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던 그 방은 나와 닮아있었다.
볕이 들지 않는 북향의 방. 외부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작은 창문 그 마저도 현주가 가져온 예쁜 커튼으로 막아두었다. 밖과 안을 연결하는 녹슨 철제 문. 그리고 방으로 들오기까지 어둡고 습기 찬 옆집과 이 집과의 좁고 긴 길. 흙바닥에 빠르게 잡초가 보이는 뒷마당의 습한 냄새.
사람에게 상처받을까봐 선을 긋고 날을 세우고 경계하는 음습한 나와 닮아있었다.
아마 나 혼자 방을 구할 때 나와 닮은 모습에 계약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쾅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나를 닮은 이방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쾅쾅쾅
다시 급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방을 이렇게 두드리는 사람은 한명 밖에 없었다.
느리게 걸어가 문손잡이를 잡았다.
달칵. 철컥.
내가 만들어놓은 걸림쇠와 걸쇠를 돌리자마자 문이 확 당겨졌다.
“잘 잤어?”
상기된 표정의 김식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지난 밤 이 방 앞에서 쫓겨난 지가 불과 몇 시간 되지 않았는데도 아주 오랜만에 보는 사람처럼 김식이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이거.”
비닐봉투에 담긴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봉투를 받아들고 김식이 방안으로 들어오도록 비켜섰다. 키가 큰 김식이 들어오자 방이 꽉 차는 것 같았다.
“분류만 해놓으라니깐… 하여간. ”
춘천 집으로 보낼 짐과 김식의 옥탑 방으로 갈 것, 그리고 폐기할 것을 분리하면 되었다. 내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필수품은 이미 김식의 집으로 넘어가 있었다. 실제 내 방에 있는 짐은 궁색하고 옹색하고 비루한 것만 남아있었다.
“너는 뭐 먹었어?”
봉투 안에 든 샌드위치를 꺼내며 김식에게 물었다.
나는 김식이 건네주는 모든 음식에 길들어져가고 있었다.
“응, 가게에서 이거 사면서. ”
포장을 뜯어 샌드위치를 묵묵히 베어 먹는 내 모습을 김식이 흘깃 쳐다보았다.
김식이 뒷주머니에서 하얀 목장갑을 꺼내들었다. 머리에 눌러쓴 비니모자에 일하기 간편한 복장과 장갑까지 끼고 나자 이삿짐 전문가 같아 픽 웃음이 나왔다. 내 짐을 처리하기엔 지나치게 거창한 모습 같았다.
“옥탑으로 갈 거부터 말해줘.”
좁은 싱크대 앞에서 햄스터처럼 오물거리는 나를 보며 김식이 물었다.
“대충 내 가방에 챙겼고, 저거만 가져 갈 거야.”
“이불? ”
방바닥에 내가 개켜 놓은 이불을 김식이 쳐다보았다.
“집에 이불 많은데?”
“난 저게 좋아.”
손에 든 샌드위치 조각을 마지막으로 입으로 밀어 넣고는 말했다.
“애착이불 같은 건가? ”
“뭐라는거야?”
“취향이 너무 각각이라.”
옥탑방에 이미 내가 사둔 밍크담요와 이불을 비교해 보는 눈치였다.
고작 이불이지만 난 촌스럽고 폭신한 저 이불이 좋았다. 춘천에서 올라올 때 엄마가 버스에 힘겹게 밀어 넣어가면서 가져다 준 이불이다.
“버릴 거는?”
“저 옷장. 중고로 샀는데 많이 삐걱거려.”
“그럼 나머진 다 춘천 보낸다.”
김식이 아주 가볍게 이불을 들었다. 상쾌한 얼굴이었다. 내내 이사하자고 내게 졸랐던 목적을 이루어졌다. 핏하고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김식이 키득키득 웃으며 이불을 들고 나갔다.
가벼운 손이 된 김식이 아저씨 한사람과 다시 돌아왔다.
“짐이 별로 없는데?”
