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



 

 

 

“아나.”

 

[밥집] 넓은 나무 탁자위로 최사장이 탁자위로 천엽을 올려놓았다. 도축장에서 얻어온 신선한 것이라며 가끔씩 내 앞에 날 것을 내놓았다.

 

“소금장 찍어 묵어봐라.”

 

앞에 앉은 최사장과 박선생이 눈을 반짝이며 나를 재촉했다.

 

“그래 내가 아가 멕인다고 젤로 좋은 걸로 내오라 했다. ”

 

휠체어에 앉은 박선생은 나를 가끔 아가라고 부른다.

나를 아가라고 불러준 사람은 박선생이 처음이었다. 할머니는 저것들 혹은 기집년들이라고 불렀고 마을 사람들은 희래등 딸내미들이라고 불렀다. 내 키가 박 선생보다 훨씬 큰 것 같은데 박선생은 나를 다정하게 조가야 하거나 아가라고 했다.

 

최사장은 나를 아 라고 부른다.

어린애 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가끔씩 최사장의 말투에서 나는 아가가 되기도 한다.

 

반짝 눈을 빛내며 내 앞에 앉은 두 사람을 보고 젓가락을 들어 수세미를 닮은 것을 집어 소금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마치 쓴 한약을 먹는 것처럼 질끈 씹었다. 소금과 참기름 맛이 입안에 먼저 퍼졌다. 비릿함보다 고소함이 먼저 입안으로 퍼졌다.

 

“쇠간도 먹었으면 월매나 좋아. 그 콤퓨타진 뭔지 엄청 눈알 빠지게 공부해야 한다믄서. 쇠라도 씹을 나이에 그건 와 못 묵노? ”

 

작년 겨울 새빨간 생간을 내어놓고 두 사람이 먹어보라 권한 적이 있었다. 물컹하고 뻘건 그것을 끝내 먹지 못했다.

 

“먹을 만 하나?”

 

꿀꺽하고 입안에 든 날것을 삼키자 마자 박선생이 내 앞에 빠르게 술잔을 내밀었다. 오늘의 술 색깔은 황금색에 가까웠다. 턱짓으로 술잔을 가리키며 마시라 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꼴깍 하고 술을 단숨에 비웠다. 싸한 향이 코 끝에 스쳐왔다.

 

“옳지, 옳지.”

 

김식과 얽힌 사람들은 어딘가 좀 이상했다.

내가 만난 사람들과는 달리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기도 하고, 나사가 하나 더 들어있는 것 같기도 한 것 같았다. 최사장과 박선생은 나만 보면 나사 하나 빠진 사람처럼 얼굴에 모든 근육을 풀고 웃었다.

 

“ 쫌 더 먹어봐라.”

“그노무 시험인지 뭔지 끝날 때마다 아가 우째 이렇게 때꾼하노?”

 

최 사장은 격한 말투로 박 선생은 조근조근 다정한 말투로 나를 걱정했다.

권하는 눈빛에 다시 젓가락으로 천엽을 집어 입안에 집어넣었다. 두 사람이 옳지 옳지 하면서 나를 다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뭐든 잘 먹어야재.”

 

매주 금요일마다 세차장으로 출근을 했다.

세차장 사무실로 출근을 하면 휠체어에 앉은 박 선생과 태사장이 낡은 가죽소파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꾸벅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면 박 선생이 생글생글 웃으며 반가이 맞아주었다.

 

나사 하나가 더 박혀 있는 것 같은 사람은 태 사장이었다.

태 사장은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아마 처음 만난 그날이 가장 많은 말을 한 날 같았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내 인사를 받았다. 보이지 않는 어떤 선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나처럼.

 

세차장 알바라 나름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세차장 일은 하지 않았다.

박 선생은 내게 신문을 읽어달라고 했다. 눈이 어두워 글씨가 잘 안 보인다며 세 개의 신문을 두고 사회면을 읽어달라고 했다. 세차장에서 나는 낡은 소파 한가운데에 앉아 키 낮은 테이블에 신문을 펼쳐놓고 사회면을 정성껏 읽었다.

 

정치면도 경제면도 아닌 사회면만 읽으라 했다.

신문을 읽다보면 태사장이 따뜻한 보리차를 어느 땐 얼음이 들어있는 시원한 보리차를 올려주었다. 내가 또박또박 읽는 신문 기사를 두 사람 모두 귀 기울려 들어주었다.

박 선생은 옳지 옳지 하는 표정을 하고 태 사장은 안 들리는 척 하는 표정으로 묵묵히 내가 기사를 읽는 소리를 들었다.

박 선생은 말상대가 생겨서, 태 사장은 박선생이 즐거워해서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후하지 않고 박하지도 않은 적당한 알바비 때문에 꾸준히 이곳을 오고 있다. 아마도 조금이라도 후한 대우가 있었더라면 진작 선을 긋고 말았을 거다.

그런데 박선생과 최사장의 후한 눈빛에는 아가라고 부르는 호칭에도 제대로 선을 긋지 못했다.

 

“잘했다. 잘했어. 이제 고기 묵으라.”

