고 이 집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이 집에 들어온 이는 누구라도 배 불리 먹고 누구라도 애도를 할 수 있는 날이었다. 음식도 풍성했고, 술도 넉넉했고 햇볕조차도 풍요로운 어느 날이었다.

 

 

 

 

한금이씨는 삼일 전에 이미 이 집 대문 안을 들어섰다.

한씨는 결혼하여 아들 다섯에 딸 하나를 낳았다. 학교 선생이던 남편이 먼저 떠나고 기울어진 집안을 큰 아들이 일으켰다. 지나치게 똑똑한 동생들 뒷바라지 하느라 혼기를 놓치고 돈 벌기에 바빴다. 남들보다 키도 크고 훤하게 낳은 큰 아들이 동생들 때문에 제 인생을 버리는 것에 안타까움과 든든함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아들이 뒤늦게 이 넓고 큰 집을 물려받을 아가씨와 결혼하겠다고 데려왔다. 어린 남동생과 손을 꼭 잡고 나타난 아가씨를 본 순간 한씨는 어쩌면 큰 아들의 이름의 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큰 아들은 귀신 나올 것 같은 이 집의 주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침상을 치울 시간쯤에 한씨의 며느리들이 대문을 들어섰다. 자신들보다 어린 큰 형님을 맞은 며느리들은 기꺼운 표정으로 한씨에게 다정히 인사했다. 큰 아들이 제 남편의 공부 뒷바라지를, 결혼 뒷바라지를 어찌 했는지 잘 아는 며느리들은 며칠째 이곳의 일손을 도왔다. 자식 여섯을 다 짝지우고 후손까지 보았으니 뒤늦게 복이 터진 것 같았다.

 

한씨는 포대기에 어린 손자를 들쳐 업고 마당 주변을 어슬렁 거렸다.

 

가끔씩 히끅 히끅 하며 놀라는 손자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힘든 줄 모르고 분주히 일하는 사람들 사이를 한가롭게 다녔다.

 

이른 아침 어수선한 분위기를 느낀 것인지 일찍 잠에서 깬 어린 손자가 열린 대문을 잡고 한참을 울었다. 내꺼라고 소리치며 키도 닿지 않는 대문고리를 가리키며 목청껏 울어댔다. 어르고 달래도 듣지 않았다. 마당에 들어선 이들을 보면서 한층 더 목놓아 내꺼라며 경기하듯 울어댔다.

 

말을 배운지 얼마 안 된 손자는 어디서 배웠는지 내꺼 라는 말을 하며 마당에 들어선 사람을 보고 울었다. 제 풀에 지쳐 한씨 등에 업혀 꾸벅꾸벅 졸고 있다. 한손에는 곶감과 한손에는 강정 하나를 꼭 쥐고는 이 집안 유일의 핏줄이 한씨 등에 업혀있다.

 

 

돌아가신 외증조부를 빼어 닮았다며 마당을 들어선 몇 명이 등을 돌리며 작게 혀를 찼다. 제 것이라면 어떤 짓을 해서라도 가져야하는 이 집을 망조로 가져온 그 어른을 닮았다는 소리에 한씨는 속이 뜨끔뜨끔해졌다. 생전 그 어른을 봤던 사람들도 손자의 생김새를 보고는 외양까지 꼭 닮았다고 했다.

 

하필이면 그 어른을 닮았단 말인가?

선생하던 친할아비도 있고, 독립 운동했다던 집안의 외할머니도 있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내는 지 아비도 있건만 하필이면 외증조부인지.

 

큰 아들이 뒤 늦게 낳은 김씨 집안의 장손이 하필이면 외택을 한것도 부아가 슬쩍 오르는데 외증조부라니. 손자가 들을 새라 몰래 혀를 끌끌 찼다.

 

마당 한쪽에서 바삐 움직이는 큰 며느리를 찾아보았다. 아기 엄마라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앳된 얼굴이다. 키 큰 큰 아들 옆에 서서 웃고 있는 자그마한 몸짓의 며느리가 보였다.

 

이 많은 재산을 가진 며느리가 햇살아래 투명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본 큰 아들도 슬쩍 따라 웃었다. 바쁜 와중에도 둘이 눈을 마주하고 같이 웃는 모습을 보면 또 제짝이 맞나 싶기도 했다.

늦은 나이까지 혼인도 않던 큰 아들이 지나치게 어린 신부를 데려왔다. 그것을 생각하니 또 가슴이 뜨끔뜨끔해진다.

 

휠체어를 탄 젊은 청년이 한씨 앞으로 다가왔다.

큰 아들 내외가 믿고 의지하는 박선생이었다.

한씨는 박선생의 보이지 않는 다친 다리 쪽으로 가려는 시선을 겨우 겨우 끌어 잡았다. 한때 나라 최고 대학의 법학을 공부했던 사람이라고 들었다.

 

“박슨상 오셨습니까?”

“우리 꼬맹이 도련님께서 아침부터 한바탕 했다면서요?”

“도련님은 어데 도련님…. 그런 말씀은 마이십시오.”

 

대문을 넘어선지 얼마 안 된 박선생에게 벌써 이른 아침 일이 들어갔나싶어 한씨는 또 가슴이 뜨끔해졌다.

 

“지 집 마당을 사람들이 밟는다고 생난리를 쳐서 월매나 놀랬는지. 애비한테 혼꾸녕이 났습니다.”

 

박선생이 등에 업힌 손자 얼굴을 보기 쉽도록 한씨는 등을 돌려주었다. 울다울다 지쳐 담이 든 손자의 얼굴을 박선생이 가만히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돌아가신 외증조부를 닮았다고 하던데….”