함께 온 아저씨와 김식이 능숙한 폼으로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내가 늘 사용하는 옷가지와 책은 이미 김식의 옥탑 방에 가 있었고,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필요했던 비루한 짐은 삽시간에 치워졌다. 짐은 조악했고 방은 이사오기 전 열악한 모습으로 금세 돌아갔다.
11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주인집은 새 학기도 아닌 시점에 방을 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계약기간까지 월세를 미리 계산해주자 입 꼬리가 단번에 느슨해졌다.
먼지와 냉기만 남은 방안을 돌아보았다. 틀어진 화장실 문과 좁은 싱크대 떼가 탄 벽지가 빈 집 냄새와 함께 한눈에 들어왔다.
“그건 뭔데?”
김식이 불러온 1톤 트럭 아저씨와 짐을 내가는 동안 나는 현주가 걸어준 커튼을 떼고 화장실 문을 가려주었던 예쁜 천도 떼어냈다. 차곡차곡 접어 가방에 넣고 마지막으로 내가 못질하고 현주가 걸어준 그림 두 개를 떼어냈다. 먼지를 털어내고 신문지로 꼭꼭 포장을 해 두 손으로 끌어안았다.
“현주가 걸어준 거.”
현주 이름이 나오자 김식의 눈빛이 잠깐 뾰족해졌다.
“끌어안고 있길래 금고라도 되는 줄 알았지.”
“돈 들어오는 그림이래.”
픽 하고 비웃음을 날리더니 김식이 꼼꼼히 빈 방안을 둘러보았다.
“빠진 건 없네. 가자.”
달칵.
한낮에도 켜둬야만 하는 전등 스위치를 내렸다.
집 열쇠를 한쪽짜리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 나와 닮아있는 그 방을, 쓰레기 하나 없이 쓸어낸 빈 방의 문을 조심히 닫았다.
삐이걱 거리는 문소리마저 나를 닮았다 싶어 픽하고 나도 웃었다.
“왜?”
“아니.”
장갑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내던 김식이 나를 보고 물었다.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김식이 내 손을 잡았다.
김식은 아주 개운한 표정이었다.
내가 이 방으로 돌아올 때마다 마땅치 않은 표정을 숨길 생각이 없었었다.
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방을 떠난다고 해서 내가 많이 달라질 것 같지 않을 테니까.
김식이 사각지대라며 좋아했던 좁고 긴 길을 빠져나왔다.
거창한 대문 앞에 파란색 1톤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반도 채우지 못한 짐이 초라하게 들어차있었다.
“잠깐만.”
내 손을 놓은 김식이 앞쪽에 주차해놓은 하얀 자동차 쪽으로 걸어갔다. 조수석에서 김식이 황금보자기에 쌓인 상자를 두 개나 꺼내왔다. 김식이 나를 지나쳐 트럭 조수석 문을 열어 들고 온 황금보자기 상자를 실어주었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운전기사에게 내밀었다.
“왜 니가 줘? 나도 준비해놨어.”
급하게 가방에 넣어둔 봉투를 꺼내려했다.
“ 그 집에 남자가 없어서 안에까지 잘 들여 놔 주셔야 합니다.”
“알았어. 알았어. 무거운 것도 없는데 뭘”
“잘 부탁 드립니다.”
얼결에 인사하는 김식 옆에서 같이 운전기사를 향해 인사를 했다. 시동을 건 파란 트럭이 망설임 없이 출발해버렸다. 방향을 돌려 언덕길을 내려가는 파란 트럭의 꽁무니를 쳐다보았다.
“너…그건 또 뭔데?”
“뭐? 보자기? ”
“사랑 받는 며느리 연습.”
“넌 왜?”
장난끼로 대꾸하는 김식에게 쓸데없는 짓을 하냐고 잔소리를 하려했다.
“미리 연습하면 좋잖아.”
눈을 반달로 접으며 생글 웃는 김식의 표정에 어처구니가 없어 더 말을 이어갈 수 가 없었다.
“차는 뭐야?”
“피아노 원장님한테 빌렸어.”
“차도 막 빌려주셔?”
“어쩌다 비오는 날 학원 애들 픽업 알바도 해주니깐.”