 

최사장이 불판위에 구워진 고기를 내 앞 접시 위로 올려주었다. 마치 엄마처럼.

 

그동안 이곳을 다니면서 몇 가지 알아 챈 것이 있었다. 밥집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태사장이 부리는 사람들이 전용 밥집 같은 곳이었다. 밥집 옆에 붙은 건축설비가 태사장거라고 했다. 앞의 세차장도. 주차장도. 주유소도.

내가 갔던 세종병원 옆에 쌍둥이 같은 크기로 새로운 병원 건축을 진행하고 있었다. 김식이 군대 가기 전까지 내내 알바 했다던 곳이 병원 건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밥집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았고 대부분이 건장하고 힘쓰는 남자들이었다.

 

그런 동안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다시 겨울이 오고, 다시 겨울이 왔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하면 또 빠르게 지나갔고, 빠르게 지났나 싶으면 일초 일초가 선명히 느껴질 만큼 느리게 지나갔다.

 

 

앞 접시에 담긴 고기를 먹자마자 또 앞 접시에 고기가 올려졌다. 박 선생이 또다시 빈 잔에 술을 따라 내밀었다. 황금색 담금주서 알싸한 취기가 올라왔다. 나는 내 먹는 모습만으로도 배부르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준비해 간 말을 꺼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응?”

“왜?”

 

두 사람이 화들짝 놀란 얼굴을 했다.

 

“이제 이사 합니다.”

“갑자기? 이사를 왜?”

“어데 멀리가나? 와?”

 

엄마만큼 적극적인 관심으로 두 사람은 나를 쳐다보았다.

지난 밤 미리 건넬 말을 정리했는데 생각보다 과한 반응에 잠깐 말을 멈췄다. 고작 이년 100번쯤의 만남에 두사람에게 많이 익숙해졌나보다.

 

“저…이번에 학교 졸업도 하고.”

“그럼 어데 취업했나? 멀리로?”

 

최사장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급하게 말을 끊어냈다.

 

“ 취업은 아니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해보려고 합니다. ”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옥탑방을 지키는 동안만 나에게 온 연결은 옥탑방을 떠날 때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사는 와? 그냥 그대로 거기 살면 되지.”

 

잠깐 동안 테이블 위에 침묵이 다시 내려앉았다. 최 사장은 서운함으로 박 선생은 섭섭함과 다른 먼 생각으로 침묵했다.

 

“원래 주인이 돌아올때도 됐고… 전 잠시 맡아준거라서요.”

“하이고…그 힘든 공부를 또 한다고? ”

“태 사장은 아나?”

 

박 선생이 내 눈을 맞추며 물었다.

 

“오늘 말씀 드리려고 했습니다.”

 

덜컹 소리가 나더니 찬바람과 함께 문이 열리더니 태사장이 밥집 안으로 들어왔다. 등장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위압감이 밀려왔다.

 

“태 사장오네.”

“호랭이도 지 말하면 온다더니 태 사장 호랭인가 봅소.”

 

늘 찾는 사람도 많고 하는 일도 많은 태 사장은 이른 저녁을 먹는 내 시간에 가끔씩 밥집에 들렀다. 차갑고 정확하고 거침없는 태도로 사람을 다루고 일을 처리했다. 날카로운 표정과 시선에 두 사람과 있을 때와는 달리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아가 이사를 해야 한다는데 태 사장 알고 있었소? ”

 

최 사장이 일어나 태 사장 앞으로 수저 한 벌을 내놓았다. 자리에 앉으려던 태사장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놈하고 얘기가 된 거고?”

 

방한복을 벗으며 태사장이 천천히 옆자리에 앉으며 내게 물었다.

 

“따로 얘기 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주인이 돌아오니 비워주는 것 뿐입니다.”

 

태사장의 엄한 눈빛에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에고… 서운해서 우짜냐.”

“대학원 공부가 시간이 많이 필요 한 거라… 여기 나오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밥은 먹어가며 공부 할 거 아니야?”

 

내 역할은 다 했다.

 

“그 집은 구했어? 어디 쪽으로 가려고?”

“이 동네에서 다니면 너무 먼가?”

“그런 건 아니지만. 학교 근처가 좀 더 싸고, 방도 많이 나와 있어서… 그쪽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

 

최 사장이 내게 묻는 동안 박 선생이 슬금슬금 태 사장 얼굴을 쳐다보았다. 마치 태사장이 하나하나 다 들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학교 근처 동네야 내 알지. 집도 쪼개고 쪼개서 애들 하숙한다고 집을 완전 망가뜨렸두만.”

“그쪽에서 이년 정도 살았는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볕이 들지 않던 나를 닮은 방이 머릿속에서 지나갔다.

 

“니 혼자 살았나?”

“…네.”

 

다시 긴 테이블에 잠깐 침묵이 내렸다.

 

“혼자 나와 살면서 기특하네. 높은 학교도 졸업하고, 대학원도 가고.”

 

혼잣말처럼 최 사장이 말했다.

 

“그럼 공부하기 맴 편한 집이면 되겠네. 학교 댕기기 좋고. 그재?”