 

한씨는 목에 걸려있던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박선생은 오늘 제상을 받는 안주인을 가장 가깝게 모시던 사람이었다. 손주의 외증조부 얼굴도 알고 있는 이였다. 한씨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어렵사리 말을 꺼내었다.

 

“이름대로 산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집주인도 이름대로 살고 있고.”

 

박선생이 한씨의 속내를 한 번에 읽어냈다.

 

“돌아가신 어르신이 지어주신 큰 이름대로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그렇긴 하지만.”

“그저 지 밥 먹을 만큼만 욕심내라고 했으니 큰 어른과는 다르게 살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그래도… 울 집 장손이기도 한데….”

 

한씨는 또 속이 뜨끔뜨끔해졌다. 뒤늦게 큰 아들이 겨우 하나 얻은 아들인데…. 김씨 집안 장손이기도 한데. 지나치게 작은 이름인가 싶어 그것은 그것대로 마음이 쓰였다.

 

“내가 야 장가갈때까정 살랑가 모르겠습니다.”

 

한씨는 한숨처럼 말을 뱉었다.

 

“지금도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잘 신경 쓰면 그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하이구마. 야 애비 장가 든 것 본 것 만도 다행이지 싶습니다.… 박선상님.”

 

한씨는 휠체어에 앉은 박선생을 불렀다.

 

“박선생이 잘 좀 봐주소. 이 놈이 장가갈때까지. 제 짝을 만날때까지. 이상한데 욕심내지 말구로. 지 애미애비처럼 지꺼 다 내주지도 말구로. 딱 그렇게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은 내꺼란 말을 먼저 배운 아기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내 먼저 가믄 꼭 봐주이소.”

“저야 가족도 없고 제 아이처럼 잘 보겠습니다. ”

 

잠결에 제 손을 가져가 코를 문지르는 아기를 보며 두 사람은 가만히 웃었다.

 

“다르게 살 겁니다. 핏줄 아래 작은 마님 피도 들어있고 아가씨 피도 들어있고 아비 피도 들어있으니 아마 크게 잘 자랄 겁니다.”

 

다리를 잃은 박 선생이 할머니 등 뒤에 업혀 가끔씩 푸르르 놀라 몸을 움쯜거리며 잠이 든 김씨 집안의 장손이자 윤씨 집안의 유일한 핏줄을 보며 아련하게 보았다.

 

 

밤이 되자 마당에 환하게 불이 켜졌다.

한낮부터 시작해서 끊이지 않고 사람이 들어왔다. 나간이 보다 들어온 이가 많아 넓은 마당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한씨의 아들들이 대문을 넘어왔다. 큰 형이 의대공부까지 시켜 의사까지 만들어 놓은 잘난 아들들이 검은 옷을 차려입고 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한참 일하던 며느리들이 제 짝들을 보고 쪼르르 찾아와 살갑게 아는 체를 하고 바삐 사라졌다.

 

윤씨 집안 며느리의 제삿날에 김씨가 더 많았다. 추모객이 객식구가 더 많은 이상한 추모의 밤이 시작되었다.

 

 

넓고 높은 제상이 차려졌다.

한씨 등 뒤에 업혀 하루 종일 히끅히끅 울며 나무 하나 돌맹이 하나에도 내꺼라고 울던 손자도 말끔히 씻고 제상 앞에 섰다.

이 집안 유일의 어린 핏줄이었다.

그 뒤쪽으로 한씨의 아들들과 손자들이 나열했다.

 

제상 앞에 앉은 진짜 핏줄 손자의 외삼촌의 향을 피웠다. 큰 아들이 외삼촌이 내민 잔에 술을 따르는 모습을 한씨는 물러나 보고 있었다.

 

“자 절합시다.”

 

참석한 모든 이가 제상을 향해 두 번 절을 올렸다. 감사의 마음으로 애도의 마음으로 정갈하게 절을 올렸다. 한씨도 속으로 묵념을 했다. 고맙소. 고맙소. 하고 사돈을 향해 속으로 말을 건넸다.

 

큰아들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축문을 읽었다. 밤공기 사이로 큰아들의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벌써 집중력을 잃은 손자가 한씨의 다른 손자 품에서 몸을 비틀었다.

차례차례 순서가 하나하나 지나갔다.

“식아, 절해야지.”

 

엄한 아비가 아직 기저귀도 떼지 않은 아이에게 말했다. 뒤뚱거리는 아이가 어른이 흉내를 내며 멍석 위에 엎어지듯 절을 했다.

그 모습이 우스워 한씨도 아이 어미도 구경하던 이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김씨면 어떻고 윤씨면 어떠냐 그냥 건강하게 자라라. 잘 먹고 살면 되는거지.

울 아 좀 잘 봐주소.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할머니가 잘 돌봐주시겠지 하고. 제상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하루 종일 마음 한켠이 뜨끔뜨끔하던 한씨는 그제야 속이 풀리는 것 같았다.

 

뒤이어 마당 넓은 곳에 섰던 사람들이 일제히 제상을 향해 절을 시작했다. 은혜 받은 이들이 감사한 마음을 담아 하루 종일 장만한 음식을 올려놓은 상을 향해 정성껏 절을 올렸다.

 

큰 아들이 지방을 떼어다 불을 붙였다.

화르륵 불이 붙은 지방이 금세 재가 되어 까만 밤하늘을 향해 바람을 타고 떠돌다 스르르 사라져버렸다.

 

뒤뚱뒤뚱 걸어간 손자가 잘 차려진 제상 맨 앞에 있던 사과를 잡으려 발돋움했다. 높게 쌓인 과일이 우르르 상위로 떨어졌다.


 “어차피 다 니껀데 뭐….”

 

누군가가 소리쳤다.

우하하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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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봄꽃이 피고 있습니다.

벚꽃도 목련도 개나리도 수줍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푱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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