세상 무해한 표정으로 웃던 피아노원장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갔다.
“차도 운전하는 줄 몰랐어.”
“이것저것 알바 하다보면 필요해서 졸업하자마자 바로 땄지.”
손에 든 차키를 돌리면서 김식이 여유 있게 웃었다.
“이사하는 날이니 짜장면 먹어야지.”
그냥 평범한 말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데 순간…묵직한 해머가 내 심장을 내리치는 것 같았다. 김식의 아주 가벼운 말에 나는 얼음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예전 어느 날 현주에게 나는 말했다.
[나는 짜장면을 먹지 않아.]
그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현주에게 아무 상처도 없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때의 그 순간의 나처럼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찌르르한 통증이 내 심장에 내려 꽂혔다.
멍청히 서 있던 나는 내 심장 쪽에 강한 충격에 하얗게 질렸다. 세상에서 사라진지 일년이 된 그 사람 때문에 나는 또 통증을 느꼈다.
“왜?”
앞서 걷던 김식이 빠르게 내 곁으로 다가왔다.
품안에 현주의 그림을 꼭 안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찌 되었을까? 내 심장을 주먹으로 쳤을까? 아니면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을까?
안간힘을 다해 현주의 그림을 붙잡았다.
“너 괜찮아?”
호흡이 심장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목에서 다시 튕겨져 나왔다. 산소가 부족한 머리가 아득해져왔다. 고작 짜장면이란 단어에 내가 병신처럼 이렇게 꼼짝도 못하고 서 있을 줄 몰랐다.
정신을 차려. 조인경.
목까지만 오던 호흡을 천천히 심장으로 끌어당겼다. 김식이 눈치 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너, 이상한데?”
“아, 아니.”
숨도 쉬어지지 않을 만큼 옥죈 목에서 겨우 목소리가 나왔다.
그제서야 공기가 내 폐로 밀려들어왔다. 깊은 잠수 끝에 물위로 나온 사람처럼 급하게 숨을 들이 마셨다.
“아니야.”
내 표정이 고스란히 김식에게 드러났다.
“이번엔 뭐가 걸린 거야? 잘 넘어 가는 거 같더니.”
나를 의심하듯 관찰하는 김식의 눈빛이 따가웠다.
“난 짜장면 안 먹어. ”
겨우 호흡을 잡았다.
“짜장면 싫어? ”
김식이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하는 연기를 김식이 모른체 해주었으면 좋겠다. 잠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럼 탕수육만 먹어.”
“아니, 나는 안 먹어. ”
내 완강하게 말했다.
나는 바보 멍청이처럼 김식에게 내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거짓말 하나를 꺼내놓았다.
“그쪽 종류는 안 먹어. ”
김식이 내 눈을 뚫어지게 보았다. 뭔가 더 말을 하기를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내 눈빛 속에 내가 숨겨둔 말을 찾아내려 꼼꼼하게 나를 살피며 기다렸다.
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김식을 바라보았다. 날도 세웠다.
“난 절대 안 먹어.”
죽어도.
아니 죽을 때까지.
뒤 엣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 딴 거 먹지 뭐.”
김식이 아무렇지도 않은 투로 말을 했다. 고작 짜장면 따위에 완강하게 서 있는 나를 봐줬다.
“가자.”
그림을 꼭 끌어안은 나를, 얼음처럼 굳어있는 나의 어깨를 슬며시 김식이 끌어안았다. 어깨동무하듯 슬며시 나를 품으로 당겼다. 김식의 체온이 내게로 건너왔다. 굳어있던 다리가 겨우 움직였다.
하얀 자동차 안에 현주의 그림을 내려놓자마자 등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급하게 담배를 꺼냈다.
찰칵.
더듬거리며 겨우 라이터를 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잘게 흔들리던 손이 깊게 마신 담배연기 때문에 겨우 가라앉았다. 내 미움의 맛이었다.
운전대로 향하던 김식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익숙해진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는 나를 시끄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11월의 찬바람에 하얀 연기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담배를 쥐고 있는 내 손이 빨갛게 시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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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쥐-
모두 새해 만복을.....