 

박 선생이 태 사장을 흘끔 쳐다보더니 나에게 하나하나 정리하듯 물었다. 최 사장도 태 사장을 쳐다보았다. 마치 결정권이 내가 아닌 태 사장에게 있는 듯 두 사람이 태사장의 반응을 살폈다.

 

“그런 집이야 맹굴면 되지. 이 동네에 태사장이 지은 집이 맻 갠데….”

 

드르륵 의자 끄는 소리가 나더니 태사장이 일어섰다. 가게 전화기로 다가간 태사장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있어봐라.”

 

박 선생이 내게 눈을 찡긋 하며 웃었다.

박 선생과 최 사장이 귀를 세우고 전화 내용을 훔쳐 들었다. 나도 따라 전화 내용을 들었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가게로 계약서 갖고 오라는 특별할 것도 없는 통화였다. 아직 나는 방도 구하지 않았는데 계약서가 먼저 오면 조금 이상한 건가?

 

전화를 끊은 태사장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아가 들어갈 만한 데는 있지?”

“씰데 없는 걱정은. 계약서 챙겨갖고 온다잖소. 술이나 한잔 더 묵소.”

 

어쩐지 안도를 한 듯한 두 사람 얼굴을 보고 나는 준비했던 다음 말을 꺼냈다.

 

“저… 그래서.”

 

가방 안에 넣어 온 납작한 선물 포장을 세 개 꺼냈다.

 

“야야… 뭔데, 뭔데? ”

“야는 뭔 돈이 있다고 이런 걸 다 사왔노? 참.”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입이 벙실벙실 웃으며 빠르게 상자를 하나씩 채갔다. 박선생이 상자 하나를 슬쩍 태사장 앞으로 밀었다.

 

“이건 태사장껀가보네.”

 

상자를 묶은 리본을 푸는 두 사람의 손짓이 신이 났다. 입 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 나오는 웃음을 피식피식 흘렀다.

 

“아이고 찰지다.”

 

장갑 표면을 쓸어내리며 최 사장이 말했다.

시장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온 가죽장갑이다. 작년 엄마에게 사준 장갑과 같은 것으로 골라왔다. 장갑 안쪽으로 털까지 들어있어 따시다고 엄마가 좋아했던 그것으로 골라왔다. 마루에 앉아 구경하던 할머니가 입을 삐죽거렸던….

 

“손이라도 남아있어 다행이네. 이렇게 좋은 걸 다 끼어보고.”

 

장갑을 손에 낀 박 선생이 벙싯벙싯 웃었다. 손바닥으로 박수를 쳐보기도 하고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하며 웃었다. 태사장도 장갑을 손에 끼워 넣어 보았다.

 

“기분이 좋아… 한잔만 더 묵어야겠다. ”

박 선생이 장갑 낀 손으로 정성스레 술잔에 술을 따랐다. 옆에 장갑을 낀 최사장이 흔쾌히 허락을 하는 웃음을 보냈다. 나는 조심스럽게 같이 웃었다.

 

덜컹 문이 열리더니 겨울바람과 함께 어른 한명이 들어왔다.

 

“형님. ”

 

태 사장만큼 훌쩍 큰 키는 아니었다. 뽀얗게 말간 얼굴, 세상 고생이라고는 한 것 같지 않은 질 좋은 패딩을 걸친 모습은 부잣집 도련님 같은 인상이었다.

 

“갑자기 계약서는 무슨?”

“아이고 어서 오시게. 윤 사장.”

 

가게를 들어오다 말고 박 선생을 본 사람이 꾸벅 인사를 했다.

 

“방 보러 가자. 부동산 사장 왔으니깐.”

 

태사장이 무뚝뚝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금 간다고? 하모 이제 우리는 못 보나?”

“진짜 딸내미있는거 맨키로 재밌었는데.”

“눈이 삐었는기요? 와 딸내미라 하는데?”

“딸내미를 딸내미라 하지 뭐라 하는데?”

 

최 사장과 박 선생이 나를 두고 티격거렸다.

 

“한번 안아 봐도 되나?”

 

최 사장이 머뭇거리더니 나에게 말했다.

 

“그동안 군말 한번 없이 기특하다.”

 

나는 멋쩍게 서 있었다. 두 팔을 어찌 해야 할 지 몰라 어정쩡하게 서 있기만 했다. 튼튼하게 솟은 최사장의 배가 내 배에 닿았다. 내 등을 토닥토닥 두툼한 손이 두드려주었다. 엄마 말고 어른과의 이런 접촉은 처음인 것 같았다.

 

“눈 치우다 말고 끌려와서 정말 욕봤다. ”

 

나는 휠체어에 앉은 박 선생을 향해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를 했다. 진짜 다리가 없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곳을 다니는 동안 항상 포근했다.

 

“고맙게 잘 끼마.”

 

가죽장갑을 낀 손을 양손으로 탁탁 박수를 쳐 보이며 싱글싱글 웃었다. 태사장을 따라 [밥집]을 나왔다. 차가운 바람을 따라 문을 탁 닫았다. 내 마음에 셔터 하나를 내리듯 따뜻한 안쪽의 사람들을 격리했다.

그거면…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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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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푱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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